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부란 무엇인간 - 김영민


10쪽
한국은 일찍부터 입시에 정열을 바친다는 점에서 교육열이 강한 나라이지만, 진정 무엇을 어떻게 공부해야 하는지에 대해서는 묻지 않는다는 점에서 교육에 냉담한 나라이기도 하다. 

10쪽
사람들이 입시와 부동산에 초미의 관심을 보이는 것은 그것들이 계층 이동과 직결되어 있기 때문이다. ...... 이제 이 땅에서 교육과 부동산 투자는 계층 간의 이동을 촉진하기보다는 계층을 고착화한다. 

41쪽
세상에 대한 경험적인 지식이 쌓일수록, 세상은 모순이나 긴장이나 혼란으로 점철되어 있다는 인식에 이르게 된다. 완벽하게 흠결이 없는 혁명가, 오직 탐욕으로만 이루어진 자본가, 오직 순박함으로만 이루어진 농민 같은 것은 존재하지 않는다. 오히려 현실은, 도덕적이고 싶었지만 결국 그러지 못했던 혁명가, 너무 게을러서 탐욕스러워지는 데 실패한 자본가, 섣불리 귀농했다가 야반도주하는 사람들로 가득 차 있다. 세상을 자기 희망대로 단순화하지 않았을 때에야 비로소 그전까지는 보이지 않던 문제들이 눈에 보이기 시작한다. ...... 공부하는 이가 할 일은, 이 모순된 현실을 모순이 없는 것처럼 단순화하는 것이 아니라 복잡한 모순을 직시하면서 모순 없는 문장을 구사하는 것이다. 

54쪽

차라리 특정 단어를 집요하게 기피하는 사람이 그 단어 뜻을 더 잘 알 수도 있다. ...... 말뜻을 판별하는 일은 한 줄 문장을 쓰는 일을 넘어서, 큰 사회적인 함의가 있다. '다르다'와 '틀리다'를 구분할 줄 모르면서, 다양성이 넘치는 혹은 정의가 구현되는 사회를 이룰 수 있을까. 다른 의견을 모두 틀린 의견으로 몰아세울 텐데? 혹은, 틀린 의견을 다른 의견이라고 변명할 텐데? 지능(IQ), 영리함, 지혜, 슬기, 지성 등을 구분할 줄 모르면서, 바람직한 인재를 양성할 수 있을까? 대학 입시에 성공했다고 스스로를 지성인이라고 착각하거나, 정의로운 사람이라고 믿거나, 현자라고 자처하는 사태가 일어날 텐데?

91쪽
외국어는 단지 여행 도구나 취직 기술에 그치는 것이 아니다. 모국어로만 이루어진 세계와는 현격히 다른 의미 세계에 접속하는 열쇠다. 외국어를 배워보아야, 자기가 구사하는 언어만큼 생각한다는 말을 실감하게 된다. 

175쪽
상식은 생각보다 힘이 세다. 어떤 사람들은 어떤 것이 그저 익숙하기에 그것이 옳다고 생각한다. 당신이 경험적 지식과 논리적 훈련과 날렵한 상상력으로 단단히 무장하지 않은 한, 당신이 상식을 쓰러뜨리기 전에, 상식이 당신을 패대기칠 것이다. 

192쪽
그런 경우에조차 자신의 프로젝트가 기존 학술 담론과 '관계'가 없지는 않다. '전복'도 관계의 한 양상이다.

203쪽
욕망이 부재해서가 아니라 존재하는 욕망을 적절히 통제하고 있는 데서 느껴지는 에너지. 화려한 수사를 구사할 능력이 없어서 간신히 써낸 건조한 문장이 아니라 충분히 화려한 수사를 구사할 수 있는데도 논술문이라는 성격 때문에 자제하며 써낸 문장이 발산하는 매력이라는 것이 있다. 미칠 능력이 없어 그저 건전한 생활을 영위하고 있는 사람이나, 미치는 게 속 편해서 늘 미친 상태에 있는 사람은 다가갈 수 없는, 얼마든지 미칠 수 있는데도 미치지 않고 생활하는 이의 존재감이라는 것이 있다. 수사학적으로 얼마든지 미쳐나갈 수 있는 이가 애써 담담한 문장을 쓸 때의 포스는, 욕망을 충분히 아는 이의 절제가 빚어내는 치명적인 분위기와 닮았다. 

209쪽
제대로 된 비판이라면, 그것은 자신을 경멸하는 것이 아니라 자신을 존중하는 마음의 표현임을 잊지 말아야 한다. ...... 상대를 무시하는 가장 흔한 방법은 져주거나 침묵하는 것이다. 상대를 존중하는 사람만이 비판한다. 

210쪽
그러나 자신의 주장 자체보다도 주장에 대한 비판에 대처하는 자세야말로 자신이 용렬한지 그렇지 않은지를 만천하에 드러낼 기회다. 결함으로 인해 삶이 아름다워지는 것은 그 결함을 인정할 때뿐이다. 

218쪽
견해를 갖지 않으면 맞지도 않겠지만, 틀리지도 않는다는 점에서 발전의 여지가 없다.

219쪽
"아니, 한국 사람치고 BTS 싫어하는 사람이 어디 있어!" ...... 한 개인에 불과한 자신의 취향을 타인에게 강요하기가 버겁자, 한국 사람의 공통된 특징이라는 단계를 거쳐서 상대에게 자신의 취향을 강요하고 있는 것이다.

225쪽
누군가 한 사람이 너무 오래 일방적으로 말해서 토론이 망하는 경우도 있다. 말하는 것 자체에 중독된 나머지, 영원토록 말하는 능력을 가지게 된 사람들이 있기 때문이다. 그들이 말을 하지 않는 때는, 말하기 위한 에너지를 보충할 때뿐, 그 외의 시간에는 대체로 말을 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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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몽자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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