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땅찮은 자본주의, 그래서 더 알아야 하는 자본주의 - 자본주의 문외한, 접근을 시도하다

 

프롤로그: 자본주의, 정말 최선인가

 

최근 들어 자본주의와 민주주의에 대한 개인적 회의감이 주체할 수 없을 정도로 극에 달했다. 자본주의란 자유경쟁에 맡기는 시장 경제 체제, 민주주의란 자유와 평등에 기반한 정치 체제다. 거슬리는 건 자본주의의 '경쟁', 그리고 민주주의의 '평등'이다. 평등하게 주어지는 기회를 활용해 상황별 우선 순위를 정할 필요가 있을 때 경쟁을 통하는 사회. 이상적인 경쟁과 평등의 공존은 이런 모습일 거다. 하지만 현실은? 민주주의의 기본인 인권마저 짓밟는 과도한 경쟁, 태어나는 순간부터 불평등한 기회뿐인 모순된 모습.

 

중요한 건 정체, 경제, 사회에 관한 전문가가 아니기에 너무나 막연한 회의감이라는 것. 그래서인지 무지하고 엉뚱한 발상이 꼬리에 꼬리를 물고 이어진다. 자본주의 말고 다른 체제, 대안은 없는 걸까? 오랫동안 인류가 이 체제를 유지한 건 긍정적인 면이 있기 때문일까? 그렇다면 그건 대체 어떤 매력일까? 자본주의가 계급사회보다 나은 건 뭘까? 더 낫다고 말할 순 있을까? 자본주의와 민주주의의 결합은 어떤 작용 또는 부작용을 낳는 걸까? 깊은 회의감은 궁금증으로 번진다.

 

'경쟁'을 내포하는 자본주의부터 탐독해 봐야 했다. '지식' '철학' '방송'의 결합을 추구한다는 EBS <다큐프라임>. '깊이 있는 컨텐츠'를 지향하는 만큼, 아마추어로서 보다 믿을 만한 정보를 얻기엔 안성맞춤일 수 있다. 2012년 이맘때, <다큐프라임> '자본주의'를 주제로 60분짜리 다섯 편을 시리즈로 엮었다. 경제의 ㄱ 자도 모르면서, 당시엔 전혀 관심도 없었으면서, 해당 컨텐츠를 왜 고이고이 간직해 뒀는지 기억도 희미하지만, 한 경제학자의 실용 경제서적 또는 전문 이론을 읽는 것보다는 우선 다양한 경제학자의 인터뷰를 담은, 대중을 대상으로 한 방송을 보는 게 유용하겠다 싶었다.

 

미리 밝히자면, 나는 자본주의 사회에서 '성공'하거나 '우위를 차지'하기 위해 자본주의를 이해하려는 게 아니다. 그저 생각해 보고 싶을 뿐이다. 대안이나 수정안을 마련하려고 해도, 본질적인 폐해를 논하려고 해도, 일단 생성 과정 및 속성을 알아야 가능하다. 둘 다 불가능하다면, 피할 수 없다면, 자본주의를 즐겨 볼 참이다. 그렇다고 해도 우선은 '알아야' 한다.  

 

나를 사회에 끼워맞추고 싶지도, 내 기질과 맞지 않는 방식을 행복이 아닌 성공을 위해 억지로 배우고 싶지도 않다. 울며 겨자 먹기 식으로 끌려가는 건 더 용납할 수 없다. 둘 중 하나를 택할 참이다. 긍정적인 면을 극대화시켜 즐기거나 더 나은 방향으로의 개선을 위해 애쓰거나. 애만 쓰다 죽더라도, 아무런 변화를 일으키지 못하더라도, 희망을 가지고 신념에 따라 사는 편이 훨씬 더 행복하다는 걸 알기 때문이다. 작업의 목적을 밝혔으니, 낚일 일은 분명 없어졌다. 단순 성공, 단순 우위 점령만이 목적이라면 이하 정보는 당신에게 전혀 도움이 안 될 거다.

 

미처 몰랐던 자본주의의 두 가지 불편한 진실

 

대출을 받으면 물가는 오른다?

 

사람들은 돈이 필요할 때 대출을 받는다. 모아 둔 돈이 없거나 있더라도 현금 이외의 자산에 묶여 있을 때, 금융기관에서 먼저 돈을 빌려 쓰고 차후에 갚기로 약속한다. 그런데, 당장 필요한 현금이 없어서 대출을 받는데, 대출을 받으면 받을수록 물가가 오른다니! 결국 대출을 받는다는 건 대출 이자는 물론이거니와 오른 물가만큼의 돈을 더 지불하고 필요한 걸 얻겠다는 얘기다. 이보다 어리석은 짓이 또 있을까? 자본주의가 본래 이런 구조라고 말하는 '다큐프라임'. 그렇게 설명하는 이유도, 그들이 내릴 최종 결론도, 확인해 보지 않을 수 없다.

 

이 같은 자본주의 시스템을 설명하기 위해 '다큐프라임'16세기 영국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돈과 은행이 생겨나기 시작한 그때, 이미 대출은 물가에 영향을 미치기 시작했다는 거다. 과정을 요약해 보면 이렇다.

 

대출의 기원

 

<은행의 발생>

동전과 지폐가 있기 이전, 사람들은 금을 화폐 즉 상품 교환 수단으로 사용해 왔다.

금을 세공하던 금 세공업자는 무거운 금을 휴대하기 편하도록 일정 단위의 작은 금화로 만든다.

그리고 자기가 세공한 금화를 보관하기 위해 업장 내에 금고를 마련해 둔다.

사람들은 금 세공업자의 금고에 자신의 소중한 재산인 금을 보관해 달라고 부탁한다.

금 세공업자는 사람들의 금을 보관해 주기로 하고 보관증을 발급, 보관료를 받기 시작한다.  

사람들은 점차 금화가 아닌, 주고받기 편리한 보관증으로 거래하기 시작한다.

언제든 세공업자에게 보관증을 가져가면 금 또는 금화로 바꾸어 쓸 수 있다.

 

<대출이자의 발생>

금 세공업자는 생각한다. '사람들은 자기 금화를 한꺼번에 찾아가지도 않고, 금화를 찾아가기 위해 모든 사람이 동시에 몰려오지도 않는다. 사람들이 맡긴 금화를 그냥 금고에 둘 것이 아니라 빌려 주고 그에 대한 이자를 받자!'

세공업자는 금고에 쌓인 금화를 다른 사람들에게 빌려 주고 이자를 취해 재산을 불린다.

이를 알게 된 금화의 주인들은 자신의 금화를 돌려 달라며 세공업자를 다그친다.

묘안을 떠올린 세공업자는 그 이익을 함께 나누어 갖자고 제안, 금화 소유주들은 이를 받아들인다.

세공업자는 또다른 생각에 미친다. '금고에 금화가 얼마나 있는지 아는 사람은 나밖에 없다.'

그는 있지도 않은 금화를 마치 금고에 있는 것처럼 보관증을 써서 빌려 주기 시작한다.

보통 약 10%의 금만 찾으러 온다는 점에 착안해, 실제로 보관된 금화의 10배에 달하는 보관증을 발행, 이익금을 챙긴다.

 

<금융위기의 발생>

그렇게 챙긴 이익금으로 금 세공업자는 각종 사업, 무역 등에 투자하면서 거대 자본을 형성한다.

이를 수상쩍게 여긴 자산가들은 세공업자를 찾아가 보관증을 몽땅 금화로 바꿔 간다.

세공업자는 일부 보관증에 대해 금화를 지급하지 못하고 파산하고 만다.

 

<지급준비율의 발생>

당시 오랜 전쟁으로 많은 금화가 필요했던 영국 왕실은 금 세공업자에게 가상의 돈을 발행할 수 있도록 허가한다. 'chartered: 면허 받은, 공인된'

왕은 무역로가 확보되길 바라던 상인들과도 연합한다. 부르주아 자본주의 상인들에게도 은행을 설립할 수 있도록 하고, 가지고 있는 금화의 3배까지 대출해 줄 수 있는 특권을 함께 부여한다.

은행가가 된 금 세공업자와 상인들은 지급준비율을 이용해 돈을 마음껏 불릴 수 있게 된다.

 

국가와 상인들 간의 거래가 성립되면서 본격적인 은행, 대출, 지급준비율 개념이 탄생한 것이다. ① 현재 전 세계 지급준비율의 평균치는 10% 내외. 이는 통상 10%만 찾아간다고 생각한 금 세공업자가 발행했던 '10배 보관증'에서 유래한 수치다. ② 사람들이 보관증을 내고 금화를 찾아가면서 세공업자가 맞게 된 파산. 이는 은행에 돈을 맡긴 사람들이 동시에 돈을 찾는 현상으로, 지금의 뱅크런과 같다. 금융위기는 300~400년 전부터 돈, 은행과 함께 생겨나, 이후 주기적으로 종종 발생하고 있다.  

 

은행과 대출이 언제, 어떻게 생겨났는지를 알아봤다. 이제 다시 앞으로 되돌아가 보자. 대출을 받으면 물가가 오른다고 했다. 학교에서 분명 가격 결정 원리에 대해 배운 바 있다. 자본주의 체제상 가격은 수요와 공급이 일치하는 지점에서 보이지 않는 손에 의해 결정된다고 했다. 대출이 물가에 미치는 영향 따윈 듣도 보도 못한 얘기다. 대출과 물가는 무슨 상관관계가 있을까? 답은 '대출의 결과'에 있었다.

 

대출의 결과

 

A 은행에 100원이 들어오면 은행은 지급준비율에 맞춰 10원만 남기고 90원을 대출해 준다.

90원을 대출한 B 은행은 다시 10%9원을 남기고 81원을 대출, C은행, D은행도 이를 반복한다.

지급준비율을 제외한 대출 금액을 '신용통화', 신용통화로 돈이 불어나는 과정을 '신용창조'라고 한다.

원래의 100원은 신용창조 과정을 통해 최대 1000원까지 늘어날 수 있다. 대출에 의해서!

 

은행

 +

A 은행

+

B 은행

+

C 은행

+

D 은행

+

E 은행

+

F 은행

+ ...
 ₩ 100     90     81     73     66     59     53 ...

 

대출을 받으면 받을수록 물가는 오른다!

 

그렇다. 대출은 돈의 양을 늘린다. 시중에 돈이 많아질수록 물가는 오르기 마련이다. 대출로 늘어난 신용통화가 물가 상승을 부추기고 있었던 거다. 은행이 각종 대출 상품을 출시하며 고객 유치에 열을 올리는 것도 이 때문이었다. 한 사람이라도 더 대출을 더 받아야 은행의 돈이 불어나니까. 빚 권하는 사회는 절대 과장된 표현, 비유적 표현이 아니었다.

 

2013-10-13 이어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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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몽자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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