숲속의 자본주의자 - 박혜윤

5쪽
열심히 사는 것과 의미 있게 사는 것은 다르다.

20쪽
돈을 많이 벌 필요가 없기에 돈과 즐거움이 하나된 삶의 방식을 만들 수 있었다. 한마디로 우리가 즐거울 만한 일을 통해서만 돈을 버는 것이다. ...... 이제 우리의 일상은 인내하며 생산하는 것과 소비하는 즐거움으로 나뉘지 않는다. 생산을 하면서 즐거울 수 있는 일을 한다.

31쪽
블랙베리를 따는 일의 의미는 그 열매가 몸에 좋고 맛이 좋아서가 아니라 우리가 딴 블랙베리의 양이 얼마나 초라한지 몸소 경험하는 데 있다.

35쪽
나는 오늘도 내 생존에 필요한 최적의 쾌적함과 행복의 균형점을 찾으면서 산다. 따라서 전기도 쓰고, 비닐 봉투도 쓰지만 죄책감을 느끼지도 않고, 그렇다고 "나는 그나마 남들보다 훨씬 조금 쓰는 거야"라고 생각하지도 않는다. 환경을 지키는 사람과 파괴하는 사람이 따로 있다고 생각하지 않게 됐다. 공장에서 열심히 음식이 만들어지는 것도 나의 행동의 일부일 것이다. 우리는 모두 연결되어 있으니까. 우리 모두의 행동이 합쳐져서 인간의 멸종을 부른다면 그것도 지구 전체에게는 더 좋은 일일지 모른다. 하지만 그런 일은 원치 않으니 최선을 다해서 나의 전략대로 열심히 살아남으려고 노력한다. 그것이 어쩌다 보니 이런 모습이 됐다. 오늘 음식을 먹고, 그것이 내가 아닌 무언가와 연결되는 일임을 가장 열심히 인식할 때, 나는 비로소 살아 있다.

40쪽
비교가 무의미하다는 것은 아니다. 다만 비교는 우위를 가르기 위한 것이 아니라 내가 현재 가진 것의 풍부한 의미를 되살리기 위한 것이 되어야 한다. 돈 역시 마찬가지다.

43쪽
똑같이 돈을 적게 쓰더라도 나는 저축을 목표로 하지 않는다. 돈이 미래의 가치로 전환될 거라고 믿지 않으니까. 내 돈은 아니지만 이 세상에 늘어난 돈을 나의 만족을 위해 소비한다. 이 세상에 축적된 농업 기술력, 전 세계가 연결되면서 늘어난 다양성(빵이나 치즈의 맛, 멕시코 향신료 등)을 즐긴다. 

48쪽
대마초를 피우는 등의 행위는 우리가 흔히 상상하듯이 일탈하려는 시도가 아니다. 오히려 어떤 사회의 일원이 되어가는 순응의 과정이다. 나에게 커피도 그랬다. ...... 그간 커피에 쓴 돈이며 시간이며 정성이 하나도 아깝지 않았다.

55쪽
술은 말하자면 행동중독의 하나였던 것 같다. ...... 근래 연구 결과들에 따르면 행동중독이 뇌에서 작용하는 방식은 기존의 중독들과 별다르지 않다. 

56쪽
밤이 되어도 우리는 이제 널브러질 필요가 없었다. ...... 그냥 하루 종일, 매일 널브러져 사는 것이다. ...... 아무것도 안 하다 보면 무언가 하게 된다. 그냥 누워 있으려고 했는데 빵도 굽고 콩만 넣은 된장도 만들고, 글도 쓰고 책도 읽고, 애들이랑 시시한 장난도 치고 농담을 하고, 식물 공부도 한다. ...... 하루를 충실하게 살아야 한다고 의지를 다졌던 예전보다 더 하는 일이 많아졌다.

62쪽
꽤 오랫동안 유기농에 집착했다. ...... 그러면서 알게 된 건 유기농 인증의 기준이 돈을 더 주어가며 먹을 만한 것이 아니라는 것이었다. ...... 비료를 주지 않고 야채를 길러보면 안다. 어떻게 해도 시장에서 팔리는 상품들의 모양새로는 절대 자라지 않는다. ...... 과연 야생에서 살아남은 녀석들답다.

64쪽
가족끼리 모여 먹은 할로윈 캔디가 나중에 당뇨병의 원인이 될지, 가족과 보낸 즐거운 시간이 면역력을 높여줄지, 알 수 없다. 삶이 그렇다. 그 불확실함을 사랑할 수 있으면 그걸로 됐다고 생각한다. 언제가 됐든 몸은 아프기 시작할 것이다. 후회되지 않을 만큼 이 시간을 충분히 만끽하는 것이 목적이다. 나쁜 일을 방지하려고 사는 게 아니라, 나쁜 일은 생기겠지만 그래도 삶의 구석구석을 만끽해서 시간을 되돌린다 해도 그렇게 살았을 삶을 사는 게 목적이니까.

79쪽
진짜 원하는 맛이 무엇인지를 알면 다른 부수적인 것들은 포기할 수 있다. ...... 그러니까 욕망에 항복하기 위해선 자신의 욕망이 어떤 건지를 알아가는 과정이 선행되어야 한다.

86쪽
하지만 적어도 우리의 욕망을 극대화시켜 거의 무한대의 소비를 부추기는 현대의 자본주의 사회에서는 나만의 고유한 욕망과 욕구를 정확하고 정밀하게 아는 것이 오히려 소비의 피곤을 줄여준다. 내가 진짜 원하는 게 아니라면, 아무리 싸도 갖지 않는다. 아무리 사회적으로 칭송하는 가치라도 내가 원하지 않으면 추구하지 않는다. 넘쳐나는 지식 사이에서 내가 정말 궁금해서, 알면 내게 기쁨을 주는 것만 파고든다. 그렇게 나의 욕망을 소중하게 탐구하다 보면 나와 다른 욕망을 가진 사람들에게도 점점 너그러워지는 나를 발견한다.

88쪽
소로는 <월든>에서 다음과 같은 일화를 들려준다. ...... 나도 섬세한 바구니를 짰다. 그러나 내가 만든 바구니는 누구도 사고 싶어 할 만한 가치가 없었다. 그러나 내게는 이 바구니를 짤 만한 충분한 가치가 있었다. 그래서 사람들이 내 바구니를 사게 만드는 방법을 궁리하는 대신, 내 바구니를 팔지 않고도 내가 살아갈 수 있는 방법을 연구했다.

100쪽
서로가 사고 싶은 바구니를 가진 엄마와 딸로 만나지 못한 것이 안타깝긴 하지만, 거기까지다. 엄마가 내게 상처 주었다는 생각도, 내가 엄마에게 미안해하거나 고마워해야 한다는 생각도 버렸다. 엄마는 자기 방식대로 엄마이고 나는 나의 방식대로 딸일 뿐이다. ...... 좋은 엄마가 되어야겠다고 생각하지 않는다. 내가 생각한 '좋은 엄마'가 아이들에게도 좋을지 모르겠기 때문이다. 내 방식대로 엄마이면 그만이다. 그것이 내가 할 수 있는 전부다.

106쪽
누구든 한 번의 인생을 사는데, 산다는 것은 매 순간의 선택을 쌓아가는 일이다. 선택이란 오로지 하나를 택하는 것인데 자연히 버려진 무한히 많은 가능성이 생긴다. 가지 않은 길 말이다. ...... 인생은 그저 사는 것이지 '잘' 살아야 하는 숙제가 아니다. 아무도 '잘' 살 수가 없다. ...... 사회적인 기준으로 성공을 거둔 사람조차 가지 않은 길에 대한 회한과 타협이 있을 수밖에 없다는 뜻이다.

109쪽
아이에게 나의 지식, 나의 경험을 가르치지 않자, 아이는 내가 젊음에서 배우려는 태도를 배우기 시작했다. 부수적인 효과다. 호기심과 감탄으로 세상을 보고, 삶이 보여주는 매 순간의 가능성과 선택에 자기 자신을 활짝 열어놓는 태도 말이다. 어느 나이라도 상관없이 취할 수 있는 태도다. 누구에게도 아무것도 배우지 않고도 내 삶을 부정하지 않고도 겸손할 수 있다.

113쪽
"우리에게 돈이 무한정 있다고 해도, 아이 키우는 것도 남한테 맡기고, 청소도, 빨래도, 요리도 맡기고, 생각하는 것도 맡기고, 그러면 우리가 왜 사는 건데?"

115쪽
비우고 없애기 위한 우리의 의식적인 살핌은 사실 더 많은 의미를 채우는 것이다. ...... 실제로 비우기 위해 비운 물건들, 관계들, 습관들은 저절로 다시 채워졌다. 하지만 나의 현재에 중요한 의미, 맥락을 이해하고, 나만의 삶을 가꾸겠다는 목표를 가지면, 조금씩 나에게 맞는 것들만 남는다.

127쪽
막연히 '돈 벌기 힘들다'가 아니라, 내가 하고 싶은 일을 고집하는 대가로 돈을 적게 벌거나, 돈을 쓰는 사람에게 맞춰 많이 벌고자 하거나, 내가 선택하는 것이다. 무엇을 선택하든 내가 결정하는 순간 이미 능동의 세계로 넘어간다.

141쪽
쾌락주의 철학이 끈질기게 살아남은 것은 도저히 부정할 수 없는 인간의 진실을 담고 있기 때문일 것이다. 행복이든, 즐거움이든, 쾌락이든 즐거운 기분을 느껴야 좋은 삶이라는 간단한 이치다. 그런데 잠시 즐겁고 허무해지는 대신, 이 기쁨을 지속적으로 느끼기 위해 무엇을 해야 할까? 그것은 역설적이게도 절제였다. 하지만 수천 년간 이 철학의 진수는 외면당하고, 여전히 쾌락주의는 많은 사람들에게 무책임과 방탕을 뜻한다.

147쪽
돈으로부터의 자유는 돈을 끝없이 가져서 나의 인간다운 특성으로부터 달아나 완벽한 권력자가 되는 것도 아니고, 돈을 아예 버려서 내가 인간으로서 소비하며 느끼는 즐거움을 부정하는 것도 아니다. 돈 그 자체가 목적이 아니라 돈을 내가 즐거움을 느끼는 다른 가치로 무한히 전환할 수 있을 때 비로소 자유로워진다.

155쪽
내 돈 주고 산 플라스틱 용기들은 실상 모든 비용을 내가 다 치른 것이 아니다. 쓰레기 봉투를 샀다고 쓰레기에 대한 진짜 비용을 다 지불하지 않았듯 말이다. ...... 이렇게 내 돈으로 문제를 다 해결했다는 착각과 그 만족감은 나 자신을 소외시킨다. ...... 우리는 노력해야 한다. 실패하기 위해서. 그리하여 이렇게까지 애써도 나 혼자 힘으로 살아가지 못하고 기대야 한다는 것을 깨닫기 위해서.

162쪽
사실과 의견을 구분하는 건 여러 모로 공포를 줄여준다.

166쪽
타인에 대한 내 반응이 내가 누구인지 가장 정확하게 알려준다.

172쪽
내가 나 스스로를 평가하기 위해 다른 사람이 필요하다는 사실이 '지옥'이라고 사르트르는 설명한다. 생존을 위해 공기와 물이 필요하듯이, 끊임없이 타인에게 기대어야 한다는 그 사실. 우리는 이 지옥 속에서 살아가야 한다. 타인이 나를 괴롭혀서가 아니라 내가 나로 살아가기 위해서다.

179쪽
그렇다면 나는? 남들이 보기에 좋아 보이지만, 내 몸에는 꼭 맞지 않는 코트를 솔기를 당겨가며 입고 있지는 않는가?

180쪽
소로는 지극히 개인적인 일상은 남의 눈에 이상할 수밖에 없다는 것 역시 알고 있었다.

183쪽
베스트셀러 작가인 말콤 글래드웰은 <조선일보>와의 인터뷰에서 베스트셀러를 연달아 써내는 비법 아닌 비법을 들려주었다. 그는 오히려 독자들의 기대에 대해 생각하지 않으려 한다고 말했다. 그는 자신이 관심을 가지면 다른 사람들도 그 주제에 흥미를 느낄 거라는 확신이 있다며, 창의적인 사람들이 슬럼프에 빠지는 큰 이유 중 하나가 타인의 기대에 너무 집중하는 데 있다고 진단했다.

208쪽
심리학에서는 이를 '역사의 종말 환상End of History Illusion'이라고 한다. 우리가 지나온 과거를 볼 때는 모든 것이 극과 극으로 변해왔다는 것이 명백하다. 그런데 막상 우리는 우리 자신과 이 시대가 마치 영원할 것처럼 행동한다.

242쪽 
분노는 구체적으로 어떻게 다스릴까. 어떤 계기로 인해, 분노와 관련한 뇌의 화학물질이 분비된다. 그러면 몸이 느낀다. 이 최초의 화학반응이 혈류에서 완전히 빠져나가는 데에 90초가 걸린다고 한다. 90초가 지나도 계속 분노를 느끼는 것은 이 화학반응을 지속시키겠다는 나의 선택이다. 이것을 아는 것이 중요하다. ...... 이 시간 동안 나 자신의 몸의 반응을 세심하게 알아차리고 그 시간이 지나면 선택권은 온전히 내게 있다고 스스로에게 말하는 것이다. 또 하나 중요한 것은 몸의 느낌을 존중하는 것이다. ...... 그 시간 동안 나 자신을 자책하지도 않고 나를 분노케 한 상황을 이해하려 하지도 않고 그저 몸을 가진 동물로서 있는 그대로 분노를 느낀다. 그러면 이 순간조차도 꽤나 달콤하다.

246쪽
중요한 것은 연결 회로다. ...... 나는 그런 감정을 품는 내가 두려웠다. 그래서 새로운 회로를 만들었다.

250쪽
해보고 나서야 나는 1면에 올라가는 것보다 쓰고 싶은 것을 쓰는 게 더 중요한 사람이란 것을 알았다. ...... 내가 아는 사람이 나만 볼 수 있는 것들을 특별하게 좋아해주는 것 말이다. 나는 광범위한 영향력을 갖는 것보다, 이런 경험에서 나의 가치를 확인한다는 것을 깨달았다. ...... 4년 만에 직장을 미련 없이 그만둔 것도 이런 깨달음 때문이었다. ...... 내가 가진 약간 독특한 시각을 칭찬해주는 사람이 세상에는 존재한다는 ​것, 그 사람의 숫자는 굉장히 작아도 상관하지 않는 사람이 나라는 것 말이다.

260쪽
나 자신도 납득할 수 없지만, 그냥 끌리는 것이 있다. 나의 계산으로는 불가능하고, 심지어 나의 취향에도 맞지 않고, 앞으로 나에게 쓸모 있을 것 같지 않은 그런 일이나 주제들에 참을 수 없는 끌림을 느낄 때, 나는 항복한다. ...... 이런 항복의 습관을 들이면, 나 자신의 깊은 욕구에 충실하게 반응하는 습관이 든다. 이렇게 살다 보면 삶이 어떻게 풀리든 간에 남이나 사회를 탓하지 않게 된다. 그리고 인생의 매 순간이 풍요롭고 즐겁다.

269쪽
욕구 자체가 나를 힘들게 하는 게 아니라, 욕구가 어떤 선을 넘어서도 계속됐을 때가 힘들다는 것을 살면서 배웠다. ...... 빵 굽기도 새벽부터 밀가루를 반죽하고 밤낮으로 반죽을 주시하며 만드는 게 힘든 게 아니라, 최고의 빵을 욕망할 때 힘들다. 돈을 못 벌어서 힘든 게 아니라, 돈이 언제나 부족할 거라는 미래의 전망 때문에 더 힘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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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몽자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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