당신이 반짝이던 순간 - 이진순


66쪽  (이국종)
이국종에게 진정으로 위안이 되는 건, 그를 국민영웅으로 추앙하는 팬들의 박수갈채가 아니라 단순하고 순결한 진정성을 가지고 각자의 분야에서 온전히 자신을 불태우는 또다른 이국종들이 아닐까. 그와 헤어질 때 "선생님, 힘내세요" 같은 인사는 건넬 수 없었다. 그에게 진짜로 힘이 되는 인사말은 그게 아닐 거라 생각했다. 그를 바라보며 천천히 말했다. "저도, 최선을 다할게요."

114쪽  임순례
[인터뷰어] 이런 얘기 나올 때마다 동물이 인간보다 중하냐, 동물복지보다 농축산인들의 생업이 더 중요하다고 반박하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인터뷰이] 사람의 복지를 뻇어다가 동물권을 강화하는 게 아니죠. 생명 존중에 대한 배려나 감수성이 상승하면 인권감수성도 더 발전하고 개선될 수 있어요. 동물권과 인권을 대립시키는 건 어리석은 생각이죠.

125쪽  최현숙
[인터뷰어] 그러니까 구술사 집필은 그분들의 삶을 기록으로 남긴다는 차원뿐 아니라 그걸 통해서 자신의 인생을 회고하고 스스로 다른 평가를 하게 만든다는 건가요?
[인터뷰이] 네, 그렇죠. 일단 아픔이든 뭐든 풀어놓는 것 자체가 하나의 치유 과정일 수도 있고요. 제가 단순히 묻고 기록하는 게 아니라 그 삶에 대해 같이 이야기하면서 그분들 스스로 재해석할 수 있게 하는 거지요. 물론 사회적으로 그분들의 목소리나 생애 경험들을 남기는 것도 굉장히 중요하다고 생각하고요.

129쪽  최현숙
이분들을 만나면서 제가 느낀 건 이래요. '이들은 자기의 시선으로 자기를 바라보기보다는 가진 자들, 배운 자들의 시선과 평가를 좇아서 그걸 자기 정체성으로내면화한다.' 가난한 사람들의 경우엔 자기정체성을 독립적으로 가질 기회가 드물어요. 그래서 많이 배운 사람들, 권력을 가진 사람들의 말을 모방해서 자기를 평가하고, 그 잣대로 세상을 보죠.

130쪽  최현숙
저는 부자 남성들도 가부장제로 인해서 억압받고 피해보는 측면이 있다고 생각해요. 다만 그들은 가부장제 하에서 실제로 '대빵' 노릇을 할 수 있는 다른 권력이 있기 때문에, 가부장제로 피해를 보더라도 자기가 누릴 권력이 더 많으니까 그냥 감수하는 거죠. 반면에 가난한 남성은 가장으로서 경제적 책임을 져야 한다는 것, 돈은 남자가 벌어야 하고, 남자는 신체도 정신도 섹스도 강해야 한다는 생각에 짓눌려 있어요. ★

141쪽  (최현숙)
진보를 자처하는 이들이 가장 무서워해야 할 적은 '성찰 없는 노화'가 아닐까. 

163쪽  구수정
전 우리의 민낯을 대면할 수 있게 하는 나라가 베트남이라고 생각해요. 우리가 갖고 있던 여러 가지 환상을 깨준 거죠. 백의민족, 평화를 사랑한 민족, 다른 나라를 침략한 적이 없는 민족이라는 역사관을 가진 한국 사람들에게 우리의 민낯을 보여준 걸지도 몰라요. 우리도 굉장히 침략적일 수 있고, 우리도 굉장히 비평화적인 행동을 할 수 있다는 것. 그래서 우리 스스로 안에서부터 경계하지 않으면 잔인하고 비인도적인 범죄를 저지를 수 있다는 걸 베트남이 보여줬어요.

198쪽  손아람
자기 자신을 애써서 위대한 지위로 올려놓으려는 건 스스로 나약하기 때문일지도 몰라요. 예술가가 자기가 하고 있는 일의 영향력을 스스로 저평가할 때 자존감을 유지하기 위해 '나르시시스트'로 자기를 포장해요. ...... 문학을 한다는 이유로 자기가 엘리트라는 걸 제도화해서 뻐겨야만 세상에 스스로를 드러낼 수 있다고 생각하는 사람은 매력이 없어요. 그런 사람이 되지 않으려 노력하죠.

205쪽  손아람
사람은 아는 만큼이 아니라 느끼는 만큼만 바뀝니다. 오늘날 진보와 보수를 막론하고 인간에 관한 모든 정치적 의제는 사악한 적이 아닌 무관심과의 싸움입니다. 무관심을 어떻게 이길 수 있을까요? 압도적인 옳음으로? 냉철한 논리로? 우아한 지성으로? 저는 차라리 유머, 눈물, 분노, 연민, 매력 같은 원시적인 감각의 힘을 믿습니다.

221쪽  (장혜영)
장혜영은 2013년 방송대학TV와 한 인터뷰에서 "공부는 언제 어디서나 매일매일 하야 하는 것인데, 무슨 공부를 할 거냐가 중요하다. 결국 공부란 자기를 발견하고 누구로서 살고 싶은지를 생각하는 과정이 아닐까"라고 답한 바 있다.

273쪽  확석영
오엔 겐자부로나 르 클레지오는 나더러 "서사가 많은 나라에 태어난 네가 (작가로서) 부럽다"라고 하지만, 그때마다 난 시니컬하게 말해요. "나는 네 자유가 부럽다." 정치적 사회적 압박만 억압이 되는 게 아니라, 역사라는 엄처시하嚴妻侍下, '너는 이걸 반드시 해야 해, 넌 이것만 해' 하고 은연중에 압박하는 것도 자유에 대한 억압이죠. 

278쪽  확석영
미지의 것 때문에 금기의 억압이 있다면 작가는 자유로워지기 위하여 그것을 위반하고라도 확인해야만 한다. 국경, 장벽, 철조망 너머로 날아오고 날아가는 철새를 본 적이 있다면 생명의 본성과 사람이 정해놓은 잡다한 규정들이 어떤 의미가 있는지 반문하게 될 것이다. (수인 중)

296쪽  채현국
난 도운 적 없어요. 도움이란, 남의 일을 할 때 쓰는 말이죠. 난 내 몫의, 내 일을 한 거예요. 누가 내 도움을 받았다고 말하는지는 몰라도 나까지 그렇게 생각하면 안 될 일이죠. 그게 내가 썩는 길이거든. 내 일인데 자기 일 아닌 걸 남 위해 했다고 하면, 위선이 되죠. 

299쪽  채현국
[인터뷰어] 서울대 척학과까지 나오신 분이 지식을 믿지 않는다고요?
[인터뷰이] 지식을 가지면 '잘못된 옳은 소리'를 하기가 쉽거든요. 사람들은 '잘못 알고 있는 것'만 고정관념이라고 생각하는데 '확실하게 아는 것'도 고정관념입니다. 세상에 '정답'이란 건 없어요. 한 가지 문제에는 무수한 '해답'이 있을 뿐, 평생 그 해답을 찾기도 힘든데, 나만 옳고 나머지는 다 틀린 '정답'이라니...... 이건 군사독재가 만든 악습이에요. 박정희 이전엔 '정답'이란 말을 안 썼어요. 해답이란 말만 있었죠. 모든 '옳다'라는 소리에는 반드시 잘못이 있어요. 

301쪽  채현국 
[인터뷰어] (1956년 그는 서울대 철학과에 입학했다.) 서울대에 입학해서 연극활동을 하셨다고 들었어요.
[인터뷰이] 한 게 아니라 만든 거예요. 그때 이순재가 철학과 3학년이고 내가 1학년이었는데 순재더러 "우리 연극반 하나 만들래?" 해서 시작했죠.
[인터뷰어] 이순재씨가 선배라면서 왜 반말을 쓰세요?
[인터뷰이] 나이로는 순재가 나보다 한 살 많은데, 내가 중학 때부터 후배한테는 예대禮待하고 선배한테는 반말했어요. 나보다 나이 많은 선배를 만나면 '나랑 친구 할래, 선배 할래?' 물어보고 '친구 한다'고 하면 바로 반말로 대했죠. (웃음) 후배한테 반말하는 건 왜놈 습관이라, 그게 싫어서 난 후배한테 반말하지 않아요.
[인터뷰어] 후배한테 반말하는 게 일본 풍습이라고요? 그럼 조선 풍습은 달라요?
[인터뷰이] ​퇴계는 스물여섯 살 어린 기대승이랑 논쟁 벌이면서도 반말하지 않았어요. 우리 공습에는 형제끼리도 아우한테 '~허게'를 쓰지, '얘, 재……' 하면서 반말은 쓰지 않아요. 하대는 일본사람 습관이에요. ★

310쪽  채현국
그거 착각하면 안 돼요. '꼬리 자르기' 아니고 '대가리 자르기'예요. 지배세력은 문제가 생길 때마다 대가리만 자르고 지들이 계속 해먹는 길을 택하죠. 고종 망하고도 양반은 해먹었죠. 일제가 망하고도 친일파가 해먹었어요. 이승만 망하고도, 박정희 죽고도 그놈들이 해먹고, 박근혜 감옥 가고도 그놈들이 계속 해먹겠단 거예요. 꼬리 자르기에 대해선 사람들이 뭐라고 하지만, 대가리 자르기는 눈치를 잘 못 채요. 저놈들은 남의 손에 자기들 대가리가 잘린 것처럼 굴지만, 사실은 그놈들이 스스로 대가리를 쳐낸 거예요. 저희들이 계속 또 해먹으려고. 매번 반복되는 규칙 같은 거죠. 그 규칙을 지켜주는 게 언론을 가장한 광고 장사예요. 언론이란 이름으로 프로파간다를 하는 거죠.

312쪽  채현국
성선설이랑 성악설은 같은 거예요. 맹자는 성선설을 주장하고 순자는 성악설을 주장한다고 하는데, 그게 서로 다른 게 아니라고요. 가난하게 산 맹자는 주변에서 맨날 싸우고 아귀다툼하는 사람들 보면서 인간이 참 못됐구나 싶었겠지. 근데 공부를 하다보니 '어, 아니네? 교육 받지 못해서 그런 거지. 원래 인간은 착하네' 한 거죠. 반면에 순자는 부잣집에서 귀하게 자랐어요. 주변에서 다 고분고분하게 잘 대해주니까 인간이 무척 선한 줄 알았어. 근데 나이 먹고 공부해보니 그게 아닌 거예요. '인간이 이렇게 악한 존재였구나' 한 거죠. 둘의 처지가 달라서 다르게 얘기한 것뿐이지, 결국 같은 얘기예요.

313쪽  채현국
사람들은 "옳다 그르다"를 따지는 게 생각인 줄 알아요. 그걸 생각이라고 훈련시키니까. 생각은 그런 게 아녜요. 생각은 저항하고 거부하는 거예요. "그게 아닐 텐데......" 하면서 모든 진리에 대해 회의하는 것. 그게 진짜로 생각하는 거라고요. ...... 생각은 합리와 무지, 지성, 감성을 모두 포함하는 건데, 배웠다는 사람들이 도대체 생각이 없으니, 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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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몽자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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