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6쪽
시간이 지날수록 나는 길 끝에서 느낀 거대한 허무가 아니라 길 위의 나를 곱씹어보게 되었다. 그때 내가 왜 하루하루 더 즐겁게 걷지 못했을까.
31쪽
걸으면서 고민을 이어갈 때도 있다. 하지만 신기하게도 걷는 동안에는 어쩐지 그 고민의 무게가 좀 가벼워지는 듯한 느낌이 든다. ...... 기분에 짓눌려서 문제를 키우고 고민을 부풀린 것은 결국 나 자신이었음을 깨닫는다. ...... 나는 나의 기분에 지지 않는다. 나의 기분을 컨트롤할 수 있다는 믿음, 나의 기분으로 인해 누군가를 힘들지 않게 하겠다는 다짐. 걷기는 내가 나 자신과 타인에게 하는 약속이다.
41쪽
내 갈 길을 스스로 선택해서 걷는 것, 내 보폭을 알고 무리하지 않는 것, 내 숨으로 걷는 것, 걷기에서 잊지 말아야 할 것은 묘하게도 인생과 이토록 닮았다.
58쪽
아무것도 하지 않는 것과 휴식을 취하는 것은 다르다. 나는 휴식을 취하는 데도 노력이 필요하다는 사실을 배웠다. 적어도 일할 때처럼 공들여서, 내 몸과 마음을 돌봐야 하지 않을까?
62쪽
발 디딜 수 있는 공간만 있다면 걸어서 이동하기. 그러니까 차는 물론 엘리베이터, 에스컬레이터, 무빙워크 등은 가급적 타지 않는다. 걸음수를 일상에서 알뜰살뜰 모아야 한다. 이동할 때 지키는 이 작은 원칙이 내가 하루에 3만 보를 걷는 결정적인 비결이다. 나는 바퀴 달린 것이나 내 몸을 자동으로 옮겨놓는 탈것을 그다지 좋아하지 않는다. 웬만한 거리는 내 다리로 뚜벅뚜벅 걸어다니는 게 좋다. 굳이 운동 시간을 짜로 내지 않더라도 이렇게 두 다리로 이동하는 것만으로도 하루 걸음수를 뿌듯하게 채울 수 있다.
78쪽
고통보다 사람을 더 쉽게 무너뜨리는 건, 어쩌면 귀찮다는 생각인지도 모른다. 고통은 다 견뎌내면 의미가 있으리라는 한줌의 기대가 있지만, 귀찮다는 건 내가 하고 있는 모든 행동이 하찮게 느껴진다는 거니까. 이 모든 게 헛짓이라는 생각이 머리에 차오른다는 거니까. ...... 어쩌면 고통의 한복판에 서 있던 그때, 우리가 어렴풋하게 찾아헤맨 건 '이 길의 의미'가 아니라 그냥 '포기해도 되는 이유'가 아니었을까?
91쪽
내가 사는 곳 주변에 내 이름을 붙인 트레킹 코스를 만들어보는 건 어떨까? 누군가 말한 것처럼 '내가 가는 곳이 길이 된다.'
104쪽
하지만 일단 한 발만 떼면 저절로 걸어지는 법이라서 이내 열심히 걷고 있는 나를 발견하게 된다. 걷기의 매력 중 하나는 날씨와 계절의 변화를 피부로 느낄 수 있다는 점이다.
127쪽
그런 단어들이 우리에게는 참 많다. 참께 모였을 때 만들어진 단어들, 우리가 쓰면서도 자꾸 웃게 되는 말들. 웃기 위해 의도적으로 만든 단어들이 아닌데도, 돌아보면 우리끼리 쓰는 즐거운 암호와 농담으로 인해 관계가 더 돈독해진다. 나는 앞으로도 우리가 이렇게 아무렇지 않은 일로 함께 웃을 일이 많기를 바란다.
129쪽
다 같이 있는 순간이 즐거우므로 누군가의 연락을 애타게 기다릴 필요도, 다른 세상의 소식을 불안하게 서칭할 필요도 없다. ...... 하와이에서 나는 걷고 먹고 웃는 일에 하루를 다 쓴다.
157쪽
'아침에 운동하면 건강해지고 하루를 성실하게 시작할 수 있으니 그만 일어나자! 넌 할 수 있어!'
이건 좀 아닌 것 같다. 지친 내 몸을 소외시키고 다그치는 이런 얘기는 피로한 나에게 먹히지 않는다. 내 경험상으론 그보다는 단순한 행동과 결심이 훨씬 더 힘이 세다. 일단 몸을 일으키는 것. 다리를 뻗어 한 발만 내디뎌보는 것.
이러한 행동들이 매일같이 이어져 습관이 되면 그다음부터는 별다른 노력 없이도 일어나 걸을 수 있다. 몸에 익은 습관은 불필요한 생각의 단계를 줄여준다. ...... 걷기가 습관이 되면 굳이 고민하지 않고 결심하지 않아도 몸이 절로 움직인다.
162쪽
많은 사람들이 이를 단순한 육체 피로로 여기고 아무것도 하지 않은 채 누워서 쉬려고 한다. ...... 하지만 정신적 에너지가 고갈되면 이런 방식으로는 절대 회복되지 않는다. ...... 언젠가부터 나는 힘들 때마다 속으로 이렇게 되뇌게 되었다. '아, 힘들다...... 걸어야겠다.'
166쪽
루틴의 힘은 복잡한 생각이 머리를 잠식하거나 의지력이 약해질 때, 우선 행동하게 하는 데 있다.
207쪽
우리들만의 독서 모임에서 그간 읽은 책들의 리스트는 다음과 같다. 다비드 르 브르통의 <걷기 예찬>, 구가야 아키라의 <최고의 휴식>, 일자 샌드의 <센서티브>, 마이클 해리스의 <잠시 혼자 있겠습니다>, 토니 포터의 <맨박스>, 조훈
현의 <조훈현, 고수의 생각법>, 다다 후미아키의 <말의 한 수>, 이기주의 <말의 품격> 등이다. 책 제목을 보면 우리가 공유하는 관심사를 짐작할 수 있을 것이다.
241쪽
내게는 '어떻게 시나리오를 고르는가?'라는 질문보다 '어떤 사람들과 일하길 좋아하느냐'라는 질문이 더 맞는 것 같다. ...... 영화뿐만 아니라 내가 어떤 선택의 기로에서 결정을 내리는 근간은 대개 '사람'이다. 단순히 성공한 사람이나 깜짝 놀랄 만한 조건을 제시하는 사람과 일하는 것이 아니라, 이 영화를 어떤 마음으로 찍을지, 그에게 이 작품이 어떤 의미인지를 살핀다.
284쪽
내 몸에 기운과 에너지를 늘 충만하게 유지하기 위해서는 운동이 반드시 필요하다고 생각했다.
286쪽
지금 고통 받고 있다고 해서 그것이 내가 곧 노력하고 있는 것이라고 착각해서는 안 된다. 혹시 내가 정류장이 아닌 곳에서 오지 않을 버스를 기다리는 건 아닌지 수수로 주변을 돌아봐야 한다.
61쪽
러닝머신을 타고 오십 분 정도를 꼬박 걸으면 약 5천 보에서 6천 보가량이 찍힌다. 우리 걷기 멤버들 사이에서는 이 오십 분을 '1교시'로 친다. 1교시 오십 분을 걸은 후 십 분 쉬는 것이 우리의 규칙이다.
73쪽
10만 보 걷기란 약 84킬로미터를 하루 만에 걷는다는 것이다. 마라톤 풀코스의 두 배 정도 되는 거리이고 보통 걸음으로 약 스무 시간이 소요되기 때문에 결코 만만하게 볼 일이 아니다.
44쪽
나는 촬영을 앞두고 '급다이어트'를 해야 하는 경우, 절대 먹지 말아야 할 금지식만 몇 개 정해놓고 평소처럼 먹고 계속 걷는다. 햄버거, 탄산음료, 설탕과 소금이 과하게 들어간 음식-장담하는데 딱 이 메뉴만 식단에서 걷어내고 꾸준히 걷기만 해도 확실히 살이 빠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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