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다른 재능 - 발견과 발현

 

영문 속담 중에 '사랑과 재채기는 감출 수 없다'는 말이 있다. 몰래 하거나 안 하려 해도 드러날 수밖에 없다는 뜻이다. 재능도 마찬가지다. 외면하려 해도 자꾸만 고개를 쳐들기 마련이다. 관심 없는 척, 안 좋아하는 척, 못하는 척하려 해도 틈만 나면 눈길이 쏠리고 자기도 모르는 사이 강점을 발휘하게 되는 것이다.

 

의류학과로 편입한 뒤 4학년 1학기를 마치고 입사할 회사를 찾아나섰다. 디자인보다는 마케팅 전반이나 브랜드 론칭 쪽 일을 하고 싶어 여기저기를 뒤지다가 디자인 참여부터 상품 소싱, 매출 관리 등 한 매장 전체를 책임지는 일이라는 광고에 M사에 선뜻 지원했다. 한 학기가 남았지만 덜컥 입사를 결정했다. 그만큼 나와 잘 맞는 회사란 생각이 들었고 기회를 놓치고 싶지 않았다. 하지만 막상 현장에 투입되고 보니 구인 광고란의 내용은 창업 초기 사주가 내건 슬로건에 불과했다. 회사가 커지면서 초기의 이념보다는 현실적인 매출액을 중시하는 쪽으로 변모해 버린 뒤였다. 내 업무의 90%는 보통의 숍마스터와 크게 다르지 않은 일이었다. 한마디로 그냥 판매원이었다.

 

입사한 지 50여 일이 지났다. 옳은 선택이었는지를 긴가민가하던 찰나, 연초 워크샵이 있었다. 거기서 처음 MBTI라는 심리 유형 지표를 접했다. 전문가의 안내에 따라 직원 전원이 검사에 응했고, 16가지 중 내가 어떤 유형에 속하는지도 알 수 있었다. 뜻밖의 소득이었다. 분류와 분석을 좋아하는 나에게 세계적으로 인정 받고 있는 심리 유형 분석 프로그램은 흥미를 끌기에 충분했다. 그로부터 10년이 지난 지금까지도 MBTI는 내 몇 안되는 관심사 중 하나다. 그 회사, 그 사주에게 감사할 따름이다. 그때의 워크샵, 사주가 기획한 그 시간이 없었다면 MBTI 같은 보물을 접하지 못했을지 모른다. 하늘이 내린 기회였다.

 

MBTI에 대한 관심은 심리학으로 이어졌다. 심리학이 무엇을 연구하는 학문인지, 연구의 목적은 무엇인지, 어떻게 생겨난 학문인지조차 모르던 내가 난생 처음 심리학 입문서에서 에세이 형식의 일반 서적까지 닥치는 대로 들춰 보기 시작했다. 알수록 재미난 녀석이었다. 왜 내가 심리학과 MBTI에 관심을 갖는지는 뒤늦게 깨달을 수 있었다. 내가 주창하는 7가지가 있다. 다양성, 도리, 진리, 진실, 진심, 초심, 휴머니즘. 궁극적으로는 인간의 행복이다. 심리학 중에서도 긍정심리학과 MBTI, 둘의 목적과 일치한다. 인문학에 문외한이었던 내가, 인문학은 나랑은 상관없는 학문이라고 생각했던 내가, 진정으로 재미를 붙이고 한없이 빠져들 수밖에 없었던 이유가 여기에 있었다.

 

심리학과 MBTI에 대한 관심은 점차 철학으로 번지기 시작했다. 나와 같은 유형의 유명인 중에 철학자가 많아서이기도 했고, MBTI가 정신분석학자인 동시에 사상가로 알려진 칼 융의 이론을 발전시킨 지표라는 사실 때문이기도 했다. 다양한 철학자 및 사상가의 이론을 접하면서 결국 지금의 결론을 얻을 수 있었다. 몇 가지 이론, 사상, 주의에 공감하고, 그 이론을 바탕으로 나만의 또 다른 이론을 정립하는 것이 진정으로 내가 좋아하고 잘할 수 있는 일임을 깨달은 것이다. 철학이라는 전문 분야에 입문해서 그 분야에서 이름을 떨치거나 공식적인 학위를 따는 데 목적이 있는 게 아니라, 그저 철학적으로 사고하면서 어떻게 하면 모든 인간이 행복하게 살 수 있는지를 연구, 전파하는 과정 자체를 즐기고자 하는 것이다. MBTI에 대해서도 자체적으로 분석에 분석을 거듭함으로써 사람들의 행복에 실질적인 도움을 줄 수 있는 방법을 모색 중이다.

 

철학이나 심리학은 내 전공과도 무관하고 지금껏 호기심조차 갖지 않았던 분야다. 그런데 뜻밖의 계기를 통해 내가 잘할 수 있고 아무리 파고들어도 질리지 않는, 알면 알수록 더 알고 싶고 발전시키고 싶은 일이란 걸 알게 됐다. 일반적으로 진로 방향을 결정하는 시기는 대학 및 학과를 결정할 때다. 그렇게 보면 나는 그로부터 15년이 지난 지금에서야 내 강점과 관심사를 발견한 셈이다. 먼 길을 돌아왔다고 생각하면 15년이란 시간이 아까울 수 있지만, 난 오히려 잘된 일이란 생각이다. 인테리어와 패션에 대한 아쉬움을 뒤로 한 채 곧바로 고등학교에서 심리학이나 철학과를 선택해 진학했다면, 지금처럼 이 분야를 천직으로 소중하게 여기지는 않았을지 모른다. 사상을 공부하다가 패션에 뛰어들어 몇 년을 방황하고 나서야 다시 제자리로 돌아오는, 더 큰 시간과 에너지를 소모했을 수 있다. 백 세 시대다. 앞으로도 사상을 연구하고 행복을 추구할 시간은 얼마든지 있다. 65년이나 남았다. 이제 시작이다.

 

무엇보다 감사하고 놀라운 건 15년이란 시간이 걸리긴 했지만 내 강점과 관심사를 결국 깨닫게 됐다는 사실이다. 그것도 뜻밖의 계기를 통해서! 의류 회사에서 MBTI를 접하고 마침내 심리학에 이어 철학을 알게 됐다? 참 연관성 없어 보이는 수순이다. 이는 내 안에 꿈틀거리던 타고난 재능이 기회를 만나자 봇물 터지듯 발현됐기 때문에 가능한 일이었다. 의도하거나 의식하지 않아도 숨길 수 없는 강점이 자연스레 불거진 것이다. 그리고 이를 순순히 받아들이고 타고난 재능과 세상의 이치를 가벼이 넘기지 않았기에 드러난 효과다.

 

재능은 스스로나 주변 사람에 의해 발견되고 계발될 수 있다. 동시에 애써 찾지 않아도 적당한 기회가 주어지면 자동적으로 고개를 쳐들기 마련이다. 타고난 재능이란 다른 사람은 후천적으로 아무리 노력해도 닿을 수 없는 수준의 것이다. 그 재능이 요긴한 일을 업으로 삼는 것만큼 행복한 일은 없다. 주변에서 재능을 발견해 줄 사람이 없어도, 스스로 머리를 굴려 봐도 잘하는 게 무엇인지 도무지 알 길이 없어도, 아무리 생각해도 잘하거나 좋아하는 일이 없는 것 같아도, 절대 실망하거나 좌절할 필요가 없다. 아직 발견하지 못했을 뿐이지 강점이나 관심사가 없는 사람은 없다. 그리고 언젠가는 제발 자기 좀 봐 달라며 강점이 아우성을 치고 나설 것이다. 그 순간 소중한 재능을 외면하거나 억누르지만 않으면 강점에 기반한 행복한 삶을 사는 건 시간 문제다.

 

한 가지 주의해야 할 점이 있다. 바라는 바와 진정한 강점을 착각해선 안 된다는 것이다. 예를 들어 '끊임없이 지식과 정보를 추구하고 섭렵하는 데 재미를 느끼는 사람''지식과 상식이 해박하다고 보여지기를 바라는 사람'이 있다. 후자는 자칫 자신이 전자인 양 착각하거나 남들로부터 전자라는 평을 듣기 위해 가장할 수 있다. 본인이 원하는 강점을 타고난 강점으로 오해하는 경우다. 강점은 더 나은 강점, 더 높은 수준의 강점이라는 게 없다. 모든 강점이 훌륭하고 독보적이다. 타고난 재능을 무시한 채 욕심나는 재능을 내세우면 행복과는 점점 더 거리가 멀어진다. 본인만 피곤할 뿐이다. 소중한 재능을 발휘할 기회도, 발휘하면서 얻는 쾌감을 맛볼 기회도 사라진다. 강점을 찾는 이유는 무엇보다 행복한 삶을 살고자 하는 데 있다. 가장된 강점은 재능 발견의 의의를 퇴색시킬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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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엇박 몽자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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