파국이 온다 - 안젤름 야페


26쪽
진정한 비판을 하고자 한다면 늘 '구체적이고 즉각적인 해결책을 제시해야' 한다는 요구에 굴복해서는 안 된다.

50쪽
그러므로 흔히 외치는, 노동자 혁명이나 농민 혁명 또는 비정규 노동자의 혁명 같은 건 있을 수 없다. 만일 혁명이 가능하다면 그것은 진정으로 자본주의와 단절하기를 원하는 사람들에 의해서만 가능할 것이다. ......
환경주의자들이 흔히 하듯 도대체 우리는 아이들에게 어떤 세상을 물려주려 하느냐고 자문할 일이 아니라, 하이메 셈프룬이 잘 표현했듯 우리는 이제 이렇게 물어야 한다. "우리는 이 세상을 과연 어떤 아이들에게 물려줄 것인가?"

*** 
계급의 역전, 변화가 해답은 아니다.
자본주의 안에서 형성된 인간은 자본주의 밖에서 혁명할 수 있다.
지배자와 피지배자 모두 틀을 깨고 싶어하지 않는다.

60쪽
자본주의 문명의 점진적 붕괴(모순어법이지만)는 거의 확실하다. 그런데 이 붕괴가 결코 (이 체제를 더 나은 체제로 대체하려는) 사람들의 의식적 개입에 의해 이뤄지진 않을 것이다. 체제의 종말은 체제 자신의 힘에 의해 스스로 초래된다. 즉, 바로 그 역동적이면서도 자기 파괴적인 자기 동력의 결과가 자멸이다. 이런 면은 자본주의 사회가 그 이전의 사회와 차별성을 갖는 지점이기도 하다. ...... 기존 체제가 붕괴한다고 해서 그보다 훨씬 바람직하게 조직된 사회가 나온다는 보장이 없다는 것이 또 다른 절반의 진실이다. ...... 따라서 만일 자본주의를 자기 동력이 행하는 대로 내버려둔다면 결코 저절로 사회주의로 이어지진 않을 것이다. 오히려 폐허로만 남을 공산이 크다. ...... 해방된 사회, 아니 적어도 지금 우리가 경험하는 이 사회보다 더 나은 사회는 여전히 가능하다. 하지만 우리는 이것을 자본주의 사회의 돌무더기 위에서 건설해야 한다.

71쪽
상품생산과 자유경쟁에 기초한 현대 자본주의 사회는 그 자체의 존속을 위해서라도 여러 가지 공적 구조와 이를 보살펴줄 기구를 필요로 한다. 그 기구가 바로 국가다. 그리고 (근대 이후 협의의) 정치란 이 국가에 대한 통제를 둘러싼 쟁투에 다름 아니다. 그런데 이 정치 영역은 상품경제 영역의 외부에 존재하거나 대안적 영역이 결코 아니다. 오히려 정치 영역은 구조적으로 상품경제에 기대고 있다. 따라서 정치 영역의 논쟁은 언제나 상품 시스템의 성장이나 그 과실에 대한 분배를 중심으로 일어난다. 전통적인 노동운동 역시 본질적으로는 이 역할을 수행해왔다. 즉, 정치영역이나 노동운동 영역이 상품 시스템의 실질적 존재 자체를 두고 쟁투를 벌인 적은 거의 없다.

74쪽
이런 맥락에서, 아직도 투표하기를 원하는 사람들과 어떻게 해야 할지르 ㄹ놓고 토론하는 일은 별로 의미가 없어 보인다. 보통선거 제도가 도입된 지 거의 140년이 흐른 오늘날 아직도 투표함으로만 달려가는 사람들은 188년 옥타브 미르보가 한 말, 그리고 1906년 알베르 리베르타드가 한 말을 경청할 필요가 있다.

76쪽
보수적 유권자 입장에서 보면 자기 친척에게 일자리 하나라도 더 줄 수 있는 후보자, 아니면 자기 지역구 개발을 위한 보조금을 많이 끌어올 후보자에게 표를 던지를 것이 가장 합리적 선택이다. 반면 진보 좌파 유권자들은 이보다 훨씬 더 어리석다. 그들은 자기에게 이득이 되는 것을 하나도 얻지 못해도 늘 민주-진보 후보에게 표를 준다. 이들은 투표를 통해 위대한 변화는커녕 작은 떡고물 하나도 챙기지 못한다. 선거 때마다 그들은 달콤한 약속만 듣고도 흡족해한다.

81쪽
이런 면에서 앞으로도 다양한 실천이 새롭게 발명되어야 한다. 그러면서도 특히 "뭔가를 서둘러 해야 한다"라는 강박적 요구에 굴복하지 않는 것이 중요하다. 그렇게 되면 이미 수차례 시도했으나 여전히 부족한 것, 즉 실패의 오류들이 또다시 반복될 뿐이다.

84쪽
특히 이 새로운 빈곤 형태는 기존의 착취보다는 배제를 통해 더욱 많이 생겨나지 않던가. ...... 이렇게 잘린 사람들이나 아예 처음부터 취업을 하지 못한 이들은 이른바 "잉여 인간"이 되는데, 이들이 자기 현실에 대응하는 형태는 대단히 다양하긴 하지만 대체로 야만주의로 치닫는 경향이 있다. 즉, 희생자라는 존재 양태가 저절로 도덕적 올바름을 보장하는 건 아니다.

99쪽
이와 동시에, 사회적 투쟁들 자체도 더는 완전히 색다른 사회의 등장을 목적으로 하지 않고 이미 생산되고 획득된 가치의 분배를 위한 투쟁과 대화에만 몰두한다. ...... 그러나 합법성 내에서의 분배 투쟁을 통한 삶의 개선이란 일종의 환상일 뿐인데 이 환상조차 완전히 사라질 가능성이 나날이 커지고 있다.

116쪽
이런 맥락에서 보면 각종 연구소나 언론의 이름으로 통상적 공개 발언을 하는 이들, 즉 (자본주의 지배층에 의해) 고용된 낙관주의자들이 제비 한 마리를 보고 여름이 왔다며 떠들어대는 일은 결코 놀랍지 않다.

118쪽
위기 속에 캑캑거리는 자본주의 경제의 비밀스러운 원인을 일종의 끔찍한 고급 음모 탓으로 돌리는 것은 상당히 오래된, 그리고 위험한 전통의 하나다. 이런 사고방식의 최악은 일종의 희생양 찾아내기인데, "유대인 거물 금융가"가 대표적 예로, 이들은 "정직한 민중"인 노동자 등 소규모 예금주들이 마음 놓고 신랄히 비난할 수 있는 표적이 되어준다.

130쪽
요컨대 신자유주의는 위기의 자본주의 시스템을 조금이라도 더 오래 버티도록 만들기 위한 유일한 현실적 돌파구였다.

139쪽
그러다 막상 위기가 닥치면 사람들은 이미 자신이 알고 있는 사회생활 방식에 더 강하게 매달린다.

146쪽
그러나 불행히도, 그 어떤 "위기"도 "인간 해방"을 저절로 보장하진 못한다. ...... 현재의 위기 역시 그 어떤 해방적 프로젝트의 출현에 유리한 것 같지도 않다. 오히려 위기 상황에서 사람들은 각자도생의 태도만 강하게 드러낸다.

162쪽
이렇게 볼 때 "사회적 종합"은 크게 두 가지 중요한, 서로 상반된 형태로 이뤄진다고 할 수 있다. 하나는 선물의 교환(이 교환의 목적은 사람 사이의 유대 형성이다)에 의해서, 다른 하나는 등가물 교환에 의해서다. 후자의 경우 인간적 유대(관계) 형성은 익명의 시장에서 상호 독립적인 생산자 (또는 소비자)들이 우연히 만남으로써 이뤄진다. 반면 선물은 이렇게 묘사될 수도 있다. 즉, 선물이란 노동과 그 산물이 독립적 매개를 구성하는 게 아닌, 보다 직접적인 사회 조직화 과정의 한 형태라는 것이다. 이렇게 선물은 직접적 사회관계에 다름 아니다.

163쪽
오로지 자본주의 사회에서만 경제주의가 지배한다. 즉, 이 경제주의는 인간 존재 일반이 갖는 만고불변의 진리가 아니다.

168쪽
보다 일반적인 용어로 말해, 질보다 양을 중시하고 동시에 내용보다 형식을 중시하는 이 논리(가치 논리)가 오늘날 상품 사회에 사는 우리 삶의 모든 수준을 지배한다. 심지어 이 상품 사회에 사는 한 우리가 아무리 고요한 곳에서 내면의 휴식을 취한다 해도 이러한 가치의 지배로부터 자유로워지기 어렵다.

169쪽
요컨대 가치는 비가치와의 변증법적 관계 없이는 존재하지도 않고 존재할 수도 없다. 여기서 이 관계는 필연적으로 적대적 성격을 띤다.

171쪽
따지고 보면 삶에 필요한 많은 활동(아이 교육, 사랑하는 일, 서로에 대한 신뢰 등)이 상품 논리 안에서는 이뤄질 수 없다. 상품 논리란 곧 등가물의 교환에 다름 아니기 때문이다. 마찬가지로 그런 활동은 (일방적 사업이나 금융 영역처럼) 계약 관계로 이뤄질 수도 없다. 요컨대 상품 논리가 제대로 작동하고 나름의 재미를 보기 위해서라도, 비상업적 기준으로 움직이는 다른 사회 활동 영역들이 존재해야 한다. 

173쪽
즉, 비상품 영역은 결코 자유의 영역이 아니다. 그것은 차라리 상품영역에 의해 경멸을 당하면서도 상품의 화려한 세계를 위해 봉사해야 하는 필연성 때문에 존재하는 영역에 불과하다. 이런 의미에서 비상품 영역은 가치의 대항물이 아니라 오히려 그 전제다. 그리하여 가치의 영역과 비가치 영역은 함께 가치 사회, 즉 자본주의 상품 사회를 형성한다.

225쪽
따라서 우리의 희망은 아마도 다음 두 가지 운동의 수렴에 있을 것이다. 그 하나는 억압받고 착취당하는 이들의 삶을 향상하기 위한 투쟁이다. 다른 하나는 과도한 개인적 소비와 무한한 생산에 기초한 사회경제 모델을 극복하는 운동이다.

233쪽
따라서 자본은 민초들을 유용한 노동력으로 전환하기 위해 피나는 싸움을 해야 했다. 자본의 불평불만은 그것만이 아니었다. 자본의 눈에 민초들은 자기네 전통 따위에 지나치게 집착했고 따라서 그 생활방식을 바꾸는 데도 대단히 주저했다.

246쪽
오늘날 향락 산업과 자본주의는 심층적인 면에서 닮은 꼴을 보이는데, 둘 다 유치와 현상과 나르시시즘 경향을 띠는 것이다.

250쪽
반면 좌파는 시민적 평등 개념을 믿고 있기에 그렇다(즉, 고급문화 대신 "대중문화"가 보편화하면 가난한 자들도 문화를 즐길 수 있다는 논리다. 그래서 문화적 퇴행과 인간적 퇴행에도 저항하지 않는다. ...... 좌파가 종종 문화 상품화의 최전선에서 앞장을 서왔기 때문이다. 

260쪽
이미 현대예술의 상당 부분이 스스로 문화 산업의 품속으로 뛰어들어버렸다. 그러고는 그 안에서 편히 앉을 자리 하나를 달라고 조신하게 부탁하는 꼴이 되고 말았다.


[다음 책] 파국이 온다 - 강수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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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몽자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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