누가 나를 쓸모없게 만드는가 - 이반 일리치

27쪽
가격표가 붙지 않는 거래는 모조리 무시하는 산업사회는 인간이 적응할 수 없는 도시의 풍경을 만들었다. ...... 이곳에서는 날마다 쏟아지는 물건과 명령이 내가 원치 않는 결과를 만들고, 그때마다 나를 지키고 싶은 마음이 들수록 차별과 무기력, 절망의 골이 더 깊어지는 세계이다.

28쪽
지난 20년간 해마다 약 50종의 언어가 사라졌다. ...... 하지만 언어마다 해왔던 저마다의 뚜렷한 역할은 남아서, 인간이 세상을 바라보고 느끼고 즐기는 방식이 서로 비할 데 없이 다양하다는 것을 알 수 있다.

28쪽
다른 사안이라면 격렬하게 반대했을 정파와 정권들도 시장가치가 없는 것이면 아무리 쓸모가 있어도 상품과 서비스로 교체해야 한다는 점에서는 서로가 일치하는 목표가 되었다.

64쪽
서비스 생산에서 새로 생겨난 전문성은 대중이 그것을 받아들이게 하는 동시에, 없어져야 하는 것을 법으로 강제하면서 번창한다. 학교는 문맹을 악으로 정의하고 문맹 퇴치 운동을 벌이면서 확장했다. 병원의 분만실은 가정 출산을 없애면서 우후죽순 생겨났다.

72쪽
필요의 사회적 신분이 상승했다. ...... 전문가의 처방은 늘고 인간의 자신감은 줄어들었다. 현대 의학은 그 어느 시대보다 약리학적으로 효과가 뛰어난 약을 쏟아내지만, 사람들은 가벼운 병이나 불편함조차 이겨낼 의지와 능력을 잃었다.

76쪽
소비자는 마음에 드는 컨버터블 모델을 사려면 녹색 시트가 싫어도 참아야 하거나, 여자 친구가 좋아하는 표범 무늬 시트를 고르면 페이즐리 무늬의 하드톱을 억지로 사야 했다.​

76쪽
서비스 경제는 포화상태에 이르렀다. 그러다 보니 그많은 교육, 의료, 사회치유 서비스를 소비하는 데 필요한 시간이 갈수록 모자란다. ...... 인간에게 공용은 사라졌다. 그 자리에는 전문적인 서비스가 주입되는 탯줄이 달린 낯선 태반이 들어섰다. 인간은 영원히 끝나지 않을 집중치료를 받는다. 삶은 마비되었다.

79쪽
수많은 사람들이 현대의 대성당인 병원과 학교로, 복지시설로 거대한 무리를 지어 이동한다. 가족의 건강을 보살피던 가정은 위생적인 아파트로 바뀌었다. 이곳에서는 아이가 태어날 수도 없고, 아플 수도 없으며, 고귀한 죽음을 맞을 수도 없다. 삶의 고비마다 도움을 주던 이웃도, 멀리서 왕진을 와주던 의사도 오래전 사라진 인종이다. 무언가를 배우는 데 적합했던 일터는 옷깃에 '신분'을 증명하는 금배지를 단 직원만 접근할 수 있는 복도로 이루어진 희미한 미로가 되어버렸다. 이제 서비스 배달 통로로 설계된 이 세계는 복지 수령자로 변한 시민들의 유토피아가 되었다.

82쪽
후기 산업사회가 인간을 불구로 만드는 거대한 서비스 전달체제로 합쳐지고 있는데도, 왜 저항은 일어나지 않는가? 그 이유는 이 체제가 환상을 만들어내는 힘을 갖고 있기 때문이다. ...... 학교는 아이들에게 읽는 법을 가르치는 것 말고도 교사에게 배우는 게 '더 좋은 것'이고 의무교육 때문에 가난한 아이들이 더 많은 책을 읽을 수 있다고 가르친다. ...... 변호사는 세금을 덜 내는 도움만 주는 게 아니라, 법이 문제를 해결할 수 있다는 신념을 심어준다. ...... 인간을 전문가가 구원해야 하는 고객으로 바꾸는 것이다.

85쪽
사람은 기업과 전문가가 만든 상품에 어느 정도를 넘어 지나치게 의존하다 보면 자기 안에 있던 잠재력이 파괴된다. ...... 단순히 채우는 필요가 아니라 만족감을 주는 필요는 한 사람이 스스로 행동하고 그 과정을 회상하면서 생겨나는 즐거움에 의해 결정되어야 한다.

88쪽
서로 보완하며 상승효과를 내던 사용가치와 상품은 이때부터 역효과를 만들어낸다. 이는 역설적이면서도 매우 구체적인 반생산성이다. '반생산성'이라는 용어는 상품이 사용가치를 대체하면서, 상품이 원래 사람에게 제공하기로 했던 만족 대신 그 반대인 부정가치를 만들어 인간을 무력하게 하는 모든 상황을 지칭한다.​

97쪽
말을 하고, 무언가를 배우고, 자신을 치유하고, 누군가를 보살필 자유를 박탈할 수 있는 확실한 방법 중 하나는 시민의 권리를 시민의 의무로 변형시켜 자유에 한계를 설정하는 것이다.

100쪽
시민이 변호사를 찾을 권리가 법적으로 제도화되면, 동네 술집에서 다툼이 생겼을 때 누군가 나서서 말린다면 교양 없고 반사회적인 짓을 하는 꼴이 된다. 집에서 아이를 낳는 행위가 지금 그렇게 되었다.

100쪽
소비자가 보살핌과 상품에 대한 권리를 요구하면 할수록 그 권리는 기업과 전문가의 권리가 된다.

101쪽
노동은 더 이상 노동자가 느낄 수 있는 가치의 창조가 아니라, 주로 사회적 관계인 직업을 의미한다. ...... 중요한 것은 일을 하여 얻는 만족이 아니라 생산을 지휘하는 사회관계에서 얻는 직장과 배경, 직책과 승진 등의 지위가 되었다.

107쪽
이런 실패로 인해 사람들은 전문가의 횡포에 맞서기 위해서는 전문가의 보호가 필요하다는 신념을 다시 굳히게 된다. ...... 이 '비판적 의사', '급진적 변호사', '공공 건축가'들은 자신들보다 변화에 둔감한 동료들로부터 고객을 가로채는 것이다.


[네이버 책] 누가 나를 쓸모없게 만드는가 - 이반 일리치

 

누가 나를 쓸모없게 만드는가 : 네이버 도서

네이버 도서 상세정보를 제공합니다.

search.shopping.naver.com

 

Posted by 몽자크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