백지영
행복의 조건에는 개인차가 있다. 각자만의 우선순위가 다르기 때문이다. 스스로 우선순위를 곰곰이 따져 볼 필요가 있다. 인생에 대한 가치관이 곧 행복의 조건이다. 개인적인 예를 들면, 이런 식이다. 내 삶에서 포기할 수 없는 건 자유로운 의사결정권, 혼자만의 시간과 공간, 주체적으로 설계하는 인생, 내가 가진 능력의 발휘, 어떤 식으로든 사회에 이바지하고자 하는 의지의 실현, 누구에게나 주어진 가능성과 잠재력에 대한 존중 등을 들 수 있다.
세부적인 우선순위 목록은 삶의 만족도를 높이는 데 분명 도움이 된다. 백지영의 사례가 이를 증명한다. 얼마 전 '힐링캠프'에 출연한 그녀는 결혼 전 배우자에 대한 희망사항을 적어 두고 이를 기도 제목으로 삼았다고 한다. 바라는 여러 가지 항목을 구체적으로 열거하다 보니, 시간이 흐르면서 덜 중요한 것들은 자연스레 탈락시키게 되고, 정말 중요한 몇 가지가 남더란다. 거짓말처럼 그 희망사항이 전부 이루어졌다고 말하는 그녀. 배우자 정석원이 딱 그 조건에 맞는 사람이라고 한다.
백지영은 '희망 실현'이 가능할 수 있었던 이유를 이렇게 설명한다. '세부적인 면면을 기도하자면 이를 반복적으로 떠올릴 수밖에 없다. 반복해서 기도하는 와중에 자기도 모르는 사이 분별력이 쌓인 모양이다. 희망사항에 부합하는 사람이 나타나는 순간 그에 대한 호감이 솟구쳤다.' 그녀의 경험담에 100% 공감한다. 조건의 가짓수에 대해서도 마찬가지다. '처음엔 항목이 꽤 많았다. 그러다 차츰 덜 중요한 건 제외시키게 된다. 정말 중요한 것만 남는 셈이다.' 완성된 목록은 자연스럽게 내 결혼관, 인생관의 표본이 된다. 이를 습관적으로 되뇌이면 돌이켜 봤을 때 상대적 빈곤감이란 사라지고 없다.
'가치관 목록'의 효과는 여기서 끝이 아니다. 백지영이 말한 것처럼, 무언가를 소망하다 보면 자기 자신을 그에 합당한 수준까지 끌어올리게 된다. 바라는 배우자의 모습에 어울리게끔 스스로를 돌보게 되는 것이다. 희망사항으로 그칠 수 있는 일을 본인까지 바람직한 방향으로 이끌어서 꿈을 실현시키는 것. 이것이 바로 가치관 정립의 근본적인 효과다. 처음부터 우선순위를 가릴 필요는 없다. 여러 가지를 구체적으로 생각해 두면, 그 가운데 본인에게 더 중요한 것이 무엇인지 판가름할 수 있다.
이경규가 묻는다. "연하의 남편, 살아 보니 뭐가 좋던가?" 백지영의 진심이 드러나는 대답이 이어진다. "물론 다 좋은데, 연하라서 좋은 게 아니라 정석원 씨가 연하라서 좋은 것 같다." 그녀에게서 상대적 빈곤감이란 찾아볼 수 없다. 20살 연하와 데이트를 즐기는 데미 무어도 전혀 부럽지 않다. 정재계를 휘어잡는 대단한 재력가, 든든한 연상 남편도 정석원에 비할 바는 못 된다. 인생에서 본인에게 중요한 '가치'를 제대로 파악하고 이를 소망함으로써 스스로 만족할 수 있는 삶을 꾸려 가고 있는 것이다. 이보다 더 현명할 순 없다!
경험담
백지영의 사례는 나도 익히 경험한 바 있다. 결혼에 대해 다분히 부정적이었기에 배우자의 조건은 아니었다. 데이트 상대의 조건이었지만 늘 분명하고 한결같았다. 실제로 이렇게 적어 두곤 했다. '① 피부가 흰 사람 ② 털이 많지 않은 사람 ③ 목이 짧지 않은 사람 ④ 손이 예쁜 사람 ⑤ 권위적이지 않은 사람 ⑥ 결벽증 없는 사람 ⑦ 나이가 비슷한 사람 ⑧ 기분이 오락가락하지 않는 사람 ⑨ 말이 통하는 사람' 보통의 여자들이 꼽는 조건 중 나에겐 별 의미가 없는 것들도 있었다. '① 키 ② 연봉 ③ 직업 ④ 장남'
물론 목록을 들고 다니며 해당 여부를 체크한 적은 없다. 늘 상기한 덕분에 감사하게도 조건에 딱 들어맞는 남자를 배우자로 맞았다. 결혼 후 3년쯤 지나서 알게 된 일이다. 당시 정말 놀랐던 기억이 난다. 사람을 만날 때마다 조건을 하나하나 따져보지 않아도 평소 중요시하던 것들은 머리가 아닌 가슴으로 알아보는 게 아닌가 싶다.
흔히 '얼굴 소용 없다', '외모 출중해 봐야 얼굴값 때문에 골치만 아프다'고 말한다. 개인적인 생각은 좀 다르다. 결혼에서 외모는 참 중요하다. 상대에 대한 호감을 매일매일 자극하기 때문이다. 피부, 털, 목, 손, 키, 모두 외모에 해당한다. 종합적으로 보면, 내가 선호하는 외모는 '남자답지 않은 외모'였다. 정확히 이 기준에 들어맞는 남편은 볼 때마다 애정을 불러일으킨다.
명심해야 할 게 있다. 외모가 중요하다는 건 '본인이 중요시하는' 외모의 조건에만 해당한다. 남들이 훌륭하다고 인정하는, 남들의 감탄사를 자아내는 외모는 아무런 의미가 없다. 남들이 아닌 '나'를 자극하는 외모여야 한다. 보여 주기 위한 외모가 아닌, 나를 만족시키는 외모여야 한다. '잘생긴'이란 조건을 목록에 포함시켰다면 본인이 절대 참을 수 없는 것들, 반드시 그래야만 하는 것들로 세분화해 보기 바란다. 위의 예를 참고하면 얼마나 구체적이어야 하는지를 알 수 있을 것이다.
연봉 vs. 외모
무엇을 기준으로 삼는지는 각자 판단할 몫이다. 옳고 그름이란 없다. 아무리 사소하고 치사한 것이라도 개인에겐 무엇보다 중요한 것일 수 있다. 기본적으로 모든 조건을 존중한다. 단, 기본적인 입장과 측근에게 취하는 입장은 다르다. 보다 개인적인 경험이 강하게 작용한다. 최측근의 미혼녀들에게 나는 연봉보다 외모를 보라고 조언한다. 연봉은 남편을 볼 때마다 '돈 버는 기계'란 생각을, 외모는 '사랑스런 내 짝'이란 생각을 먼저 갖게 한다.
연봉과 외모. 두 조건은 행복한 결혼 생활에 결정적인 요인이 된다. 배우자의 연봉에 만족해서 한 결혼은 기대했던 승진이나 연봉 상승이 무산됐을 때 부부 관계를 위기에 빠뜨린다. 직업을 바꾸거나 회사를 옮길 때, 사업 및 투자처를 정할 때도 마찬가지다. 용돈, 카드값, 생활비 등 사사건건 안 걸리는 문제가 없다. 돈으로 엮인 관계는 한쪽 또는 양자 모두를 불행하게 만든다.
경제력보다 외모를 중시해서 내린 결혼 결정은 두고두고 긍정적인 보탬이 된다. 대부분의 아내들은 술 약속이 있어 늦게 들어오는 남편 때문에 속을 썩는다. 12시가 넘으면 몇 만 원을 택시비로 길에 버려야 하는 것도 아깝고, 술값으로 쓰는 돈도 쓸데없는 낭비 같다. 다음날 죽을상을 하는 것도 꼴 보기 싫다. 아무튼 마음에 안 든다.
남편의 외모가 경제력보다 중요한 나는 그가 술을 먹느라 늦게 들어오면 걱정되는 건 딱 하나다. 어디서 넘어지거나 싸움에 휘말려 다치는 일이 있지는 않을까 하는 것. 다친 데 없이 무사히 돌아오기만 하면 된다는 주의다. 100만 원 상당의 스마트폰을 연거푸 잃어버려도, 다친 데가 없으면 문제될 게 없다. 그저 무사고면 족하다. '연봉 중시'는 남편의 월급 통장을, '외모 중시'는 남편의 건강과 안전을 더 꼼꼼히 살피게 만든다. 배우자를 수단이 아닌 목적으로 삼고, 존재 자체에서 감사와 행복의 구실을 찾는 관계. 인생의 동반자란 이런 관계를 말한다. 당연하지만 참 보기 드문 모습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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