회식 자리였다. 이런저런 시시콜콜한 이야기들이 오가던 중 진정 그 단어를 들은 것이 맞나 싶은, 괴상하게 느껴지는 단어 하나가 귀에 꽂혔다. 비속어도 아니요, 욕설도 아니며, 비하 표현도 아니었으나 상당히 거슬리는 발언. 한 친구를 가리켜 누군가 내뱉은, 꽤 '가정적'이라는 말. 

 

가정적. 가정과 관계되거나 가정에서와 같은. 가정생활에 충실한. 사전상 풀이다. 어떤 이가 가정적이라는 건 두 번째 뜻으로 쓰여서, 그가 가정생활에 충실하다는 의미일 것이다. 그저 긍정적인 평가려니 흘려들을 수 있었다. 하지만 안 됐다. 문제의식이 발동했다. '가정적? 가정적이란 말, 백만 년 만에 들어보네요.' 소심하게 받았다. 내향적이므로 생각은 뒤돌아서, 집에 가서 한다. 왜 거슬렸는지, 어떤 구석이 문제적이었는지.

 

먼저는 대꾸한 그대로, 오랜만에 들어봤기에 흠칫했다. 언제였을까. 시기는 까마득한데, 발화자는 모친이었다. 그 말을 무던히도 내뱉곤 했다. 가정적이지 않은 부친을 탓하며 늘어놓는 푸념. 사전을 찾아보지 않아도 알 수 있었다. 다정다감한 말투, 미소 띤 얼굴, 부드러운 손짓으로 당신을 대하지 않아 불만이라는 것을. 나의 결혼 이후 모친은 고백 아닌 고백을 하고 나섰다. 내 남편, 당신의 사위를 두고 'J는 다정다감한 걸 보니 참 가정적이겠구나.' 했다.

 

일단 모친의 단어 선택은 틀렸다. 잦은 오용의 결과, 사전적 의미와 딴판으로 나는, 가정적인 사람이란 따뜻한 사람을 뜻하는 줄 알았다. 따뜻한 사람보다 논리적인 사람, 다정다감한 사람보다 일관성 있는 사람을 선호하는 나로서는 '가정적'이라는 말에 대한 반감만 키웠다. 모친에 대한 반감도 함께. 가정적이지 않다는 이유로, 따뜻하지 않다는 이유로 원망하다니. 한두 번의 푸념이 아닌, 반복 재생 레퍼토리. 공감 불가였다. 어릴적 반감을 키울 대로 키운 가정적이라는 말. 회식 자리에서, 또래 인사를 두고 흘러나오니 다른 종류의 반감이 새삼 일었던 것이다.

 

'가정생활에 충실한'. 사전에 따르면 부친은 실로 가정적인 사람이었다. 지인들과의 모임도, 개인적인 취미생활도 전무했다. 보다 윤택한 가정생활을 목표로 직업에 열심인 것이 흠이라면 흠일까, 벌이도 가족을 위한 것이라고 본다면 충분히 가정적인 사람이었다. 답답하리만치 일과 집밖에 몰랐다. 부친의 직업은 가축 사육이었고, 사육장은 집과 한 필지 내에 있었고, 부친은 내내 그 안에 머물렀다. 몇 발짝 거리의 일터와 집을 오가며 가정적으로.

 

부친은 가정적이었으므로 훌륭하다는 얘기로 들었다면 오해다. 가정적인 것은 악과 대비되는 선이 아니다. 가족 구성원은 가정생활에 충실할 수도 있고 개인 생활, 취미가 되었든 업적이 되었든, 그에 몰두하느라 가정에 다소 소홀할 수도 있다. 가정적이라는 표현은 칭찬이 될 수도, 그저 하나의 특징 또는 취향이 될 수도 있다. 가정에 충실한 것이 절대 선인 양 여기는 데 대해 이의를 제기한다.

 

가정적인 것을 얼추 선이라 봐야 하지 않을까 싶다면, 이 말을 주로 누구에게 붙이는가 생각해볼 일이다. 그렇다. 가장, 남편, 아버지. 가족 구성원 중 가정적이란 수식어는 이들에게만 어울린다. 가정적인 어머니, 가정적인 아내, 가정적인 딸/아들, 가정적인 조부모. 영 이상하다. 가정적이란, 권위, 폭력, 도박, 불륜 등의 오명 없이 화목한 가정을 위해 노력하는 남자 가장을 가리킬 때 주로 쓰기 때문이다. 누군가가 가정적이라는 표현을 입에 담는다면, 역설적으로, 그는 다분히 가부장적 사고방식을 지닌 자다.

 

두 가지 전제를 깔고 있어서다. 아내, 어머니, 아들딸 들은 가정의 화목을 위해 노력하는 것이 당연하다는 것. 남편, 아버지는 그럴 수도 있고 아닐 수도 있다는 것. 마치 한쪽은 선택권이 없고 한쪽은 선택권을 쥐고 있는 것마냥 볼썽사납게 규정한다. 설사 가정적이라 해도 가정적이라는 수식어를 들을 수 없는 이, 마땅히 가정적이어야 하기에 덜 가정적인 편을 선택할 수 없는 이. 그 이름은 아내. 상당한 압박이다. 

 

회식 자리에서 동료를 칭찬하는 수식어로 '가정적'을 꺼내든 이는 78년생 남자였다. 내 또래 남자가 다른 또래 남자를 가리키며 붙인 말 치고는 너무나 구식이어서 잠시 눈을 깔고 마음을 진정시켰다. 놀랐다는 것, 어이없다는 것을 들키지 말자. 나의 기함에 오히려 그가 당황할지 모른다는, 가정적이라는 말이 얼마나 가부장적 인식의 발언인지 납득하지 못할 거라는 지레짐작이었다. 돌이켜보아도, 잘한 짓이다. 

 

선택권 박탈은 곧 강요다. 남자 가장에게만 가정적이라는 수식어를 붙이는 것은 남자 가장을 넘어, 가족 내 다른 존재들을 억압하는 처사다. 그야말로 주의가, 필요하다.

Posted by 몽자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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