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다른 생각 - 모야모야 6

 

격한 감정과 과한 노동은 모야모야 환자가 경계해야 할 대상이다. 하지만 나는 극단적인 것에서 얻는 쾌감을 포기하지 않기로 했다. 인체에 잠식하는 병이란 녀석이 얼마나 유기적이고 섬세한지를 알기 때문이다.

 

나만의 취미는 막걸리 마시며 영화 보기. 맥주와 비슷한 알코올 도수에 안주가 필요 없어 즐겨 마시는 주류다. 얼마 전에도 막걸리를 홀짝이며 <파파로티>를 봤다. 영화는 기대 이상이었다. 막걸리까지 들어갔겠다, 밀려드는 감정을 주체 못하고 눈물을 한 바가지 쏟으며 펑펑 울어 댔다. 신기하게도 감동적인 이야기를 접하거나 기뻐서 흘리는 눈물에는 팔다리가 고장 나지 않는다. 눈물 한두 방울 훔치는 정도를 넘어, 감동적이어서 쏟는 눈물이라고 볼 수 없을 만큼 꺼이꺼이 울어 대도 마찬가지다. 모야모야란 녀석은 단순하고 정확한 기계처럼 수치로 다룰 수 있는 놈이 아니다. 규정할 수 없는 복잡다단한 감정 상태를 반영한다. 내가 훈훈한 이야기를 마음껏 즐기며 울고 웃을 수 있는 건 모야모야의 예리함 덕분이다.

 

의류 매장 매니저로 있을 때의 일이다. 40대 후반으로 보이는 한 남자가 들어서더니 다짜고짜 환불을 요구하기 시작했다. 20~30대 여성복을 취급하는 매장에서 중년 남성을 상대할 일은 많지 않다. 딸을 대신해 왔다는 그. 심상치 않은 분위기를 직감하고 매장의 책임자로서 직접 문제 해결에 나섰다. 소비자보호법상의 환불 조건과 회사 내 자체 규정을 들어 여러 차례 설명을 거듭했지만, 환불 받기 전에는 한 발짝도 움직이지 않겠다며 엄포를 놓았다. 막무가내로 언성을 높이는 바람에 다른 고객들까지 당황하는 등 아수라장이 따로 없었다. 다른 고객을 생각해서라도 어떻게든 그를 돌려보내야 했다. 옳고 그름을 차치하고 서둘러 상황을 마무리 지었다.

 

이후 애써 억누르던 분노가 폭발했다. 카드 결제 후 현금 환불은 카드깡에 해당하는 엄연한 불법 행위다. 착용한 옷은 환불 제외 대상이다. 구입 후 매장에서 입고 나간 옷은 당연히 환불이 안 된다. 상품에 이상이 있지 않은 한 환불 가능 기간은 2주 이내다. 환불 시 영수증 지참은 기본이다. 그의 요구는 어느 모로 보나 부당했다. 하지만 그에겐 강력한 무기가 있었다. 고객이라는 갑의 위치. 아무리 규정과 논리를 동원해도 을인 나는 최대한 갑의 요구에 응할 수밖에 없다. 정작 큰소리칠 사람은 난데 을이란 이유로 꼼짝없이 당하고만 있어야 한다는 게 생각할수록 분했다. 우는 아이 젖 준다고 하지만, 해도 너무한다 싶었다.

 

계속해서 고객을 상대해야 했기 때문에 냉정을 되찾으려고 노력했지만, 주문 사항을 적다가 그만 펜을 떨어뜨리고 말았다. 손이 말을 듣지 않았다. 북받치는 감정은 아무리 억누르려고 해도 표현 여부와 상관없이 모야모야를 자극한다. 대개 그 감정이 부정적일 때 더 큰 위기를 맞는다. 물론 내 성격 탓이다. 솔직히 말하면, 그때 당시 매장 밖에서 제대로 한판 붙어 보고 싶었다. 상황을 어물어물 덮어 버리지 못하고 원칙 운운하며 옳고 그름을 가리는 태도, 옳은 것이 곧 좋은 것이라는 생각, 감정을 앞세우는 사람들에 대한 몰이해 등이 주체할 수 없는 분노를 일으키곤 한다.

 

모야모야 때문에 내 행동을 바꿀 순 있어도 생각을 뜯어고칠 순 없다. 애써 눈물을 참을 수는 있어도 감정이 이는 건 막을 수가 없다. 분명한 건 격한 감정이라고 해도 긍정적일 때와 부정적일 때 모야모야가 일으키는 반응이 극도로 달라진다는 것이다. 다행히 일을 그만둔 이후로는 부정적인 감정에 휩싸이는 일이 거의 없다. 돌이켜 보면, 일 자체에서 만족감을 얻지 못했기 때문에 사소한 일에 신경을 곤두세우고 분에 못 이기는 일이 잦았던 것이다. 진정으로 내가 바라는 삶의 방식을 택한 지금, 웬만한 일에는 얼굴을 붉히지 않는다. 감정이 부정적으로 치닫지 않는다. 만족도 높은 일상 덕분에 심리적인 여유가 생겼고, 모야모야에도 불구하고 감정을 만끽하고 있다.

 

 

 

Posted by 몽자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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