돈 없으면 죽어라?

 

눈물짓는 환자와 보호자

 

지난달 말, 경상남도가 진주의료원의 문을 닫겠다고 발표했다. 수백억 원을 들여 새 건물로 옮긴 지 겨우 5년째다. 병원에서 나가야 한다는 소식에 환자들은 충격에 휩싸였다. 기초생활수급자로서는 달리 갈 수 있는 병원이 없어서.

 

A   진주의료원 입원 환자  정부에서 하는 게 지금, 없는 사람은 죽으라는 말밖에 더 되나. 나는 부모 자식도, 형제도, 아무도 없다. 갈 데가 없다. 그저 여기 문 안 다는게 소원이다. 나뿐만 아니라 여기 몇 십 명 이상이 다 부모 자식 없는 사람들이다. 돈 있었으면 벌써 다른 병원으로 갔지, 이렇게 말 많은데 뭣하러 여기 있겠나. 오래 입원해 있어도 별말 없이 저렴한 비용으로 받아주는 곳은 여기밖에 없는데, 도대체 어디로 가라는 건지 모르겠다. 

 

B   진주의료원 간호사   도청에서 병원 문 닫는다고 어서 다른 곳으로 옮기라고 하는데, 현실적으로 할머니가 갈 수 있는 병원이 없다. 다른 병원에서 손이 많이 가니까 안 받아 주려고 하는 거다. 환자 보호자도 이 병원 문 닫으면 집에서 모신다고 하더라. 누군가가 밀착해서 돌보지 않으면 병세가 악화될 수밖에 없는 상탠데, 그런 식으로 죽음을 맞이한다는 건 환자에게 너무 슬픈 일 아닌가. 정말 가슴이 아프다.

 

C   진주의료원 입원 환자 보호자  이곳에 오기 전 다른 대형 병원에 입원해 있었는데, 2주가 지나자 병원 측에서 본인들이 할 건 다했다고, 도대체 왜 없어지지 않는지 모르겠다고, 다른 병원으로 옮겼으면 한다고 하더라. 그래서 이 병원으로 옮겨 왔다. 다행히 천만 원 가까이 하던 병원비도 1/5로 줄고, 장기입원에 대한 압박도 없었다. 그런데 이런 병원을 없애다니... 면회 왔다가 집에 가려고 택시를 탔는데 기사가 그러더라. 이제 돈 없는 환자는 죽어야 한다고. 그런 형국이 돼 버린 거다. 병에 걸렸는데 치료를 못 받는다? 그것도 돈이 없어서? 참 비참하고 서러운 일 아닌가! 이런 병원을 계속 늘려야 할 판에, 있는 병원을 왜 없애는지 도무지 이해할 수가 없다.

 

사명감으로 일해온 직원들

 

12시쯤 의사 휴게실에서 발견된 의사 계약해제 통보서다. 관련된 사전 통보, 문서에 대한 사전 언급도 전혀 없이, 누가 갖다 놓았는지도 모르는 한 건의 문서로 의사들은 사직을 맞게 됐다. 이대로 문을 닫으면 340여 명의 직원들은 순식간에 실업자가 된다.

 

D   8년째 진주의료원 행정업무 담당  홍준표 경남 도지사 출마 시 솔직히 나도 찍었다. 워낙 역량 있는 당대표까지 했던 분이니까 그분이라면 의료복지 쪽 지원도 가능할 거라 기대했고, 박근혜 대통령도 공공보건 쪽을 지원하겠다는 공약까지 내세웠기 때문에 솔직히 큰 기대를 하고 있었다. 그런데 폐업이라니! 이렇게 폐업이라는 일이 벌어질 거라고는 생각도 못했다.

 

E   진주의료원 호스피스 병동 수간호사  환자 분이 겉보기에 노숙자나 생활이 어려운 분이겠다 싶으면 여기까지 모시고 온다. 다른 병원 앞에서 쓰러졌어도 우리 병원까지 온다. 노숙자라는 이유 하나만으로.

 

말기 암 환자들의 마지막 가는 길이 편안하고 행복할 수 있도록 몸도 마음도 모두 살펴야 한다는 게 그녀의 생각이다. 생에 첫 직장인 이곳에서 22년 넘게 일하면서 우리 사회에 돈 없고 힘없는 약한 사람들을 많이 만나 왔다. 또 그런 사람들이 상당히 많다는 것을, 반대로 그들을 반기는 곳은 상당히 적다는 것을 알았다.

 

E   호스피스 병동 수간호사  사실 애정표현이나 스킨십을 보통 잘 안 하고 사셨던 분들이라, 손을 잡아 주거나 안아 드리면 정말 좋아하신다. 정성껏 씻기고 간호할 때 마음까지 변하는 환자들을 보면서, 내가 하는 만큼 뭔가 작은 것이나마 변화될 수 있구나 싶어 큰 보람을 느낀다. 진주의료원은 내 삶이다. 나의 과거고, 현재이자 미래다. 긴 병에 효자 없다고 하는 것처럼 아픈 사람을 돌보는 건 정말 사명감 없인 할 수 없는 일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런 게 너무 아무것도 아닌 것처럼 여겨지고 내 청춘을 바친 곳이 없어진다고 하니까, 내 존재 자체가 사라지는 것 같아 정말 가슴이 아프다.

 

경남도청이 밝힌 폐원 이유 vs. 공공의료 관련 전문가의 반론

 

경남도청 관계자  자산이 610억 원인데 부채가 279억이다. 단기 손실이 60~70억이나 된다.

김동근  노동자운동연구소 연구원  2012년 말 현대 자동차의 부채가 1조 원을 넘어섰다. 물론 어마어마한 액수지만 아무도 현대자동차를 '경영위기'로 보지 않는다. 부채 '금액'보다 부채 '비율'이 중요하기 때문이다. 진주의료원도 마찬가지다. '부채 비율 63.9%'는 상당히 안정적인 것으로 볼 수 있다.

 

경남도청 관계자  요즘 민간병원에서도 다 공공사업 하지 않나. 우리 도에서 시범적으로 하고 있는 치과 치보철 사업 같은 것도 민간병원에서 다 하고 있다.

정백근  경상대 의학전문대학원 교수  민간의료기관이 공공보건의료에 참여할 수 있는 법적 환경을 만드는 데목적이 있었다. 그런데 이를 본인 편의에 맞게 잘못 해석해, 공공병원 폐원의 논리로 이용하고 있다.

 

경남도청 관계자  우리도 다방면으로 고민해서 결정하고 방안을 제시 한 건데, 이렇게 거부만 해서 되겠나?

박진식  진주의료원 방사선사  지난해 말 경영 개선 과제를 수립해 명예퇴직 신청을 받고 있었고, 2 28일 현재 13명의 직원이 이미 이 병원을 떠났다.

경남도청 관계자  노조가 대화나 협상에 나서야 하는데 그렇지 않아 이렇게 폐업까지 오게 된 거다. 이번 폐업 사태는 병원 노조 탓이다.

 

숨은 의미, 아픈 미래

 

도미노 폐원 사태

 

진주의료원 폐업 사태를 그저 한 지역만의 문제로 볼 수 없는 데는 여러 가지 이유가 있다. 사실 지방의료원들의 상황은 대부분 비슷하다. 전국 34개 지방의료원을 비교해 보면 그 심각성이 드러난다. 부산의료원 부채 368억 원, 군산의료원 부채 416억 원, 적자 41억 원, 서울의료원 적자 149억 원 수준(2011년 기준)이다.

 

정백근  경상대 의학전문대학원 교수  진주의료원의 폐업이 성공(?)하게 되면, 부채나 적자가 큰 지방의료원은 담당했던 공공보건 역할을 민간에 넘길 수 있다는 이유로 계속해서 폐원을 추진하고 나설 거다. 경영상태가 좋지 않은 지방의료원 폐원이 도미노처럼 일어날 가능성이 있다는 얘기다.

 

공공의료의 위기

 

정혜주  고려대 보건행정과 교수  복지 수준이 낮은 멕시코의 경우에도 75%가 공공병원으로 운영되고 있다는 사실만 보더라도 우리나라 공공병원은 그 수가 굉장히 적고, 전체 의료공급 체계에서 큰 역할을 못하고 있다는 걸 알 수 있다.

 

변변찮은 정부의 변

 

보건복지부 관계자  지자체장의 결정 아래 설립된 의료기관이기 때문에 설립이나 폐지에 있어 우리가 법적, 공식적으로 개입할 수 있는 여지가 없다.

 

김동근노동자운동연구소 연구원  지방의료원 법이 있기는 하지만 그보다 더 포괄적인 보건의료 관련 법으로 의료법이 있다. 의료법은 '환자의 진료에 막대한 지장을 초래하거나 초래할 우려가 있다고 인정할 만한 상당한 이유가 있으면, 그 의료인이나 의료기관 개설자에게 업무개시명령을 내릴 수 있다'고 규정하고 있다. 이런 규정을 활용해 일단 업무개시명령을 내린 다음, 가능한 조치들을 취해야 마땅하다.

 

경남도청 직원  현재 진주의료원과 관련된 외부 인터뷰는 전혀 하지 않고 있다. 아예 방침을 딱 정해 놨다.

 

짙게 썬팅한 지사의 차량은 어디론가 떠나 버렸다. 그리고 잠시 뒤 건장한 체격의 남성들이 취재진에게 다가온다. 남녀 단 둘인 취재진을 장정 대여섯 명이 나와 가로막는다. 그러는 사이 홍준표 경남 도지사는 건물 안으로 들어가 버렸다.

 

진주의료원의 휴업 예고 기간은 3 30일로 끝이 난다.

의료원 폐업을 위한 조례 개정안이 4월 중 도의회에서 통과되면,

103년 역사의 진주의료원이 문을 닫게 된다.

병원에서는 여러 환자와 직원들이 '생명권''의료 공공성'을 부르짖고 있다.

병원 밖에서도 새로 출범한 박근혜 정부가 어떻게 대응하는지 지켜보고 있다. 

대한민국 공공의료의 미래는 어떻게 될까?

아직 진주의료원의 문은 닫히지 않았다.

 

6개월 후...

 

진주의료원은 결국 문을 닫고야 말았다. 폐원 이후 보건의료노조는 5월에 이어 지난 9, 2'퇴원 환자 실태조사'를 벌였다. 여전히 90% 이상이 진주의료원의 재개원을 희망, 돌아가고 싶다는 뜻을 전했다. 이런 절실한 이유들 때문이다.

 

방문이 쉽다  |  진료비가 저렴하다  |  친절하다  |  공동간병제도로 간병비 부담이 적다

 

 

 

원 | 2013-03-26 | 장21 Link

환자 92.5% 요구 | 2013-10-04 | 일보 Link

 

Posted by 몽자크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