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면 권하는 사회
6년 전 그 영화, '가면'이 새삼 떠오르는 이유
이야기는 이렇게 흐른다. 경윤(김강우 분)은 학창시절 동기 윤서 군에게 짧지만 사랑의 감정을 느낀다. 경윤은 이내 자신이 느낀 감정을 부정하고 윤서를 밀어낸다. 형사가 된 경윤은 멀쩡하게(?) '여자' 차수진(이수경 분)과 연애 중이다. 어느 날 경윤은 한 살인 사건을 맡는다. 용의자로 지목된 건 다름 아닌 윤서다. 윤서와의 연락이 끊긴 지금, 윤서의 행방을 추적할수록 기억 속 자신의 성적 지향이 되살아나 그를 괴롭힌다. 곧 윤서의 정체가 밝혀진다. 지금의 애인인 수진으로.
학창시절 끊이지 않던 조롱과 폭력은 군에 입대한 뒤 성추행과 성폭행으로 치달았다. 남자들의 시달림에 지친 윤서는 남자이기 때문에 경윤의 사랑을 얻을 수 없다는 생각에 미치고 성 전환을 결심한다. 그리고 수진이 되어 경윤 앞에 다시 나타난다. 사고로 얼굴까지 성형한 윤서를 경윤은 미처 알아보지 못한다. 여자에게 전혀 관심이 없던 지금까지와는 달리 수진에게 감정의 동요를 느낄 뿐이다. 수진이 윤서임을 알게 된 경윤은 극심한 혼란을 겪지만, 결국 자신을 인정하고 윤서를 받아들이기로 한다.
<차별금지법안>이 지난 2월 발의되었다가 4월 말 철회되었다. 해당 법안상 성적 소수자가 차별 금지 범위에 포함되면서 성적 소수자에 대한 논란이 새삼 뜨겁다. 문득 2007년 개봉한 영화 <가면>이 떠올랐다. 네티즌 평점은 7.8. 나름 상위권 수준이다. 반면 기자·평론가 평점은 3.0으로 중간치에도 못 미친다. 개인적으로는 별 넷. 8.0을 매긴다. 영화에 별을 줄 땐 단연 '메시지'를 제일의 기준으로 삼는다. 사회적으로 시사하는 바, 개인적으로 깨닫게 되는 바가 클수록 애정이 솟구친다. <가면>은 동성애자와 성 전환 수술자에 대한 이해의 폭을 넓혔다는 점에서 높이 살 만한 영화다.
동성애는 비정상?
한국기독교총연합회는 차별금지법 반대 입장을 표명하면서 성적 지향과 성 정체성을 문제 삼았다. 대국민 여론 조사 결과도 같은 맥락이다. 한국교회언론회가 성인 천 명을 대상으로 조사한 바에 따르면, 73.8%가 동성애를 비정상적인 사랑으로 생각하고 있었다. 지난 2월 발의된 <차별금지법>으로 다시 한 번 성적 지향과 성 정체성에 대한 논란이 도마 위에 올랐다. 쟁점은 '정상이냐 비정상이냐', '선천적이냐 혹은 후천적이냐' 하는 것이다. 차별금지법안에 대한 의견이 찬성 44.3%, 반대 52.3%로 팽팽히 맞서는 데 비해, 동성애에 대해서는 정상 21.3%, 비정상 73.8%로 눈에 띄는 격차를 보였다. 동성애에 대한 반대 여론이 차별금지법에 대한 여론를 압도한 것으로 해석된다.
※ 한국교회언론회 보도자료 Link
Q. 남성과 남성, 여성과 여성 간의 사랑을 의미하는 '동성애'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는가?
사랑과 폭력이 구분되지 않는 곳
한교회가 발표한 조사 목록 가운데 흥미로운 항목이 있다. 바로 군대 내 동성애에 관한 질문이다. 설문은 이렇게 묻고 있다. "최근 성소수자 차별 반대 시민단체들은 군대 내 동성애를 처벌하는 '군형법 제92조의 6항' 폐지를 위해 입법운동을 벌일 것이라고 밝혔는데요, ○○님께서는 이러한 군대 내 동생애를 허용하는 입법운동에 대해 찬성하십니까? 혹은 반대하십니까?" 결과는 '군대 내 동성애 처벌법 폐지'를 찬성하는 쪽 78.6%, 반대하는 쪽 17.9%.
대략 2:8의 비율로 동성애 일반에 대한 의견과 크게 다르지 않은 수치다. 문제는 여기에 있다. '사회'와 '군대 내' 동성애는 다른 시각으로 접근해야 한다. 이유는 두 가지다. 첫째, 군대란 강자의 횡포가 폭력으로 드러나기 쉬운 곳이기 때문이다. 성추행과 성폭행은 폭력의 일종이다. 강자의 횡포가 '군 내 합법적 동성애'에 가려져 피해자를 양산할 소지가 다분하다. 군대 내 동성애를 인정하게 되면 '사랑'과 '폭력'을 구분할 수 있어야 피해 사례를 막을 수 있다. 이름보다 계급을 먼저 외쳐 대는 군대에서 사랑과 폭력을 제삼자가 가리기한 쉬운 일이 아니다.
둘째, 외부 출입이 차단된 공간에 남성들만 모여 있는 집단이 군대이기 때문이다. 동성애자나 양성애자, 트랜스젠더 등 성 소수자들은 말 그대로 소수자인데다가 한국사회에서 그 자체로 인정 받지 못하고 있다. 소통 수단 역시 차단된 상태라 그들의 생각을 들어 볼 기회조차 없었다. '같은 성적 지향의 사람을 알아본다'는 정도가 일반적으로 알고 있는 그들에 관한 전부다. 이 같은 특성에 근거해 동성애자에 대한 기피 현상이나 비뚤어진 시선이 쓸데없는 걱정으로 해석되기도 한다. 하지만 군대 내에서는 얘기가 다르다. 외부와 단절된 공간에서의 계급 의식은 동질감과 배려심을 축소시킬 수 있다. 성적 욕구에 계급 의식이 더해지면 상대의 성적 지향에 대한 존중은 사라진 채 이기적인 실수를 범하게 된다. 실수를 만회하는 데 계급장과 폭력이 동원되면 상황은 더욱 더 끔찍해질 것이다.
가면 쓴 비극
비극은 영화 <가면>에서 여실히 드러난다. 학교에서 당했던 비난과 폭행에도 윤서는 더 씩씩해지려고 의지를 굳힌다. 하지만 선임 3명에게 동시에 성폭행 당하면서 결국 만신창이가 되고 만다. 저항은 폭력을 부르고 폭력은 성폭행으로 이어졌다. 그들에게는 반성의 기미가 전혀 보이지 않는다. 오히려 윤서를 가리켜 헤프다느니, 유혹하고 다녔다느니, 여전히 막말만 내뱉을 뿐이다. 성적 지향이 같든 다르든 성적 행위에는 반드시 상대에 대한 배려와 서로 간의 합의가 수반되어야 한다. 그렇지 않은 모든 행위는 곧 성추행, 성폭력, 강간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군대 내 가해자는 단순한 해프닝쯤으로 여기고 있다. 피해자 윤서에게는 개명과 수술을 감행할 만큼 결정적 상처를 남겼는데 말이다.
비극의 시작
영화 <가면>은 세 사람의 고통을 담았다. 자신의 성적 지향을 부정하는 경윤, 성 정체성의 혼란을 겪는 윤서, 그리고 윤서의 비극에 죄책감을 갖는 누나 혜서. 혜서는 경윤에게 '다른 사람은 몰라도 넌 그러면 안 되는 거 아니냐'고 다그친다. 경윤은 윤서의 마음을 느꼈고 자신의 감정을 읽었다. 그래서 더더욱 윤서를 밀어낸다. 고백은 장난이었다, 사랑은 남자랑 여자랑 하는 건데 니가 여자냐, 그렇게 외면한다. 비극은 이때부터였을지 모른다. 성 정체성에 있어서는 혼란스러웠지만 윤서는 적어도 자신의 성적 지향을 받아들였다. 경윤이 사회적 편견에 휩쓸리지 않고 자기 자신을 있는 그대로 인정했다면 이후의 비극은 일어나지 않았을지 모른다.
경윤은 시간이 흐른 뒤에도 수진과의 잠자리에서, 또 무의식 중에 윤서를 생각한다. 자신의 옛 이름을 부르는 경윤을 보면서 윤서는, 남자일 때 느꼈던 경윤과의 거리감을 여자가 되어서 또다시 실감한다. 경윤은 수진을 만나기까지 다른 여자를 만나 본 적이 없다. 관심조차 없었다. 과거 경윤이 자신과 윤서를 받아들였다면 어떻게 됐을까? 세상의 따가운 시선에 상처 받는 일도 많았겠지만, 적어도 둘이 있을 때만큼은 진정 행복할 수 있지 않았을까? 경윤과 '수진'은 남 보기에 참 훌륭한 커플이다. 하지만 정작 본인들은 진짜 모습을 감춘 채 겉도는 사랑을 이어 간다. 경윤과 '윤서'라면 남 보기엔 비정상적으로 보일지 몰라도 둘은 서로의 사랑을 만끽할 수 있지 않았을까?
'난 그런 이상한 놈 아니'라며 스스로 성적 지향을 수없이 부정하지만 윤서의 복수는 결국 경윤에 의해 이뤄진다. 군대에서 윤서를 괴롭힌 마지막 한 사람 강병식은 경윤의 손에 의해 살해된다. 자신이 쫓는 범인이 윤서임을 알았을 때, 사건이 윤서의 복수극임을 알았을 때, 윤서가 당했을 고통에 이성을 잃는다. 수진으로부터 위로 받고자 찾아가지만, 분노를 누르지 못하고 수진을 뒤로한 채 병식에게 달려가 윤서의 복수극을 제 손으로 끝낸다. 과거 경윤이 윤서를 외면하지 않았다면 일어나지 않았을 비극이다.
윤서와 경윤 옆에는 둘을 지켜보는 윤서의 누나 혜서가 있다. 성 정체성에 혼란을 겪는 동생. 그를 위해 아무 것도 해줄 게 없는 가족. 사소한 장난마저 죄책감으로 쌓인다. 성 소수자에 대한 사회적 편견이 만들어 낸 또 다른 피해의 그림자다.
혼란의 도가니
<가면>은 <평행이론>(2009)을 쓴 한증애 작가의 시나리오다. 드라마 <아이리스>와 그 극장판을 연출한 양윤호 감독의 작품이기도 하다. 성 소수자들에 대한 사회적 편견과 정신적·신체적 폭력, 당사자와 가족의 고통, 군대에서의 비극, 그리고 어느 한쪽도 택하기 어려운 내면의 갈등을 조금이나마 가늠해 볼 수 있는 영화다. 영화를 곱씹으며 동성애자를 바라보는 이성애자의 도리에 대해 다시 한 번 생각해 본다. 분명한 건 상대적으로 적은 성적 지향과 성 정체성에 대해 누구보다도 부정하고 싶은 건 다름 아닌 당사자 본인일 것이다. 바꿀 수만 있다면 누구보다 간절히 바꾸고 싶어 할 사람은 잔인하게 조롱하는 우리네가 아닌 그들 자신일 것이다.
동성애를 극도로 부정하는 기독교의 입장을 들어 보면, 그들을 인정할 경우 사회가 큰 혼란에 빠질 거란다. 동성 결혼을 합법화하자는 것도 아닌데 참 터무니없는 걱정들을 하신다. 인권 모독을 금하는 법이 사회를 얼마나 혼란에 빠뜨린다는 건지 되묻고 싶을 뿐이다. 진정한 혼란은 본인을 부정하게 만드는 사회, 소수자를 음지로 내모는 사회에서 비롯된다. 부당한 이유로 격리하고 배제하고 불이익을 가하는 사회야말로 가치관을 흐리는 '혼란의 도가니'다.
시나리오 메시지 MONZAQ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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