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다른 생각 - 모야모야 - 놈의 선물

 

충분할 거라고 생각했던 1년이란 시간은 제법 쏜살같이 지나갔다. 그해 6월경, 남은 시간 함께할 수 있는 무언가를 찾다가 직업전문학교에서 무료로 수강이 가능하다는 걸 알았다. 웹디자인을 선택했다. 사실 어떤 수업이든 상관없었다. 아침저녁으로 40분씩을 함께 걸어 다니면서 점심 시간에는 싸 간 도시락을 먹거나 외식을 즐기거나, 근처 공원에서 베드민턴을 쳤다. 수업 시간 컴퓨터 책상에 나란히 앉아 서로가 놓친 걸 베끼는 재미도 쏠쏠했다. 말 잘 듣는 초등학생처럼 똘망똘망하게 수업을 듣는 날이 있는가 하면, 대학생처럼 땡땡이를 치거나 기력이 다한 노부부처럼 공원을 어슬렁거리는 날도 있었다.

 

백수 부부의 길로 들어서기로 한 건 지금 생각해도 꽤 훌륭한 결정이었다. 가장 큰 소득은 경험으로 알게 된 한 가지 사실이다. 둘이서 손잡고 공원을 걷기만 해도 행복하다는 것. 이후 우리의 꿈은 분명해졌다. 다정한 친구이자 연인으로, 늘그막까지 지금처럼 시트콤 같은 인생을 사는 것이다. 백발을 휘날리며 스쿠터를 타고 동네를 누비는 철없는 노부부. 생각만 해도 유쾌하다.

 

'시트콤 부부'라는 별칭도 이때 붙였다. 남들이 말하는 성공에 집착해 사소한 것도 웃어넘기지 못하고 필요 이상으로 진지했던 내가 진정으로 나 자신이 원하는 삶에 대해 다시 생각해 보니 시트콤 장면과 딱 맞아떨어졌다. 인간적이고 훈훈하면서도 기발하고 재치 넘치는 일상. 한마디로 재미와 감동이 뒤섞인 삶이다. 하늘이 무너진 것처럼 좌절했다가도 생뚱맞은 장난에 배꼽 잡고 자지러지는 주책바가지처럼, 돈 안 되는 일에 머리 싸매고 혼신의 힘을 기울이는 엉뚱한 자칭 아티스트처럼, 현실에서는 둘째가라면 서러운 답답이로 통하지만 시트콤에서는 그 누구보다 재미와 감동을 더하는 캐릭터다. 그와 내가 동반 백수이던 2008, 우린 앞으로를 시트콤처럼 살기로 확실히 노선을 정했다. 시트콤 부부, 시트콤 인생이야말로 우리의 본모습이자 진정한 꿈이란 걸 깨달았기 때문이다.

 

우리는 분명 행복하지만, 남들 보기에 너무 대책 없는 망나니 같아 보이진 않을까 하는 생각이 전혀 없진 않았다. 우린 평범한 사람들이지 정신 나간 사람들이 아니다. 다른 부부들과 전혀 다른 생활 방식을 자랑 삼아 떠벌릴 만큼, 우리의 가치관이 절대적으로 옳다고 믿지 않는다. 남들이 말하는 이상적인 부부상도, 우리 부부의 모습도, 다르다 뿐이지 여러 가지 삶의 방식 중 하나라고 생각한다. 기본적으로 모두가 본인에게 맞는 방식을 취할 수 있어야 한다는 것이다.

 

그저 술 마시며 이야기하는 게 즐거워서 자주 갖곤 했던 술자리. 거기에 취미란 타이틀을 걸면서 한 단계 업그레이드된 것처럼, 시트콤 부부라는 별칭 역시 효과가 있었다. 시트콤은 우리 부부의 가치관을 상징적으로 드러내는 타이틀로서, 행복이란 목적을 이루기 위해 과정을 어떻게 꾸려야 하는지 그 방향을 제시해 주었다. 덕분에 우리는 분명한 목적과 더불어 스스로 뚜렷한 주관을 갖게 되었고, 세상의 눈을 의식하지 않고 우리만의 행복을 거침없이, 그리고 당당하게 추구할 수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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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몽자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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