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행하진 않아, 행복하지 않을 뿐.
이렇게 흘러가.
본능 때문이지.
1. 본능, 즉 욕구
인정, 애정, 사랑, 호감, 존중, 지지, 관심, 주목을 바란다.
무조건적인, 불변의, 있는 그대로의 나에 대한 사랑을 원한다.
거의 불가능하다.
불가능하다고 본능이 사그라들 턱이 있나.
그렇다면?
수단을 동원하자 결심해.
2. 내적 수단
유리한 조건을 갖춘다.
심성, 감각, 재주, 기술, 통찰력을 연마한다.
잘 드러나지 않는다.
갈고닦으며 나름 즐거웠고 가까운 사람들한테 인정도 받았어. 그다음엔?
점수, 등수, 인증이 없으니 내세우기도 애매하고 퍼뜨리는 데도 하세월이네.
결정적 한 방이 필요해.
3. 외적 수단
다른 조건을 찾는다.
돈, 외모, 학력, 인맥을 추구한다.
잘 드러나서 즉각 효과가 나타나는 만큼, 비교가 쉬워서 계속해서 더 높은 수준이 요구된다.
얼짱, 몸짱, 서울대 출신, 의사, 백만 팔로워, 연매출 100억, 정도면 해볼 만하지,
싶었는데 의사 연봉도 천지 차. 구독자 수 줄까 연매출 추월 당할까 전전긍긍.
명상에 눈을 돌려.
4. 열린 가능성, 즉 평등
인간은 누구나 평등하다는 말 때문에 나도 할 수 있다는 기대가 자란다.
현실은 기대에 부응하지 못한다.
나조차 내 기대에 부응하지 못한다.
소확행과 욜로를 부르짖고 있는데 여기저기서 들쑤셔.
너도 할 수 있다며. 자기도 했다며.
될 것 같다가도 역시나 쉽지가 않아. 된 것 같다가도 역시나 멀었어.
5. 열린 가능성, 즉 역전
누구나 할 수 있다는 말은 그도 할 수 있다는 뜻이다.
그가 성공하면 나는 괴롭다.
내가 성공해도 나는 떤다. 역전의 가능성은 열려 있으므로.
서울대에 얼굴도 되는 애, 이제 막 자산규모 탑 텐에 진입한 애, 집값 두 배 뛴 애.
끝도 없고 답도 없고 세상도 싫고 부모도 밉고 운도 원망스럽고.
무엇보다 내가 제일 최악.
생각해보니 불행이네.
난 불행하지 않지만.
이건 불행이네.
'가나다라 마바사' 카테고리의 다른 글
짜장면 시켜달랬는데 짬뽕을 주문하다니요 (0) | 2024.06.01 |
---|---|
보통의 선택지에 심장이 좀 (0) | 2024.05.29 |
장기하를 보며 말장난에 입맛을 다시다 (0) | 2024.05.01 |
사과를 보며 사람을 본다 (1) | 2024.03.23 |
쓰레기차와 환경미화원의 귀여움 대결 (1) | 2024.03.20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