참 너그러운 한국인

 

어벙한 한국인

 

2004 1 14, 1심에서 징역형을 받은 방상훈 조선일보 사장의 항소심 선거공판이 있었다. 항소심 재판부는 탈세 혐의를 인정하고도 징역형을 선고했던 원심을 깨고 집행유예를 선고했다. 방 사장의 죄가 크지만, 언론문화 발전에 기여하도록 하는 것이 더 낫다고 생각했다는 거다. 뿐만 아니라, 1심에서 징역형을 받았던 동아일보와 국민일보 사주도 항소심에서 모두 실형을 면했다.

 

2008 7월에는 이건희 삼성그룹 회장이 서울중앙지방법원에서 탈세 혐의로 일부 유죄판결을 받았다. 법원은 이건희 회장이 차명 주식거래를 통해 양도소득세 1,128억 원을 포탈한 혐의를 인정했다. 하지만 징역 3년에 집행유예 5년에 그쳐, 실형을 살지 않고 곧바로 풀려났다.

 

천 억원 대 비자금 조성과 탈세 혐의로 기소됐던 조양호 전 대한항공 회장 역시 항공산업 발전에 기여했다는 이유로 집행유예를 선고받는 등 거액 탈세를 한 대기업 총수들이 실형을 받은 예는 거의 드물다. 이처럼 부유층과 특권층 탈세에 대해서만 유독 관대한 처벌은 조세 체계에 대한 불신을 키우고 있다.

 

합리적인 미국인

 

2000, 엔론Enron은 유명 경제지인 포춘으로부터 미국에서 가장 혁신적인 기업으로 꼽혔다. 그러나 그 이듬해, 이중장부로 대규모 분식회계를 하고 수천억 원 대 탈세를 한 사실이 드러나, 엔론의 최고 경영자였던 제프리 스킬링은 탈세와 회계부정으로 거액의 벌금과 함께 24 4개월의 징역형을 선고 받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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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국에서는 특권층의 탈세를 막기 위해 내부 고발자에게 천문학적인 포상금을 지급하고 있다.

미 국세청은 내부 고발자의 신고로 추징한 세금의 최대 30%를 제보자에게 포상하고 있다.

 

딘 저브  내부 고발자 변호인  오늘은 세금을 포탈한 자들에게는 끔찍한 날이겠지만, 내부 고발자와 모범 납세자들에게 매우 뜻깊은, 미국 세금의 공정성을 확립한 날이다.

 

국제적 금융회사 UBS에서 금융상담사로 일하던 버켄 필드씨는 하루아침에 천억 원 대의 자산가가 됐다. UBS가 부유층 고객 17,000명을 상대로 2백억 달러, 우리 돈 23조 원의 세금을 탈세하도록 도운 사실을 폭로한 덕분이다. 이 폭로로 UBS 2000년부터 7년 동안 탈세를 도운 사실을 시인하고 추징금 7 8천만 달러를 낸 반면, 버켄 필드씨는 천억 원 대의 포상금을 받았다. 이처럼 탈세를 강력히 처벌하고 내부 고발자를 포상하는 시스템은 미국 조세 행정의 신뢰성을 높이고 있다.

 

3천만 원 탈세, 너무 '적어서' 국세청이 나서기 애매하다?

 

국민의 건강을 지키는 보루인 건강보험관리공단. 건강보험료를 공정하게 걷기 위해 가입자들의 정확한 소득 파악은 가장 중요한 업무 중 하나다. 건강보험공단은 가입자의 자진 신고를 받고, 국세청도 한 해 세 번씩 소득 자료를 받고 있다. 그러나 이것만으로는 건강보험료를 속이는 것을 완전히 막을 수 없어 공단이 직접 현장 점검을 하고 있다.

 

이해평  건강보험관리공단 부장  국세청 신고자료와 우리 공단에 신고돼 있는 금액을 사후에 확인, 정정하기 때문에 추징 실적이 상당히 높다.

 

지난 2009년 서울의 한 법무법인은 임직원 전체의 한 달 평균 급여가 5,800여만 원이라고 신고했다. 그러나 건강보험공단의 심사 결과 실제 월급 9천여만 원이었다는 것이 드러나, 41개월 치 건강보험료 7천여 만 원을 추징했다.

 

김두영  신의진 국회의원 비서관  건강보험공단의 이 같은 심사는 결국 마땅한 보험료 추징을 위한 건데, 그 과정에서 소득을 축소하거나 탈루했다는 혐의점들이 속속 다 밝혀지고 있다.

 

해당 혐의자들은 탈세 가능성이 큰 만큼 소득탈루심사위원회의 심의를 거쳐 국세청장에게 통보하도록 법으로 규정돼 있다. 하지만, 지난 2009년부터 4년 동안 국세청에 통보된 탈세 혐의건수는 고작 233건에 불과하다. 소득 탈루가 확인된 탈세 혐의자 가운데 극히 일부만이 국세청에 통보된 셈이다.

 

국세청과 국민건강관리공단이 참여하는 소득축소탈루심사위원회의 내부 회의록을 보면, 탈세를 막겠다는 의지가 있는지 의심이 간다. 2010년 평범한 가정주부를 직원으로 둔갑시켜 3,400만 원을 탈루한 병원이 심사 안건으로 올라왔다. 그러자 한 심사원은 매출이 24억 원인데 탈루 금액이 3,400만 원밖에 안된다며 세무조사를 꺼리는 발언을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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또 다른 회의에서는 탈루 소득이 6천만 원이면 세금을 추징해 봐야 겨우 2천만 원이라며 국세청이 나서서 조사하기에는 애매한 수준이라며 발을 뺀다. 세금 한두 푼 공제 받기 위해 발품을 파는 일반 국민의 입장에서 보면 수천만 원의 탈세를 눈감아주는 이들의 행태는 쉽게 이해가 가지 않는다.

 

홍헌호  시민경제사회연구소 연구원  공정한 경쟁이 될 수가 없다. 탈세를 해도 처벌 받지 않으면 정당하게 세금 낸 사람들은 손해를 보는 거고, 그럼 경쟁에서 도태될 것 아니겠나.

 

신의진  국회의원  소득과 재산을 의도적으로 은폐, 축소하고 탈루하는 것을 이미 잘 알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국세청과 건강보험공단이 이를 제대로 밝히지 않는 것은 단순한 행정적 업무 태만이 아닌, 범죄행위를 묵인하는 것이다.

 

결국 이런저런 핑계로 건강보험공단과 국세청이 수많은 탈세 용의자들을 눈앞에 두고도 그대로 방치하고 있는 셈이다. 이에 대해 국세청은 건보단의 소간이라며 공식 인터뷰를 거절했다.

 

납세 정보를 공개하라

 

뺀질대는 국세청

 

기본적인 정보 공개조차 꺼리는 국세청은 더 큰 문제다. 올해 초선으로 당선돼 기획재정위원으로 배치된 홍종학 의원은 국세청에 대한 국정 감사를 앞두고 자료분석과 검증 작업에 박차를 가하고 있다. 하지만 국세청이 재벌의 조세감면 현황에 대한 자료 제출을 거부해 비상이 걸렸다.

 

박지웅  홍종학 국회의원 비서관  국세청에서 국세기본법을 들어 개인정보이기 때문에 자료를 제공할 수 없다고 답변해 왔다.

 

홍종학  국회의원  국세청이 너무 자료를 제공하지 않아 지금 의정활동 자체가 불가능할 지경이다. 그래서 아예 국회의원이 재벌의 납세 자료를 요구하면 이를 제출하도록 하는 국세기본법 개정안을 발의했다.

 

법안 발의 후에야 국세청은 재벌의 조세 감면 자료를 제출했다. 이는 어제 오늘의 일이 아니다. 일반 시민은 물론, 세금을 감시하는 시민단체조차 중요한 납세 정보에 접근조차 못하고 있다.

 

선대인  선대인경제연구소 소장  과세 자료는 투명하게 공개되어 관련 정부부처 뿐만 아니라 개인, 시민단체들도 필요에 따라 납세 자료, 과세 근거를 명확히 살펴볼 수 있도록 해야 한다.

 

투명한 핀란드

 

북유럽에 위치한 핀란드는 조세 정보 공개에 있어 한국과 완전히 대비되는 나라다. 세계 최고의 복지국가라는 명성에 걸맞게 핀란드의 수도 헬싱키 항구에는 호화 유람선과 고급 요트들이 오간다. 이 항구에 자리잡은 전통 재래시장은 헬싱키 시민들 뿐 아니라 전세계에서 몰려든 관광객으로 북적인다. 시장 한복판에 연필로 만든 독특한 공예품을 파는 노점상이 눈길을 끈다. 핀란드에서는 노점상에서도 신용카드 결제가 가능하다

 

엘리 후까  연필 공예품 노점상  고객의 1/3 가량이 신용카드 결제를 원하기 때문에, 시장이라 해도 신용카드 단말기는 필수다. 나뿐 아니라 모든 노점상이 3개월에 한 번 부가가치세 신고도 하고 있다. 인터넷으로 간단히 할 수 있다.

 

이 같은 자진납세는 투명한 납세 문화를 바탕으로 자리잡았다. 핀란드 최대 신문사인 사노마의 경제부 기자들에게 11 1일은 가장 바쁜 날이다. 핀란드 부호들이 세금을 얼마나 내는지 국세청이 그 순위를 발표하는 날이기 때문이다. 핀란드 언론사들은 실제로 그들에게 적용된 세율과 납부한 세금 액수까지 낱낱이 보도한다.

 

미카엘 펜티끼까이넨  헬싱키 사노마신문 논설위원  돈으로 버는 돈과 일해서 버는 돈을 구분하고 그에 맞는 세금을 부과하는 것, 그리고 그 기준 및 체계를 공개하는 것이 핵심이다. 납세 정보는 국민들에게 반드시 공개해야 하는 매우 중요한 정치·경제적 정보다. 나라의 납세 시스템이 어떻게 돌아가는지 확인할 수 있도록 하는 것은 투명하고 열린 사회의 관건이기 때문이다. 

 

핀란드는 국세청에 가서 요청하기만 하면 언제든, 누구든, 어떤 개인 납세 내역이라도 조회가 가능한 시스템을 갖추고 있다. 옆집 사람부터 핀란드 대통령까지, 바로 그 자리에서 확인할 수 있다. 이런 투명한 조세 행정은 자신의 세금을 솔직하게 신고하는 '선순환 시스템'을 만들어 가고 있다.

  

핀란드의 탈세 정보 수집·공개의 중심에는 지하경제정보국이 있다. 국세청 소속이지만 청사와 조직을 분리하고 독자적인 활동을 보장해 독립성을 확보했다.

 

얀네 마르띠넨  핀란드 지하경제정보국장  지하경제정보국은 국세청의 한 부처이면서, 동시에 별도의 권한을 가진다. 경제 범죄와 지하 경제의 전체적인 공정성을 유지하기 위해서다. 탈세를 막으려면 먼저 국세청과 국민연금관리공단에서 제공받은 정보를 종합해야 하는데, 공단과 국세청 모두 매우 협조적으로 임하고 있다. 각종 공공보조금을 지급하는 행정당국과도 공조를 이루고 있다.

 

유전유죄

 

2004, 핀란드의 대표 기업 노키아의 당시 회장 칼라스 부오가 된통 망신을 당한 일이 있었다. 스위스 출장을 마치고 돌아오던 중 고급 시계와 양복 등 11,000유로, 1,600만 원 상당의 면세품을 공항 세관에 신고하지 않았던 것이다. 재판을 거쳐 31,000유로, 우리 돈으로 4,500만 원의 벌금을 물 때까지 그는 부끄러운 탈세 사건으로 사람들의 입에 오르내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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야르꼬 시필라  핀란드 MTV3 기자, 당시 취재인  핀란드 세무당국은 아주 엄격하다. 유명인일수록 더 철저하게 수사하고, 일단 걸리면 절대 그냥 넘기지 않는다.

 

특권층에도 동일하게 적용되는 잣대가 핀란드 납세 행정에 대한 신뢰를 높이고, 국민 모두를 성실 납세자로 만들고 있다.

 

소득이 있는 곳에 과세한다는 조세 원칙을 근로소득만이 아닌 불로소득에도 철저히 적용해야 한다.

지금과 같은 과도한 불로소득 면세정책은 조세공정성에 대한 신뢰를 무너뜨릴 수밖에 없다.

무엇보다 선진국 같은 투명한 정보 공개로 조세행정에 대한 국민들의 신뢰를 회복해야 한다.

조세정의를 확립하는 것이 코앞에 닥친 우리의 선결 과제임을 명심하자.

 

 

세금 불공정 보고서 | 2012-09-25 | 시사기획 Link

 

Posted by 몽자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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