낯선 시선 - 정희진


17쪽
그러나 분명한 것은 이제, 다르게 생각하기가 생존의 문제가 되었다는 것이다. 우리에게 지식 정보화 사회의 '진정한' 의미는, 언어/사유의 힘이 중대해졌다는 사실, 그리고 사회적 약자가 자기 언어를 갖지 않으면 존재 양식을 잃는 시대라는 것이다.

34쪽
한 가지 생각과 여러 가지 생각은 대립하는 개념이 아니다. 정론도 여러 가지 정론의 일부일 뿐이다. 정론이 있고 '그외/나머지/곁가지' 의견이 있는 것이 아니다. 더 중요한 사실은 하나의 내용을 제대로 이해하기 위해서라도 다양성은 필수적이라는 점이다. ...... 단일성은 다양성과의 관계 속에서 '획득'되는 것이다. 비교 대상이 없으면 자신을 알 수 없는 것과 같은 이치다. 페이스 메이커, 육상 선수가 혼자가 아니라 동료들과 연습할 때 기록이 좋아지는 것과 비슷한 이유다. 페이스(속도)는 주인공과 페이스 '메이커'의 합작품이다.

43쪽
스펙(specification)은 원래 군사 업무에서 많이 사용하는 표현이다. 무기류를 구매할 때 구매자가 원하는 기계류의 치수, 무게 등 성능과 특성을 나타내는 수적 지표를 말한다. 스펙, 즉 제작 제원이 좋다는 말은 사람이나 상품이나 조건이 좋다는 것이지 그 자체로 완성품은 아니다. ...... 무기 구매를 하려면 사는 쪽의 자기 파악이 가장 중요한 사안임을 말해주는 단어다. 국가의 주요 위협 세력이 누구인지, 상대방의 무기 수준, 상호 지형 지물, 국제 정세 변화에 관한 끊임없는 연구와 판단이 필요하다. 스펙은 그 나라만의 특수성이 핵심이라는 얘기다. ...... 그런데 우리는 스펙을 요구할 스펙이 없다.물건을 구입할 줄 모르는 소비자, ...... 60년 넘게 남의 나라에 국방을 맡겼기 때문에 우리는 우리 사정을 모른다. ...... 작전권 환수는 그런 능력을 갖추기 위한 것이다. 전 정권이 국토를 망가뜨리고 쓴 돈이 국가 발전을 '잘못 인식'한 결과라면, 지금 정권이 작전권을 포기하고 쓰려는 돈은 '자기 인식을 포기'한 행위다.   2014. 11. 21.

51쪽
대부분의 인간이 잉여이거나 잉여 직전인 사회에서, 우리는 잉여의 공포에 떨면서도 먼저 잉여가 된 이들에게 안도감과 경멸을 느낀다. ...... 이렇게 보면, 저출산은 다행스러운 현상이다. ...... 새 역사 창조는 '세계로 뻗어나가는 대한민국'이 아니라 '지금, 여기' 있는 이들을 존중하는 것이다. 

55쪽
하지만 전쟁 전후의 삶이 별반 다르지 않은, 기민이 다수 국민이라면 전쟁과 평화의 구분이 무슨 의미가 있겠는가. 이를테면 노예의 입장에서는 노예 제도가 존속되는 한 외세의 침략이든 혁명이든 주인이 바뀌는 것일 뿐 삶에는 변화가 없다.

62쪽
가족 이기주의란 사회의 기본 단위를 개인이 아니라 가족으로 상정하여, 계층 상승 욕구를 가족애로 둔갑시키는 간교한 장치다. 

63쪽
'서울 강남 사람' 정체성은 타인에 대한 우월 의식이 되기 쉽지만, 지역 차별을 받고 있는 사람들의 주민 정체성은 민주주의를 위한 투쟁의 근거가 될 수 있다. 다시 말해, 힘 있는 자의 연대는 연줄로 사회악이지만 사회적 약자의 연대는 네트워킹이다. 그러나 사회는 이를 구별하지 않고 약자의 연대도 (이것이 잘되지도 않지만) '연줄', '지역감정', '계파' 등으로 폄하한다. ...... 우리가 남이가? 그렇다. 인간은 철저히 남이다. 하지만 어려울 땐 서로 도울 수 있고 공동체를 위한 의미 있는 일을 위해서는 수시로 '헤쳐 모여' 할 수 있다. 나는 이것이 정치(력)라고 생각한다.

66쪽
경찰과 군대는 태생적으로 폭력 조직이다. 그러나 이 폭력은 국민이 필요로 하고 국가가 인정한 합법적인 것이다. 국가라는 형태의 공동체에서 경찰과 군인이 존경받아야 하는 이유는, 아무도 하기 싫지만 누군가 해야 하는 '더러운 노동'인 폭력 행위를 국민을 대리해 수행하기 때문이다.

67쪽
경찰력과 군사력의 구분. ...... 경찰은 약한 국민을 괴롭히는 힘센 국민으로부터 내부 치안을, 군대는 국민을 위협하는 외국으로부터 안보를 책임진다는 것이다. ...... 미국이 아닌 대부분 국가의 경찰들은 미국 혹은 강대국의 이익을 보호하기 위해 자국민과 싸운다. ...... 한국 경찰은 다른 나라의 '경제 영토' 확장을 위해 자국에서 내전을 하고 있는 셈이다.

76쪽
하지만 우리의 바람과 달리 취향과 올바름은 명확하게 구별되지 않는다. 정치 구조적 문제를 취향으로 포장할 자원이 있는 사람이 있을 뿐이다. 이들조차 언제나 소수자가 될 수 있고 타인의 취향이 자신에게 인권 침해로 돌아올 수 있다. 기호와 윤리의 기준이 모호한 가장 큰 이유는 인간이 사회적 존재이기 때문이다. 사회는 성원들에게 서로 다른 위치성position을 부여한다. 그 위치가 고정된 것은 아니지만 입장과 이해가 다를 수밖에 없다.

84쪽
혐오는 특정 대상을 싫어하는데, 그 이유가 자기 자신에게 있다. 자기 문제의 반영이자 합리화다. 혐오는 자신과 타인의 인간성을 훼손한다. 악플이 대표적이다. 이에 반해 분노는 자신을 억압하는 대상에 대한 정당한 판단이며 스스로를 격려하고 존중하는 힘이다 .이처럼 혐오와 분노는 이유, 양상, 효과가 전혀 다른 인간 행동이다.

86쪽
'어른'의 존재를 당연시하는 심리는 가부장제 사회에 대한 향수 때문이다. 전근대적인 사고다. 서구 사회에도 '어른'이 있긴 하지만 사회적 아버지 같은 존재는 아니다. 그들은 개인에 가깝다. 그래서 대통령이 연애를 하든, 재혼을 하든 관심이 덜하다. 반면 우리는 여전히 좋은 가부장을 원한다. 
...... 우리는 각자 편의에 따라 '어른'에게 이중 메시지를 보낸다. 역할을 해주었으면 혹은 그냥 고상히 계셨으면. 

93쪽
단어의 의미는 고정되어 있지 않다. 어떤 상황에서 누가 말하는가에 따라 뜻이 달라진다. 공론장이 필요한 이유다. ...... 의미는 사회적 논의 과정, 화자(말하는 사람)와 청자(듣는 사람) 사이의 힘의 관계에 따른 일시적인 개념이다. ...... 물론 간단한 문제는 아니다. 누가 약자인가, 그것을 누가 정하는가부터가 정치의 시작이기 때문이다.
통치 세력이 '관용을 베풀어서' 약자에게 표현의 자유를 허락한다 해도 약자가 곧바로 그 자유를 누릴 수 있는 것은 아니다. ...... 극단적으로 비유하면, 한국인에게 말의 자유를 허락하되 영어로 말하라는 식이다. ...... 당연히 설득력이 떨어지고, 오해받고, '말더듬이 바보'에, 흥분하거나 화가 난 것처럼 보인다. 이를테면, 술자리에서 분위기를 깨는 사람은 성희롱하는 사람이 아니라 이에 문제 제기 하는 사람이다. 우리 사회에서 '폭력적'인 사람들은 목소리 큰 여성들, 이동권을 주장하며 거리를 점거한 장애인, '일반인'과 몸 상태가 다른 노숙인 같은 소수자들이지 기득권 세력이 아니다. '갑'들의 권리는 제도로 보장되어 있어서 가시적으로 폭력을 사용할 필요가 없다. ...... 세상은 이들에게 요구한다. 너의 의견을 논리적으로, 세련되고, 우아하게 말하라고, 네 주장은 시기상조라고, 말하는 너의 존재가 무섭다고, 우리는 펜을 쓰는데 너희는 칼을 쓴다고.

99쪽
지금 우리 사회는 의리와 정의를 혼동하고 있는 것 같다. 정의감이라는 말은 있지만 '의리감'은 없다. 의리는 보편적 윤리가 아니기 때문이다. 정의는 양심의 소리지만 의리는 힘센 자의 기호를 따른다. 정의는 모든 이에게 적용할 것을 전제하고 추구하는 일반 규범, 도리다. 정의는 현실에 대한 분노와 고뇌에서 시작되지만 의리는 '정'에서 출발했다가 길을 잃는 심리 구조다. ...... 의리는 강자의 힘이 낭만화된 언어다. 있는 자들의 카르텔, 이것이 의리다. 

111쪽
인도 출신의 세계적인 작가 아룬다티 로이는 반세계화, 반미 활동가로도 유명한데, 그녀는 반미주의자라는 지적에 이렇게 말했다. "반미가 무엇인가요? 저는 미국의 재즈, 요세미티 국립공원의 아름다운 나무, 미국의 인권 운동가를 사랑합니다. 저는 친미도 반미도 아닙니다." 로이의 문맥에서 반미의 대상은 부시 행정부 정도일 것이다. 로이의 말을 종북에 적용해보자.

118쪽
자연 파괴와 왕따를 위해서가 아니라면, 무엇을 위해 그토록 새로워져야 한단 말인가. 이는 어떻게 새로울 것인가와 직결된다. ...... 새로움은 기성의 것에 대한 의문, 문제의식, 비판에서 나온다. '체제 긍정'에서 창의적 사고는 불가능하다.

129쪽
사실 보편성은, 쉽게 말해 강자의 특수성에 불과하다. 객관성 혹은 진실은, 있을 수도 있고 없을 수도 있다. 누군가에게 어느 순간 절대적으로 존재하기도 한다. 그러나 그것은 먼저 존재하는 것, 당위적인 것, 자명한 것, 영원한 것이 아니라 특정한 시공간적 조건에서 일시적으로 만들어진 정치의 산물이다.

131쪽
사회 운동은 기존 언어 체계를 의심하고 '교란'하고 '전복'하여 '국론을 분열'시키는 것이다. 국론이 분열되는 것은, 국론의 이름이란 미명 아래 보장되던 기득권층의 특권을 인식하고 그것이 마치 전체의 이익과 보편인 것처럼 만들어지는 과정을 드러내면서 사회적 약자의 목소리와 이익이 가시화되는 것을 뜻한다.

141쪽
이제 인간의 '본질'이 호모 사피엔스(생각하는 사람)냐, 호모 파베르(도구를 만드는 인간)냐, 호모 루덴스(놀이하는 인간)냐를 논할 시기는 지난 듯하다. '호모 셰임리스(뻔뻔한 인간)'의 시대다.   2016. 11. 14.

155쪽
대중의 선망을 받는 이들은 전통적인 의미의 독재자보다 더 잔인한 면이 있다. 부도덕하고 무능한데도 단지 유명하고 돈이 많다는 이유로 사랑받는다면? 그런 사람이, 자신을 부러워하는 이들에게 잘해줄 이유가 있을까. 선망은 '양의 고기를 보고 침을 흘리다'라는 뜻이다. 자기가 부러워 침을 흘리는 사람을 누가 존중하겠는가. 이때 통치는 저절로 이루어진다. 

157쪽
나는 안 의원이 토크 톤서트 같은 곳에서 소통과 힐링을 강조할 때 이상했다. ...... 정치인은 메시아가 아니다. 상호 계약만 정확히 인지하면 된다.

164쪽
행위에 대한 중독이든, 특정 성분 중독이든 갱생은 쉽지 않다. 중독에서 벗어나기 어려운 이유는 간단하다 .일시적이어서 그렇지 '약효'가 있기 때문이다. 몸은 낯선 행복보다 익숙한 불행을 더 좋아한다. 익숙함은 인간사의 대표적 부정의다. 적응(중독)된 몸은 삶의 방식이자 양식이다.
 
171쪽
'퇴직 전 자녀 결혼' 강박을 보면 이들도 자신들의 우정을 별로 믿는 것 같지는 않다.

176쪽
이들의 뻔뻔함은 자기 보호를 위한 위악이 아니다. 진정성 넘치는 자기 확신이다. 또한 이들은 약간의 조증 상태로 자신감 넘치는 즐거운 생활을 한다. 상대가 강자냐 약자냐에 따라 얼굴 표정이 급변하는 '재능'도 있다. 이들은 정신병자가 아니다. 건강하다. 정신병은 뻔뻔한 사람에게 피해 입은 착한 사람들이 걸린다. 자신의 지나친 자신감을 불편해하는 이들을 무능하다고 비웃으며 성공에 강한 집념을 보인다. 사과나 양보를 굴복으로 생각한다. 양심과 윤리, 부끄러움은 자신의 질주를 방해하는 도로의 불필요한 표지 같은 것이다.

185쪽
여담이지만, 내가 하는 사회를 위한 유일한 실천은 물건을 사지 않는 것이다. ...... 어머니가 돌아가신 후 냉장고도 사용하지 않는다. 

186쪽
내가 속한 커뮤니티들은 '주류 사회'와는 다른 언어를 사용한다. 예를 들어, 일반적으로는 누가 결혼한다 그러면 보통 "뭐 하는 사람이냐? 언제 하냐?" 이렇게 묻지만, 내 친구들은 "여자야? 남자야?"라고 묻는다. 

188쪽
성원권을 획득하는 방식의 변화는 매우 중요한 문제이다. ...... 노동하거나 공부함으로써 '사람'이 되고 사람다운 대접을 받는 사회였다. ...... 소비 활동을 하고 외모 관리에 매진함으로써 또래 집단의 구성원으로, 정상적인 성원으로 인정받는다고 생각한다. 공부를 안 해서 문제가 아니다. 부모의 계급이 성원권 여부에 결정적이라는 데 근본적 문제가 있다.

194쪽
정의가 힐링이다. ...... 외로운 사람이 취약해질 수밖에 없는 이유는 외로워서가 아니다. 외로움 자체는 죄가 없다. 사회가 따뜻하다면, 외로움은 절실한 연대의 근거가 된다. ...... 마음 둘 곳이 없는 상황은 몸(존재)을 둘 곳도 없다는 뜻이다. ...... 많은 젊은이들이 자신이 잉여 신세임을, 그렇게 될 가능성이 높음을 알고 있다. 자기 계발도, 힐링도 속임수라는 것을 안다.

214쪽
컴컴한 바닷속 세월호의 연속. 이 시간을 버티고 있는 이들에게 "잊지 말자"는 말은 이상하다. 삶이 '세월호'인데, 세월호를 기억하자는 다짐이 필요한가. 잊을 수 없는 이들을 잃었는데 누구를 잊지 말자는 것인가. ...... '잊지 말자'는 배제의 언설이다. ...... 이처럼 고통받는 사람과 위로하는 사람은 다른 세상에서 살고 있다. 이 다름을 인정할 때 '진정한' 위로가 가능하다. 타인의 고통에 대한 기억은 시혜가 아니다. 

229쪽
1970년대 "근로기준법을 준수하라."('제정하라'가 아니다)라고 외치며 분신한 전태일 열사의 죽음은 저항이지, 자살이라고 말하지 않는다. 그러나 자살은 상대방에 대한 공격이 아니라 자신을 해치는 약자의 투쟁 방식이다.

232쪽
인간은 자기 발화를 통해 형성되는 존재여서 방어만 하다 보면 내가 누구인지, 내 말이 정말인지 거짓말인지, 누가 누구를 속이고 있는지 모르는 '무아지경'에 빠진다.

238쪽
소통할수록, 가까워질수록 외로워진다. 더 소통하고 싶기 때문이기도 하고, 그럴수록 메울 수 없는 차이를 발견하기 때문이기도 할 것이다....... 말이 안 통하는 사람과 같이 있을 때 가장 외롭다.

244쪽
순환 시간에서 직선 시간으로의 변화는 인간의 사고방식에 혁명을 가져왔다. ...... 순환적 시간은 반복되는 하루, 사계 등 자연의 순환을 기초로 만들어진, 내부가 닫힌 원이다 ....... 순환의 시간은 과거 중심적이다. 순환은 아무리 변해도 원래대로 만든다. 원상태로 복귀한다는 개념이 전제되어 있다. 순환 시간은 돌고 도는 것이므로 과거와 현재밖에 없다. 원은 닫혀 있기에 미래 개념은 근본적으로 차단되어 있다. 
이에 반해 직선적 시간은 미래를 향해 열려 있는 길의 이미지다. ...... 시간은 지나가고 흐르는 것이며 다시는 돌아오지 않는다. ...... 이때부터 우리는 경쟁, 노력, 열심, 사명감 속에 살게 되었고 여기서부터 인생은 (무의미하게) 피곤해지기 시작했다. 가장 중요한 것은 자기 의지라는 개념이다. '하면 된다'. 우리가 매일 학교에서, 사회에서, 가정에서 지겹도록 듣고 체득하는 원리다. 불굴의 의지와 노력으로 미래를 일찍 실현하고 선점하면 성공한 인생, 선진국, 문명, 첨단이라는 영광을 얻게 된다. 미래를 위한 경쟁이 인간의 삶이 된 것이다. 미래라는 목표를 위한 달리기 시합이 인생이다. 여성, 장애인, 가난한 사람은 이 달리기에서 기회와 조건이 모두 불리하다.

260쪽
헐리우드산 블록버스터 SF 영화는 대부분 상상력과 과학의 문제를 다루기보다 미국 중심의 국제정치학을 담고 있다. 은유도 아니다. 대놓고 말한다. 인류를 멸망시키려는 외계인의 공습이 있고 지구의 수호자를 자처한 미국이 나서서 그들을 물리치는 스펙터클한 화면. 이를 통해 미국은 자국의 과학 기술을 자랑하고 인류의 지도자로서 등극을 반복한다. '북한'이나 '소말리아'가 지구를 구하는 영화를 본 적이 있는가? 만일 남한이 외계인을 발견했다면 미국에 신고할 것이다.

266쪽
이를 보도한 종합 편성 채널의 남성 앵커는 다음과 같은 요지로 말했다 "여대생이 여성 대통령을 반대하다니, 이해할 수가 없군요. 여성이 여성을 배척하는 이런 분위기, 어떻게 보십니까?" ...... 남성과 남성이 갈등하면 대리와 과장의 싸움이 되지만, 여성 상사와 여성 부하의 갈등은 '여자의 적은 여자'라는 말이 자연스럽게 나온다. 

277쪽
당사자가 아닌 사람은 대개 구조적으로 '가해자'의 입장에 있으며 타인의 현실을 모른다. 따라서 이 문제에 관한 발언 자격이 없다. 마치 일본이 우리에게 "예전에 비하면 너희에게 잘해주고 있지 않니."라고 말하는 격이다. ...... 장애인의 지위는 당대 비장애인의 지위와 비교해야지, 왜 조선 시대 장애인의 지위와 비교하는가. ...... 사람이 아니라 과거와 비교되는 사람들! 이것이 차별 논쟁의 진짜 이슈가 아닐까.

280쪽
술은 모든 상황의 알리바이다. 술만 마시면 아내를 구타하든, 성폭력을 하든, 공공장소에서 용변을 보든 모든 상황이 참작되고 감안된다. 정상 참작(參酌). 이 단어 자체에 술을 붓는다는 '작'이 포함되어 있으니, 술은 인간 행위를 판단하는 필수적 고려 요소인 듯하다.

284쪽
평등은 지향이고, 현실에서는 사람들이 처한 상황이 각각 다르기 때문에 인권은 배려가 아니라 갈등하고 경합하는 가치다. ......
노약자석의 경우 장애인, 임산부, 노인에게 우선권이 있는 것은 배려가 아니라 그들의 권리다. 당연한 권리를 상대방이 선심을 베푼다고 주장하며 고마워할 것을 요구한다면 불쾌감을 넘어 억울한 일이다. 

286쪽
특정한 주장을 펼친 것도 아니고 남을 해친 것도 아닌데, 단지 '나, 여기 있어요(LGBT, 우리가 여기 살고 있다)'라는 알림(?)이 '유해, 혐오, 직설, 불법'이라는 것이다. 타인의 생각에 반대할 수는 있다. 그러나 존재 자체를 부정하는 것은 공중에 대한 공공연한 위협이다. 일부지만, 이들이 21세기 세계적인(?) 메트로폴리탄 서울의 공무원이라니!

286쪽
'우산을 빌려주는 것이 아니라 같이 비를 맞는 것'이 인생이라면, 배려는 우산을 독점하고 선별해서 우산을 나눠주려는 권력의 만행을 도덕으로 포장한 행위다. ...... '소수자 배려' 운운 말고 자신의 소수자성을 발견하고 드러내 다른 소수자와 연락하며 살아야 한다.

291쪽
물론, 인간의 삶은 이와 정반대다. 누구나 아프고 나이 든다. 남성이어서 가능한 실천이기도 하겠지만, 1925년생인 철학자 나카무라 유지로는 이렇게 말했다. "치매에 걸려 대소변 못 가리고 침 흘리는 나의 '추한' 몸을 되도록 많은 사람에게 보여주고 싶다. 이것이 정상적인 인간 모습의 일부라고 알리고 싶다." 문제는 외모 지상주의라기보다 인간 몸의 다양성, 즉 현실성을 인정하는 것이다.

298쪽
서울과 광주 사이의 KTX 문제를 '차별'이라고 보는 것은 누구의 입장인가? 나의 경험은 서울에 살면서 아주 가끔 광주에 볼일이 있는 사람의 처지에서 불편일 뿐, 이를 차별이라고 보편화할 근거는 없다. (물론, '차별'이 아니라는 이야기는 아니다.) 더구나 나는 서울 사람의 시각에서, 서울이 좋다는 전제에서, 서울이 중심인 것은 당연하다는 고정 관념에서, 광주의 상황을 재단하고 그것을 '광주 편'이라고까지 떠들어댄 것이다. '내가 중심이고 중심에서 멀어진 너는 차별받는 것이다'라고 생각하는 이 서울 중심주의! 서울과 비서울 지역 사이의 교통 '볼편'이, 비서울 지역에 불리하다고 생각하는 이 오만! ...... '중심'과 같아짐을 의미하는 평등은 바람직하지도 않지만, 그 이전에 불가능한 프로젝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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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몽자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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