휴대전화 통화연결음, 일명 컬러링을 언제 바꾸었는지 기억이 까마득하다. 10년쯤 되었으려나. 중간에 바꿔볼까 싶어 몇몇 노래를 돌려 듣다 그만두었다. 이건 분위기가 너무 처져서, 이건 처음부터 끝까지 사랑 타령이라서, 이건 과격한 단어투성이라서 등등 꺼림칙한 구석도 가지가지. 마땅히 대체할 곡을 찾지 못해 그대로 둔 것이 하세월이다. 기기가 고장나 폰을 새 걸로 교체하면서도 컬러링만은 건드리지 않았다. 곡은 살아남았다. 짐짓 허무한 이유로.

 

영화 <귀여운 여인>의 OST 'It must have been love'. 딱히 인생곡이랄 건 없다. 영화에서 엄청난 감동을 받아 죽자사자 사수한 곡 또한 아니다. 영화도 별로, 가사도 별로였지만 멜로디가 좋았고 제목이 좋았다. '그건 사랑이었다'는 므흣한 회상 한마디. 나쁘지 않아 컬러링 삼았고, 시간이 흘러 박제가 되었다. 대체할 후보들이 하나둘 눈곱만 한 흠이 있었기에, 그러니까 완벽하지 못했기에, '백퍼' 마음에 들지 않았기에 10여년 전 그 곡이 여전히 '자리'를 차지하고 있는 셈이다. 도긴개긴, 민망하게.

 

난 보수가 싫다. 비주류, 소수자, 다양성을 중시하기에, 그들의 목소리를 존중하고 귀기울여 듣고 알려야 한다는 생각이다. 특별히 더 나을 게 없다면 지금까지 해오던 대로 하자, 대안에도 문제가 있을 수 있으니 변화는 가능한 한 미루기로 하자는 보수의 주장은 영 구리다. 기존 체계에서도 먹고살 만하니 위험성이 존재하는 도전 따위 개나 줘버리라는 태도는 비겁할뿐더러 완벽한 대안이 아닌 바에야 현상 유지가 최선이라는, 내일 당장 기후변화로 일상이 마비되는 건 아니지 않냐는 주장은 턱없이 안이하다.

 

이해할 수 없었다. 한심하고 답답했다. 그랬던 보수의 성향을, 며칠 전 불현듯 내 안에서 발견했다. 순간, 흠칫했다. 이제야 그들을 이해할 수 있게 된 건가 싶어 반가우면서도 동시에, 버젓한 능구렁이의 존재가 끔찍해 소름이 돋았다. 사안마다, 상황에 따라 개인의 입장은 진보와 보수를 오갈 수 있다. 그럼에도, '그건 분명 사랑이었다'는 말만 되뇌는 모습이란! 실로 비겁하고 안이하지 않은가. 이건 이래서 싫고 저건 저래서 싫으니 그냥 이대로 가만히 있을래, 볼썽사납게 버티고 앉은 꼬락서니라니.

 

컬러링을 그대로 두든 하루에 열두 번을 바꾸든 대수일까. 생계가 걸린 일도, 목숨이 달린 일도 아니다. 지극히 사소한 일상 가운데 하나일 뿐이다. 그럼에도, 성찰의 기회로 삼기에는 부족함이 없다! 고수를 고집하는 보수. 결코 그들을 이해할 수 없다는 외침을 잠시 멈추고, 10년 전 컬러링을 부여잡고 있는 나 자신과 견주어본다. 작은 사안에 대해서나마 나에게는 그런 성향이 없는지, 있다면 어떤 배경 때문인지, 그 배경을 보수를 이해하는 접점으로 삼을 만한 여지는 없는지 따져볼 일이다. 

 

세월호 참사 이후에, 이태원 참사 이후에 또다시, 뉴스 앞을 기웃댄다. 오늘도 내일도 답답한 뉴스들뿐이다. 보수도, 진보도, 허투루 쓰인다. 컬러링에 두 분의 목소리를 담고 싶다. 김누리 님, 하종강 님. (역시 마무리는 생뚱맞아야 제맛, 아니겠습니까!)

 

 

 

Posted by 몽자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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