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숙자 할래, 사고 칠래? 비열한 거리에서의 선택의 길은 둘 중 하나

거리의 우두머리

 

범죄를 전염시키는 10대 우두머리

 

오갈 데 없는 10대 가출 소녀들을 데려다가 무리를 지어 범죄를 기획하고 진두지휘하는 우두머리, 그 역시 10대다. 집을 나온 뒤 무리에서 범죄를 학습한 아이들이 흩어져 또 다른 무리를 만들고, 새로 들어온 아이들에게 자연스럽게 범죄를 가르치고 있다. 거리를 떠도는 아이들이 만나고 흩어짐에 따라 흉악한 범죄가 그야말로 전염병처럼 퍼지고 있다는 얘기다.

 

최근에 부산에서 발생한 다섯 건의 조건사기 범죄에 가담한 아이들의 범죄 전력을 분석해 봤다. 15세부터 19세까지 46명의 아이들 중 전과 기록이 없는 아이는 단 4명에 불과하다. 전과 5범이 넘는 아이들이 절반이 넘고, 전과 9범 이상인 상습범죄자도 13명이나 된다. 한 아이는 18살에 전과만 28개다. 무엇이 이 아이들을 범죄 소년으로 전락시켰을까? 미꾸라지 한 마리가 물을 흐리듯, 한두 명의 나쁜 아이들이 문제일까?

 

처음부터 리더였다?

 

부산에서 잇따라 발생한 조건사기 사건에 가담한 아이들이 하나같이 주모자로 지목하고 있는 악명 높은 리더 A 군. 언테부터 그가 리더(?)였는지는 알 수 없다. 아이들의 기억 속에 그는 늘 우두머리였다. 하룻밤 잘 곳을 찾아 목매는 아이들과는 차원이 다른 거침없는 A 군의 행동. A 군 하면 돈이 떠오를 정도로 그는 늘 여유 있어 보였다고 한다.

 

형사1  曰 주머니에서 5만 원짜리를 다발째 꺼낸다, 자기가 중고차를 사서 타고 다녔다, 그런 얘기를 하더라.

형사2  曰 얘들은 한 번에 천만 원씩 뜯어낸다.

 

숙박비 몇 만 원이 급급한 아이들에게 A 군은 신화였다. 따르는 아이들이 많아지면서 돈을 벌 수 있는 일도 많아지고, A 군의 힘도 강해졌다. 원하는 것을 얻기 위해선 무자비한 일에도 눈 하나 깜짝하지 않고, 더 높이 오르기 위해선 약한 자를 가차없이 짓밟는 그의 잔혹함에 아이들은 그의 말을 거부하지 못하고 시키는 일마다 따라야 했다고 털어놓는다. A 군은 그렇게 거리의 먹이사슬 맨 위로 올라갔다.

 

류경진  부산사하경찰서 형사팀  曰 특수절도 하고 나중에 오토바이도 훔치고 차 타고 다니다가 검거되고 그러다가 절도로 들어오고, 성매매 알선도 하고 보도방도 하다가 이번에 강간상해로...

 

원래 잔혹하진 않았다?

 

가출 후 4년 간 A 군의 범죄는 빠르고 무섭게 진화했다. 그의 범죄 이력을 따라가 봤다.

 

2년 전 성매매 알선 사건 담당 경찰   曰 10대 여성 피해자를 성폭행 하고 그 피해자를 보도방으로 넘긴 사건이었는데, 당시 주범은 A 군이 아니었다. 주범은 따로 있었다. A 군은 그 주범의 후배였다. A 군은 그때만해도 그렇게 심각한 범죄형은 아니었다.

 

2년 전 무면허 오토바이 주행 사고 사건 담당 경찰  曰 공고 출신 젊은 앤데, 기술도 배우고 열심히 살아보려는 듯한 이미지였다. 기술을 배워 일하는 그 무리 중에서는 열의가 있어 보였다. 폭력적이진 않아 보였다.

 

A 군 친구  曰 중학교 때부터 알던 같은 동네 친군데, 나는 싸우는 것도 본 적이 없다. 맞는 것만 봤다. 형들이 시켜서 돈 받고 여자애들 성관계 시키는 건 봤다. A가 형들을 무서워했나? A를 동물 학대보다 심하게 다뤘다. 때릴 때 보면 무슨 돼지 잡을 때처럼 때린다.

 

2년 전만 해도 가출해 거리를 떠돌기는 했지만 범죄를 주도할 만한 아이는 아니었다고 한다. 매일같이 형들의 폭력에 시달리며 안 해 본 일이 없었던 그가 2년 만에 거리의 우두머리가 된 거다. 지금 A 군의 모습은 한때 그의 리더였던 형들과 꼭 닮아 있다. 잔혹한 폭력을 견뎌야 했던 피해자는 더 잔혹한 가해자가 되었다. 먹잇감이 되지 않기 위해 스스로 사냥꾼이 되어야 했을지도 모른다.

 

비단 A 군만의 얘기가 아니다. 많은 범죄 소년들 역시 가출 초기 저지른 범죄는 대부분 무리에 동조하는 경미한 수준이지만 A 군이 그랬듯, 불과 1년 사이 무서운 진화를 보인다. 범죄 횟수가 눈에 띄게 증가하고, 범죄 수법도 더 잔혹해진다. 비열한 거리에서 살아남기 위해 더 비열해 지는 아이들. 그들의 속내를 들어 봤다.

 

아침에 라면을 나눠 먹은 게 오늘 끼니의 전부라는 아이들은 저녁부터 해결하자는 말에 금새 표정이 부드러워진다. 3년을 떠돌면서 꽤 많은 것이 익숙해졌지만, 도무지 해결되지 않는 숙제는 여전히 잘 곳을 구하고 배를 채우는 일이라고 한다. 거리를 떠돈다는 건 매순간 시련이고 고비다. 그런데도 버티는 덴 그만한 이유가 있다.

 

B 군  20세, 가출 3년째  曰 며칠을 굶을 때도 있다. 항상 먹고 다니진 않는다. 정말 배고플 땐 아무 가게나 들어가서 밥 먹고 그냥 도망 나온다. 일명 먹튀다. 부모님이 때려서 나온 애도 있고, 집이 너무 엄해서 나온 애도 있다. 아빠한테 강간 당해서 나온 여자애도 봤다.

C 군  19세, 가출 6년째  曰 일주일까지 굶어 봤다. 토할 것 같다. 구열질 난다.

D 군  19세, 가출 소년  曰 나는 나온 게 아니다. 초등학교 5학년 때 아빠가 잠깐 쉼터에 맡겨서 그때부터 쭉 밖에 있었던 거다.

E 군  20세, 가출 3년째  曰 가족관계가 다 가관이다.

C 군  19세, 가출 6년째  曰 그래도 형네 집은 잘살잖나.

E 군  20세, 가출 3년째  曰 나도 새엄마다.

C 군  19세, 가출 6년째  曰 나도 새엄마다.

 

부모에게 버림 받은 두 아이는 고아원과 시설을 전전하다 탈출을 했으니 돌아갈 집은 없는 셈이다. 가족이 있는 다른 두 아이에게도 집은 거리만큼이나 혹독한 곳이라고 한다. 거리로 내몰린 아이들은 거리에서 그들만의 가족을 만든다. 함께 다닐 무리를 구하는 일에 신중을 기한다.

 

C 군  19세, 가출 6년째  曰 '서울 ㄱㅊ 일행괌', 서울 내 가출 일행을 구한다는 뜻이다. 이렇게 하루에 못해도 10건씩은 올라온다. 다른 팸에 있는 애들 보고 자기네 팸으로 오라는 거다. 이런 저런 애들 정말 많은데, 진짜 운 안 좋으면 장기도 팔릴 수 있다.

 

E 군  20세, 가출 3년째  曰 이런 애들이 진짜 나쁜 놈들이다. 하룻밤 욕망에 양심을 팔아먹는 놈들. 같이 소년원 생활했던 애들을 만나거나 그 안에서 뭉쳐 버리면 걸어 다니는 범죄조직이 된다. 애들마다 범죄 특성이 다 다르니까 이것저것 다 저지르게 된다.

C 군  19세, 가출 6년째  曰 자기들 편하게 살려고 남자들이 여자들 조건 시키려는 거다. 딱 올린 글만 보면 안다. 6년을 이렇게 살았는데 모르겠나.

 

욕망을 위해 검은 손을 뻗는 어른들, 더 약한 아이를 짓밟고 오르려는 또 다른 거리의 아이들. 당하지 않기 위해선 먼저 때려야 한다고 아이들은 믿고 있다. 점점 대담하고 잔혹하게 변해가는 자신의 모습을 스스로도 느끼고 있을까?

 

C 군  19세, 가출 6년째  曰 처음이랑 마지막을 비교해 보면 많이 진화(?)한 것 같다. 처음에는 그냥 삥뜯기 정도로 시작했다가 다음에는 차털이, 가게털이, 아리랑치기, 조건사기, 이렇게 점점 강도가 세진다. 그러면서 버는 돈의 액수도 커진다.

 

B 군  20세, 가출 3년째  曰 일단 살려면 돈이 있어야 되니까, 내가 살고 봐야 되니까, 남을 신경 쓸 겨를이 없다. 남은 보이지도 않는다.

 

알면서도 멈출 수 없었다는 아이들은 어른들이 일컫는 '범죄'를 '생존'이라 말하고 있었다. 다른 길을 찾아볼 순 없었냐는 질문에 B 군이 이력서 한 통을 꺼내 보인다. 부모의 동의가 없으면 무용지물인 이력서다.

 

C 군  19세, 가출 6년째  曰 부모 동의도 없고, 휴대전화나 집 주소가 없으니까 불확실하다고 아무도 알바로 안 써 준다.

 

거리의 아이들이 범죄의 유혹에 빠지는 건 먹을 것, 잘 곳 없이 보내야 하는 가출 후 첫 일주일이다. 가출 청소년을 위한 쉼터가 있긴 하지만 생활 규칙이 까다로워 또 다른 구속이라고 한다.

 

외면하는 사회

 

교육부 관계자  曰 학교 안에서 이루어지는 건 교육부 소관이지만, 학교를 그만두고 가출한 청소년들의 경우는... 글쎄, 잘 모르겠다. 교육부 내 가출 청소년 별도 담당 부서는 따로 없다. 여성가족부 쪽에 관련 부서가 있지 않을까 싶다.

 

여성가족부 관계자  曰 가출해 연락이 두절된 경우 기본적으로 본인 의사에 의한 것이기 때문에 가서 잡을 수도 없을 뿐더러, 행정서비스가 거기까지는 못 미치고 있다.

 

거리엔 분명 아이들이 있다. 그러나 그 아이들을 지켜봐 주는 곳은 어디에도 없다. 어쩌면 지금 우린 도와달라는 아이들의 간절한 외침을 외면한 대가를 치르고 있는지도 모른다.

 

이유진  한국청소년정책연구원 박사  曰 가출 청소년들은 이미 각자의 가출팸에서 가족적인 유대관계를 형성하기 시작했다고 봐야 한다. 그렇게 형성된 가족을 위해 서슴지 않고 범행에도 가담하는 것이다. 따라서 서로 애착관계를 형성할 수 있을 때까지, 사회적 가족을 구성할 수 있을 때까지, 범죄를 저지르지 않도록 사회가 기다려 주고 도와줘야 한다.

 

문창범  구로경찰서 여성청소년계 형사  曰 아이들이 비빌언덕이 없다는 게 문제다. 그때, 그 시점에 좋은 형이나 좋은 경찰, 좋은 선생님을 만났더라면 아이는 나쁜 길로 빠지지 않는다. 그 상황이 지속되면서 범죄를 벗어나지 못하는 지경에 이르는 것이다. 살면서, 특히 청소년 시기에 누구를 만나는가는 정말 중요한 문제다.

 

비열한 거리를 활보하는 아이들을 만났다. 그들의 행동 하나하나, 말 한마디 한마디에 놀라기도 했고, 또 한편으론 몹시 안쓰럽기도 했다. 그러기에 왜 집을 나왔냐, 힘들다고 다 나쁜 짓을 하고 사는 건 아니다, 아이들을 힐난했던 것도 사실이다. 요즘 아이들 무서워, 피하는 게 상책이야, 우리가 이렇게 아이들을 탓하거나 외면하는 사이에 거리의 아이들에게 다가간 것은 검은 손들뿐이었다.

 

 

집을 나온 아이들에게 가장 중요한 시기는 처음 일주일이라고 한다.

그래서 영국에서는 가출 청소년들을 위해 'Bed and Breakfast'의 앞 글자를 딴

B&B 서비스를 운영하고 있다.

잠을 잘 수 있는 침대와 먹을 것을 제공할 뿐 아무런 제약도, 규칙도, 간섭도 없다.

당장 한끼, 하룻밤을 해결하기 위해 아이들이 범죄에 나선다는 사실에 착안한 것이다.

왜 집을 나왔는지, 어떻게 다시 학교로 복귀할지에 대한 이야기는

그 과정에서 자연스럽게 이루어진다고 한다.

 

'일단 학교에 나와야 관리를 할 수 있다', '지금 인력과 예산으론 턱도 없다'며

거리의 아이들을 외면하고 있는 우리에게 시사하는 바가 크다.

 

마음을 알아주는 단 한 사람만 있으면 사람은 절대 비뚤어지지 않는다.

거리의 아이들에겐 단 한 사람, 단 하나의 끈이 절실하다.

그 끈이 되어 줄 누군가는 당연히 우리 사회여야 한다.

지금 그들을 외면한다면 아이들은 감당하기 어려운 사회적 비용이 되어 돌아올 것이고,

지금 그들을 잡아 준다면 우리 사회의 건강한 일원으로 성장할 수 있다.

더 늦기 전에 아이들의 손을 잡아 줘야 한다.

 

※ 비열한 거리 2부 범죄 소년 | 2013-04-13 | 그것이알고싶다 ^Link

대한민국 그림자 ^MONZAQ