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다른 생각 - 죽마고우와의 상봉
"다트를 열 번 던져 열 번 다 10점을 맞히려면 어떻게 해야 할까? 한 가지 방법이 있다. 던져 놓고 거기에 과녁을 그리는 것이다. 남이 그려 놓은 과녁에 내 화살을 맞힐 필요는 없다. 남이 10점이라고 정해 놓은 데다가 내 생각을 맞출 필요 또한 없다. 자기 자신을 너무 틀에 가두려 하지 말자. 좀 풀어져도, 돌아이 소리 좀 들어도 괜찮다. 오히려 행복하다. 주변의 돌아이들을 한번 보라. 자신들은 늘 행복하다. 주변사람은 몰라도, 자신만큼은 늘 행복하다."
한 강의에서 김제동이 했던 얘기다. 다양성의 가치와 필요성을 강조하고 있다. 무엇이든 생각하는 방식, 바라보는 관점만 바꾸면 달리 보인다는 발상의 전환. 그 목적은 행복에 있다. 돈으로 버는 돈의 규모가 땀 흘려 버는 돈의 규모와는 비교할 수 없을 만큼 어마어마해지고, 내 삶은 점점 팍팍해져만 가는데 각종 매체를 통해 접하는 타인들의 삶은 갈수록 호화롭기만 한 지금. 천편일률적인 사고방식은 상대적 빈곤감만 부추기는 악성 분자다. 남들이 정해 놓은 기준 때문에 자괴감에 빠지는 바보짓은 이제 그만 멈추자. 내 화살을 기준으로 과녁을 그려 넣듯이, 내가 가진 것을 만점으로 여기면 그래서 행복하다면 그것으로 족하다. 같은 상황을 다르게 바라본다고 해서 틀린 것은 아니다. 중요시하는 가치가 다를 뿐이다. 남에게 피해 주지 않고 본인이 내린 결정에 책임질 각오만 되어 있다면, 얼마든지 매 순간을 제멋대로 해석하고 즐겨도 된다.
남편과 그의 친구 얘기다.
15년의 유년기를 각자 보내고 한 고등학교에 진학한 수훈과 상엽. 둘은 곧 둘도 없는 친구가 된다. 고등학교 3년을 포함해 어림잡아 5년을 줄곧 붙어 다닌다. '평범한' 대한민국의 두 아들들은 '평범하게' 대학에도 가고 군에도 다녀온다. 순식간에 흘러가는 피 같은 20대. 제대 후 대학 졸업, 취업 전쟁을 연이어 치르면서 옛 친구를 만나기란 여간 어려운 일이 아니다. 1년에 한 번이 2년에 한 번이 되고, 결혼식이나 돌잔치가 있어야 그나마 얼굴이라도 볼 기회가 생긴다. 각자의 자리에서 주어진 오늘을 살며 보낸 시간이 그 후로 또 15년. 어느덧 장성한 서른다섯의 아저씨가 되어 오랜만에 한 자리에 마주 앉았다.
같은 지역에서 같은 학교를 다니며 비슷한 수준의 대학에 진학한 두 놈. 둘은 참 평범한 아이들이었다. 물론 평탄하지만은 않았다. '평범'은 '평탄'과 거리가 멀다. 평범한 삶이란 크고 작은 우여곡절을 포함한다. 비슷한 사고방식과 생활수준으로 끈끈한 우정을 쌓을 수 있었다고 생각했는데, 사회생활에 찌들어 한동안 못 본 사이 둘은 꽤 달라져 있다. 우정 전선에는 이상이 없다. 보다 고차원적인 연결고리가 여전히 관계를 지탱하기 때문이다. 다만 짐작하지 못했던 서로의 '다른' 모습이 흥미로울 뿐이다. 상엽과 수훈은 이렇게 달라져 있다.
둘은 모두 유부남이다. 상엽은 2005년에 결혼해 현재 아내와 1남 1녀를 둔 가장이다. 아내는 육아와 살림을 맡아 집안일을 돌보고, 상엽은 바깥양반으로서 열심히 돈을 번다. 거처는 서울 시내 한 아파트. 결혼 당시 전세로 마련한 집이다. 얼마 전 부모의 도움으로 '내 집'이 됐다. 실평수 15평 내외의 작은 아파트지만, 부촌도 빈촌도 아닌 '그냥 서울'의 주택가지만, 상엽은 엄연히 3억 원 상당의 집을 소유한 '자가주택 거주자'다. '내 집 장만'이 그토록 어렵다는, 하지만 누구나 고대하는 대한민국에서 서른 중반에 빚 없이 네 식구의 안정적인 보금자리를 마련했다는 건 누가 봐도 희망적인 중년의 서막이다.
수훈도 7년 전인 2007년 7월 7일, 결혼식을 올렸다. 아직은 '상팔자'라는 무자식. 수훈 역시 가장이다. 단 두 식구뿐이지만 먹여살리는 건 좌우지간 수훈의 몫이다. 고로 그는 '가장'이다. 거처는 수도권 내 한 다세대주택. 결혼 전 마누라가 살던 월세에 합류해 신혼살림을 시작했다. 몇 차례 1,000에 40, 500에 20을 오가다 이곳에 정착한 지 4년. 물론 쭉 월세다. 결혼 당시부터 지금까지 참 한결같다. 누가 봐도 '불안정' 그 자체다.
어엿한 내 집에서 둘째의 돌잔치를 앞두고 있는 상엽. 취미를 살리겠다며 다니던 직장을 그만두고 돌연 주방 보조 알바를 시작해 최근 가까스로 정규직 자리를 꿰찬 수훈. 오랜만에 만난 두 친구의 모습, 그리고 그 분위기는 어떨까? 대충 머릿속에 비슷한 그림들을 떠올릴 것이다. 실제는 이렇다.
'인맥'이 아닌 '친구'와의 만남은 언제나 즐겁다. 우환이 있어 위로를 주고받을 때도 짠한 마음은 불편하거나 불쾌하지 않다. 고통의 공감은 오히려 흐뭇하고 따뜻하다. 단둘이 잘 붙어 다니던 수훈과 상엽은 오늘도 오붓하게 둘만 만났다. 진원지도 알 수 없는 유치찬란한 어릴 적 별명이 자기도 모르게 튀어나온다. 술잔을 기울이고 있다는 것만 달라졌을 뿐, 딱 그 또래 모양 놀고 있다. 주제 없는 대화, 가감 없는 속사정, 결론 없는 하소연, 그리고 이유 없는 박장대소. 삼십대 중반의 삶이 그렇 듯 대화는 희로애락을 넘나들며 무르익는다.
분위기에 취해 신나게 웃고 떠들다가도 돌아서면 왠지 모를 허전함이 감도는 게 숱한 '약속'의 뒤끝이다. 진정한 친구와의 허심탄회한 술자리는 바로 그 '돌아서는 순간'에 미묘한 차이를 남긴다. 기억 나는 얘기가 없어도 마냥 좋다. 그저 '오늘 만나길 참 잘했다' 싶다. 집값 훨씬 저렴한 동네에 월세를 살아도, 서울 시내 복판에 떡하니 아파트를 가지고 있어도, 기 죽거나 우쭐할 거리가 못 된다. 그런 물리적인 여건을 들먹거릴 만큼 얄팍하고 부실한 관계가 아니다. 서로의 '존재'가 지닌 가치에 비하면 아무것도 아니다. '내려놓은' 대화는 편하고 또 진솔하다.
결혼 10년이 채 안 된 유부남들의 대화. 처갓집과 본인, 시댁과 아내, 즉 장서와 고부간의 '관계'에 대한 얘기가 빠지지 않는다. 상엽은 아내가 시댁행을 꺼리는 게 불만 아닌 불만이라고 털어놓는다. 생각 같아서는 아이들을 데리고 아내와 매주 가 보고 싶지만, 아내가 달가워하지 않는다. 속상한 심정을 애써 누르고 있다. 그야말로 평범한 가정사다. 시댁을 불편해하는 며느리, 둘 사이가 좀 더 친근하고 원만하기를 바라는 아들의 심정. 평범하다고 우습게 볼 건 아니다. 지극히 평범한 갈등이 비극의 씨앗이 되기도 한다.
비록 사소한 갈등이지만 오랜만에 만나 푸념을 늘어놓을 만큼 거슬리는 무언가를 안고 사는 상엽. 수훈은 안타깝다. 안정적인 직장에, 멀쩡한 자기 집에, 곱디고운 처자식까지. 어느 모로 보나 훤칠한 친구가 생각지도 못한, 하지만 주변에서 흔히 들을 수 있는 고민을 내비친다. 이때 '다들 그렇게 산다'거나 '고부간에 살가운 집이 몇이나 되겠냐'는 둥 어쭙잖은 위로를 건네는 건 그저 그런 관계에서나 오가는 멘트다.
가식 없는 진솔한 사이라면 자연스레 이런 얘기가 튀어나온다. ① 더 심각한 우리 집안의 고부 갈등, 혹은 ② 이상적인 고부 관계에 대한 자기 자랑. 더 가관인 우리집 얘기는 친구의 쓰린 마음을 상대적으로 가볍게 하는 효과가 있다. 경제적 수준이 비슷한 상황에서 100만 원을 사기 당한 친구에게 1,000만 원 사기 당한 자기 경험을 들려 주면 위로가 되는 것과 같은 이치다. 단편적으로는 친구의 고통을 제 마음 추스리는 데 이용하는 이기적인 처사로 보일 수 있다. 하지만 수십 가지 이야기 속에 플러스마이너스를 주고받다 보면, 결과적으로 모두에게 위로가 되는 해피엔딩이다.
이상적인 고부 관계에 대한 자기 자랑 역시 친구를 두 번 죽이는 짓 같지만 그렇지 않다. 일부 유치하고 가식적인 인간들에게는 해당 사항이 없을지 몰라도, 자랑이란 진정으로 상대를 존중하고 그의 가치를 인정할 때라야만 가능하다. 이 부분에서는 내가 낫지만 다른 부분에서는 상대가 낫다는 것, 따라서 다를 뿐이라는 것을 확신할 때라야만 가능하다. 'apple'을 '애뻘'로 발음하는 유치원생에게 '한국어 발음은 내가 더 좋지롱!' 뽐낼 수 있는 건 녀석의 영어 발음이 기똥차기 때문이다. 그에게 다른 무기가 있을 때 내 무기에 대한 자랑도 늘어놓을 수 있다. '애플'처럼 정확한 '콩글리시'를 구사하는 유치원생에게 우리말 발음 실력을 재는 어른은 없다.
사람을 '우열'로 구분하지 않고 '다양성'의 관점으로 바라보는 현명한 친구라면, 화자의 의도를 머리와 가슴으로 죄 받아들이고도 남을 것이다. 모든 면에서 자기가 우월하다고 생각하는 어리석고 오만한 놈이라면, 까짓것 심기 좀 건드려도 상관없다. 위로와 상생의 훈훈한 의도를 도발이나 무시로 오해하는 건 어디까지나 좁아 터진 놈의 배알 탓이다. 그런 놈에겐 해명할 가치도, 진심 어린 위로를 건넬 필요도 없다. 거리낌 없이 '애뻘'을 연발하는 다섯 살 난 꼬마. 고것이 혹시 난처해하거나 자존심을 다칠까 봐 미안한 듯 조심스럽게 우리말 발음을 들먹인다면 그보다 더 우스운 꼴이 어디 있겠나? 말투나 표정 등 가시적인 테크닉 없이도 진심은 전해지기 마련이다.
말의 의도를 짚어 보자. 유치원생에게 정말 하고 싶은 말은 '우리말 발음에 더 분발하라'도, '우리말 발음은 내가 더 뛰어나다'도 아니다. 친구의 고충을 듣고 그에 비해 바람직한 내 경우를 자랑 삼아 얘기하는 궁극적인 목적도 비난이나 자랑이 아니다. 상대가 가진 다른 장점, 다른 강점을 부각시키기 위한 일종의 재치다. "우리 마누란 내가 가자면 매주라도 토 달지 않고 시댁이든 어디든 기꺼이 나설 텐데. 정말 완벽한 부부지, 집 없는 것만 빼면!" 플러스마이너스가 제대로 작용해서 서로가 윈윈하는 유쾌한 엔딩이란 이런 것이다.
끈끈한 우정, 뜨거운 사랑은 물론이거니와 피를 나눈 부모 형제마저도 원수지간으로 갈라놓는 게 현대사회의 치열한 경쟁 시스템이다. 자기만의 기준을 확실히 해 둘 필요가 있다. 꼬마의 '애뻘' 발음이 훌륭한 건 사실이지만 우리말만큼은 날 따라올 수 없다는, 각자가 다른 장기를 가진 것뿐이라는, 돈도 다양한 장기 중 하나일 뿐이라는 나만의 기준을 바로 세우고 있어야만 가진 자들의 농간에 놀아나지 않을 수 있다.
학창시절 수훈과 상엽의 상황은 별반 다를 게 없었다. 이후에도 비슷하리라 예상했던 둘의 상황은 15년이 지난 지금 꽤 많이 달라져 있다. 하지만 우정에는 변함이 없다. 여전히 존재만으로도 기쁨과 위안이 되는 소중한 친구다. 상대에 대한 존중이 겉모습이나 경제력이 아닌 서로의 존재 자체에 뿌리를 두고 있기 때문이다. 어느 면에서는 상엽이, 어느 면에서는 수훈이 더 행복하다. 서로가 가진 '다른 행복'은 때론 내 고민을 덜어 주기도 하고, 때론 내가 가진 것을 더 감사히 여기게도 하는 묘한 매력을 지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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