네이버에 로그인 전, 첫 화면은 꽤 자극적이다. 지정한 구독언론사의 뉴스만 보이는 게 아니라서, 정치, 경제, 연예에 이르기까지 각종 자극적인 이슈와 가십거리들이 대문을 장식하고 있어서다. 서둘러 로그인하려던 차, 한 기사 제목이 눈에 띄었다. 롤스로이스와 김민종. 역시 자극적이다.

 

앞뒤 안 챙기고 술에 몸을 맡기며 마신다는 후일담을 들은 이후 차곡차곡 호감을 쌓아둔 대상, 김민종. 제목 클릭. 내용은 이랬다. 아파트 주차장에서 한 여성이 경차를 몰다 주차된 차량을 긁는다. 내려서 확인하니 무려 롤스로이스. 얼마를 물어내야 하나 잔뜩 겁을 먹고 차량에 적힌 연락처로 전화를 걸었지만 부재 중. 문자를 남기고 다음날 회신을 받는다. 연락해 주어 고맙다고, 차량 상태를 확인해보니 자체적으로 해결하면 될 것 같다고, 걱정 말라고. 친절하고 너그러운 문자의 주인공이자 롤스로이스 차주가 무려 김민종. 갑질 장전하고 쌈닭으로의 변신 준비를 완료한 이들이 우글우글한 요즘, 훈훈한 마무리를 선사한 김민종에 대한 미담이 박수를 받으며 퍼지는 중이다. 

 

얼마 뒤 비가 추적추적 내리는 오후. 문자를 받았다. 택배가 몇 시 쯤 도착할 예정이라는 안내 문자를 보내오던 번호. 차량에 문제가 생겨 배송이 늦어지게 되었다는 사과 문자다. 순간 롤스로이스 차주, 무려 김민종, 그가 떠올랐다. 답장을 보냈다. "천천히 수리 마치신 후 안전 배송 부탁드립니다. 연락 주셔서 감사합니다." 플렉스다.

 

내가 받은 문자는 의례적으로 보낸 문자에 지나지 않을지 모른다. 사고가 발생하면 고객 불만이 더 커지는 것을 막기 위해 택배사 측에서 준비해 둔 매뉴얼의 한 귀퉁이일지 모른다. 정작 택배기사는 그 번호로 문자를 일괄 전송하기만 할 뿐 답문 따윈 챙겨볼 겨를이 없을지도 모른다. 시스템상 답장이 전달되지 않을지도 모른다. 택배 혹은 배달 기사들이 스마트폰과 바코드 찍는 전자기기를 들고 능수능란하게 일처리하는 모습을 엘리베이터에서 훔쳐본 적이 있다. 재빨랐다. 몇 차례 택배 기사직을 탐해 보긴 했으나 몸담아 보지 않아 시스템은, 모른다.

 

모르므로, 나몰라라 답문 투척! 하루종일 내린 비에 마음이 사뭇 끈적끈적해진 탓일까. 훈훈함을 마구 퍼트리고 싶을 때가 있다. 누가 보고 듣지 않아도, 훈훈함이 흘러넘칠 정도에 못 미쳐도 혼자 플렉스 하고 싶을 때가 있다. 오늘이 그 날이다. '보내기'를 누르고 몇 초 간 오글거림을 참아내야 했지만 기사님은 견인 탓에 정신이 없을 테니 날 비웃을 새나 있으려나. 괜찮다. 잘했다. 오버는 짜릿하다.

 

캘리그라피 기술이 있다면 차에 이런 걸 붙여보고 싶다. 양보 플렉스. 아기가 타고 있다는 둥 일이 생기면 아기를 먼저 구해달라는 둥 면구스러운 멘트를 내걸고 위험천만한 묘기를 부리는 운전자들을 보면 아찔하다. 아기가 무기냐 싶다. 보행 신호등은 저리도 시퍼런데 우회전 차량에 신호등이 대수냐는 듯 재촉하는 차를 뒤에 두고 있으면 양보 플렉스 좀 하자며 거들먹거리고 싶어진다. 기막힌 끼어들기, 우렁찬 차선 변경, 악착같은 꼬리 물기로 하는 플렉스는 멋도 없고 구식이다. 선진국 시민답게 양보 플렉스, 다들 어떠신지?

 

미담 태그를 달고 퍼지는 김민종의 롤스로이스 이야기. 주특기인 삐딱선을 좀 타야겠다. 웬 롤스로이스? 술을 좋아한다는, 앞뒤 안 재고 마시는 걸 좋아한다는, 투명한 게 매력이던 김민종님이 롤스로이스를 탄다? 그런데 기스를 넘겼으니 미담? 이런 플렉스는, 글쎄다. 당사자에겐 그지없이 고마운 처신이었을지 몰라도 미담으로 퍼트릴 만한 수준은 아니지 싶다. 비싼 차인데도 수리비를 청구하지 않았다는, 절대적인 금액이 미담 판단 기준이 된다는 게 마뜩찮다. 각자 괜찮다 넘길 수 있는 금액이 다를 텐데 그 액수를 가지고 훈훈하다 아니다 판단하다니. 명품백을 선물하면 훌륭한 남편이란 이야기와 다를 게 없다. 이러지 말자.

Posted by 몽자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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