화장실에서 양치하느라 세면대에 머리를 박고 용무에 집중하고 있는데 뒤에서 어느 분이 일갈한다. 

"여자 화장실이에요!"

 

소스라치게 놀랐지만 최대한 교양 있고 예의 바르게, 하지만 따끔하게 지적하자 마음 먹은 듯 들린다. 놀라게 해 죄송스런 마음이 없는 것은 아니지만 억울함도 같이 치민다. 키는 168센티미터. 남자 키로도 여자 키로도 자주 볼 수 있다. 포털사이트에서 '숏컷'이라 검색했을 때 뜨는 이미지보다 '군대머리'를 입력하면 더 쉽게 가까운 이미지를 찾을 수 있을 정도의 짧은 머리카락. 긴바지, 그리고 운동화. 이런 차림 때문에 여자 화장실을 잘못 찾은 남자로 보였던 걸까. 이 점이 억울하다. 여자도 얼마든지 장착할 수 있는 차림, 모양새 아닌가.

 

며칠 뒤 그날의 죄책감과 억울함을 다시 불러일으키는 장면 목도. 화장실 문짝에 '여자화장실'이 새로 붙었다. 그날, 순간적으로 나를 남자로 착각했지만 이내 돌아서서 '아, 여자였나?' 생각했을지도 모른다고 희망 섞인 짐작으로 씁쓸함을 혼자 달랬건만, 진정 기겁하여 '남자들! 얼씬도 말거라!'를 푯말에 담아 붙이다니, 몸둘 바를 모르겠다. 이토록 짧은 머리를 고집할 거라면 치마라도 입고 다니며 '여자입니다'라고 친절한 설명을 드려야 하나, 귀걸이나 립스틱으로나마 성별에 팁을 드려야 하나, 별 시답지 않은 고민이 꼬리를 문다.

 

한편, 잼버리 영내 여자 샤워장에 나타났다는 남성 지도자의 소식이 떠오른다. 한창 문제가 되고 있는 여자화장실 내 몰카 사건도 소름 돋게 수두룩하다. 때가 때인지라, 여자들은 화장실에서 불안하고 경계심이 솟구칠 수밖에 없다. 공감한다. 나도 여자다. 그래서 더 안타깝다. 몰지각한 일부 남자들, 범죄자들 때문에 여자들의 스타일에 '제약'이 는다. 공중화장실에서 다른 여자들을 안심시키기 위해서라도 여자로서의 표식, 귀걸이, 스카프, 핑크색 마스크 하나쯤은 매달아 줘야 하나 고민하게 되는 현실. 일차적인 피해자들은 말할 것도 없거니와 나같은 스타일을 픽한 선택러들의 원망받이도 그 놈들 몫이다. 

 

나의 뒷모습을 보고 놀란 이들은 잘못이 없다. 2년 넘게 사용하던 공공화장실 문짝에 '여자화장실'을 떡하니 붙인 이도 잘못이 없다. 다만 그 뒷모습을 보고 남자라고 생각할 수밖에 없을 만큼 우리 사회에 남녀의 외양 구분에 구식 경계선이 자리잡고 있다는 점이 상당히 아쉽다. 어떻게 여자임을 '멘트 없이' 알릴 수 있을까 궁리하는 와중에 장신구, 화장품, 핑크색을 떠올린 나 또한 그 나물에 그 밥이다. 다양한 외양이 설쳐주길 바랄 뿐이다. 167센치미터에 58킬로그램, 거기다 새하얀 얼굴. 찜질방에 가면 남성복과 여성복 중 무얼 건네야 할지 고민하게 만드는 현재 배우자의 외양이, 그래서 소중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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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몽자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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