라스베이거스의 네온사인이 장관이다 싶은 건 간판의 글자가 보는 즉시 읽히지 않아서라고, 건축가 유현준은 설명한다. 같은 원리로, 미쿡 사람들은 우리나라의 거리에 나붙은 간판들을 보며 이국적인 멋을 느낀다고. 일리 있다. 자영업자 포화 상태의 나라. 경쟁하듯 간판에 작명 센스를 갈아넣는다. 더러는 '좋아요'를 눌러 응원해주고 싶을 만큼 기발하다. 더러는.
얼마 전부터 눈에 띄는, 아니 거슬리는 간판이 있다. 커다란 글자로 선명하게 박아 놓아 그냥 지나치기 어려운 수준이다. 잊을 만하면 다른 곳에서 재차 목격되는데, 볼수록 불편하다. 반려견과 반려묘 관련 상품을 판매하는 곳이겠거니, 그런 면에서 나름 재치 있게 지은 상호라 자부할 수도 있겠거니 여기고 지나치려 해도 쉬 가시지 않는 찝찝함은 처치 곤란이다. 특정 상호를 비방할 의도는 없다. 반려동물 경험이 전무한 터, 그쪽의 애틋함을 1도 모르기에 공감하지 못하고 괜한 트집을 잡는 거라 비난 받을 수도 있으리라. 그래도 이상하다. 어흥이에게 음메해 보라는 건.
어린 시절 음식에 대한 선호도를 결정짓는 데에는 주변 사람들의 반응이 큰 영향을 미친다고 한다. 이걸 먹으면 '어이구, 잘 먹네' 한다든지, 저걸 먹으면 '이거 두 개 먹으면 저거 하나 줄 테니 이거부터 먹으렴' 조건부로 제한한다든지 하는 식의 반응 말이다. 우리나라에서는 흔히 김치에 주목한다. 아이가 김치를 잘 먹으면 신통하다며 추켜세운다. 칭찬 받은 아이는 보란듯이 더 많이, 더 힘차게 김치를 집어먹는다. 미션을 클리어하듯. 김치는 몸에 좋다. 잘 먹는 건 좋은 일이다. 아쉬운 대목은, 어른들의 반응이 아이들로 하여금 스스로 음식을 탐색하고 본인의 미각을 찾아가는 기쁨 충만한 과정을 박탈할 수 있다는 점이다. 냄새, 질감, 뒷맛을 충분히 느껴 보기도 전에 보호자의 환호 혹은 질타에 의해 어떤 음식에 대한 욕망이 굳어질 수 있다. 안타까운 일이다. 음식을 맛보고 짓는 순간의 표정, 찰나의 감탄사, 되새기는 기억을 묵묵히 살피는 식의 응원은 어떨까. 그러한 존중은 어떨까.
'다움'에 대해 생각해 본다. 다움은 정상과 다르다. 어흥이는 어흥 할 수도 있고 아홍, 와흥, 으흥 할 수도 있다. 정상, 비정상은 따로 없다. 그저 어흥이다울 뿐. 음메 우는 녀석은 옴매, 움마, 음매에에 할 수도 있다. 역시 녀석답다. 사실 녀석답지 않아도 괜찮다. 답지 않을 때 혹시 아픈 건 아닌지 들여다볼 필요는 있어도 나무랄 일은 아니다. 다양한 소리를 내다니, 기특하고 신비로운 녀석 좀 보소. 되레 녀석의 신기술로 볼 수도 있다. 음메 하지 못할꼬! 어흥 해보라니까! 여기서 이렇게 나오면 곤란하다. 하물며 어흥 하던 녀석에게 음메 하라니.
어흥아 음메해봐. 반려동물들과 함께하는 이들의 꽁냥꽁냥 화법을 떠올리면 대수롭지 않게 웃어넘길 만한 간판인지 모른다. 그럼에도 불편함이 남아 다시금 간판을 되돌아본 건 현실에서의 폭력적 장면과 겹쳐 보였기 때문이다. 평소 매운 김치를 잘 먹는 아이가 보기에 좋았던 부모. 한 날 영 김치가 당기지 않을 수 있는데도 본인 보기에 흡족한 '김치 잘 먹는 모습'을 요구한다면, 그건 일종의 폭력이다. 상대방이 가진 다양한 측면을 존중하지 않는 것이고, 때와 장소에 따라 달리 행동할 수 있는 인간의 입체적인 면을 인정하지 않는 것이니까. 보고 싶은 면만 보려는 것도 모자라, 보고 싶은 면을 면전에서 강요하는 것. 폭력 아니고 무엇이겠나.
함께 즐기면 문제될 게 없다. '함께'를 누가 판단할 것인지가 관건이다. 주인의 요구에 어흥이가 기쁘게 음메 했다면 둘은 함께 즐긴 것이다. 다만 주인이 어흥이가 즐겼는지 여부를 판단해버리면, 어흥이가 답할 기회를 빼앗아버리면 폭력을 의심해봐야 한다. 때때로, 예민하게 굴자. 웃어넘기는 여유도 필요하지만, 날카로운 포착 역시 필요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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