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해진 미래 - 조영태


22쪽
단순하게 말해 인구학은 사람이 태어나고 이동하고 사망하는 것, 이 3가지를 다룬다. 출생과 사망과 이동의 원인이 무엇이고 결과가 무엇인가를 보는 학문이다.

54쪽
한편으로 생각해보면, 애초에 부동산을 억지로 부양시키지 않았다면 오히려 출산율이 지금보다는 높아졌을지도 모를 일이다. 젊은 사람들에게는 '내 집 마련'이 너무 큰 부담이어서 이 때문에도 결혼을 꺼리고 있지 않은가.

134쪽
하다못해 서울시 안에서도 서초구에 거주하는 남성은 다른 구에 사는 남성보다 최대 5년까지 더 사는 것으로 나타났다. ...... 일단 서초구는 서울시에서 생활녹지 비율이 가장 높다. ...... 강남구는 '목적이 있는' 사람들이 많이 산다. 집값 또는 학군 때문에 이사 온 사람들이 많은데, 이들은 목적을 달성하고 나면 강남을 떠난다. 반면 서초구는 대대로 그곳에 살던 이들이 많아서 매우 안정적이고, 이동률도 낮고 노인 인구도 많다. 자신이 오래 속해 있던 공동체가 여전히 존재한다는 것이 사람들의 삶에 큰 안정성을 준다. ...... 전국의 200여 개 지자체 중 소위 파워엘리트, 즉 법조인, 언론인, 교수, 의사, 군장성, 은행 지점장 등이 가장 많이 사는 지역이 서초구다. 심지어 65세 이상 노인 중 대졸자 이상의 비율은 전국적으로 5%가 안 되는데, 서초구는 무려 45%다. 전 세계를 통틀어도 찾아보기 어려운, 말이 안 되는 예외적 사례다. 이런 요인들이 모두 모여 서초구를 한국 최고의 장수마을로 만들었다.

167쪽
그동안 우리나라가 추진했던 가족계획은 모두 '출산율이 낮아져야 부양할 아이가 적어져 부담이 줄어든다'는 논리였다. 그러다 지금은 반대로 노인이 많아지니 이들을 부양할 다음 세대가 많아져야 한다고 말한다. 이처럼 인구정책은 환경은 물론 한 나라의 발전정책과도 밀접히 연관된다.

183쪽
자국민이 늘어나지 않는다면 외국인의 유입을 대책으로 생각해볼 수도 있다. 고령화와 저출산 문제를 이미 겪은 이탈리아, 독일, 스페인, 일본 중에서 인구문제로 우리나라처럼 심각한 타격을 입은 국가는 일본뿐이다. 다른 나라는 어떻게 무사할 수 있었을까? '이주'가 있었기 때문이다. 출산율이 낮아도 유럽국가들은 EU로 하나가 되고 동유럽이 몰락하면서 외국에서 젊은이들이 유입되었다. 덕분에 유럽국가들은 저출산을 겪고도 인구구조가 크게 변화하지 않았다. (대신 인종 문제가 발생하고 있다.)

225쪽
산아제한의 대상과 주체는 주로 여성이었다. 출산을 통제하려면 성관계 시, 수정 시 또는 임신기간 중 조치를 취해야 하는데, 여기에는 사실상 남자가 전혀 중요하지 않다. 그래서 모든 통제는 여성을 대상으로 했다. 이는 애초에 여성이 출산에 절대적인 존재이기 때문인데, 이 인식이 지나친 나머지 '원하는 출산'을 못할 경우 모든 비난을 여성이 받는 일도 허다했다. ...... 아이가 건강하게 태어나지 않아도 여자 책임이고, 심지어 피임의 책임도 여자가 졌다. 남성이 피임에 참여하기 시작한 것은 에이즈 공포가 세계를 휩쓴 1980년대 이후의 일이지만, 지금도 한국은 남성이 피임하기보다는 여성이 경구피임약을 복용하는 경우가 더 많다. 

226쪽
출산이 어떻게 결정되는지 보는 지표 중 하나로 HDI, 즉 인간개발지수Human Development Index라는 것이 있다. UN개발계획UNDP이 각국의 교육수준, 1인당 국민소득, 평균수명, 여성의 사회참여 등을 조사해 전반적인 삶의 질을 평가하는 지수다. ...... 의미심장한 점은 HDI 지수 안에 여성들의 교육이나 사회참여 등 여성의 처우에 관한 항목이 다수 포함돼 있다는 사실이다. 즉 여성의 전반적인 처우를 개선하면 출산율이 올라갈 수 있음을 시사한다. ...... 고용 불안, 높은 집값, 육아휴직이나 보육비 등의 인센티브가 부족한 점 등이 주로 거론된 출산의 '장애요인'이었다. 그 후 양성평등에 기반을 둔 휴가제도, 잘 정비된 공보육제도, 육아의 사회화 등 출산과 양육이 직장생활을 하는 데 걸림돌이 되지 않도록 제도를 꾸준히 정비해온 결과 출산율이 다시 올라가는 결실을 맺었다.

235쪽
기성세대는 '하나둘 낳다 보면 거지꼴을 못 면한다'라는 말에 세뇌되어 살았다. 국가가 이성적으로 국민을 설득한 것이 아니라 감성에 호소 혹은 협박한 것이다. 더 큰 문제는 정부가 산아제한을 '올바른 것'이라 선전했다는 것이다. ...... '시대가 어느 시대인데 애를 셋이나...' 같은 식으로 접근하다 보니 저출산이 문제가 된 오늘날에도 '셋은 너무 많다'는 과거의 굴레에서 벗어나지 못하는 것이다. 교육은 몇 십 년이 지나도 사람의 행동에 영향을 미친다. 그러므로 감성적인 선전선동을 하지 말고 토론하고 설득하는 과정을 거쳐야 하는데, 그러기 위해서라도 인구학적 관점은 필요하다. 

236쪽
인구를 둘러싸고 신종 님비현상이 나타나 국가와 개인의 이해관계가 상충하고 있는데, 인구교육을 한다면서 애국자를 만들려 하면 효과가 있을까. ...... 국가가 먼저 투자해서 아이 키우기 쉬운 사회를 만들어줘야 한다. ...... 이러한 이유 때문에 나는 저출산을 복지의 관점으로 바라보는 입장에 비판적이다. ...... 저출산 해법을 복지가 아닌 투자로 보기 시작하면 관련 정책 또는 국민에게 일방적으로 '잘해줄게'라고 말하며 비용을 쓰는 프레임에서 벗어날 수 있다. 그보다는 '나중에 내가 힘들 때 네가 도와줘'라고 상호부조하는 형태가 될 것이다. 

242쪽
결국 합리적인 선택은 다음 세대에 대한 투자와 배당을 모두 사회가 담당하는 것이다. 내가 주장하는 아동에 대한 '사회투자'가 바로 이것이다. 

261쪽
통계청에서 5년에 한 번씩 미래 인구를 그려놓은 '장래인구추계'를 발표하니 관심 있게 그 통계를 보면 도움이 될 것이다. 

265쪽
한 사회에서 직업적 지위는 경제력, 명예, 만족감 등에 의해 정해지며, 이것들을 결정하는 조건은 희소성, 전문성 그리고 안정성이다. 예나 지금이나 부모들이 자식들에게 원하는 직업들을 생각해보면 이 3가지 조건 모두 혹은 적어도 하나라도 충족하는 것들이다. 그런데 과연 그 직업들이 미래에도 그러할지 잘 생각해봐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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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몽자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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