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다른 콤비 - 두 개의 구슬 - 중심

 

기념일에 목매는 연인들이 있다. 100, 300, 처음 만난 날 등 온갖 구실로 이벤트와 선물을 주고받는다. 여기에 생일, 크리스마스, 밸런타인데이까지 합치면 한 달에 한 번 꼴로 행사를 치뤄야 한다. 물론 양쪽 모두 기념일을 챙기는 재미에 푹 빠져 있다면 아무런 문제가 없다. 좋아하는 일을 함께 즐길 수 있으니 더 바랄 게 없다. 계속해서 같은 재미를 만끽하며 좋은 관계를 유지하면 만사형통이다.

 

문제는 상대의 환심을 사기 위해서 일시적으로, 혹은 비위를 맞추기 위해서 억지로 이벤트와 선물을 준비할 때다. 이런 경우에는 차라리 안 하느니만 못하다. 상대의 착각을 불러일으킬 수 있기 때문이다. 원래 기념일을 잘 챙기는 사람, 기념일마다 많은 걸 준비하는 사람으로 착각하게 만들어서 좋을 건 없다. 헛된 기대를 심어 주면, 이후 괜한 원성만 듣게 된다. 처음부터 상대를 정확하게 파악하고 본인에 대해 솔직하게 밝히는 게 최선이다.

 

우린 둘 다 기념일에 둔하다. 특별한 이벤트 없이 무난하게 보내는 하루하루를 좋아해서가 아니라, 매일매일을 특별하게 보내기 때문에 굳이 기념일을 챙길 필요가 없는 것이다. 거창한 이벤트나 그럴 듯한 선물을 즐기진 않는다. 가진 것도 없는 녀석들이 그런 돈이 있을 리 없다. 지금까지 선물다운 선물을 해 본 적이 단 한 번도 없다. 둘 다 마찬가지다. 우리 부부의 중심은 그와 나, 두 사람이다. 명품백, 해외여행권, 타워팰리스보다 당연히 서로가 더 중요하다. 명품백을 안겨야 기뻐 날뛰며 뽀뽀하는 게 아니라, 하는 짓이 예뻐서 아무 때나 뽀뽀를 퍼붓는다.

 

'시트콤'이 모토이기 때문에 작은 것 하나도 선물이라며 들이밀고, 동거 중에 친구에서 연인이 되었기 때문에 일상적인 것들을 이벤트로 여긴다. 나는 과자, 우유, , 신발, 스프레이형 파스처럼 아내로서 마땅히 준비해야 하는 것들을 선물이랍시고 그에게 건넨다. 그는 또 그걸 받고 시계나 지갑을 받은 사람처럼 좋아라 한다. 그는 퇴근길 편의점에 들러서 사 온 햄버거, 덤으로 주는 음료수, 일터에서 팔고 남은 버리기엔 아까운 김밥 등을 예고 없이 선물한다. 때로는 초등학생 커플처럼, 때로는 80대 노인 커플처럼 시추에이션코미디를 즐긴다.

 

기분이 엉망인데도 크리스마스나 결혼기념일이란 이유로 데이트를 고집하고 외출을 요구하는 사람들이 있다. 초점을 두 사람에게 맞추지 않고 누군가가 정해 놓은 날에 맞추는 것이다. 이보다 수동적인 태도도 없다. 부부의 삶, 연인과의 관계에서 가장 중심이 되어야 하는 건 다름 아닌 두 사람이다. 둘의 컨디션, 기분, 스케줄 등을 최우선으로 고려해야 한다. 상대방이 본인의 상태를 숨기지 않고 털어놓을 수 있도록, 평소 강요와 불평을 최대한 피해야 한다. 즐겁게 보내야 할 날에 양쪽 다 기분을 망치고 싶지 않다면 명심해야 할 문제다.

 

결혼기념일은 으레 여자가 선물을 받는 날로 굳어졌다. 서로 주고받는 경우도 있지만, 남자만 받는 경우는 드물다. 어떻게 굳어진 통념인지, 그날 하루 대접 받고 나머지 364일을 봉사하겠다는 뜻은 아닌지, 심히 의심스럽다. 혼자만 선물을 받고 있다면, 혹은 본인만큼은 꼭 선물을 받아야 한다는 주의라면, 어떤 의미에서 선물을 원하는 건지 한 번쯤 이유를 생각해 볼 필요가 있다. 아직 우린 결혼기념일에 선물을 주고받아야 할 이유를 찾지 못했다. 이해할 수 없는 방식을 남들이 보통 그렇게 하기 때문에 따를 필요는 없다. 선물에 들이는 시간과 비용이 낭비라고 생각하는 우리는 결혼기념일에도 평소처럼, 또는 조금은 특별한 메뉴를 추가해서, 술 한잔에 고맙단 인사를 나누는 게 전부다. 어느 한쪽이 희생하거나 손해 보는 사이가 아니라 둘 다 충분히 만족스러운 결혼 생활을 하고 있기 때문에, 서로가 서로에게 새삼 고마운 마음을 전하는 게 제일 중요하다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Posted by 몽자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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