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다른 재능 - 발견과 발현

 

사람들은 가정한다. 후회 섞인 가정이다. 학창 시절로 돌아간다면 공부를 진짜 열심히 해 보겠다거나 책을 많이 읽겠다, 대학 입학 시험 직후로 돌아가서 이런 전공을 택하겠다 등등. 문제는 이렇게 막연하게 남아 있는 아쉬움이 후배나 제자, 자식들에게 강요로 전달된다는 사실이다. 개인적인 경험을 바탕으로 조언을 보태는 건 분명 상대가 잘되길 바라는 마음에서 우러나오는 고마운 일이다. 하지만 그 조언이 강요로 이어지거나 듣는 이가 아닌 본인에게만 해당하는 개인적인 얘기라면 전혀 도움이 안 될 뿐 아니라 오히려 해만 끼치게 된다. 막연하게 뭉뚱그린 조언 역시 마찬가지다. 강제성, 일반성, 추상성, 이 세 가지를 경계할 필요가 있다. 강요가 섞여 있지 않고 상대의 강점과 취향에 초점을 맞추며, 구체적이고 근본적인 대안을 제시할 수 있는 조언이라야 그 진가를 발휘할 수 있다.

 

추상성을 피하기 위해서는 본인이 후회하는 이유가 무엇인지, 그리고 궁극적으로 무엇을 위해 그런 아쉬움을 갖게 되었는지를 생각해 봐야 한다. 학창 시절로 돌아가 공부를 열심히 해 보고 싶다는 건 현재의 직업 또는 직위에 만족하지 못한다는 뜻이다. 더 많은 지식을 쌓아서 내세울 만한 학벌을 가지고 싶은 욕구가 깔려 있다고 볼 수 있다. 사회적 지위 향상이 그 이유이자 목적인 것이다. 다독에 대한 미련은 번듯한 학벌보다는 풍부한 지식에 대한 욕심이 반영된 결과다. 뒤늦게 다른 분야에 대한 관심과 흥미를 발견했을 때, 혹은 현재의 직종이 만족스럽지 않을 때는 다른 전공, 다른 진로 선택을 가정해 보게 된다.

 

자녀에게 공부, 독서, 전공처럼 광범위한 충고를 매일같이 반복해서는 그 효과를 기대할 수 없다. 사회적 지위가 높으면 어떤 점이 좋은지, 번듯한 학벌이 어떻게 사회적 지위를 높이는 데 도움이 되는지를 구체적이고 다양한 사례와 선명한 이미지로 각인시켜 줘야 자발적이고 효율적인 학습이 가능하다. 책을 많이 읽으라고 밤낮 부르짖어도 매번 잔소리로 그치고 만다는 건 불 보듯 뻔한 일이다. 책에서 얻을 수 있는 지식 및 상식이 왜 필요하고 언제 유용한지, 새로운 지식을 섭렵하고 감동적인 이야기를 접할 때의 즐거움이 얼마나 큰지를 일깨우면 같은 얘길 반복할 필요가 없어진다. 요는 이유와 목적을 분명히 알리고 그 효과와 혜택이 구체적으로 어떻게 주어지는지를 뼛속들이 이해시켜 줘야 한다는 것이다. 대부분의 조언은 이 같은 구체성만 더하면 훌륭한 교훈으로 거듭나 상대를 발전시키는 데 도움을 줄 수 있다. 추상성과 대비되는 구체성은 강제성과 대비되는 자발성과 같은 선 상에 있다. 구체적인 동시에 자발성을 이끌어낼 수 있을 만큼 설득력이 있어야 한다는 뜻이다.

 

가장 안타까운 대목은 많은 부모나 선배들이 전공 분야에 대해 잘못된 조언을 일삼는다는 점이다. 상대방의 입장에서 그가 잘하는 것과 좋아하는 것을 중심으로 조언을 건네도 도움이 될까 말까인 판에, 철저히 개인적인 취향과 의견에만 입각해서 충고를 늘어놓는다면 그건 일명 '삽질'일 뿐이다. 입 아프고 귀 따가운 게 문제가 아니다. 상대가 후회막급인 선택을 하도록 조장한다는 게 쟁점이다. 아무리 유망한 학과도 본인이 재미를 붙이지 못하고 갈수록 어렵게만 느낀다면 아무 소용이 없다. 해당 직종이 사회적 지위와 경제적 수준을 보장하고 진출 가능한 분야가 다양하다고 해도 본인의 행복에는 아무런 도움이 못 되는 것이다. 자기 기준에서 늘어놓는 조언 탓에 훗날 두고두고 원망만 사게 될 확률이 높다.

 

부모로서 자녀 교육 시 가장 중요시해야 하는 것도, 본인의 진로에서 반드시 선행돼야 하는 것도 재능의 발견이다. 좋아하고 잘하는 과목만이 아니라 해당 과목 중에서도 어떤 부분에서 왜 흥미를 느끼는지 자세히 들여다봐야 한다. 교사의 성향이나 가르치는 방식에 따라서도 흥미도가 달라질 수 있고 과목에 대해 다르게 인식할 수 있기 때문에, 부모나 자신이 직접 분석해 볼 필요가 있다. 구체적으로 이유를 규명하다 보면 결국 진정한 강점과 흥밋거리가 드러나고, 서로 다른 과목에서도 같은 강점이 작용해 선호 경향이 있었다는 것을 알 수 있다. 그 공통점들이 곧 그 사람의 간단하지만 분명하고 정확한 강점이 된다.

 

공통점은 교과서로 구분된 과목뿐만 아니라 지극히 사소하고 일상적인 것들에서 오히려 더 많이 발견된다. 관심만 가지고 심도 있게 들여다보면 누구나 알 수 있다. 내 경우를 예로 들어 보겠다. 먼저 즐겨 하고 잘하는, 시간 가는 줄 모르고 하는 것들을 종류 불문하고 나열한 뒤 그 안에 숨어 있는 공통적인 특성, 내가 가진 강점을 덧붙였다.

 

     마이크로소프트사가 개발한 프로그램 중, 일명 MS 프로그램 중 평소 가장 많이 이용하는 프로그램은 엑셀이다. 직업과는 무관하다. 그저 걸핏하면 표를 만들 뿐이다. 일정을 짤 때도, 보고 싶은 책 목록을 적어 둘 때도, 좋은 글귀를 모아 둘 때도, 다 엑셀이다.

     PC에 파일을 저장할 때 종류를 나누어 폴더를 만들고, 헷갈리는 일이 없도록 분명한 기준을 세워 둔다. 누가 봐도 한눈에 알 수 있도록 세세하고 일목요연하게 나눈다.

     혈액형이나 MBTI, 에니어그램처럼 사람의 성격을 유형별로 구분하고 그들이 공통적으로 보이는 성향을 찾아내는 데 흥미를 느낀다.

     서랍이나 옷장을 채울 땐 종류별로 관련된 것들끼리 묶어서 정리한다.

     육하원칙 중 '?'라는 질문을 달고 산다. 단순하고 일상적인 일에 대해서도 이유와 목적을 캐묻는다. 내 의견을 제시할 때도 마찬가지로 이유와 목적을 함께 밝힌다.

     컴퓨터나 스마트폰을 구입하면 내 취향과 편의에 맞게 세팅부터 시작한다.

  시스템 정립에 능하다.

 

시스템을 정립하기 위해서는 타당한 명분이 필요하고 일의 효율성을 중시해야 한다. 그래야 논리적이고 합리적인 기준을 바탕으로 누구나 공감하고 따를 수 있는 체계를 갖출 수 있기 때문이다. 시스템 수정을 요구하거나 그렇게 설정된 이유를 설명할 때도 명백한 근거로 뒷받침할 수 있다. 조직을 새로 구성하거나 개편할 때 분류 및 분석 능력은 필수적이다. 정확하고 일관된 기준으로 나누거나 묶는 데에는 분류가, 처음에 목표로 삼은 바가 어느 정도 달성됐는지를 조목조목 평가하고 피드백하는 데에는 분석이 강점으로 작용한다.

 

시스템 정립이란 별 게 아니다. 집에선 최대한 짧은 동선으로 일 처리가 가능하도록 가구를 배치하고 물건을 수납하는 것이다. 만족스러울 때까지 가구를 재배치하고 수납 위치를 바꾸고 또 바꾸는 건 강점을 활용하고 자극하는 일이기 때문이다. 혼자서 땀을 삐질삐질 흘려 가며 세탁기나 장롱을 옮겨도 몸은 힘들지만 기분은 한없이 좋기만 하다. 편안히 누워 쉬는 것보다 재미나고 유쾌한 일인 것이다. 다소 엉뚱한 발상을 떠올리는 성향도 재미에 한몫 단단히 한다. 욕실에서 샤워를 마치고 나오자마자 가장 먼저 필요한 건 꿉꿉한 습기를 날려 줄 선풍기와 속옷, 그리고 로션과 거울이다. 이유와 목적이 분명하다. 편의를 위해서다. 욕실을 나서면 바로 화장대로 위장한 신발장과 벽에 걸린 선풍기를 이용할 수 있도록 자리를 잡아 뒀다. 신발장 옆엔 속옷 서랍장. 거주자인 우리에게 이보다 편한 구도는 없다. 방문자에겐 낯선 풍경일 수 있다. 현관문과 욕실 문이 ''자로 거의 붙어 있어서 집 안에 들어서자마자 벽에 달린 선풍기와 화장대부터 보이기 때문이다. 방문자가 어떻게 생각하든 그로 인한 편의를 포기할 순 없다. 실제로 사용하는 당사자가 편한 게 제일이다. 다소 파격적인 발상으로 효율적인 동선을 구성해 내는 것 자체가 나에겐 즐거운 놀잇거리이자 강점에 기반한 주부로서의 살림 솜씨다.

 

일터에서의 시스템 정비로는 공유해야 하는 정보를 어떤 식으로 알릴 것인지 효율적인 방안을 모색하고 정립하는 일을 들 수 있다. 따로 지시하거나 때마다 알리지 않아도 누구나 쉽게 적응하고 파악할 수 있도록, 어떤 종류의 문서는 이메일로 보내고 어떤 종류의 정보는 메신저로 교환하자고 무언의 약속을 해 두는 것이다. 자료를 검토하는 데 필요한 시간, 이용하는 빈도, 쓰이는 기간과 공유 대상에 따라 이후에나 신입 사원이 혼란을 겪지 않도록 분명한 기준을 마련하는 일이다. 거창하게는 커리큘럼 설계자, 행정가, 컴퓨터 프로그래머, 소프트웨어 개발자, 인포그래픽 디자이너, 경영 컨설턴트 등이 강점을 발휘할 수 있는 일들이라 하겠다. 

 

약점을 따지고 있느니 그 시간에 강점을 찾고 그와 연관된 진로나 일상에서의 가사 분담을 계획하는 편이 백 배 낫다는 주의지만, 정확한 이해를 돕기 위해 첨부한다. 그저 참고만 하기 바란다. 본인의 약점을 세고 있을 필요는 없다. 한편으론 약점이지만 동시에 강점이 되기도 하기 때문에 굳이 약점으로 규정 짓는 것도 금물이다.

 

     인사는 꼬박꼬박 하면서도 인사성 멘트나 형식적인 칭찬, 상대의 비위를 맞추기 위한 빈말은 반기지도, 하지도 않는다. '잘 지내셨어요?', '헤어스타일 바꿨네', '얼굴 좋아졌네', '그 원피스 잘 어울린다' . '안녕하세요!' '잘 지내셨어요?'는 다르다. 후자는 해 본 역사가 없다.

     매사에 진심을 강조한다. 진심이 아닌 얘긴 하지 않기 때문에 상대의 말도 곧이곧대로 발아들인다.

     결과보다는 본래의 의도, 가상한 노력이 더 중요하다고 생각한다. 로또 1등에 당첨되면 2억을 주겠다는, 구체적인 액수까지 제시하고 나선 동생에게 아직 땡전 한 푼 받은 건 없지만 생각할수록 고맙고 흐뭇하다.

     감정을 있는 그대로 드러낸다. 너무 솔직해서 흠이란 소릴 들을 정도로 직설적이다.

     남들 보기에 좋은 자세, 일반적으로 생각하는 상황에 적합한 옷차림에 신경 쓰지 않는다. 트레이닝복 차림으로 백화점에 드나들고 모임에 참석해도 전혀 부끄럽거나 창피하지 않다.

     스킨십을 꺼린다.

  영업에 젬병이다.

 

영업 사원은 친근감을 더하는 인사치레가 입어 붙어야 한다. 진심이 아니어도 원만한 분위기와 상대의 기분을 고려해 입만 열면 긍정적인 멘트가 흘러나와야 한다. 다소 부정적인 얘기라도 완곡하게 표현할 수 있어야 한다. 적당한 스킨십으로 상대의 경계심을 풀 수 있어야 하고, 얼굴 표정이나 손짓 하나만으로도 상대방의 감정 상태를 읽을 수 있어야 한다. 상대에게 신뢰를 줄 수 있을 만한 옷차림, 정갈한 이미지를 위해 늘 외양을 신경 쓰고 다듬어야 한다.

 

무엇보다 진심으로 고객의 입장에서 생각하고 행동함으로써 고객의 충성도 및 잠재 고객 확보에 힘을 쏟을 게 아니라, 수치로 확인되는 당장의 영업 실적을 올리는 데 집중해야 한다. 사업이 아닌 영업에서는 그렇다. 단기간에 결과물로 드러나는 수치가 곧 그 사람의 능력으로 평가되기 때문이다. 이렇게 약점 투성인 영업직을 업으로 삼으면, 본인도 괴롭고 지칠 뿐 아니라 조직에도 해가 된다. 즐기면서 수월하게 일하는 사람보다 당연히 그 실적이 저조할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서로가 피곤하고 소모적인 돈 낭비, 시간 낭비, 에너지 낭비다.

 

선경험자로서, 인생의 선배로서 자식이나 아랫사람이 잘되기를 바란다면 이와 같이 그의 평소 모습을 면밀히 관찰하고 그로부터 공통된 강점을 이끌어 낸 다음에 조언이든 충고든 간섭을 시작해야 한다. 진정한 재능의 발견의 조언의 첫걸음이란 얘기다. 잘되기를 바란다는 건 그저 경제적, 지위적으로 성공하는 것뿐만 아니라, 강점을 발휘하며 즐겁고 행복한 일을 선택할 수 있도록 돕는 것을 뜻한다. 사업에 소질이 있어 보인다는 둥 창의적인 일이 맞을 것 같다는 둥 하는 어설픈 조언을 내뱉을 참이라면 입을 닫는 게 도와주는 일이다.

 

 

 

Posted by 몽자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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