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다른 콤비 - 결혼의 목적 - 약속
결혼에는 숱한 약속이 붙는다. 출발점인 결혼식에서부터 양쪽의 약속을 공개적으로 받아 내는 것으로 시작한다. "○○○군은 ○○○양을 아내로 맞아 어떠한 경우에도 항상 사랑하고 존중하며 어른을 공경하고, 진실한 남편으로서의 도리를 다하여 행복한 가정을 이룰 것을 맹세합니까?" 신부에게도 같은 질문이 이어진다. 문제는 대부분 진심에서 우러나는 다짐보다는 절차상의 형식적인 약속들이라는 데 있다. 약속을 보다 진중하게 받아들인다면 섣불리 할 수 없는 약속들을 서로에게 맹세하고, 다른 사람들에게 보란 듯이 외쳐 대는 것이다.
안타깝게도 소리가 크면 클수록 믿을 만한 약속이 못 되는 경우가 많다. 이유는 간단하다. 자신의 감정에 충실한 사람의 입에서 나온 말이기 때문이다. 결혼 전이든 후든, 연애 초기든 익숙해진 다음이든, 큰소리치며 상대를 사랑하는 마음을 과시하는 사람은 본인의 당시 감정을 가감 없이 표현하는 부류다. 조심해야 할 것은 상대에 대한 사랑이 식거나 사랑하는 사람이 바뀌면, 그때의 감정 또한 여지없이 드러낸다는 데 있다. 감정 표현이 풍부하고 애정 표현이 과한 사람, 그런 태도에 쉽게 넘어가는 사람이라면, 굳은 다짐일수록 더 큰 배신으로 돌아올 수 있다는 사실을 기억해야 한다.
결혼식에서 주례가 신랑 신부에게 으레 묻는 질문. 이는 주례가 없으면 사회자라도 대신 나서서 물을 만큼 빠지지 않는 절차로 굳어졌다. 그런데 질문을 가만히 들여다보면, 참으로 허무하기 짝이 없다. 사랑, 존중, 공경, 행복, 모두가 감정에 대한 약속이다. '평생 너를 사랑하겠다', '죽을 때까지 행복하게 해 주겠다'는 건 당시의 감정일 뿐이다. 감정이란 본인의 의지대로 움직이지 않는다. 머리로 아무리 계획하고 다짐해도 감정은 제멋대로 흐르기 마련이다. 따라서 감정에 대해 약속하는 것, 그런 상대의 약속을 철석같이 믿고 안주하는 것보다 어리석은 짓은 없다.
식장에서나마 성스러운 약속을 공개적으로 주고받지 않으면 결혼에 대한 생각이 더 가벼워질지 모른다고 염려하는 이도 있겠지만, 이는 굳이 걱정할 필요가 없어 보인다. 혼인 서약과 이혼율과의 상관관계는 듣도 보도 못했다. 연인, 부부간의 약속이 상대의 초심을 결코 보장해 주지 않는다는 걸 잘 알면서도 많은 사람들은 여전히 갖은 약속을 주고받는다. 무참히 깨질 수 있다는 사실을 애써 외면해 버린다. 그래야 스스로를 위로하고 버텨 낼 수 있기 때문이다. 그리고는 약속이 깨지면 상대를 원망하기 바쁘다. 약속을 핑계로 모든 잘못을 상대에게 떠넘기는 것이다.
애초에 불가능한 약속을 억지로 받아 내고, 이를 담보로 상대를 옭아매는 관계는 행복할 수 없다. 약속을 입으로 내뱉는 쪽도, 이를 받아들이는 쪽도, 말장난에 행복을 빼앗기고 싶지 않다면 분명히 해 둘 필요가 있다. '평생 너를 사랑하겠다'는 말은 '지금 같아서는 평생 너를 사랑하는 마음이 변치 않을 것 같다'로, '죽을 때까지 행복하게 해 주겠다'는 말은 '죽을 때까지 행복하게 해 주고 싶을 만큼 지금 나는 너를 무지 아끼고 사랑한다'로 고쳐야 한다. 감정 상태에 대한 약속은 애초에 불가능하기 때문에, 현재 감정이 얼마나 지극한지를 표현하고 이해하는 데서 그쳐야 한다는 얘기다. 굳이 약속을 받아 내고 싶다면 이런 약속을 권한다. "사랑이 식거나 감정이 변해도 다른 사람과 잠자리를 갖는다거나 결혼을 깨는 일은 없도록 하겠다." 이 정도 약속이라면 사전의 합의와 약속이 충분히 의미 있을 수 있다.
사랑을 고백하고 본인의 사랑을 증명해 보이는 일, 상대가 늘어놓는 수많은 약속과 다짐에 감동하고 안도하는 일이 얼마나 허무한 것인지를 일찌감치 깨달은 우리 부부는 일체의 약속도, 다짐도 없이 시작했다. 부모를 위한 행사로 여기고 치른 식장에서의 답변이 전부다. 하지만 전혀 불안하진 않다. '선녀와 나무꾼' 이야기의 나무꾼처럼 선녀의 옷을 숨겨도 마음을 잡지 못하면 아무 소용이 없다는 걸 잘 알고 있다. 약속이나 각서, 혈서 등은 선녀의 옷, 그 이상도 이하도 아니다. 때문에 자식이나 주변의 이목을 핑계로 서로를 잡아 두는 짓은 하지 않기로 합의했다. 그저 오늘의 감정을 솔직하게 표현하고 지금 우리가 함께할 수 있음에 감사할 뿐이다.
고지식한 어르신들은 물론이거니와 새파란 20대 청춘들에게도 우리의 결혼관은 꽤 충격적인 모양이다. 어느 정도 우리 부부를 파악했다 싶을 만큼 가까워진 다음에도, 이 얘기에 대해서만큼은 놀라는 기색이 역력하다. '언제든지 헤어질 수 있다'는 생각에 대한 얘기다. 실제로 우린 죽을 때까지 사랑하자는, 아름답지만 언제 깨질지 모르는 허울 좋은 약속 따윈 하지 않는다. 결혼한 목적이 행복에 있었기 때문에 결혼이 서로의 행복에 방해가 된다면 다시 생각해 봐야 한다는 주의다. 양쪽 모두 평생을 행복하게 사는 것이 우리 둘의 바람이자 목적이기 때문이다.
서로를 남편과 아내의 자리에 붙잡아 두지 않는 건 생각보다 긍정적인 기능을 갖는다. 자칫 경솔한 행동을 불러일으키거나 서로에 대한 무관심을 조장하지는 않을까 우려하는 시각도 있지만, 경험상 결과는 정반대다. 어느 한쪽이 원하면 각자의 길을 가기로 합의했기 때문에, 지금 이 순간이 더없이 행복하고 소중하다. 죽을 때까지 얼굴 맞대고 살아야 한다고 생각할 때보다 훨씬 더 애틋하고 고맙다. 은행 예금 불리는 데 젊음을 바치고 훗날 노년기에 들어서나 함께 여유를 즐기자는 일반적인 부부를 정상으로 생각하면, 우린 빗나가도 한참 빗나간 부부다. 하지만 우린 '비정상' 딱지도 개의치 않는다. 정상이지만 불행한 부부와 비정상이지만 행복한 부부. 우린 후자를 택했을 뿐이다.
행복계발 시트콤 MONZAQ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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