카톡을 주고받을 때 나는 종종 흐름을 잘라먹고 분위기를 주저앉히며 지적질을 일삼는다. 물론 개인적으로 가깝다고 생각하는 이들과의 대화에서. 그게 더 이상하다 할지 몰라도 내 편에선 일종의 애정표현이다. 자주 사용하면서도 매번 틀리는 맞춤법을 즉시 알려서 남들한텐 제대로 '톡' 하기를, 하찭을지언정 '바름'을 퍼뜨리는 누군가로 자리하기를 바라는 마음이니까.

 

물론 '매번'은 아니다. 맞춤법에 관한 지식 수준 미달 탓에, 혹은 덕분에, 매번 나서기는 불가능하다. 다만 함께 맞게 쓰면 좋겠다 싶은 몇 가지가 있다. '그 식당 10시에 연대.'가 그중 하나다. 참 많이들 '연데'라 쓴다. '연대'는 '연다고 해'를 줄인 말이다. '연 데'를 쓰려면 '연 곳'을 대신해 쓰거나, '열더라'를 줄여 '열데'로 적어야 한다. 쟤 배고프대, 걔 제주도에 산대, 이 친구 밤샜대. 주구장창 말을 옮기고 정보를 전하는 사람들. 바르게 쓰는 이는 드물다. '축구 7시에 해.' 하면 될 것을 '축구 7시에 한대.'라는 표현을 더 많이 쓴다. 전달 화법을 즐겨 사용할 거라면 맞춤법이나마 바로 알아두자.

 

'너 T야?' 질문이 유행이다. T란 MBTI의 4가지 성격유형지표 중 세 번째, '사고 대 감정'에서 사고thinking 유형을 가리킨다. 감정feeling 유형과 대비된다. 대답은 응. 심하게 사고형이다. 기분, 분위기보다 옳고 그름, 팩트가 우선이다. '~대'를 설명하다 잠시 흥분했다. 이 글의 목격자는 더 이상 헷갈리지 않으리라 기대하며, 숨고르기. '~라고 해'의 'ㅏ'와 'ㅐ'를 줄였으니 'ㅔ'는 될 수 없다. 'ㅐ'가 맞대.

 

'T스러운' 맞춤법 바로잡기를 고수하던 와중에 'F다운' 이야기를 접했다. <나는 지방대 시간강사다>를 쓴 김민섭 작가. '봬요'를 예로 들었다. 

 

"저는 카톡을 보내거나 할 때 '봬요'라고 하지 않고 '뵈어요'라는 표현을 사용합니다. 대부분의 사람들이 '뵈요'가 맞다고 생각하기 때문입니다. 여러분은 언제나 내 주변의 사람들이 쉽게 이해할 수 있는 언어를 사용해야 하고, 소통하려 해야 합니다. 여러분은 대학에서 더욱 중요한 지식을 계속 배워나갈 것입니다. 점점 부모님보다 아는 것이 더 많아질 테고, 대화가 통하지 않는다고 곧 느끼게 될 수 있습니다. 하지만 '봬요'를 '뵈어요'로 풀어 쓰는 것처럼, 배운 것을 활용해 모두와 소통하는 연습을 해야 합니다." - <나는 지방대 시간강사다> 185쪽

 

풀어 써 '보임'으로써 자연스럽게 맞춤법을 설명하는, 고수의 수법이다. 주입식이 아닌, 입맛에 맞으면 갖다 쓰세요, 여기 놓아둘게요, 하는 식. 'F스럽게' 분위기도 챙겼다. 마무리 발언이 압권이다. 

 

"그것이 바로 내 주변에서 시작하는 인문학입니다." - <나는 지방대 시간강사다> 185쪽

 

언어는 소통의 수단이고, 맞춤법은 그 정확성을 높이는 데 필요한 것이다. '뵈어요'로 풀어쓰는 건 소통의 의지와 함께 소통의 방법을 차분히 모색하는 사려 깊음을 드러낸다. 일상과 인문학을 아름답게 연결한다.

 

맞춤법이 거슬리지만 감히 손댈 수 없는 영역도 있다. 잦으면 하루 한 번 이상 맞닥뜨리는 상황. 장소는 카페나 식당, 헤어샵, 병원 등등. 주문하신 음료 나오셨습니다, 부가세 포함 2만 2천 원이세요, 이쪽으로 앉으실게요, 무궁무진하다. 이때의 잘못된 높임은 거북하지만 토를 달기 어렵다. 이내 포기. 무심코 넘기는 게 상책. 모르고 쓰는 말이 아니지 않나, 안다고 본인만 다르게 쓸 순 없지 않나, 상황이 이러한데 지적이라니, 싸우자 덤비는 꼴이지 않나 생각하는 것이다. 안타깝지만 여기까지가 한계, 였다.

 

지방시(나는 지방대 시간강사다)에서 맞춤법 관련, 두 번째 인문학 실천 사례 발견. 저자는 맥도날드에서 '빅맥 세트'를 높였다.

 

"카운터 위에서 갑의 소유가 된 햄버거 역시, 내가 함부로 대할 수 있는 존재가 아니었다. 갑과 을 사이에 끼어든 '갑의 소유물'은 어떻게든 을보다는 높은 자리를 점유했다. 그래서 빅맥 세트 나오셨습니다, 하고 외치며 갑의 소유물마저 높여주고 나는 그 아래로 자진해서 내려간다." - <나는 지방대 시간강사다> 214쪽

 

경험, 고백, 성찰로 이어지는 인문학. 빅맥 세트를 높인 경험, '강의실의 문법과 거리의 문법에는 차이가 있었다'는 고백, 이어지는 성찰. 

 

"나는 아메리카노를 존대하는 노동자를 탓하는 대신, 어째서 그러한 시대의 문법이 구축되었는가에 대해 학생들과 함께 돌아보고 싶다. 저마다에 내재된 삶의 실체와 마주하도록 돕고, 누군가를 비판하기 이전에 자신을 성찰할 가능성을 제시해주고 싶다." - <나는 지방대 시간강사다> 216쪽

 

성찰로써 맺기. 아름답게 한계를 넘을 방도를 찾았다! 이 시대 거리의 문법이 어떤 모양새인지, 무엇이 그런 모양새를 만들었는지, 나는 어떤 식으로 일조하였는지, 모양새를 바꿔 나가기 위해 내가 노릴 만한 틈새는 어디인지, 탐구 거리 풍년이다. 반갑다, 오류들!

Posted by 몽자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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