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4쪽
생사여탈권을 자본이 쥐고 있는 한, 치열한 경쟁체제에서 살아남기 위해 사력을 다해 하나의 품으로서 '개인'이 완성된들 그 상품은 자본에 유리한 방식으로 언제든 순식간에 폐기처분될 수 있다.

49쪽
문화학자 엄기호의 말대로 우리에게 필요한 것은 노오력하는 것도, 노력하지 않는 것도 아니다. 무엇을 선택하건 죽음으로 귀결되는 이 선택지를 거부해야 한다. 우리가 선택해야 하는 것은 언제나 삶이기 때문이다.

70쪽
결국 나는 26개월 만에 제 발로 회사를 걸어나왔다. 성취에대한 스트레스로 자신의 몸과 가정을 망가뜨리고 있는 사람, 회사 내의 관계와 정치가 일의 전부라고 생각하는 사람, 주변과 세상이 어떻게 되든 나 혼자 즐거우면 된다는 사람. 모두 내가 닮고 싶은 미래는 아니었다. 이 모든 상황들은 '회사라는 곳이 원래 그런 것'이라는 말로 봉합되었으며, 거기에 동의할 수 없는 나 같은 사람은 조용히 떠날 수밖에 없었다.

73쪽
노답이란 어떤 부분이 틀렸으니 고쳐야 한다는 이야기가 아니다. 올바르지 못한 답은 그냥 오답이다. 인생이, 사회가 노답이라는 것은 어디서부터 풀어야 할지 알 수 없는 엉킨 실처럼 주위에 온통 틀린 답밖에 없다는 얘기다. 예를 들어 기업체는 '경력이 있으면서도 젊은 신입사원'을 원하고, 일터에서 업무를 잘하려면 '주인의식을 가지면서도 자지주장을 하지 않아야' 한다. 이 사회는 '넌 뭐든지 할 수 있지만, 내 맘에 안 드는 건 하면 안 되고, 내 마음은 항상 변하니까 알아서 노오력해'라고 말하는 분열증적 직장상사처럼, 자기모순적인 메시지를 던지고 있다. 

73쪽
사실 보수 인사들의 막말이 노리는 것은 노년층의 정서적 결집뿐만 아니라 청년들에게 '이 사회는 부조리 그 자체니 관심 끄는 것이 정신건강에 유리하다'는 메시지를 던지는 것일 수도 있다.

76쪽
이처럼 답이 없다는 느낌은 어느 날 갑자기 하늘에서 뚝 떨어진 것이 아니라 구체적 일상 속에서 반복적으로 체득하고 강화된 것이다. 개인, 사회, 소집단의 레벨로 나눠보자면, 청년들은 닮고 싶은 롤모델이 없는 노답 어른, 재생산 불가능한 노답 경제 시스템, 목적 없이 사람을 소진시키는 노답 조직과 만난다. 초등학교에서부터 대학교, 군대, 아르바이트, 인턴쉽, 취업 이후에 이르기까지 매우 연속적이고 일관적인 경험이기에 어색함을 느끼지도 않게 된다.

79쪽
일본의 청년지원단체 '소다테아게넷'의 대표 구도 게이는 저서 <무업사회>를 통해, "누구나 무업자가 될 수 있는 사회가 되었다면 무업자들을 멸시하는 전통적 시각은 없어져야 한다."고 주장한다. 앞의 논의에 대입하자면 일자리가 줄어서 경제적 하층민이 되는 것은 어쩔 수 없어도, 이들을 사회적 천민으로 대하지는 말자는 말이다. 위에서 언급한 노동과 비노동의 사이에 위치한 일들을 '사회적인 일'로 인정해 주지 않으면, 많은 수의 청년들이 평생 사회 바깥에 위치할 수밖에 없을지도 모른다.

116쪽
오늘날 한국 사회에서는 동물화를 넘어 더 하찮은 벌레화가 진행되고 있다. 사람들은 이제 동물조차 되지 못하는 것이다. ...... 어느 시대나 피착취민은 짐승이나 가축과 같은 취급을 받아왔다. 약탈의 목적으로라도 최소한의 생존을 보장하는 관리의 대상이었다. 하지만 산업사회를 넘어 도시화 정보화 사회로 급속히 이행되며 국가는 '자유'라는 명목으로 사람들을 방치했다. 국가는 국민을 보이지 않게 통치하는 기술을 발달시키면서 더욱 무책임해졌다. 국민들은 국가에게 벌레 같은 취급을 받고 있거나 스스로 벌레가 되어가고 있다. 짐승은 최소한 관리의 대상이거나 사냥 등을 통해 착취의 목적물이기라도 하지만 벌레는 먹여 살릴 걱정도 필요 없는, 그 쓰임조차 별 볼일 없는 하찮고 무가치한 존재이다. 백성들은 시민이 되어서 주권을 가지게 되었다고 착각하지만 국가의 입장에서는 단지 '인구'이자 '무리'일 뿐이다.

122쪽
최근 사법시험 존치 논란을 두고 법조인들이 되고자 하는 청년들이 서로를 '사시충' '로퀴벌레'라고 칭하며 비난하고 있다. 나도 벌레, 너도 벌레, 모두가 벌레인 세상이다. 서로가 서로를 냉소하는 세상을 만들어 벌레의 민주화, 즉 '벌레화'하여 모두가 찌질하다는 점을 드러내 같이 망하는 게 목표이다. 어차피 애초에 나는 금수저가 아니었으니, 모두가 불행해져 차라리 평등한 세상을 꿈꾼다.

124쪽
특히 디씨인사이드와 같은 커뮤니티는 공동체를 형성하는 데 도움이 되기보다 정보를 소비하고 타인을 비난하는 데 활용된다. 기술의 발달로 쌍방향 커뮤니케이션이 발달했다고 이야기하지만, 이는 지나친 환상이다. 메신저와 같은 일대일 관계의 커뮤니케이션이 아닌 게시판이나 뉴스 댓글, SNS 등 일대다 커뮤니케이션은 마치 '벽보'와 같은 일방향적 미디어이다. 모니터 뒤의 알지 못하는 타인 혹은 표정이 감춰진 타인과 직접 대화를 하는 게 아니라 그저 '정보'를 인식할 뿐이다. ...... 이러한 전자화된 커뮤니케이션 상황에서는 타인을 의식할 필요도 없으니 나의 감정이 더 중요하다. 그들의 언어가 이미 나를 분노하게 하였기에, 나의 분노는 언제나 정당하게 느껴진다. 그래서 분노를 표출하는 혐오는 나에게는 '정의'이고 따라서 상대방의 기분이나 감정과 무관하게 표현할 권리가 있다고 생각한다. 온라인상에서는 나의 존재를 감출 수 있으니 안전하기까지 하다. 온라인에서 혐오를 하는 가장 큰 이유는 자신을 보호하는 동시에 자신의 감정을 해소할 수 있는 가장 편리한 수단이기 때문이다.

129쪽
원체험이란 몸과 마음에 각인된 살아 있는 경험이다. ...... 자신의 존엄을 인정받아 본 사람은 타인도 존중받아야 한다고 생각한다.

146쪽
떠나고 싶어도 못 떠나는 상태에 놓인 이들에게 '탈조선'은 한편으로 동경의 대상이기도 하면서 한편으로는 이기적인 행태가 된다. 누군가는 더 비참해지지 않기 위해 한국을 떠나려고 열심히 '노오력'을 하지만, 그만큼 남을 수밖에 없는 자들의 박탈감 역시 더욱 강해질 수밖에 없다.

148쪽
따라서 청년들이 탈조선을 유일한 희망으로 생각한다는 것은 국가나 시장의 기획, 그리고 저항 담론의 기획이 모두 실패했음을 보여주는 상징적인 사건이다.

155쪽
헬조선 담론의 본질은 '여기서 살기 싫다'이지 '여기서 살기 힘들다'가 아니기 때문이다. 그래서 헬조선 담론을 논할 때에는 '어떤 상황이 그들의 삶을 힘들게 하는가' 같은 질문과 더불어, '어떤 경험을 했을 때 정나미가 떨어져버리게 되는가' 같은 질문을 같이 해야 한다. 

158쪽
비판에는 대상에 대한 애착이 있지만, 혐오에는 대상에 대한 애착이 없다. 그래서 무언가를 혐오할 때는 그 대상과 나를 철저히 구분하려고 한다. 한국 사회를 혐오하는 경우, 나는 더 이상 한국 사회의 구성원이 아니라 한국 사회를 구성하지 않는 다른 어떤 존재이고자 하는 것이다. 바로 이 부분이 기존의 한국 사회 비판과 헬조선 담론을 구분짓는 지점이다.

161쪽
한국을 떠나는 것, 한국을 버리는 것은 쉽게 생각할 수 있는 선택지가 아니기 때문에 마치 한국을 떠나는 것이 나를 괴롭힌 한국 사회에 할 수 있는 최대의 복수처럼 느껴질 수 있다. 하지만, 한국을 떠나는 순간 나는 더이상 한국 사회와 관계가 없는 존재가 되고, 그래서 복수를 통한 속시원함 같은 것은 아무리 기다려도 오지 않는다.

* 헬조선 밖에서 헬조선 바라보기(153~163쪽)
- 나일등(도쿄대 특임연구원) 

174쪽​
학교에 다닐 때부터 성적에 의해 불평등한 위치에 놓여 있는 것은 자신의 능력에 따른 차별적 배분이었으며, 학교는 권리와 인권을 배우고 시민이 되는 것을 배우는 것이 아니라 특정한 구조 속에서 예기되는 차별들을 순응하며 그것을 내재화하도록 배우는 곳이었기 때문이다.
...... 특히 권리는 인간과 시민으로서 갖게 되는 것이 아니라, 소비 능력에 의해서 보장되는 것임을 소비자본주의 사회로 급격히 이행한 한국 사회에서 배운 바 있으므로, 노동 현장에서 '소비자'의 위치가 아닌 자신은 권리가 없는 존재이며 빼어난 인적 자본과 학력을 갖추지 않았기 때문에 그 안에서 겪게 되는 부당한 차별과 폭력들은 자신이 감내하거나 책임져야 하는 것으로 받아들이게 되는 것이다.

195쪽
몇 년 전, 핀란드의 산골 마을에서 열린 록 콘서트 현장에 갔었는데 표가 아주 비싼 콘서트였다. 그런데 톤서트장 옆에는 커다란 모니터가 설치되었고 많은 사람들이 담요를 깔고 밖에서 무료로 공연을 즐기고 있었다. ....... 이를 가능하게 한 것은 공연을 즐기기 위해서는 모두가 똑같이 고액의 입장료를 내야만 한다는 '강박적 공정함'에 대한 강요가 아니라, 그 고액을 지불할 능력이 없는 사람들도 함께 즐길 수 있다는 생각에 동의하는 '호혜적 평등주의'에 대한 감각일 것이다.

200쪽
고도 압축적 근대화 과정을 거친 사회에서 서로 다른 세대는 서로에게 이해하기 힘든 이물질이다.

204쪽
기본소득은 가난한 국민들을 위한 복지 비용이 아니다. 사회의 방향을 전환하기 위한 비용이다.

220쪽
국가 인정과 국가 인증에 매달리는 것이 아니라, 소비자와 복지의 대상으로 대접받는 것이 아니라, 사람들이 의논을 해서 자체 기준을 만들어내는 것, 호혜의 세상을 만들어가는 신뢰 관계를 넓히는 것, 함께 의논하고 협력해서 예기치 않은 위기 상황을 돌파해내는 것, 바로 이런 것들이 복합적인 위험사회를 살아갈 세대가 키워야 할 자질이다.

 

 

[네이버 책] 노오력의 배신 - 조한혜정, 엄기호 외

 

노오력의 배신

‘총체적 파국’에서 ‘해방적 파국’으로!청년문제에 대한 현안 분석을 넘어 한국 사회의 미래를 진단하고, 진행 중인 유효한 대안을 찾기 위해 문화학자인 조한혜정과 엄기호가 젊은 연구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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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몽자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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