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 번째 인터뷰

 

나는 그를 용서했다

 

우리 사회에서 용서는 '선함'의 표상이다. 가해자를 용서한 피해자는 덕이 깊고 존경 받을 만한 성인(聖人)으로 추대된다. 상대가 가족을 무참히 살해했어도, 나에게 몹쓸 짓을 저질렀어도, 그를 용서하면 '대단한 사람'이 되는 것이다. 이 때문에 사람들은 종종 자기가 상대를 용서했다고 '착각'한다. 상대를 용서했다던 한 중년 여성. 다혜를 만나자 속내가 드러난다.

 

남편을 죽인 가해자를 용서한 아내. 범인은 무기징역을 선고 받았지만, 모범수로 감형돼 10년 만에 출소했다. 다혜는 유가족의 용서 덕분이라며 아내를 치켜세운다. 아내는 얼마 전 범인의 출소 사실을 알았다. 구멍가게를 하며 어렵게 생활하는 본인보다 잘먹고 잘살고 있을 범인을 생각하니, 불현듯 억울함이 치민다. 모범수였다는 감형 이유. 정작 피해자인 자신은 사과 편지 한 장 받아 보지 못했다. 개과천선했다는 판단은 대체 누가 내린 건가.

 

용서의 대가

 

피해자는 가해자의 소식을 접하지 못한다. 감형 및 출소는 피해자에게 전해지지 않는다. 피해자는 그가 여전히 교도소에서 죄값을 치르고 있는지, 출소해 새 인생을 살고 있는지, 어디서 무얼하며 사는지 알지 못한다. 그게 현재 우리나라의 '규칙'이다. 용서 또는 탄원서 작성 여부는 전혀 참작되지 않는다. 어차피 모르고 못 보는 건 마찬가지다. 피해자가 할 수 있는 건 원통함 또는 가해자의 보복에 대한 두려움으로 하루하루를 견디는 것뿐이다.

 

다혜는 유족에게 용서는 대가를 바라고 하는 게 아니라고 말한다. 그냥 잊어 버리라고. 다혜에게 용서란 '망각'이다. 범인과 사건을 잊는 것이다. 남편을 잃은 아내는 처음엔 범인을 용서했다. 그런데 모범수로 출소했다면서도 사과 한마디 없는 범인을 생각하면 새삼 울화통이 터진다. 다혜는 '사과''대가'로 오해했다. 용서해 준 데 대한 감사의 표시로 '고맙다'는 말과 보답을 기대한다면 그건 대가를 바란 것일 수 있다. 세 번째 만난 피해자가 듣고 싶었던 말은 '미안하다'였다.

 

'사과' '감사'는 천지 차이다. 사과는 정말 잘못했다, 미안하게 생각한다, 다시는 그러지 않겠다, 앞으로는 착하게 살겠다는 의미다. 그녀는 자신의 용서가 의미 있는 일이 되기를 바랐다. 그가 또다시 같은 잘못을 저지른다면, 그녀의 용서는 허사가 되고 만다. 그녀는 자신에게 돌아올 대가를 바란 게 아니라, 용서로 정의가 실현되는 미래를 바랐을 뿐이다. 소박하지만 간절하게.

01


오늘 (2011)

A Reason to Live 
8.2
감독
이정향
출연
송혜교, 남지현, 송창의, 기태영, 김지영
정보
드라마 | 한국 | 119 분 | 2011-10-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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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나리오 메시지 MONZAQ

 

Posted by 몽자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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