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태지에게서 찾아볼 수 있는 INTJ 성향을 살펴봤다(하단에 링크). 몇 가지 잊은 게 있어 덧붙인다.
서태지의 은퇴와 INTJ의 연결 고리
서태지는 '서태지와 아이들'로 최고의 인기를 누리던 중 돌연 은퇴를 선언했다. 팬들뿐만 아니라 가요계를 비롯한 연예계 전반에 적지 않은 충격을 불러일으켰다. 비평가들의 쓴소리를 들으며 어렵게 데뷔전을 치른 서태지와 아이들. 그들은 최고의 가수 자리를 탈환한 지 얼마 지나지 않아 은퇴 행보를 밝혔다. 활동 기간은 '만 3년'에 불과하다. 많은 이들의 관심의 대상이었던 만큼, 그들의 은퇴 발표를 두고도 말들이 많았다. 멤버 간 불화설 내지는 추구하는 음악의 차이, 솔로 데뷔나 은퇴 취소설 등 보통 팀의 해체를 둘러싼 소문과 크게 다를 것도 없었다.
펜에 대한 예의가 아니라는 비난부터 박수칠 때 떠나는 모습이 아름답다는 평가에 이르기까지 다양한 해석이 줄을 이었다. 대부분은 그들의 은퇴를 이해할 수 없다는 반응이었다. 96년 1월. 당시 나는 3년차 양현석의 팬이자 고등학생이었다. 심리의 '심'자도 모르고 INTJ란 들어보지도 못했을 때, 은퇴를 결심한 서태지의 심리적 배경을 어느 정도 공감할 수 있었다. 이제나마 당시의 공감을 심리학적으로 풀어 보며 고개를 끄덕인다.
흥미에 올인
INTJ는 다분히 비현실적이다. 현실적인 것을 중요시할 줄도 모르고, 하고 싶어 하지도 않는다. 여기서 '현실'이란 '실용'이 아닌 '이상'의 반대를 말한다. 쉽게 말해 '돈'이다. 곡 대부분의 저작권을 가지고 있던, 20대 초반에 스스로 결성한 팀과 제작한 음반으로 가장 핫한 대중음악인으로 자리매김한 서태지. 몇 년 간 이룬 성과만으로도 그는 향후 몇 배의 현실적인 이익을 챙길 수 있었다. 그러나 그는 은퇴를 택했다. 현실적인 '돈'보다 우선하는 것이 있었기 때문이다.
INTJ는 창의적인 문제 해결 과정이 끝나면 더 이상 흥미를 느끼지 못한다. INTJ는 단순하다. 흥미와 열정을 불사를 수 있는 일에는 온 힘을 쏟아붓는다. 사생활, 여가도 필요없다. 중요한 건 오직 '의미 있다고 판단되는 일'이다. 반면, 의미와 가치를 찾을 수 없는 일에 대해서는 굉장한 회의를 느낀다. 일말의 시간과 노력도 들이지 않는다. 비현실적이라는 평을 듣는 근본적인 이유가 여기에 있다.
서태지는 본인의 '음악적 재능과 대중에의 호소력 검증'을 일종의 해결 과제로 생각했던 것 같다. 창의적인 문제 해결 과정이 끝나자 흥미가 떨어진 것이다. '서태지와 아이들로서의 가수 활동이 구미에 당기지 않는다'는 게 '은퇴의 배경'이란 생각이다. 열정적으로 임하지 않으면서 경제적 이익만을 위해 자리를 차지하고 있는 것. 그것이 오히려 서태지 생각에는 펜들에 대한 도리를 저버리는 '짓'이 아니었을까.
육아에 올인
몇 년 전, 한참이 지난 뒤에야 밝혀진 사실이지만, 이지아와의 결혼이 은퇴에 결정적인 영향을 미쳤을 거라는 말들이 쏟아졌다. 나는 서태지의 측근도, 기자도 아니다. 같은 심리 유형인 INTJ일 뿐이다. 사건의 진상은 알 턱이 없다. 2세 유무에 대한 정보도 전무하다. INTJ의 성향과 관련 뉴스의 개연성만 짚어보자는 거다.
MBTI 각 유형이 만족할 수 있는 직업에 대해 쓴 <나에게 꼭 맞는 직업을 찾는 책>에는 유형별 직업 만족 사례가 한두 건씩 실려 있다. INTJ에 등장하는 '모니카'의 인터뷰를 인용한다. "결혼 후 1년 반 동안 남편과 함께 필리핀에서 지냈다. 다시 미국으로 돌아온 뒤에는 비행 청소년이 상당수인 사립 고등학교에서 일했다. 3년 간 학생 과장을 맡았다. 그리고 아기를 갖기 위해 학교를 그만두었다. 정신적인 스트레스가 많은 일이었기 때문에 일을 그만둘 수밖에 없었다. 내 딸을 위해서도 뭔가 줄 것이 있어야 하니까."
경제적 위기가 계속되면서 안정적인 지원 체계 및 육아 휴직 보장 제도는 매우 중요한 직업의 조건이 되었지만, 나에게는 그다지 결정적인 사항이 아니다. 회사에서 정해 둔 육아 휴직 기간에 따를 의향이 전혀 없기 때문이다. 3개월이든 1년이든, 육아 휴직 기간은 나와 아기의 개인적 상황에 따라 조정될 때 의미 있는 것이다. 그렇다고 무작정 원하는 만큼 휴직하겠다고 주장할 순 없다. 고용주에 대한 무책임한 태도, 동료들의 부담을 가중시키는 이기적인 요구, 그 사실이 나를 조여 오는 자괴감을 견딜 자신이 없어서다. 결국, 2세를 계획한다면 직장을 그만두는 게 최선이라는 게 개인적인 결론이다.
'굳이 그렇게까지?', '먹고살기 힘든 요즘 그런 배부른 소리를?'이라는 비난, 당연히 있을 수 있다. 분명한 건, 많이 또는 적게 가진 것과는 무관한, 그저 일종의 성향일 뿐이라는 거다. 가치 있는 일에 시간과 노력을 남김없이 쏟아붓는 INTJ의 성향. 누군가에겐 자연스럽게 작동하는 '현실 참작 기능'마저 올인으로 눌러 버리는 외곬 성향. INTJ에게 출산 후 얼마간의 시간은 '공과 사의 구분' 이전에, '창의적인 문제 해결 과정'의 하나로 인식된다. 일종의 일이다.
결혼에 올인
결혼도 마찬가지다. 모니카가 결혼 후 18개월을 필리핀에서 머무른 사실이나, 나와 남편이 결혼 6개월 만에 동시에 회사를 퇴직하고 만 1년을 꼬박 함께 무직으로 지낸 사실이나, 같은 맥락이다. 일정 기간은 둘만의 시간을 가질 필요가 있다고 생각했다. 물론 각자의 본가에는 비밀이었다. 현실적인 사람들의 이해를 구할 필요성도, 가능성도 못 느꼈기 때문이다.
서태지가 이지아와의 결혼 때문에 은퇴를 선언하고 미국으로 건너갔는지의 여부는 확실치 않다. 시기상 충분히 가능성 있는 얘기라는 추측성 기사만 접했을 뿐이다. INTJ 성향과 결부시켜 보더라도 일리가 있다는 게 개인적인 결론이다. 결혼 적정 시기란 서로가 서로에게 가장 필요하고 애틋할 때다. 나 역시 합법적으로, 당당하게 같이 먹고 같이 자고 싶어 결혼을 결심했다. 진정한 독립, 진정한 독신을 위한 선택이었다.
준비에 올인
서태지와 아이들은 활발한 가수 활동 도중 다음 음반을 준비하겠다며 일체의 활동을 중단하곤 했다. 덕분에 신비감이라는 의외의 소득을 얻기는 했지만, 서태지의 결정은 전략적이라기보다는 자연스러운 쪽에 더 가까워 보인다. 결혼, 육아와 마찬가지로 한 가지에만 몰두하는 것이 편하고 익숙한 게 INTJ다. 물론 현실과의 타협 또는 적정선 유지가 필요할 때도 있다. 자본주의 경제 체제가 생존을 위협하는 경우에는 그렇다. 다행히 그는 그가 원하는 대로 중단과 재개를 반복할 수 있는 경제적 여건을 갖추고 있었다.
음반 준비를 위한 활동 중단, 한창 때의 은퇴 선언, 결혼설, 2세 논란 등 INTJ의 특성으로 보면 서태지는 '서태지답게' 그의 인생을 살아 왔을 뿐이다. 기이하다거나 지능적인 삶이 아닌, 자연스러운 삶의 방식이었던 거다. '나답게' 살 수 있다는 건 행복이자 행운이다. 성공의 요인이기도 하다.
※ INTJ가 본 서태지의 INTJ적 성향 - <서태지 심포니>를 보고 Link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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