엄마는 벽을 넘지 못했고, 천사는 길을 잃었습니다

 

유정이의 이야기

 

2월의 첫날, 나는 이곳으로 왔습니다. 같이 사는 언니 오빤 가족이 아닙니다. 24시간 곁을 지키는 이 분 역시 엄마는 아닙니다. 내가 사는 이곳은 아동보호소입니다. 모두들 나를 안타까워합니다. 잠든 내 모습을 바라보던 사람들은 하나같이 눈물을 흘립니다. 내게는 조금 특별한 사연이 있어서입니다.

012

지난 2 1일 나는 이곳 유아휴게실에서 발견됐습니다. 혼자였습니다. 얼마나 울었는지 먹은 우유를 죄다 토해낸 상태였습니다. 그때 내 곁엔 분유 한 통과 젖병, 그리고 손글씨로 써진 쪽지 하나가 놓여 있었습니다. 엄마가 나를 버리면서 두고 간 물건들입니다. 감기에라도 걸릴까 나를 꽁꽁 싸맨 엄마.

 

두려움에 떨었을 나를 감싸준 사람이 있었습니다. 내가 버려졌던 마트의 한 직원입니다. 마트 직원은 나를 안은 채 한동안 엄마를 기다렸답니다. 하지만 끝내 엄마는 돌아오지 않았습니다. 결국 119 대원의 품에 안겼습니다. 거리에 유기되지 않아서 다행히 건강 상태가 좋았던 나는 병원 중환자실이 아닌 아동보호소로 갈 수 있었습니다. 마트 직원과 구급대원의 손을 거친 나는 무사히 보호소로 와 엄마를 기다렸습니다. 내가 기다리는 엄마는 나를 낳은 분일 수도 있고, 나를 입양할 엄마일 수도 있습니다. 과연 나는 엄마를 만날 수 있을까요? 

012345

내가 태어난 1월은 참 추웠습니다. 그래서인지, 엄마는 나를 마트에 버렸습니다. 자신의 모습이 CCTV에 찍힐 줄 알면서도 그랬습니다. 내 안전을 걱정했던 엄만, 마지막 선물로 분유 한 통을 샀습니다. 어떻게 친자식을 버릴 수 있냐며 사람들은 엄마를 욕합니다. 하지만 나는 기억합니다. 그날 엄마는 나를 안은 채 4시간을 서성였습니다. 고민했고, 망설였습니다. 마지막으로 내게 분유를 먹이면서 엄만 울고 있었을지도 모릅니다.

 

원치 않던 임신이었답니다. 주변에 알릴 수 없어서 임신 기간 내내 복대를 하고 지냈답니다. 나를 낳은 지 5일째 아직 몸도 풀지 못한 엄마는 버스를 타고 먼 도시로 왔습니다. 버려진 나도 아프지만 버렸던 엄마도 아팠을 그날. 그 선택을 바꿀 순 없었을까요? 무엇이 엄마와 나를 함께 할 수 없게 한 걸까요?

 

좋은 곳으로 입양 보내려 했지만, 법 때문에 그럴 수가 없답니다. 나처럼 버려지는 아이가 최근 들어 많아졌답니다. 지난 해부터 바뀐 입양틀례법 때문이라고 합니다. 아이를 입양 보내는 이의 대부분은 우리 엄마처럼 미혼모들입니다. 법이 바뀌면서 아이를 입양 보내려면 친모가 출생신고를 해야 한다고 합니다. 기록이 남길 원치 않는 엄마들이 남몰래 아이를 버린답니다. 엄마도 그런 이유로 잘못된 선택을 했습니다.

 

마트에서 나를 돌봐준 직원은 나를 입양하고 싶어합니다. 하지만, 아직 친엄마가 출생신고를 하지 않아 나는 입양을 갈 수 없답니다. 바뀐 법 때문입니다. 친엄마가 출생신고를 해주더라도 만일 입양이 되지 않으면 나는 엄마에게 주홍글씨가 됩니다. 친엄마와 재회하면 더 좋지만 또다른 엄마와 만나도 난 괜찮습니다. 다만 나를 지켜준다는 법이 엄마가 내게 오는 길을 막지 않았으면 좋겠습니다.

 

보호소에 온 지 벌써 보름이 지났습니다. 아마도 먼 훗날 나는 내가 누군지 알고 싶을 겁니다. 평범한 아이들이 당연히 가지는 유년의 사진을, 누군가에겐 참 흔한 추억을 나는 어렵게 찾아야 할 지도 모릅니다. 지금은 슬픈 운명 속에 있습니다. 먼 훗날 난 어떤 운명 속에 서 있을까요? '유정(唯貞)'이란 이름처럼 바르고 곧게 자라려면 나에겐 엄마가 필요합니다. 미혼모를 바라보는 사회의 편견을 이겨내고 친엄마가 내게 올 순 없을까요? 복잡하고 까다로운 법에도 포기하지 않고 끝내 나를 입양해 줄 또다른 엄마는 지금 어디쯤 오고 있을까요?

 

어른들의 이야기

 

엄마가 아이를 마트에 버렸다. 폐륜이라고, 살인미수라고 모두들 손가락질한다. 가슴 아픈 이 이야기는 유정이만의 사연이 아니다. 최근 들어 유독 많은 아이들이 버려지고 있다. 이유가 뭘까

 

영아 일시 보호소  아기 출생신고를 하게 되면 아기를 입양시킬 수 있는 자격이 주어진다. 입양 동의서도 작성해야 하고, 입양 준비를 위한 여러 절차를 밟아야 한다.

 

담당 형사  CCTV에 찍힌 흔적을 따라가 아기 엄마를 만났다. 처음부터 버릴 생각은 아니었다고 한다. 정상적으로 입양 절차를 밟으려고 했단다. 그런데 '친모가 출생신고를 하지 않으면 입양 자체가 불가능하다'는 입양 기관의 설명을 듣고, 입양 절차를 포기한 것 같다.

 

OO 아기를 보살폈던 마트 직원  배가 많이 고팠을 텐데 투정도 부리지 않고 우유를 쪽쪽 빨아 먹는 모습이 너무 예뻤다. 작년에 아기를 하늘로 보낸 경험이 있어, 그런지 유정이를 보니 심장이 무너지는 것 같았다. 꼭 나에게 온 천사인 것만 같더라. 집에 가서도 계속 생각이 났다. 나도 아이를 키우는 엄마로서 너무 마음이 짠했다. '이런 일이 있었는데 한번 우리가 키워볼까' 하고 남편과도 얘기가 됐다. 그런데 입양 절차가 생각보다 복잡하더라. '이렇게 절차가 복잡한데 누가 입양을 하려고 할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송윤정 변호사  개정된 입양특례법이 본래의 취지를 살리지 못하고 오히려 영아 유기라는 문제를 야기한다면, 출생신고를 요구하는 부분은 신중을 기해 보완할 필요가 있다.

 

영아 일시 보호소  출생신고 없이는 입양이 안 되기 때문에 친모가 용기를 내 주면 절차를 밟아 입양을 진행할 계획이다. 양육이든 입양이든, 선택은 친모의 몫이다.

 

마트에 버려진 유정이 | 2013-02-22 | 궁금한이야기Y Link

 

Posted by 몽자크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