침팬지 폴리틱스 - 프란스 드 발


60쪽
마찬가지로 객관성을 바라는 입장에서 보면 키스는 단지 입과 입의 접촉', 포옹은 '어깨 부위에 팔을 걸치는 것', 얼굴은 주둥이 부위', 손은 앞발'이라 부를 수 있을 것이다. 나는 탈인간적인 용어를 선호하는 동기 자체는 받아들일 수 있다. 하지만 그 동기 때문에 침팬지가 우리한테 내미는 거울을 언어로 가려서야 되겠는가? 또한 인간의 위엄을 지키려고 모래 속에 머리를 처박아서 되겠는가?

65쪽
어른 수놈의 사회적 지위는 개인적인 싸움 능력 및 연합 행위라는 두 가지 요인에 달려 있다.

76쪽
영장류 지능의 진화는 꾀로 상대방을 이기고, 속임수 전략을 감지하고, 상호 이익이 되는 타협을 이루며, 자신의 삶에 이득이 되는 사회적 연대를 증진시키기 위한 필요성에서 출발했다. 침팬지들은 이런 영역에서 분명히 뛰어나다.

95쪽
파위스트(Puist)는 듬직한 체격을 지닌 어른 암놈으로, 행동거지가 엄숙하고 무게가 있다. ...... 그녀는 성적인 면에서도 정상을 벗어나 있다. 짝짓기를 거부하기 때문이다. ...... 그러나 파위스트가 성에 완전히 무관심하다고 할 수는 없다. 우선 그녀는 자위행위를 한다. ...... 둘째, 그녀는 간혹 레즈비언처럼 행동한다. 다른 암놈의 성기가 부어오를 때면 파위스트는 교접을 하려고 그녀는 유인하기도 한다. 간혹 암놈이 승낙하면 파위스트는 재빨리 그녀에게 올라타고는 숫놈이 짝짓기할 때처럼 허리를 움직인다.

144쪽
나는 이에룬이 암놈 집단과 접촉하지 못하도록 떼어놓는 라윗의 행위를 '떼어놓기 간섭(separating interventions)'이라고 부른다.

146쪽
라윗은 이처럼 이상할 만큼 재빠르게 연쇄 접촉을 가진 직후에 이에룬 주변에서 위협 과시를 보였다.

153쪽
만일 니키가 암놈들과의 싸움에 전력했다면, 즉 그가 위험한 이빨을 사용했더라면 좀더 빨리 암놈들을 굴복시켰을 것이다. 그러나 니키는 손과 발만을 사용해 싸울 뿐, 결코 송곳니로 물지 않는다는 규칙을 철저하게 지켰다.
...... 우열을 다투는 과정이 커다란 집단 속에서 피를 흘리지 않고도 이런 식으로 일어날 수 있다는 사실은 아른험 계획이 착수될 당시의 낙관론이 대체로 타당했음을 증명하는 것이다. ...... 수놈 침팬지는 대단히 힘이 세서 살상 능력도 갖고 있지만, 또한 자제력도 갖고 있다. 사실상 니키는 호주머니에 나이프를 감추고 있으면서도 암놈과 싸울 때는 맨손밖에 사용하지 않는 셈이다. 송곳니의 사용은 수놈들끼리 싸울 때로 극히 한정되며, 그런 때에도 대단히 엄밀한 행동 규칙의 지배를 받는다.

155쪽
권력을 획득하려는 라윗의 시도는 니키와 암놈들의 힘겨루기로 인해 더욱더 용이해졌으며, 그 반대의 경우에도 마찬가지였다. 그들의 협력관계는 명백했으나 활동무대는 전혀 달랐기 때문에 나는 그들의 결탁을 '간접 연합'이라 부르는 것이다.

164쪽
우리는 싸움의 결과가 사회적 관계를 규정한다고 생각하는 경향이 있다. 그러나 여기서는 사회 관계가 싸움의 결과를 결정했다. 뒤에 살펴볼 우열을 둘러싼 교섭의 과정에서도 마찬가지 현상이 나타났다. 즉 사회적인 배경이 경쟁자들의 자신감에 영향을 미치는 것이다. 그것은 마치 다른 구성원들의 태도에 의해 그들의 실력이 결정되는 것과 같았다(이것은 축구팀이 원정 경기보다는 홈 경기에서 이길 확률이 높은 것과 비슷하다). ...... 라윗은 이에룬에게 노골적으로 도발하기 전에 먼저 집단의 반응을 주의 깊게 살폈다. 최후의 결전에서 거둔 그의 승리는 단순히 야만적인 힘의 과시만으로 얻어진 것이 아니었다. 라웠이 이에룬에게 다른 구성원들의 태도가 이미 근본적으로 바뀌었다는 사실을 명확히 인식시켰기에 가능했던 것이다.

166쪽
공동의 적에 대항해서 연합을 유지하면서도 동료들과 끊임없이 경쟁하는 인간들처럼, 수놈 침팬지 역시 그들의 이웃에 대항해 공동연대를 형성할 필요성 떄문에 경쟁심을 삭이고 의식화한다.

175쪽
안정된 계층 서열은 집단 내의 평화와 안녕을 보장한다.
...... 우위를 다투는 과정에서 패자 쪽이 '인사'라는 형태로 존경을 표시하는 것은 승자와의 원만한 관계를 얻기 위해 패자가 지불해야 하는 대가이기도 하다.

184쪽
라윗은 1인자 자리에 오른 뒤에는 약자 쪽과의 결속을 보여주기 시작했다.

185쪽
강자의 보안관 역할과 그 강자가 위협에 직면했을 때 약자로부터 받는 지원 사이에 어떤 관련이 있을지는 뻔하다. 암놈과 그 새끼들을 지켜주지 못하는 1인자 수놈은 장차 라이벌과의 권력투쟁에서 어떠한 지원도 기대할 수 없다. 이런 의미에서 1인자 수놈의 보안관 역할은 호의라기보다 의무에 가깝다. 1인자로서의 지위는 이같은 의무에 달려 있다. 

242쪽
침팬지는 어린놈들에 대해서는 믿을 수 없을 만큼 관대하다. ...... 새끼가 성장함에 따라 어미의 보호가 감소하는 것처럼 새끼에 대한 수놈들의 관용도 줄어든다. ...... 새끼들이 어른들에게 혹독한 대접을 받는 것은 성행위와 관련된 상황일 때뿐이다. 이런 식으로 새끼들은 인생 초창기에 어른 수놈들 사이의 엄한 규칙을 배우게 된다.

248쪽
수놈은 될 수 있는 한 많은 암놈들을 수정시킬 권리를 얻으려고 싸우는 반면 암놈의 경우에는 사정이 전혀 다르다. 교미 파트너가 하나든 100마리든 암놈이 한 번에 낳을 수 있는 자식의 수는 달라지지 않는다. 따라서 암놈들 사이의 질투는 수놈들보다 덜 두드러진다. 암놈들 간의 경쟁은 많은 조류들과 몇몇 포유류들에서처럼 대부분이 짝 결속을 이루는 종들에게만 발생한다. 그런 경우 암놈은 그 수놈들과 장기적인 유대관계를 확보하고 유지하려고 애쓴다. 우리 인간 종이 바로 좋은 본보기다.

254쪽
이에룬은 빈번한 교미에도 불구하고 신체상의 결함 탓에 암놈을 수태시킬 수 없기 때문에 그가 질투심과 보호 행동의 두 측면 모두에서 다른 수놈을 압도하고 있다는 사실은 한층 주목을 요한다.

259쪽
한쪽이 다른 쪽에 대해 누리는 우위는 제3자의 지원에 의존하기 때문에 각자는 모두 다른 쪽에 영향을 미치고 있는 셈이다.

266쪽
개체를 알아보는 능력이 안정된 서열 구조의 전제 조건이듯, '삼각관계의 인식(triadic awareness)'도 연합에 바탕을 둔 서열 구조의 전제 조건이다. '삼각관계의 인식'이란 다양한 삼각관계를 형성하기 위해 자신 이외의 다른 개체들 간의 사회적 관계를 지각할 수 있는 능력을 뜻한다. ...... 화해, 떼어놓기 간섭, 고자질, 연합 등은 삼각관계를 인식할 수 없다면 생각조차 할 수 없는 행동이다.

272쪽
이 같은 암놈의 우위는 체격에 의한 것으로 볼 수는 없고 수놈들의 관용에 달려 있음이 틀림없다. ...... 암놈들은 수놈들이 힘으로는 획득할 수 없는 것들, 예컨대 성적.정치적 호의, 성질을 죽일 수 있게 도와주는 침묵의 정책 등을 제공할 수 있다. 이것들은 암놈들에게 아주 효과적인 수단이 된다. 만일 암놈들 사이의 인기가 수놈의 지도력을 안정화하는 데 결정적인 역할을 한다면, 수놈은 당연히 암놈들에게 관대한 태도와 최대한의 편의를 제공해야 할 것이다.

273쪽
동물원에 오는 사람들 대부분은 어느 침팬지가 두목인지 알고 싶어한다. 나는 “니키는 서열이 가장 높습니다만 그는 완전히 이에룬에게 의지하고 있습니다. 1대 1로 싸운다면 라윗이 가장 강합니다. 하지만, 다른 놈들을 밀어낼 수 있는 능력을 가졌는지 따져보면 두목은 마마입니다”고 말하면서 사람들을 혼동시키는 즐거움을 누린다. 인류학자 마셜 살린즈(Marshall Sahlins)는 최강자의 법칙이 적용되지 않는 경우는 인류가 유일하다고 생각했다. “인간보다 열등한 다른 영장류와는 반대로, 인간은 존경받기 위해서 관대하지 않으면 안 된다." 만약 살린즈가 비비나 마카크 원숭이를 염두에 두었다면 그의 주장은 확실히 옳다. 하지만, 우리의 가장 가까운 친척인 유인원의 경우에는 사정이 훨씬 복잡하며 더욱더 인간에 가깝다. 

276쪽
내가 관찰해온 동물들은 분명 높은 사회적 지위를 얻으려고 애썼다.

278쪽
권력 추구 자체는 천성적인 것임이 거의 확실하다.

282쪽
우리는 남들에게 영향력을 행사하길 원하고 그걸 위한 전술도 개발하지만, 그것이 우리의 목표라는 사실을 스스로 깨닫지 못할 수도 있다. 그것에 대해 생각하거나 이야기하는 것조차 회피할지도 모른다.

289쪽
나이가 지긋한 이 두 수놈들은 개인적인 친밀도에 따라 개입하지 않는다. 그들은 자신들의 행동이 어떤 정치적 파장을 몰고 올 것인지를 너무나 잘 알고 있는 것 같았다. 이러한 내 해석에 비춰보면 그들의 개입은 권력을 증대시키려는 정책에 의한 것이다. 능숙하고 유연하게 연합을 형성하거나 파기하는 그들의 행동을 보고 있노라면 그런 행동들이 마치 정책의 번복, 합리적 결정, 그리고 기회주의와 같은 행동이 아닌가 하는 착각이 들 정도이다. 이런 정책에 공감과 반감이 끼어들 공간은 없다.
...... 반면 암놈들이나 새끼들은 공감에 치우친 개입을 보여준다.

298쪽
그들은 도움을 줌으로써 동시에 통제하려 한다. 위협받는 이를 보호해주는 대신에 그로부터 존경과 지지를 받아내는 것이다. ...... 살린즈는 "인간은 존경 받기 위해서 너그럽지 않으면 안 된다"고 말했다.

310쪽
내가 보기에 가장 놀라운 결과는 사회 조직에 두 개의 층위가 존재하는 것처럼 보인다는 점이다. 첫 번째 층은 적어도 가장 강력한 개체들 사이에 존재하는 명백한 서열 순위이다. ...... 우리는 그 배후에 있는 두 번째 층위, 즉 영향력을 가진 지위들의 네트워크 역시 바라볼 수 있어야 한다. 

311쪽
아른험에서의 연구가 내게 가르쳐준 것이 있다면 그것은 정치의 기원이 인류의 역사보다 더 오래됐다는 사실이다. ...... 한 가지 더 흥미로운 사실은 인간들이 자신의 동기를 타인에게 숨기려 할 뿐만 아니라 그러한 동기가 자신의 행동에 미치는 영향에 관해서도 과소평가한다는 사실이다.

303쪽
당분간 나는 다음과 같이 정리하고 싶다. 침팬지 집단생활은 권력, 섹스, 애정, 지지, 편협, 적대감이 교환되는 시장과 같다고. 그리고 이런 교환은 다음의 두 가지 기본 원칙에 따라 이뤄진다고. '선은 선을 불러온다', '눈에는 눈, 이에는 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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침팬지 폴리틱스

정치의 기원은 인류의 역사보다 오래되었다.초판 출간 후 수십 년간 세계적인 베스트셀러의 자리를 지키며 이제는 과학저술의 고전으로 우뚝 선 《침팬지 폴리틱스》의 25주년 기념판. 세계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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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몽자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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