만약 우리의 언어가 위스키라고 한다면 - 무라카미 하루키

# 스코틀랜드 


43쪽
증류소마다 나름대로의 증류 레시피를 가지고 있다. 레시피란 요컨대 삶의 방식이다. 무엇을 취하고 무엇을 버릴 것인가에 대한 가치 기준과도 같은 것이다. 무언가를 버리지 않고서는 아무것도 얻을 수 없다.​

54쪽
"생굴에다 싱글 몰트를 끼얹어 먹으면 맛이 기가 막혀." 하고 짐이 가르쳐 주었다. ...... 갯내음이 물씬 풍기는 굴맛과 아일레이 위스키의 그 개성 있는, 바다 안개처럼 아련하고 독특한 맛이 입 안에서 녹아날 듯 어우러진다.

58쪽
"우리는 장례식에서도 위스키를 마시지" 하고 아일레이 섬 사람은 말한다. "묘지에서 매장이 끝나면, 모인 사람들에게 술잔을 돌리고 이 고장에서 빚은 위스키를 술잔 그득 따라주지. 모두들 그걸 단숨에 비우는 거야. 묘지에서 집까지 돌아오는 춥고 허전한 길, 몸을 덥히기 위해서 말야. 다 마시고 나면, 모두들 술잔을 바위에 던져서 깨버려. 위스키 병도 함께 깨버리지. 아무것도 남기지 않아. 그것이 관습이거든."
아이가 태어나면 사람들은 위스키로 축배를 든다. 그리고 누군가 죽으면, 사람들은 아무 말 없이 위스키 잔을 비운다. 그것이 아일레이섬이다.

63쪽
번잡한 곳에서 마시기보다는, 낯익은 방에서 늘 쓰던 술잔으로 혼자 차분히 마시고 싶은 술이다.

69쪽
"대부분의 사람들은 싱글 몰트는 햇수가 오래될수록 맛있다고 생각하지. 하지만 그렇지 않아. 시간이 지나면서 얻는 게 있으면 잃는 것도 있게 마련이거든. 증류를 해서 더해지는 것이 있는가 하면 덜해지는 것도 있어. 그건 다만 개성의 차이에 지나지 않아."

 

# 아일랜드

78쪽
아일랜드의 아름다움이 우리에게 내미는 것은 감동이나 경탄보다는 오히려 위안과 진정에 가까운 것이다. ...... 이 나라에 있으면, 자신도 모르는 사이에 말투나 걸음걸이가 조금씩 느려진다. 하늘을 바라보거나 바다를 바라보는 시간이 차츰 길어진다.

118쪽
내가 경험한 바로는, 술이라는 건 그게 어떤 술이든 산지에서 마셔야 가장 제맛이 나는 것 같다. 그 술이 만들어진 장소에 가까우면 가까울수록 좋다. ...... 산지에서 멀어질수록 그 술을 구성하고 있는 무언가가 조금씩 바래지는 듯한 느낌이 든다. 흔히 말하듯이 "좋은 술은 여행을 하지 않는" 법이다. ...... 위스키를 마시면서 내가 늘 머릿속에 떠올리는 것은 저 스코틀랜드의 작은 섬 풍경이다. 내게 있어서 싱글 몰트의 맛은 그 풍경과 깊이 연관되어 있다. ...... 그러한 풍경과 결부되면서, 술은 내 안에서 본연의 향을 생생하게 되찾아간다.

119쪽
그럴 때면, 여행이라는 건 참 멋진 것이구나, 하는 생각이 새삼스레 든다. 사람의 마음속에만 남는 것, 그렇기에 더욱 귀중한 것을 여행은 우리에게 안겨 준다. 여행하는 동안에는 느끼지 못해도, 한참이 지나 깨닫게 되는 것을. 만약 그렇지 않다면, 누가 애써 여행 같은 걸 한단 말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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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몽자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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