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토록 친밀한 배신자 - 마사 스타우트


51쪽
언뜻 보면 양심은 비합리적이거나 심지어 자기파괴적인 결정을 내리도록 할 수도 있다. ...... 이런 일이 가능한 이유는 아주 깊은 애정이 그 바탕에 존재하기 때문이다. 그래서 양심에 따른 선택을 하면 우리는 행복감을 느낀다. 뿐만 아니라 그런 행동을 보거나 듣는 것만으로도 우리는 행복해진다. 


63쪽
양심은 행동 규칙과 조직의 기대보다 사람 또는 동물을 더 우위에 둔다. 강력한 감정에 힘을 얻은 양심은 우리를 단단히 결합하는 접착제처럼, 정의롭기보다는 끈끈하다. 양심은 법보다는 휴머니즘적인 이상을 더욱 소중히 여기고, 상황에 따라서는 교도소에 가는 위험조차도 받아들인다. 초자아라면 절대 있을 수 없는 일이다. 

87쪽
소시오패스들은 게임을 훨씬 더 선호한다. 승리의 대가는 공짜 점심부터 세계 지배에 이르기까지 굉장히 다양하다. 그러나 사람들을 조종하고 깜짝 놀라게 만들어야 '승리'한다는 점에서는 늘 똑같은 유형의 게임이다. 애착과 양심이 존재하지 않는다면 인간관계에서 유일하게 의미 있는 일이라고는 분명 이런 식의 승리밖에 없다. 

89쪽
아무튼 양심 없는 사람들은 자신의 삶의 방식이 보통 사람의 방식보다 우월하다고 믿는 경향이 있다. 그리고 다른 사람들은 세상을 모르는 멍청이에, 우스꽝스런 도덕관념만 있다고 말한다. 또 이익이 될 게 틀림없는데도 왜 사람들이 타인을 조종하는 방식을 절대 선택하지 않으려 하는지 그 이유를 모르겠다고 말하기도 한다. 혹은 다른 사람도 전부 자신처럼 부도덕하긴 매한가지지만 공허한 '양심'을 따른다며 솔직하게 행동하지 않는 거라는 가설을 말하기도 한다.이 가설에 바탕을 둔다면 세상에서 유일하게 솔직하고 정직한 한 사람은 그들 자신밖에 없다. 그들이야말로 가짜들의 사회에 존재하는 '진짜'인 셈이다. 

90쪽
소시오패스는 사람을 상대로 게임을 벌이고 싶어 하며, 무생물의 도전에는 별다른 관심을 보이지 않는다. 심지어 세계무역센터를 파괴하기 위한 공격의 주요 목표도 그 건물 안에 있던 사람들과 그 재앙을 보고 듣게 될 사람들이었다. 

96쪽
거대한 공포가 그런 것처럼, 신체적인 고통은 늘 깨어 있는 양심을 영웅적인 수준으로 끌어올리기도 한다. ...... 그만큼 신체적인 고통을 무릅쓰고 양심을 따르기가 쉽지 않기 때문이다. 즉, 우리는 이미 양심의 목소리가 신체적 고통이나 공포에 파묻히는 일이 흔하다는 사실을 암묵적으로 인정한다는 말이다. 

110쪽
밀그램은 권위가 양심을 잠재울 수 있다고 믿었으며, 그것을 가능하게 만드는 주된 이유는 복종적인 사람들이 자신의 행동인 건 맞지만 그 행동을 책임질 주체는 자신이 아니라고 생각하는 '사고 조정'을 하기 때문이라고 설명했다. 그 사람들은 자기 자신에 대해 더 이상 도덕적으로 책임 있게 행동해야 할 사람이 아니라 모든 책임과 판단을 감당하는 외부 권위의 대리인일 뿐이라고 생각한다. 이런 '사고 조정'이 선량한 지도자가 보다 쉽게 질서와 통제를 구축할 수 있도록 도운 때도 있었지만, 반대로 이기적이고 악의에 찬 소시오패스 성향의 '권위'를 찬양한 경우도 수없이 많았다. 

112쪽
뿐만 아니라 텔레비전은 그 사람이 마치 우리 집 거실에 있는 것처럼 가깝고 친밀하게 느껴지도록 한다. 만약 명령을 내리는 사람이 이렇게 가까이 있으면 우리의 양심은 더욱 휘둘릴 수밖에 없다. 근접성은 권위의 힘이 개인의 양심을 압도하도록 도와주기 때문이다. 

115쪽
전쟁을 부르짖는 지도자들은 언제나 전쟁이 절대적으로 필요한 사명이며 살인을 정당화하는 고귀한 소명임을 강조하는 연설을 해 댔다. 전쟁과 살인을 부추기는 연설임에도 역설적으로 사람들은 아주 쉽게 권력자의 말을 받아들였다. 양심적인 사람들에게는 고귀한 소명과 정의로운 집단의 일원이라는 의식이 중요했기 때문이다. 

117쪽
스탠리 밀그램은 10명 중에서 6명이 비참한 결말을 맞이할 때까지 같은 공간에 함께 있는 공식적인 권위자에게 복종하는 경향이 있음을 보여 주었다. 또한 파괴적인 권위자에게 복종하지 않은 사람들조차도 심리적으로 고통을 겪는다는 점도 지적하였다. 복종하지 않은 사람들은 스스로 사회 질서에 순응하지 않았다고 생각하는 경우가 많으며, 자신이 충실하게 따라야 할 사람 또는 해야 하는 일에 최선을 다하지 못했다는 생각에 괴로움을 느끼기도 한다. 

129쪽
그런데 다른 사람의 '소유물' 중에서 물건이 아닌 미모, 지성, 성공, 강한 개성 등은 훔칠 수가 없다. 그렇기 때문에 탐욕적인 소시오패스는 다른 사람의 부러운 자질을 훼손하거나 망가뜨려서 더 이상 그 자질을 갖지 못하게 하거나 최소한 전만큼 누리지는 못하게 하는 데서 만족감을 느낀다. 이에 대해 밀런은 "이런 상황에서 그들의 즐거움은 소유하는 데 있다기보다 빼앗는 데 있다"고 했다. 

149쪽
수많은 피해자들은 물론 소시오패스의 진단 기준을 만들려 했던 연구자들은 한목소리로 양심이 없는 사람들이 강렬한 매력과 이해하기 어려울 정도의 카리스마를 가졌다고 말한다. ...... 위험에 대한 우리의 가벼운 호감은 소시오패스의 동물적인 카리스마를 더욱 강렬하게 보이도록 만든다. ...... 가장 두드러지는 것 중 하나는 위험한 상황과 선택을 좋아하며 다른 사람이 함께 그 위험을 감수하도록 꼬드긴다는 점이다. ...... 이렇게 사소한 위험만 즐기는 우리에게 항상 위험을 즐기는 소시오패스의 모습은 더더욱 매력적으로 보인다. 처음에는 일상의 테두리를 벗어난 선택을 하는 사람과 만난다거나 위험한 계획에 동참하는 일이 흥미진진할 수 있다. 

155쪽
교회 집사나 시의원, 고등학교 교장, 아니면 스킵같이 뛰어난 사업가의 행동을 꼼꼼하게 따져 보는 사람은 별로 없다. 우리는 그 사람과 그 사람이 맡은 역할을 동일하게 여기기 때문에 그런 사람들이 하는 말을 믿는 것이다. 마찬가지로 이웃집 아이가 부모에게 학대받고 있을까 봐 걱정스러울 때조차도 그 이웃의 교육 방식을 문제 삼지 않는다. 우리의 판단보다는 그 사람이 부모라는 사실이 더욱 중요하다. ...... 예를 들면 동물애호가라고 자처하는 사람이 실제로도 그럴지 의심하는 사람은 별로 없다. ...... 그런 자격을 가진 사람들에 대한 존중은 보통 건설적인 의미를 지니지만, 때로는 소시오패스들이 그런 자격이 있는 척할 수 있는 기회가 되기도 한다.

166쪽
그 용감한 소녀는 누군가의 '정말로 비열한' 행동에 대해 "앗!" 하고 반응했지만 서른 살이 된 그녀의 행동과 마음에서는 풍파를 일으키는 그 반응이 아예 삭제되어 있을지도 모른다. ...... 교육자인 린 미켈 브라운은 청소년기 여성에 관한 자신의 연구에 근거해서 이상적이라고 여겨지는 여성성이, 위험하게도, '거리낌 없는 말보다는 침묵'을 옹호할 수 있다고 주장한다. ...... 대놓고 하든 소극적인 거부를 통하든 당신이 딸 아이에게 자신의 분노를 무시해야 하며, 자신이나 다른 사람들을 지키지 못할 정도로 고분고분하고 친절해야 하며, 어떤 경우에도 풍파를 일으키면 안 된다고 가르친다면 당신은 딸의 친사회적 감각을 강화하기는커녕 오히려 망가뜨리고 있는 것이다. 그렇게 하면 딸은 가장 먼저 자기 자신을 지키는 일부터 포기하고 말 것이다. ...... 따라서 그렇게 가르치는 대신 우리는 린 미켈 브라운이 말한 것처럼 '가장 억압적인 환경에서도 창의적으로 거부하고 저항할 수 있는 가능성'을 제시해야 한다. 아이가 자신의 현실 감각을 의심하도록 만들지 말라. 정말로 비열한 누군가를 아이가 정말 비열한 사람이라고 보았다면 아이의 생각이 맞다고, 큰 소리로 그렇게 말해도 괜찮다고 얘기해줘라. 

220쪽
나는 그 문화의 지배적인 신념 체계가 소시오패스들이 감정적으로 결핍된 부분을 인지적으로 보완하도록 했을 거라고 생각한다. 개인주의와 개인적인 통제를 극도로 강조하는 서구 문화와 달리 동아시아의 많은 문화는 종교적 철학적으로 모든 생물의 상호연관성을 강조한다. 흥미롭게도 이 가치는 양심의 기반이기도 한다. 양심을 상호유대감을 바탕으로 하는 의무감이기 때문이다. 만약 어떤 사람이 상대와의 유대감을 느끼지 못하거나 혹은 신경학적으로 그럴 수 없다면 유대감을 중요하게 여기는 문화에서는 사람들 사이에 지켜야 할 의무를 머리로 이해할 수 있도록 가르쳐 줄 것이다.

249쪽
양심이 없는 그들은 감정을 우리와 완전히 다른 방식으로 경험하며, 사랑은 물론 인간에 대한 그 어떤 종류의 긍정적인 애착도 경험하지 못한다. 가늠하기조차 어려운 이런 결핍은 결국 다른 사람을 지배하려는 끝없는 게임으로 전락시킨다. 때로는 한나의 아버지처럼 폭력적인 소시오패스도 있다. 하지만 많은 경우 그들은 사업, 전문직, 정부에 침투하거나 혹은 루크처럼 기생적인 관계로 한 번에 한 사람만 착취하는 방식으로 다른 사람에게 '승리'하기를 선호한다. 

254쪽
난 두려움을 존경이라고 착각하고 싶지 않다. 그렇게 하면 나는 확실히 피해자가 되고 말기 때문이다. 포식자에게 굴복하는 우리의 동물적 성향을 이겨낼 수 있도록 우리의 거대한 두뇌를 이용해보자. 그러면 불안과 두려움에 반응해서 생기는 혼동을 해소할 수 있다. ...... 존경과 두려움을 구별하는 일은 집단과 국가에서 훨씬 더 중요하다. 거물 정치인이든 아니든 범죄, 폭력, 테러리즘의 가능성을 자주 말하며 국민을 위협하고, 그렇게 국민의 두려움을 증폭시켜 지지를 얻는 정치인은 합법적인 지도자이기보다는 성공한 사기꾼일 가능성이 더 크다. 인류 역사에는 이런 사례가 너무나 많다.



287쪽
행복은 당신의 생각과 당신의 말과 당신의 행동이 조화를 이룰 때 찾아온다. - 마하트마 간디

307쪽
인터뷰 과정에서 모범들 가운데 한 사람인 커벨 브랜드는 개인 정체성에 대한 자신의 생각을 설명하면서 "내가 누구인가는 내가 무엇을 할 수 있고, 매일 매순간 무엇을 어떻게 느끼는가 하는 것이다. ...... 내가 누구인가와 내가 하려는 것, 내가 하고 있는 것을 따로 떼어 놓고 생각하기는 힘들다."고 말했다. 

331쪽
하여간 캐서린과 프레드는 경건하거나 용감하지도 않았고 아주 효율적이지도 않았다. 절대 합리적이었다고 말할 수도 없다. 다만 그들은 마멋을 돕고자 애쓰는 것이 옳다고 생각했고 그렇게 함으로써 기분이 좋아졌을 따름이다. 말하자면 그 돌덩이를 옮기는 일은 '불편하지만 그들에게 유익했다.' 

331쪽
양심이 감정적인 애착을 바탕으로 하는 의무감이라고 이해하게 되면서 양심은 순수하게 심리학적인 개념으로 발전했다. ...... 심리학자들은 우리가 다른 사람의 행복에 어느 정도 책임감을 느낄 때 우리의 행동이 자연스럽게 혹은 '자아동질적(egp-syntonic)'으로 느껴지고 삶의 만족도 높아진다고 말한다.

342쪽
양심은 우리의 삶에 바로 이런 의미 있는 나날을 선사한다. 양심이 없다면 우리는 감정적으로 공허하고 지루하며, 잘못 만들어낸 자신의 지배 게임만 반복하면서 지내게 될 것이다. ...... 간단히 말해서 나는 남들을 해치는 행동은 틀렸고 친절함은 옳다고 느끼는 사람들, 매일매일의 삶에서 조용히 자신의 도덕심에 따라 행동하는 사람들에게서 가장 큰 감동을 느낀다. ...... 그리고 늘 그랬듯이, 그들은 우리의 희망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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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몽자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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