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그렇게 생각하지 않습니다. - 법무법인 지향 변호사들


52쪽  박갑주
이 판결로 노회찬 의원은 의원직을 박탈당했다. X파일 사건은 노회찬 의원의 말대로 "'도둑이야'라고 소리치니까 도둑인지 아닌지는 조사하지 않고 '왜 한밤중에 주택에서 소리를 지르느냐'며 소리치는 사람을 처벌하는 꼴"이라는 사법 현실을 뼈아프게 확인하며 끝났다.

244쪽  류신환
근래 드라마나 영화를 통해 피고인이 법정에서 변호인의 도움을 받아 재판받는 모습을 많이 볼 수 있게 됐지만, 수사과정에서 변호인이 신문에 참여해 피의자를 돕는 모습을 화면을 통해 접할 기회는 적은 편이다. 아마 이를 낯설게 느끼는 사람도 있을 것이다. 하지만 수사단계에서의 조사과정 역시 판사 앞에서 재판받는 공판 절차 못지않게 매우 중요하다. 경찰이나 검사는 범죄 입증을 위한 중요한 진술을 수사과정에서 모두 미리 확보하기 때문이다. 피고인 입장에서 보면 "수사절차에서 어떻게 이야기했는지"가 자신의 재판 전체를 좌우할 수도 있는 법이다.
더구나 경찰이나 검찰은 두려운 존재이기 때문에 그곳에서 조사받는 보통 사람들은 엄청나게 위축되기 마련이다. 그때야말로 변호인의 조력이 가장 필요한 순간인 것이다. 변호인이 여러 가지 조력을 할 수 있겠지만, 그 가운데에서도 변호인이 조언하는 '진술거부권'은 온전한 정신으로 자신을 위한 변명을 당당하게 내놓지 못해 쩔쩔매는, 궁지에 몰린 범죄 피의자에게 보장된 '탈출구' 같은 것이다 .자신을 둘러싼 상황이 어떻게 흘러갈지 모르는데, 자신은 사건의 앞뒤 상황을 정확히 알지 못하는데, 수사관의 질문에 반드시 무슨 대답이라도 선택해 내놓아야 한다면 그 불안과 답답함은 겪어보지 않은 이는 쉽게 예측하지 못할 일이다.
"수사기관에 진실만을 말한다면 도대체 진술거부권이나 변호인의 조력이란 것은 불필요한 것 아닌가"라고 반문할 수도 있겠다. 하지만 피의자의 '진술' 자체가 사건의 모든 진실을 담아내지 못하는 경우가 있고, '조서'에 적히는 과정에서 '진실조차 왜곡될 수 있다. '조서 작성'은 범죄자의 나쁜 행동을 강조하는 '수사기관의 조직 논리'에 영향을 받기 마련이다. 오죽하면 '조서를 꾸민다'는 말이 관용되겠는가. 피의자는 '자신의 의사가 억압되지 않은 상황에서, 입 밖으로 내놓은 진술이 조서에 있는 그대로 반영될 수 있기를 바란다. 변호인은 이를 돕는 것을 '업'으로 하는사람이다. 때로는 변호인의 조력이 '진실'을 구해내기도 한다.

254쪽  이상희
2002년 국가인권위원회의 실태조사 보고서에는 보안관찰처분의 이유들이 나오는데, 경찰에 출소 신고를 하지 않은 점, 행형 성적이 좋지 않은 점, 범죄 혐의를 부인한 점, 국가보안법과 보안관찰법의 폐지를 주장한 점, 수감 중 교도소 접견 시간의 보장을 요구하며 단식을 한 점, 수감 중 자서전을 발간한 점, 이혼 뒤 재혼하지 않은 점, 보안관찰처분 대상자들과 함께 살고 있는 점, 일정한 직업이 없어 생활이 불안정한 점, 처의 수입에 의존해 사는 점, 인터넷 사용을 잘하는 점 등을 들고 있다. 너무나 어처구니없는 이유들이다. 생존 자체를 재범의 위험성으로 들고 있지 않은 것만으로도 다행일 정도다.
국가의 사찰과 감시를 주된 내용으로 하는 보안관찰의 법적 정당성은 '재범의 위험성'에서 비롯된다. 그러나 이처럼 '재범의 위험성'은 허구의 개념이고 처음부터 인정되기 어려운 개념이었다. 국가는 이렇게 허구의 개념을 동원해 보안관찰처분을 하고 상시적이고 노골적으로 사찰과 감시를 하고 있는 것이다. 처분 대상자였던 어떤 분은 이를 '국가의 저강도 길들이기'라고 표현했다. 더욱이 밖으로 표출된 구체적인 위험이 아니라 법, 특히 국가보안법과 보안관찰법에 적대적인지가 처분의 결정적 근거로 작용한다는 점에서 보안관찰처분은 또 하나의 사상 통제법이라는 비판에서 자유로울 수 없다.
보안관찰법은 사회안전법의 대체 법안으로 탄생했다. 비전향장기수를 2년마다 심사해 전향을 강요하고 이에 응하지 않으면 감옥에 가둬두던 것이 사회안전법인데, 인권침해 논란으로 1989년에 폐지되면서 구금을 대신해 상시적으로 사찰이 가능한 보안관찰법으로 대체한 것이다. 그런데 사회안전법도 그 역사를 거슬러 올라가면 일제강점기에 조선의 사상범에 대한 '보호관찰령'의 보호관찰제도와 치안유지법의 예방구금제도를 고스란히 승계해 규정한 것이다. 박정희 전 대통령이 1975년 5월 유신체제 강화를 위해 긴급조치 제9호를 발동하고 두 달 뒤인 7월 국회 회기 만료 직전인 새벽 3시에 여당 의원들만 참석한 가운데 날치기로 통과시킨 법이다. 이렇게 보안관찰법의 역사를 거슬러 올라가면 일제 식민지 통치와 유신체제에 맞닿아 있다.

266쪽  이상훈
경찰이나 검찰에서 조사를 받아본 사람은 조사 과정이 얼마나 지겨운지 안다. 수사관이 물어보면 대답하고 수사관이 타이핑을 마칠 때까지 한동안 멍하니 기다렸다가, 다시 물어보면 대답하고 수사관이 타이핑을 마칠 때까지 또 멍하니 기다렸다가, 다시 또 반복. 지루하게 하루 종일 조사를 받았는데도 조사가 미진하다고 다시 조사 기일을 잡는다.

273쪽  김진
그러니 오늘 밤 대법원 앞을 지날 때는, 기타 공장에 다니던 노동자들이 들고 있는 푯말을 다시 한번만 눈여겨봐주시라. 푯말에는 그저 "대법원의 정의로운 판결을 촉구합니다."라고 쓰여 있다. 이들은 법원을 공격하거나 소란을 피우거나, 재판이라는 공정한 규칙을 깨고 힘으로 하자고 압박을 가하려 생떼를 쓰는 게 아니다. 그저 유능하고 아는 사람 많은 변호사를 선임하는 것이 아니라 자신이 생각하는 상식이 더 힘이 세다고 순진하게 믿는, 주요 일간지 칼럼이나 세련된 말로 '여론'을 만들어낼 줄은 모르지만, 마지막까지 기대를 놓지 않으면서, 누구보다 법과 사법부를 신뢰하고 그 마지막까지 기대를 놓지 않는, 그런 사람이니 말이다.

Posted by 몽자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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