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성해방 - 엔스 판트리흐트

 

35쪽
꽤 알려진 한 편의 수수께끼 같은 이야기를 봐도 잘 알 수 있다. 아버지와 아들이 교통사고를 당했는데, 아버지는 즉사하고 아들은 구급차에 실려 가까운 병원으로 이송되었다. 외과 의사가 남자아이를 살펴보더니 돌연, "난 이 환자를 수술할 수 없어. 내 아들이야."라고 말한다. 이상한 일이다. 어떻게 이런 일이 있을 수 있을까? 외과 의사가 남자아이의 어머니일 수도 있다고는 많은 이가 상상조차 하지 못한다. 의사를, 감독을, 지휘자를 떠올릴 때 자연스레 남성이라 생각하고는, 여성과 얼굴을 마주하는 순간, 자기도 모르게 깜짝 놀란다.

39쪽
젠더가 어떻게 작동하는지 알고 나면, 더는 눈에 보이지 않을 수 없다.

43쪽
신자유주의의 영향으로 ...... 
그리하여 오늘날 우리가 사는 세상에서는, 남성 폭력에 여성이 저항하도록 하고(남성 폭력 자체를 해결하기는커녕), 남성이 선을 넘은 성적인 행동을 할 때 여성이 '아니오'라고 말하도록 하고(도를 넘은 성적인 행동 자체에 조치를 취하기는커녕), 여성에게 유리천장을 깨라고 하고(유리 천장 자체를 없애기는커녕), 동성애자에게는 "정상적으로 행동하는 한 참아줄 수 있다고 한다(앞서 말한 바와 마찬가지로). 실제로 네덜란드 총리에 따르면, 우리 모두 사회에서 ‘정상적으로 행동해야’ 하고, '꺼지든지' 아니면 '제자리를 차지하기 위해 싸우든지'해야 한단다. 징징거리고 투덜대는 건 패자에게나 어울리며 백인, 남성, 이성애자라는 기준에 들어맞지 않으면 그건 본인이 알아서 할 일이다.

47쪽
페미니즘은 결코 하나였던 적이 없다. 다른 주요 운동처럼 페미니즘은 늘 서로 보완하고 비판하고 도전하거나 경쟁하는 다수의 파벌로 이루어져 있었다. 알고 보니 페미니즘 투쟁이라는 현실 세계에서 여성들은 다면적이고 다양했고, 따라서 우선순위가 서로 다르거나 이따금 충돌하기도 했다. 그러나 여성들은 근본적으로 여성과 남성의 관계가 부당하며 시급히 바뀌어야 한다는 견해를 공유하는 것 같았다.

49쪽
남성도 여성 못지않게 다면적이고 다양하다. ...... 흑인 남성은 또래보다 경찰이나 다른 남성에게 폭력을 당하거나 투옥될 가능성이 더 높고, 고용 시장에서 여성보다 더 심한 차별을 받는다. 또한 흑인 여성보다 기존 질서를 위협하는 존재로 간주할 가능성도 더 크다.

51쪽
만약 우리가 남성들의 차이를 진지하게 받아들이고 연구한다면, 남성성이라는 지배 규범을 언제나 완벽하게 충족하는 남성은 없다는 것이 곧 드러난다. 남성 사이의 차이는 대부분의 남성이 규범에 도달할 수 없다는 것을 명확하게 보여주는데, 이러한 사실은 남성성 규범을 문제로 만든다.

53쪽
페미니즘은 단순한 평등의 구호 그 이상이다. 페미니즘은 지배와 억압의 사회 구조를 비판적으로 바라보는 관점을 선사한다.

55쪽
극단적인 발언을 아무렇지 않게 여길 때, 행동하지 않는 것이 정당하게 받아들여지고, 그렇게 중요한 메시지는 사라진다.

59쪽
나는 남성성이 아니라 여성성에서 해방을 발견했다. 나 자신의 이른바 여성적인 모습을 받아들이고 자유롭게 풀어줌으로써, 그런 면을 발전시키고 활용함으로써, 나 자신과 여성들과 다른 남성들과 세상을 더 잘, 더 즐겁게 대할 수 있었다.  ......
나 자신을 남성이라기보다는 한 인간으로 여기고, 내가 다면적이고, 복잡하고, 모순적이고, 변하기 쉽다는 사실을 인식하며, 이를 좋게 바라보는 것이 중요하다. ...... 
남성은 남자답다거나 사내다워야 하고, 여성은 여성스러워야 한다는 생각을 놓아버린다면, 그리고 진정으로 인간의 자질에 모두 동등한 가치를 부여할 수 있다면, 우리는 함께, 또 각자 살고 싶은 삶을 자유롭고 공평하게 선택할 수 있다. ...... 이런 변화가 조직이나 체제에서만 일어날 수는 없다. 우리 안에서 일어나야만 한다. ......
남성에게 이는 자기가 할 수 있는 일 가운데 가장 두려운 일을 한다는 뜻이다. 이를테면 자신 안의 여성성을 포용하고, 규범적인 남성성을 버리고, 상징적인 반대자들을 모아 단결하도록 하면서, 그들의 확신을 포기하는 일들 말이다. 그들은 남자답게 행동할 것이 아니라 사람이 될 필요가 있다.

64쪽
이처럼 남성다움에 대한 좁은 정의는 한 인간으로 발전할 여지를 끔찍하게 제한한다. ......
지난 몇 년 동안에는 개인적으로 '나는 왜 그럴까? 어떻게 바꿀 수 있을까?'로 귀결되었다. ...... 

남성은 자기 자신이 될 수 없어서, 진짜 남자가 되려면 자신을 곤경에 빠뜨릴 수밖에 없어서라고. ......

정형화한 남성성이라는 속박에서 남성을 자유롭게 해야 한다.

63쪽
이에 대해 글로리아 스타이넘은 다음과 같이 표현했다. "우리는 딸을 아들처럼 키우기 시작했어요. ... 하지만 아들을 딸처럼 키우려는 용기가 있는 사람은 거의 없지요."

95쪽
요컨대 무엇보다 남성은 '여성적'이어서는 안 된다. 사실 남성은 비여성이다. 남성한테는 '여성성'을 가지고 있거나 드러내 보이는 것이 돌이킬 수 없는 사회적 추락을 가져온다는 의미인데, 여성과 여성성이 남성과 남성성보다 지위의 사다리에서 더 아래쪽에 있기 때문이다.

71쪽
사람들이 어떤 상황을 사실이라고 정의하면, 현실이 되도록 하는 결과를 불러온다는 것은 사회학의 기본 법칙 가운데 하나이다. 토머스 정리로 알려진 이 법칙은 다른 많은 분야에서도 나타난다. ...... 만약 우리가 여성/여성성과 남성/남성성 사이에 본질적인 차이가 있다고 생각하면, 우리는 그 차이를 만들어낸다. 그렇게 만들어진 차이는 우리 주변 세계와 우리가 사람으로 발전할 여지에 계속 영향을 미친다. ......
지배적 진실은 보통 지배 집단의 관점과 이익을 반영하는데, 이때 지배 집단은 그들만의 진실을 현실로 바꾸는 가장 효과적인 수단(돈, 지위, 권력 포함)을 가지고 있다. 지배 집단이 생산하는 진실처럼 보이는 이미지는 현실에 커다란 영향을 줄 수 있으므로, 그들은 어느 정도 현실을 만들어낸 데 책임이 있다.

78쪽
전부 여성과 남성의 차이에 초점을 맞추고 나서 논의를 이어간다는 데 주목할 필요가 있다. 여성과 남성의 유사성에는 전혀 관심이 없으므로, 차이만 확인되는 것은 놀랄 일이 아니다.

111쪽
가부장제는 모든 차이에 계층적 질서를 부여한다. 가부장제는 (남성과 관련된 특성인) 자율성과 자립이 (여성과 관련된 특성인) 연대나 보살핌보다 중요하고, 말하기가 듣기보다 중요하며, 폭력이 갈등을 해결하는 정당한 방법이고, 이성이 감성보다, 일이 돌봄보다, 행동이 열정보다 중요하다고 가르친다. 가부장제를 받아들인다는 것은, 우리가 여성과 여성성과 관련한 것이, 남성과 남성성과 관련한 것보다 가치가 떨어진다는 점을 받아들인다는 뜻이다.

125쪽
자신의 인간성을 억누름으로써, 두려움, 슬픔, 불확실성을 수면 아래로 잠기게 함으로써, 정신을 바짝 차리고, 눈물을 삼키며, 상남자 자세를 취함으로써, 남성은 스스로 상처를 입는다. 상대가 어떤 자세를 취하느냐는 관점으로만 상대를 바라봄으로써, 상대를 인간이기보다는 남자로 바라봄으로써 서로 상처를 입힌다. 그 결과 남성은 무리로 모일 때 내적으로나 외적으로 특히 폭력적일 수 있다. 남자다움이라는 소중한 규범을 다른 남성이나 다른 무리에게 강요하고, 또 그와 같은 규범을 두고 다툰다. 거리의 폭력배, 훌리건, 불량소년클럽, 해병대 등을 떠올리면 된다.

125쪽
남성 폭력의 규범은 개별 남성이 (자신에게, 서로서로, 그리고 여성에게) 가하는 폭력에서부터, 좀 더 보편적으로 남성이 (집단 내부와 외부 집단 사이에서, 서로서로에게 그리고 여성에게) 가하는 폭력을 거쳐, 국가가 자국 시민과 다른 국가에 가하는 폭력으로 확장된다.
근대 국민 국가는 국가 존속과 현상 유지를 보장하는 폭력의 독점에 바탕을 둔다. 따지고 보면 국가란 허공에서 나온 것이 아니다. 권력과 소유권을 이미 가진 이들의 손에 확고하게 쥐여 주는 방식으로 부름을 받은 것이다. 

126쪽
지배 계급은 폭력의 잠재적 가해자를 지원하는 데 관심이 있는데, 그들을 활용해서 자기 이익을 지킬 수 있기 때문이다. 이와 같이 이용되는 이는 전통적으로 남성이었다. 근대 국민 국가는 가부장제를 바탕으로 세워졌으며, 남성 폭력은 체제에, 사회 조직 방식에, 사회 조직을 목적으로 설립한 제도에, 법률에, 습관과 관습에, 그리고 이 모든 것 사이의 관계에 내재한다.

129쪽
남성성 규범은 평등한 관계 맺기, 일과 돌봄 사이에 균형을 더 잘 맞추기를 바라는 남성의 욕구와 조화를 이루기 어렵다.

133쪽
근본적으로 말해, 적어도 대부분의 경우에 발기부전치료제는 불난 집에 기름 끼얹기나 마찬가지인데, 왜냐하면 해결책이라는 환상을 제시하는 사이 문제를 더 악화하기 때문이다.

160쪽
여성학이 학문 연구를 자리 잡게 하는 데 꼭 필요한 보충물이었듯이, 페미니즘은 내가 한 인간으로 온전하게 발전하는 데 꼭 필요한 몹시 반가운 보충물이었다. 페미니즘은 내 삶을 풍요롭게 했고, 내 경험을 더욱 깊이 있게 만들었다. 페미니즘은 내 인간성을 확장하는 데 도움을 주었다. 나 자신과 타인을 더 잘 이해하게 되었고, 내 삶의 표면 아래에서 일어나는 모든 일을 더 잘 꿰뚫어 볼 수 있게 되었다. 결과적으로 세계는 점점 확장되고 단단해졌다. 나 자신과 타인과 세상 전체와 맺는 관계들이 훨씬 더 의미를 띄게 되었다. 페미니즘 없이 산다는 게 어떤 것인지 더는 상상할 수 없다.

163쪽
이와 같은 것을 이루려고 여성은 인간으로서의 잠재력을 활용했다. 기존의 남성 영역에서 진전을 이루려면 여성적인 특성만이 아니라 인간적인 특성이 필요했다. 여성은 남성만큼이나 이성적이고, 독립적이고, 경쟁적이고, 단호하며, 권력에 목말라 할 수 있음을 보여주었다. 여성은 기존 여성성의 틀 바깥에서 자신의 인간성을 발전시켰다


167쪽
자신과 관계 맺기
남성이 자신과 관계 맺는 데 페미니즘이 도움이 되는 까닭은, 남성에게 인간성이 있음을 페미니즘이 인식하기 때문이다. 이전에는 무시하고, 부정하고, 억누른 자질을 포용하고 발전시킴으로써 최대한으로 발전할 기회, 개인적으로 전례 없이 성장할 기회를 자신에게 준다. 남성 해방은 결국 자신을 있는 그대로 받아들이게 한다. 자신의 힘과 취약성, 성공과 실패, 자율성과 의존 양쪽을 모두 지니고서 자신과 함게 살아가기, 스스로를 사랑하기를 배운다. 

168쪽
다른 남성과 관계 맺기
세상은 더욱 안전해지는데, 자신의 남성성을 계속 증명해야 할 필요가 사라지기 때문이다. 남성임을 증명하느라 분주할 필요가 없는 남성은, 성급하게 폭력을 행사하지 않을 것이다. ...... 그가 진짜 남자임을 증명하려고 자신이나 타인의 경계를 넘을 필요가 없다.

​170쪽
여성과 관계 맺기
주위 여성을 동등한 사람으로 바라보고 대우할 것이고, 결과적으로 그들과 더욱 깊게 관계를 맺게 될 것이다. 더는 여성을 성적대상이나 잠재적 애인으로, 어떤 위협적 존재나 보호가 필요한 사람으로 바라볼 필요가 없다. 그보다는 동료, 가족 구성원, 반려자, 친구, 팀원, 동지, 운동이나 토론을 함께하는 상대, 술집에서 잔을 주고받는 벗이나 동네를 함께 걷는 사람으로 여성이 지닌 다면적인 성격을 알아가고 탐구할 수 있다.

171쪽
사랑하는 사람과 관계 맺기
반려자가 여성이든 남성이든 자유롭게 사랑하는 것은 이상적 남성성 이미지 안에 갇혀 사랑하는 것과는 다르다. 더는 자신에게 요구된다고 여기는 방식으로 행동하지 않아도 된다. 반려자에게도 그런 기대를 할 필요가 없다. 관습과 강요된 기대에 기대지 않고, '성별 전쟁'과 훼방을 놓는 고정관념에서 벗어나 무엇이 자신에게 좋은, 두 사람에게 좋은지에 따라 관계와 삶의 형태을 만들어갈 수 있다.
...... 실용적인 관점에서 보자면, 관계의 평등은 예컨대 소득, 돌봄, 가사노동과 양육, 일상에서 직면하는 도전에 대한 책임을 공평하게 분담하는 것으로 이어진다. 이는 결국 감정을 공평하게 나누는 데 기여한다. 


175쪽
세상을 바꾸고 싶다면, 사회를 이루는 최소한의 개체로서 우리 자신을 바꿔야 한다. ...... 아인슈타인이 말했듯, '문제를 만든 수준과 같은 의식으로는, 어떤 문제도 해결할 수 없다.'

176쪽
세상을 더 나은 곳으로 만들기 위해 노력하고, 우리가 점점 더 우리 자신이 됨에 따라 세상과의 관계도 개선되고 있다. 앞으로 우리는 이제까지와는 다른 방식으로 세상과 관계를 맺으며 우리 삶의 형태를 만들고, 마찬가지로 우리 삶과 다르게 관계를 맺으며 세상의 형태를 만들어 가리라. 우리가 삶에서 만나는 사람들과 다르게 관계를 맺으면, 우리와 세상의 관계도 바뀐다. 세상에 더 많이 관심을 가지면, 우리 자신과도, 또 삶에서 만나는 사람들과도 다르게 관계를 맺는다. 이처럼 다른 모든 것이 바뀌면, 우리와 세상의 관계도 분명히 변화한다. ...... 남성 해방의 결말은 세상이 더 나아지는 것이다. 남성이 더 잘 살아갈 수 있도록 페미니즘이 힘을 보태는 것과 마찬가지로, 남성은 페미니스트가 됨으로써 더 나은 세상을 만드는 데 힘을 보탠다.

182쪽
결과적으로 이맨시페이터는 협회가 아니라 재단으로 설립되었다. 나는 우리가 무언가를 해보기도 전에 모두가 동의할 때까지 기다리고 싶지 않았다. 나는 시작하고 싶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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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몽자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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