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8세상 - 김성윤


11쪽
그러나 공부의 반대말이 '노는' 것이 아니라 '널브러진' 것으로 바뀌었다는 사실을 사소하다고 볼 수 있을까.

11쪽
역설이 아닐 수 없다. 한국사회가 발전하고 있다는 믿음과 달리, 10대들의 삶의 조건은 전체주의화되고 있기 때문이다.

13쪽
필자가 좋아하는 어떤 구절을 인용하자면, '불가능하지만 불가피하기 때문에 해야 하고, 불가피해서 하고 있지만 불가능하다는 것을 알아야 한다.'

91쪽
사실 논문작성 자체가 가진 학문적 개방성은 여태껏 있어온 어느 입시전형보다도 강력하다. 개방성 수준에서 보면 대강 '학력고사<수능<논술<논문' 정도가 되지 않을까 싶다. 논술만 해도 주어진 문제를 해결해야 하는데, 논문은 스스로 문제를 만들어 그 답을 구하는 과정이니 얼마나 매력적인가.

92쪽
때로는 질문을 잘 던졌더라도 문제가 잘 풀리지 않을 수 있다. 그래서 연구에 실패할 수도 있다. 그리고 경우에 따라서는 연구실패가 하나의 논문이 될 수도 있다. 이렇게 저렇게 했더니 어떤 결론도 얻어낼 수 없더라는 것도 학문적으로는 의미가 있을 수 있기 때문이다. ...... 그러나 이 친구들의 강박적 시간은 실패를 결코 용납하지 않는다.

95쪽
애초에 순수한 것이었고 또한 당위적으로 그래야 할 '사회적'인 봉사와 '정치적'인 참여가 어떻게 해서 스펙과 같은 '자본'으로 치환되는 것일까.

97쪽
여기서 우리의 10대들은 '스펙=나한테 이로운 것'이라는 명분으로 원래 국가가 해야 할 일의 일부를 떠안는 셈이 된다. 결국 사정이 이러하다면, 덕성과 참여를 진작한다고 하지만 정작 사회성과 시민성은 더욱 나락으로 떨어지는 것이 아닐까.

116쪽
넓게 보자면, 청소년들에게 기대되는 사회적 규범, 즉 '모름지기 청소년은 이러저러해야 한다'는 식의 규범은 그 자체로 상징적이기 때문에 그에 맞서는 위반행동도 보통은 상징적으로 일어나는 경우가 많다. 교복을 리폼하고 머리에 염색물을 들이고 수업시간에 '땡땡이'를 치며 그들은 소망한다. 자신들에게 금지된 것을.

126쪽
어른들 역시도 술 담배가 몸에 해롭다는 것쯤은 다 알면서 하지 않는가. 그런데도 왜 술 마시고 담배 피우나. 건강을 넘어서는 뭔가가 있기 때문 아닌가. 같은 사람인 이상 10대들도 마찬가지다. 그녀들에게도 건강과 맞바꿔도 무방한 뭔가가 있다.

127쪽
"화장을 왜 해요?" 돌아오는 대답 역시 "그냥"이다.

177쪽
그런데 한번 더 생각해보면, 진짜 문제는 중2병에서 멀어질 때 나타나는 것이 아닐까 싶기도 하다. 이렇게 허세의 시기를 졸업하고 중2병과 거리를 두는 순간, '역설적이게도' 우리는 자기 자신이 그 시절 그렇게 혐오했던 평범한 속물로 사회화된다. 이제부터는 과소화된 자의식만 가지고 죽은 지식을 답습하는 입시-기계가 되는 것이다. 현실을 넘어서고자 했던 희구는 단지 허세나 무개념으로 치부한 채 말이다.

190쪽
확실히 이건 난센스다. ...... 한마디로 말해, 우리가 다문화를 배우는 게 아니라 '다문화'에게 우리를 가르치려 든다는 것이다. ...... 인권이란 이름으로 이주민을 추방하고자 하는 것이 극우적 신인종주의라 한다면, 이 친구들을 가엾게 여기고 돌보려는 태도는 신인종주의의 또다른 형태로서 인간주의적 신인종주의인 셈이다.

201쪽
청소년은 왜 밝혀져야 하고 그들의 문제는 왜 해결돼야만 하는가. 당연하게도, 그래야만 현재의 정치경제 체계가 유지되기 때문이다. 

206쪽
이른바 심리학주의라 일컫는 이런 경향 때문에 문제의 역사적 내용은 빠지고 오로지 인간 개인의 행동만 남는다.
우리 사회가 다이어트를 강요하든 말든 그건 다이어트에 집착하는 네 잘못이며, 도무지 왜 공부를 해야 하는지 모르겠어도 그건 공부 방법이 글러먹은 네 잘못이다.

206쪽
퀴즈를 내보겠다. 1974년 고혈압 환자가 갑자기 3배나 늘었다. 그리고 2003년에도 10배나 급증했다. 왜 그랬을까? 한국인들의 식습관이 서구화돼서? 바쁜 새회생활 때문에 건강관리에 둔감해져서? 답은 간단하다. 고혈압 기준치가 낮아졌기 때문이다.

212쪽
한 가지 확실한 것은 우울증 담론이 청소년들의 특정한 정서 중에서도 '불안'과 '불만'을 '우울'로 대체하는 데 탁월한 효과가 있다는 것이다. 너 밥상에 불만 있니? 사회에 불만 있니? 그건 네가 우울해서 그런 거란다. 우리한테 문제가 있는 게 아니라 너한테 문제가 있는 거지. 10대들은 아무 말도 할 수 없다.

214쪽
달리 말해, 의미상실, 무기력, 소외감, 고립감 등은 10대를 포함해 어떤 사회인이든지간에 어떤 변화를 '욕망'하는 계기일 수도 있다는 것이다.

226쪽
어차피 폭력 자체는 연령에 관계없이 상수며 보편적 현상이다. ...... 오히려 진정한 문제는 청소년들의 폭력이 또래 내부의 하층회로에 국한돼 있다는 점, 그리고 그것이 전형적으로 약자와 타자를 향한 괴롭힘이라는 점에 있을 것이다. ...... 지금 청소년들의 폭력은 불행하게도 성인들이 자행하는 폭력과 너무도 닮아 있다. ...... 이것이 바로 과거의 학교폭력과 오늘날의 학교폭력을 가로지르는 가장 결정적인 차이점이다. 

249쪽
통계 분석에 따르면, 우리나라 온라인 게임이용자들의 평균적인 성향은 사교동기가 47%, 공격동기가 23%, 성취동기가 13%, 탐구동기가 11%, 그 밖에 알려지지 않은 동기가 7% 정도로 나타난다. ...... 결론적으로 게임이용자들은 가상세계에 빠져 허우적대기보다는 현실엔 없는 새로운 사회적 관계를 구축한다고 보는 게 나을 것이다. 이것이 바로 청소년 게임문화에 흔한 도덕률이나 정신의학 잣대를 들이대는 것으론 만족할 수 없는 핵심 포인트다.

269쪽
이러한 해법은 학생인권과 교권이 반비례하지 않을 수도 있음을 일깨워준다. 하기야, 애초부터 학생인권이 '권리'에 관한 언어인데 반해 교권은 사실상 '권위'를 포함하는 언어라는 사실을 눈여겨볼 필요가 있다. ...... 통념적으로야 교권은 학생들이 복종할 때 수호되는 것이지만, 이들은 좀더 평등한 관계를 구축함으로써 학생들로부터 존경을 받고 있었다. ...... 한마디로 말하자면, 그들은 '교권을 재해석함'으로써 학생인권과 교권을 모두 수호할 수 있었다.

291쪽
따라서 청소년 보호와 청소년 억압은 동전의 양면과 같다.

292쪽
첫번째는 사회 전체의 문제를 청소년 문제로 슬그머니 갈아 끼우는 방식이다. ...... 청소년문제론의 궁극적 효과는 사회의 문제를 타자에게로, 그리고 전체의 문제를 개인에게로 전이하는 데 있다고 할 수 있다.

300쪽
청소년보호론이 내재한 억압적 효과라는 모순, 청소년에 투사하는 타자성을 통해 성인들의 동일성이 유지되는 역설, 적대의 과녁이 상실되고 내부 정치마저도 순조롭지 않게 된 아이러니 등이 우리가 이야기할 수 있는 논점들이 아닌가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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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8세상

중2병에서 노스 패딩까지, 청소년 문화를 바라보는 창의적인 시선!엄숙한 꼰대, 열받은 10대, 꼬일 대로 꼬인 역설의 시대 『18세상』. 왕따, 학교폭력, 게임중독, ADHD 등 뉴스에는 연일 청소년 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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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몽자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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