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람에 대한, 사람을 위한, 사람에 의한 영화 - 영화 선택에서 감상까지

 

사람에 대한 영화

 

2013, 아직 올해의 2/3가 지났을 뿐이지만 지금까지만으로도 연중, 태어나 가장 많은 영화를 봤다. 새삼 흥미로운 사실을 하나 발견했다. 할리우드(헐리우드로 적고 싶은 마음이 굴뚝 같지만, 외래어 표기법상 ''이 맞는 표현이란다.) 영화 가운데 상당수가 소설 또는 실화를 바탕으로 만들어진다는 거다. 영화를 위한 스토리 '창작'만큼, 혹은 그 이상으로, 영화화할 만한 스토리 '발굴'에 심혈을 기울인다는 의미로도 해석할 수 있다.

 

'영화 같다'는 말은 '지나치게 비현실적'라는 뜻으로 자주 쓰인다. 정확한 의미는 '현실에서 일어날 가능성이 매우 적다'는 뜻이다. 실상은 조금 다르다. 비율상, 믿기 힘들 만큼 기막힌 이야기일수록 실화에 기반한 영화가 많다. '실화를 극화했다'는 정보는 분명 영화의 감동을 더하는 효과가 있다. 영화 감상 전과 후, 언제 알게 되더라도 마찬가지다. 인간의 가능성에 대한 희망, 오류에 대한 경고의 '현실성'에 두 번 놀라기 때문이 아닐까.

 

'현실에서의 발생 가능성'은 사람의 '마음을 움직여 언행을 바로잡는' 데 더 큰 영향력을 발휘한다. 한때, 드라마가 영화보다 더 현실적이라고 생각한 적이 있다. 때문에 영화보다 드라마를 더 선호했다. 20대 중반까지의 얘기다. 다양한 영화를 접하고 보니, 드라마가 얼마나 인간과 세계를 보기 좋게 포장하고 있는지를 알 수 있었다. 환상적이고 아름다운 인간상 못지 않게 잔혹하고 비열한 인간들이 수도 없이 많은 현실. 이러한 현실 속에서 진리와 진실을 찾아가는 영화. 영화가 드라마보다 의미 있는 이유다.

 

여전히 'Based On True Story(실화를 바탕으로 한 영화)'라는 문구는 호기심을 자극한다. 그러나 이전처럼 실화와 허구 영화를 양분하지는 않는다. 정도의 차이만 있을 뿐, 모든 영화는 현실적인 인간사를 반영하기 때문이다.

 

사람을 위한 영화

 

스토리의 결말, 사건을 바라보는 시각은 곧 영화가 전달하고자 하는 메시지, 즉 주제로 연결된다. 주제는 대상 고발, 진상 규명, 사상 주입, 관점 제시, 담론 제공, 웃음 유발, 정보 공개, 세태 풍자 등 다양하고 복합적인 목적을 지닌다. 기획 의도에 따라 얼마든지 임의적일 수 있다는 얘기다. 그렇다면 왜  영화의 메시지에 집중할까? 한마디로 '신중'해서다.

 

언론과 비교해 보자. 순간의 화젯거리를 퍼나르기 바쁜 인터넷 뉴스에는 조작과 추측이 난무한다. 정확성과 공정성을 중시하는 방송은 수박 겉핧기식이다. 중간치를 유지하는 시사 프로그램은 매주 방송되는 만큼 당장의 화젯거리만을 집중적으로 다룬다. 교양 프로그램 역시 시간적 여유나 소재의 중복 탓에 영화만큼의 심도를 유지하지 못한다.

 

책을 떠올려 보자. 심도면에서는 어떤 매체도 책을 따라잡기 어렵다. 출간되는 책에는 저자 개인의 영역이 막대하다. '선호하는 저자'의 작품은 '선호하는 영화감독'의 작품보다 기호에 맞을 확률이 높다. 개인의 의도가 지켜지기 때문이다. 영화는 일종의 여러 단계의 '대중화 필터'를 거침으로써, 보다 보편적인 가치를 만들어 낸다. 다수가 동의하는 바를 흥미진진하게 엮거나, 소수의 묻힐 뻔한 이야기를 기발한 설득력으로 뒷받침한다. '단계별로 여럿이 관여'하는 책과 '다수가 동시에 작업'하는 영화의 차이다.

 

형식의 차이도 무시할 수 없다. 구어는 문어에 비해 꽤 자유롭다. 보편적으로 감지할 수 있는 구어의 미묘한 '뉘앙스' 차이가 주제의 전달 효과를 높인다. 책보다 영화의 '메시지'가 소중한 이유다. 갈등과 유머로 무장한 진리와 진실. 이는 일부 전문가, 사상가, 철학자들만이 아닌 각계각층의 다양한 사람들을 일깨우는 수단이 된다. 영화는 각성제이자 영양제다. 방부제만 먹고 버리는 어리석은 관객으로 전락해선 안 된다.

 

사람에 의한 영화

 

영화는 사람에 의해 만들어진다. 당연히 만드는 사람에 따라 다른 작품이 탄생한다. 제작진을 영화 선택의 기준으로 삼는 건 자연스러운 일이다. 제작진 중에서도 감독, 각본, 배우는 영화에 큰 영향력을 행사한다. 가장 흔한 고려 대상은 '배우'. 영화 홍보에도 배우를 내세우는 경우가 많다. 영화에 좀 더 관심이 있는 이들은 '감독'을 확인한다. 각 감독마다 표현 기법이나 극의 전개상 보이는 특색이 있어서, 취향에 맞는 감독의 작품을 골라 본다. 감독과 배우는 일종의 파트너쉽을 형성하고 있는 경우도 많다. '○○○ 감독과 △△△ 배우의 두 번째 야심작!' 이젠 식상할 정도다.

 

각본을 맡는 '시나리오 작가'는 비교적 이슈가 되지 않는다. '작가'의 골수 팬이 '연출자'보다 많은 드라마의 경우를 생각해 보면, 이유가 궁금해진다. 영화보다 드라마에 먼저 관심을 가져서인지 나는 영화를 고를 때도 작가를 확인한다. 우리나라에서는 이창동, 봉준호등과 같은 감독 겸 작가 외에 시나리오 작가만으로 잘 알려진 이를 찾아보기 힘들다. 아마도 감독이 각본을 선택한다는 점에서, 감독의 재량에 작가의 역량을 포함시켜 취급하기 때문인 듯하다.

 

할리우드의 경우에는 주목할 만한 작가가 더러 있다. 윌리엄 브로일리스 주니어(Willian Broyles Jr., 1944), 로널드 바스(Ronald Bass, 1943), 로버트 로댓(Robert Rodat, 1953). 셋은 개인적으로 선호하는 작가다. 블로일리스는 <아폴로 13>(1995), <캐스트 어웨이>(2000), <언페이스풀>(2002) 등의 각본을 맡았다. 감각적인 심리 묘사가 그의 장기다. 바스는 <레인 맨>(1988), <위험한 아이들>(1995), <모짜르트와 고래>(2005), <소울 서퍼>(2011) 등을 썼다. 주로 신체·정신적 장애 및 불우한 가정환경에 처한 이들의 이야기를 소재로, 훈훈한 휴머니즘을 전한다. 로댓의 대표작으로는 <아름다운 비행>(1996), <라이언 일병 구하기>(1998), <패트리어트>(2000) 등이 있다. 그의 실력은 전쟁이나 모험 장르에서 두드러진다.

 

홍정은, 홍미란은 드라마를 함께 집필하는 자매 작가로 유명하다. <환상의 커플>(2006>, <최고의 사랑>(2011), <주군의 태양>(2013) 등이 대표작이다. 홍진아, 홍자람도 <베토벤 바이러스>(2008), <더킹 투하츠>(2012)를 쓴 같은 홍씨 자매다. 영화계에는 감독 겸 작가와 배우로 활동 중인 류승완과 류승범 형제가 있다. 할리우드의 유명한 형제 영화인으로는 작품을 함께 집필, 감독하는 에단 코엔(Ethan Coen)과 조엘 코엔(Joel Coen)을 들 수 있다. <밀러스 크로싱>(1990), <파고>(1996), <시리어스 맨>(2009)등 다수를 함께 만들었다.

 

전쟁과 모험은 개인적으로 선호하는 장르가 아니지만, 스펙터클한 영상미보다 휴머니즘을 부각시킨다는 점에서 로댓의 작품만큼은 구미가 당긴다. 브로일리스의 섬세한 심리 묘사, 바스의 비주류 및 소외자, 소수자들의 휴머니즘은 내가 주목하는 '훌륭한 영화의 조건'이다. 감독과 배우에서 작가로까지 시선을 넓혀 보기를 추천한다. 각자의 취향에 맞는 시나리오 작가를 기억해 두면, 다양한 영화로부터 색다른 재미를 얻을 수 있다. 영화 선택의 폭은 넓히되, 만족스러운 영화를 골라 감상할 수 있는 하나의 방편이 될 것이다.

 

012

 

시사·정보 캠페인 MONZAQ

 

Posted by 몽자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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