나쁜 페미니스트 - 록산 게이


17쪽
하지만 잘못에 잘못으로 대응한다고 상황이 나아지진 않는다. 페미니즘이 실패했다고 해서 페미니즘에 완전히 등을 돌려야 할 필요는 없다. 사람들은 언제나 끔찍한 짓을 저지르지만 그렇다고 우리는 인간애와 정기적으로 의절하지는 않는다. 다만 잘못된 것은 거부한다. 따라서 우리는 페미니즘의 실패를 거부하는 동시에 페미니즘의 성과와 페미니즘 덕분에 우리가 얼마나 멀리 왔는지 인정할 수도 있다. 

24쪽
우리는 계속 좋은 실력과 나쁜 행동이라는 불편한 조합을 마주하게 된다.

25쪽
물론 난 강간 농담을 싫어하지만 검열 또한 싫어한다. 이 중에서 하나를 선택해야 한다는 사실이 싫다.

29쪽
그냥 가볍게 넘기란다. 남자들은 원하는 것을 원하니까. 그리고 자기들의 욕망을 나조차도 따라 부를 수밖에 없는 근사한 음악으로 만들어낸다. 

38쪽
소재만을 착취하지 않고 주제를 전달하려면 어떻게 해야 하는지를 고민하는 중이다.

45쪽
우리가 당신을 망쳐 놓았다. 마돈나를 폭행하고도 계속해서 비평가들의 극찬 속에 영화를 찍고 두 번이나 아카데미 상을 받은 숀 펜 때문에 그렇게 되었다. ...... 남자들이 그럴 수도 있다고 한 번도 아니라 여러 번 우리는 당신에게 말하고 있었다. ...... 나 자신을 포함해 우리 모두 나쁜 남자들의 카리스마에 연약하다. 나 또한 리처드 프라이어(스탠드업 코미디언 및 배우) 같은 남자에게 끌리는 나를 보며 내가 얼마나 나쁜 페미니스트인지 절감한다. 

65쪽
에버트를 비롯하여 수많은 비평가들은 메이비스(영화 영어덜트의 주인공)라는 여자는 대체 왜 그 모양 그 꼴인지 설명하라고 요구한다. 그녀를 참아주기 위해서는 진단서가 필요하니 달라는 것이다. 그 여자는 왜 그런가? 하지만 정답은 이미 나와 있지 않은가? 메이비스가 인간이라 그렇다. 그러나 그 대답만으로는 충분하지 않은가 보다. 

71쪽
프로그램 등급제는 마치 공항 검색대처럼 연극적인 행위다. 우리 인생에 영향을 미치는 모든 것을 제한할 수 있을 것처럼 느끼게 해주고 그럴 수 있을 거라 확신을 주기 위해 고안된 하나의 착각일 뿐이다. 

75쪽
또한 이렇게 생각해 볼 수도 있다. 어쩌면 이 경고 문구는 사람들이 상처를 떠올리게 하는 그 수많은 것들을 마주하는 법을 배우고 도움을 받을 수 있는 기회를 놓치고 무조건 그 문제를 회피하게 만드는 것일 수도 있다. ...... 상처를 치료하지 않고 덮어 버리고 살아갈 수는 없다. 아무리 좋은 의도라 하더라도 이 연상반응 주의가 피를 멎게 해줄 수는 없다. 

76쪽
나는 이 문구를 보아도 안전하게 느껴지지 않는다. 보호받는다는 느낌도 들지 않는다. ...... 이 경고 문구는 성경이 무신론자들을 위해 존재하지 않는 것처럼 믿지 않는 우리 같은 사람들을 위한 것이 아닐 것이다. 이 문구는 내가 아니라 실제로 안전을 필요로 하고 그것을 믿는 사람들을 위해 만들어진 것이다. 

99쪽
부모는 내가 너무 꼬챙이처럼 말랐을 때도 걱정을 했고 그렇지 않을 때도 걱정을 했다. 

104쪽
종종 우울해지기는 해도 우울함 속에는 나쁜 짓을 해도 된다는 핑계가 숨어 있다. 슬픔은 행복이 허용하지 않는 자유와 방종을 허락한다. 

154쪽
신체가 어떤 종류건 상이한 모습을 하고 있을 때는 프라이버시를 타협해야만 한다. 프라이버시는 특권 계층이 즐기고 또 당연히 생각하는 하나의 혜택이라 할 수 있다. 

167쪽
강간 농담이 웃길 수도 있겠지만 지금 현재 나로서는 도저히 이해할 수 없다. 유머란 주관적인 것이지만 그게 그렇게까지 주관적일까?​ 

191쪽
<그린 걸>에서 루스는 이 세상 속에서 '젊은 여자'라는 역할을 연기한다. 그녀의 정체성이 있어야 할 자리에 그녀의 연기가 있다. 루스는 종종 깨닫는다. "그녀는 자기도 모르는 사이에 자기가 아닌 다른 캐릭터가 되어 있고 다른 누군가가 할 대사를 외워서 하고 있다는 생각에 움찔하기도 한다."  그녀의 행동과 감정은 따로 논다. 왜냐하면 "그린 걸은 자신의 수동성을 예의로 가장하고 있기" 때문이다. 그녀는 주먹을 창문 밖으로 내놓고 흔들어 보고 싶지만 그렇게 하지 않는데 그것은 그린 걸에게 요구되는 행동이 아니기 때문이다. 

199쪽
리얼리티 프로그램은 젠더 개념과 흡사한 면이 있다. 이 모든 인생이 하나의 연극이고 그들은 공연하는 연기자에 불과하다는 인상을 주는 것이다. 

204쪽
그들은 이미 먼 길을 와버렸고 돌이킬 수 없을 정도로 타인과 세상의 개입을 허락해 버렸다. 이제는 스스로 다른 무엇을 해야 하는지도 알지 못한다. 우리는 이 여인들에게서 눈을 돌릴 수가 없다. 이 여인들, 타인의 시선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꼭두각시처럼 살아가는 이 루스들과 마리아들은 언젠가는 자기 앞의 폐허를 볼 뿐이다. 환하게, 요란하게 빛나는 폐허이다. ...... 그녀는 분노와 황홀감 안에서 소리를 지르고 싶어한다. 자기 자신을 찾고 싶기도 하고, 자기를 잃어버리고 싶기도 하다. ..... 어쩌면 우리는 이 프로그램의 여인들에게서 이렇게 세상 속에서 노출되어 타인의 간섭 속에서 연기하듯 살고 있는 우리의 모습이 보이기 때문에 보는지도 모른다. 

208쪽
역사적으로 사회는 언제나 '올바른 사람'만 올바른 권리를 갖기를 원했다. 

209쪽
임신은 사적인 일이면서도 공적인 경험이기도 하다. 임신은 매우 개인적으로 은밀한 일이다. 한 여성의 몸 안에서 일어나기 떄문이다. 완벽한 세상에서라면 임신은 여성과 그녀의 파트너만 공유하는 경험이 되어야만 할 테지만, 여러 가지 이유로 그렇게 되기는 불가능하다. 임신은 사회와 공공 개입을 유도하는 경험이고 여성의 신체를 대중적인 담론으로 끌어올리게 되는 경험이다. 여러 면에서 임신은 여성의 삶에서 가장 덜 개인적인 경험이 되어 버린다. 
외적 개입은 별것 아닐 수도 있고 불쾌한 경험이 될 수도 있다. 사람들은 당신의 부풀어 오르는 배를 만지고 싶어 하는가 하면 원치 않는 육아 조언을 하기도 하고 예정일이 언제인가부터 시작해 아직 태어나지도 않은 아이의 성별을 묻기도 한다. 생전 처음 보는 사람도 당신이 임신을 했다는 이유만으로 그런 정보를 알아낼 권리가 있는 것처럼 행동한다. 

215쪽
미국 시민으로 양도할 수 없는 권리가 있어야 하는데 그 권리가 있다고 믿겨지지 않는다. 나는 자유롭게 느껴지지 않는다. 나의 몸이 내 것이라고 느껴지지 않는다. 어떤 상황에서건 신체가 법률로 제정될 수 있는 환경에서는 자유가 없다. ...... 우리 자신을 위해서 이런 것들은 우리가 정의할 수 있어야 한다. 우리는 그 자유는 꼭 가져야만 한다. 그 자유는 신성불가침이어야 한다. ...... 남성은 피임과 관련해서 아무런 책임을 갖고 있지 않다고 가정한다. 남성들은 자신의 신체가 법적 문제가 되는 것을 거부한다. 왜일까? 그들에게는 누구도 건드릴 수 없는, 양도할 수 없는 권리가 있으니까. 

219쪽
내가 가장 좋아하는 순간은 남자와 어느 정도 사귀고 나서 남자가 희망이 담긴 목소리로 "피임약 복용하니?"라고 물었을 때 내가 "아니? 그러는 너는?"하고 답할 때이다. 

226쪽
나는 인종 차별적 비밀을 공유할 때만 한편이 되는 게임에는 관심 없다.

243쪽
체면의 정치respectability politics란 흑인이 (혹은 소수 인종이) '문화적으로 용인된' 방식으로만 행동하고 주류 사회 문화를 모방하기만 한다면 인종 편견에 시달리는 일이 적어질 것이란 개념이다. ...... 억압을 받는 대상이 그 억압을 끝낼 책임이 있다고 주장하는 건 극히 위험한 발상이다. 

261쪽
그 즈음 노르웨이에서 일어난 일과 에이미 와인하우스의 죽음에 대해 많은 이야기들이 나왔다. 거의 같은 시기에 일어났기 때문이었다. 이 두 가지 사건을 함께 논하며 어떤 식으로든 비극에도 서열을 정하려고 하는 사람도 있었다. ...... 마치 중독자의 생명은 아무런 가치가 별로 없다는 듯이, 마치 비극이 올바르게 사는 사람들에게 일어나지 않는다면 애도할 수 없다는 듯이 그렇게 말을 했다. ...... 바다 건너 77명이 테러로 죽었는데 왜 가수 한 명의 죽음을 슬퍼하는 것인가? 우리는 왜 이런 질문을 받았을까? 마치 우리에게는 한 번에 한 번의 비극만 소화하고 한 번만 애도할 능력밖에 없다는 듯이, 마치 동정과 연민은 아껴서 사용해야 하는 한정된 자원이라는 듯이 말이다. 

276쪽
나야말로 그의 오만함을 믿을 수가 없었다. 그 학생은 자기가 '다르기' 때문에, 또 자기가 성적이 좋은 학생이었기에 내가 자신을 보며 알아서 감명을 받길 바라고 있는 듯했다. 내 수업 시간에 어떻게 했는지가 아니라 과거에 어떤 학생이었는지를 보고 그를 평가해 달라고 했다. ...... 더 잘해야 한다는 압박감은 나를 떠나지 않고 때로 나조차도 숨이 막힌다. 내 입으로 워커홀릭이라고 말하는데 어쩌면 그럴 수도 있고, 어쩌면 위에 나온 나의 학생처럼 내가 다르다는 것을 증명하고 싶어 안달복달하고 있는지도 모른다. 

279쪽
나는 작가로서, 교수로서, 흑인 여성으로서, 나쁜 페미니스트로서 이 복잡한 주제들이 교차되는 지점을 발견해 글을 쓸 것이며 내가 원하는 것이 불가능하다고 느껴지지 않을 때까지 계속 쓸 것이다. 이러한 문제들이 너무 어려워 도무지 갈피를 잡을 수 없고 우리 손으로는 해결할 수 없다고 믿고 싶지는 않기에 계속 쓸 것이다. 

282쪽
특권은 특정한 혜택, 장점, 호의로 인해 부여된 권리이자 면제권이다. 인종적 특권, 젠더적 특권, 이성애자의 특권, 경제적 특권, 비장애인의 특권, 교육적 특권, 종교적 특권 등등 특권은 끝도 없이 이어질 수 있다. 어떤 시점에서는 자신이 갖고 있는 특권을 인정해야만 한다. 

284쪽
특권을 가졌다고 비난받으면 그것은 곧 우리가 쉽게 살고 있다는 뜻이라고 해석하게 되고 화가 치밀기 시작한다. 어느 누구에게나 산다는 건 그리 호락호락하지 않기 때문이다. 우리는 이러한 비난에 분노할 수밖에 없다. ...... 한 가지나 몇 가지 특권을 갖고 있다는 것이 이 세상의 모든 특권을 가졌다는 뜻은 아니니까. 특권을 누리고 있노라고 인정하는 것은 어렵지만 어쩌면 정말 필요한 건 그뿐일지도 모른다. 그래서 나는 틈틈이 이 사실을 상기하려 한다. 내 특권을 인정한다고 해서 내가 소수 집단으로 살아왔고 살고 있으며 그로 인해 결핍에 시달렸다는 것을 모두 부정하지는 않아도 된다. ...... 당신의 특권을 인정한다고 해서 당장 일어나 무언가를 해야 한다는 뜻은 아니니 걱정은 붙들어 매라. 그에 대해 미안해하고 사과할 필요도 없다. 그저 당신 특권의 범위와 영향력을 이해하고 당신이 전혀 감도 못 잡는 방식으로 이 세상을 헤쳐 나가고 경험하고 있는 이들이 있다는 사실만 인식하고 있으면 된다. ...... 특권에 대해 이야기할 때 어떤 사람들은 ...... 승자와 패자를 결정하는 '특권 게임'을 하려고 하지만 아무짝에도 쓸모없고 위험한 게임일 뿐이다. 이를테면 부유한 흑인 여성 대 부유한 백인 남성의 전쟁에서는 누가 승자인가? ...... 말하자면 백인 이성애자 남성들이 하는 말은 깡그리 무시해 버려야 할까? 비난이나 매도보다는 관찰과 인정이란 방식으로 우리가 가진 특권들을 토론할 수 있는 장소를 마련해 나가야 한다. 특권을 가졌다는 비난과 공격을 두려워하지 않고 논쟁할 수 있어야 한다. 누가 많이 가졌고 누가 못 가졌는지 따지는 비교 올림픽을 열지 말아야 한다. 너와 나는 다르다는 것을 인정하면서 대화할 수 있는 효과적인 방법을 찾아야 생산적인 결론에 도달할 수 있다. ...... 당신이 지금 이 에세이를 읽고 있다면 당신은 분명 어떤 특권을 가진 사람이다. ...... 일단 가장 쉬운 것부터 시작하자. 내가 가진 것을 인정하기, 여기가 출발선이다. 

297쪽
마법이다. 마법이다. 마법이 아닐 수 없다. 영화 후반부에 에이블린은 저지르지도 않은 잘못 때문에 해고당하면서도 어린 메이 모블리에게 영감의 화신이 되어준다. 왜냐면 그것이 바로 마법의 니그로가 맡은 역할이므로. 왜 그런 놀라운 마법을 백인을 위해서만 사용하고 자신을 위해서는 사용하지 않는지 모르겠지만 말이다. ...... 이 <헬프>라는 공상과학 영화에서는 평생 동안 백인 가족의 노예로 몇 푼 안 되는 돈을 받고 뼈가 빠지게 일하는 것이 복권 당첨이며 흑인 여성이 받을 수 있는 최상의 선물인가 보다. 

311쪽
바로 이렇기 때문에 타란티노가 통하는 것이다. ...... 예술성이 충분하면 메시지는 간과해도 된다고 믿게 한다.

314쪽
<장고>는 자신의 자유를 되찾는 흑인에 관한 영화가 아니라 자신 내면의 인종 차별을 극복하고 죄책감을 이겨 나가는 백인 남자에 관한 영화다. 흑인들에게는 사실 노예제 복수 판타지가 없다. 만약 있다 해도 백인들은 그 그림 안에 없을 것이다. 나의 노예제 복수 판타지는 형벌이나 감금 걱정 없이 파리에서 오랫동안 머물며 책 읽고 글 쓰는 것이다. 내 방식으로 나의 존엄을 찾는 것과 관련이 있을 것이며 여기에 관대한, 그러나 노예제라는 악행에 똑같이 관련되어 있었던 백인들의 아량과 호혜와는 상관없을 것이다. 

320쪽
노예제 영화는 대체로 굴욕당하는 검은 피부에 페티시를 갖고 있으며 <노예 12년>도 예외가 아니다. ...... 이 장면은 마치 이 상황에서 가장 고통스러운 사람은 팻시가 아니라 솔로몬인 것처럼 오직 솔로몬의 고통을 강조하기 위해 들어간 것이다. 

350쪽
다르게 생긴 사람들의 다른 면을 보여줄 것이 아니라 알고 보면 굉장히 비슷하다는 사실을 보여주기를 바란다.

375쪽
나쁜 페미니스트는 내가 페미니스트이자 솔직한 나 자신이 될 수 있는 유일한 이름이다. ...... 나는 나쁜 페미니스트다. 페미니스트가 아예 아닌 것보다는 나쁜 페미니스트가 되는 편이 훨씬 낫다고 믿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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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몽자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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