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뷰티풀 마인드'와 '존 내쉬', 그리고 '러셀 크로우'
'실존 인물'이 영화 속 '캐릭터'의 근간이 되고, 캐릭터는 '배우'에 의해 해석·표현된다. 배우의 모습을 담은 영화는 '관객'에게 전달, 재해석된다. 실화를 바탕으로 한 영화의 경우, 인물이 작품을 통해 관객에게 전달되기까지, 총 네 개의 주체를 거치게 된다. 이 글은 네 주체가 모두 INTJ 심리 유형인 <뷰티풀 마인드>에 관한 이야기다.
영화 <뷰티풀 마인드>(2001)의 주인공 Jhon Nash. 그는 실존 인물이다. 1928년 생으로, 미국의 수학자이자 94년 노벨 경제학상 수상자Link이다. MBTI 전문 사이트 「셀러브리티 타입스 닷 컴」Link에서는 존 내쉬를 'INTJ 유명인'으로 분류해 놓았다. 전문 사이트까지 뒤져 보지 않더라도, 사실 MBTI에 관심이 있는 이들이라면 영화 시작 5분 만에 주인공의 심리 유형을 눈치챌 수 있다. MBTI와 영화 속 캐릭터를 연결짓는 작업은 이제 흔한 일이 되었다. <뷰티풀 마인드>의 '캐릭터 존 내쉬'와 실제 '존 내쉬'를 통해 INTJ를 가늠해 보는 건 다른 어떤 '연결'보다도 흥미로운 이유가 있다. 영화에는 '허구가 가미된 캐릭터'와 '실제 존 내쉬' 외에도 또 다른 INTJ가 숨어 있기 때문이다. 존 내쉬를 연기한 '배우 러셀 크로우'. 그 역시 INTJ다.
그런 영화가 있다. 내용도 거의 생각 나지 않는데, '대단했다'고 기억되는 영화. <뷰티풀 마인드>가 꼭 그랬다. 이유는 10년이 지난 지금, 영화를 다시 보면서 새삼 깨닫는다. '러셀 크로우가 열연한 존 내쉬'의 시선, 손가짐, 말투, 대인 관계, 모든 것이 소름 끼칠 정도로 와닿았다. 일상의 고통부터 희열까지, '전적인 공감'이 그 이유였다. <뷰티풀 마인드>가 묘사한 'INTJ들의 마인드'를 풀어 본다.
모든 성향은 상황에 따라 장점이 되기도, 단점이 되기도 한다.
독립
그냥 진심
같이 있어도, 혼자다. 심지어 파티에서도 사람들과 잘 어울리지 못한다. 뭘 해야 좋을지 모르겠다. 파티 중에도 수학이랑 논다. "니 넥타이 디자인이 얼마나 싸구려인지 수학으로 증명해 볼까?" 분위기가 유쾌하든 지질하든 상관없다. 비판 의식이 고개를 쳐든다. 곧잘 분위기를 망치곤 한다. 주위 사람들로부터 '불쾌한 자'로 낙인찍힌다. "당신 논문을 둘 다 읽어 봤는데, 나치 암호와 비선형 방정식, 어디에도 독창성은 없더군." '과장된 비난'이 아닌 '진솔한 비판'이다. 동료의 논문을 맹렬히 비판하고는 이내 아무 일도 없었다는 듯 '좋은 시간 보내'라는 인사를 남기고 사라지는 존. 파티에 찬물을 끼얹을 의도는 없었다. 하지만 '부적절한 타이밍' 탓에 의도적으로 상대의 기분을 상하게 하려던 것으로 오해 받기 십상이다.
'식사'는 혼자 즐긴다. 끼니를 때우는 일 말고도 많은 것을 사실상 혼자 한다. '창문 여학생' 알리시아가 저녁 식사를 제안했을 때, 존은 곧이곧대로 '혼자 먹는다'고 답했다. 그게 사실이니까. 밥을 먹을 땐 '밥'과 '나'만 있으면 된다. 음악을 들을 땐 '음악'과 '나', 연구를 할 땐 '자료'와 '나'만 있으면 필요한 건 다 갖춰졌다고 생각한다. '밥도 여럿이 같이 먹어야 맛있다'는 흔한 얘기도 별로 공감을 사지는 못한다. 밥맛을 결정짓는 건 '혼자 먹냐', '같이 먹냐'가 아니란 주의다. '내 취향에 맞는 요리인지', '내가 지금 배고픈 상태인지', '내 기분이 좋은지'에 따라 달라진다. 세 가지만 충족되면 존은 혼자서도 얼마든지 '맛있는 식사'를 할 수 있다.
독자적 판단
미식축구 경기, 빵 부스러기를 서로 차지하기 위해 다투는 비둘기 떼, 지갑을 훔친 도둑을 쫓는 여자. 모든 것이 연구 대상이다. 모든 현상에서 이론을 도출해 내려는 의식이 자동적으로 곤두선다. 세상만사로부터 배울 수 있다는 생각과 함께, 반대로 어떤 교육은 개인의 발전 가능성을 저해한다고 생각한다. "강의는 사고를 둔화시키고 잠재적인 창의력을 파괴하거든." 존이 그 유명한 프린스턴 대학원 강의를 빼먹고 비둘기 떼의 움직임을 지켜보면서 한 말이다. 일종의 '실속파'다. 대학, 교수, 전문가, 그들의 지명도가 어느 정도인지는 중요하지 않다. 자기가 정한 기준에 맞지 않으면, 더 이상 그들로부터 배울 필요가 없다고 느낀다. 독단에 빠질 위험성을 배제할 순 없다. 그러나 그들이 논리적으로 반박할 경우, 얼마든지 반론을 받아들일 준비가 되어 있다. INTJ는 스스로의 기준과 검증 단계를 중시한다. 이미 여러 차례 시행착오를 거치며 정립해 둔 시스템이 내재돼 있다.
본인의 손수건을 행운의 징표로 간직하라고 말하는 알리시아. 알리시아의 말에 존은 이렇게 대꾸한다. "나는 운 같은 건 믿지 않아. 대신 사물에 가치를 매기는 걸 좋아하지." 존은 돌려주려던 손수건을 다시 챙긴다. 알리시아의 말대로 그녀의 손수건을 간직할 참이다. '행운의 징표'로서가 아닌 '간직할 만한 가치가 있는 손수건'이란 생각에서.
공부가 제일 쉬웠어요
사람들과 어울리는 건 어렵다. 별로 그러고 싶은 맘도 없다. 안다. 남들도 자기를 좋아하지 않는다는 걸. 뭐가 문제인지도 알고 있다. 하지만 고칠 생각은 없다. 못하는 걸 잘하려고 애쓰지 않겠다는 거다. 잘하는 걸 더 잘하기 위해 노력하는 것만이 다른 사람들과 사회에 이바지하는 길이라 생각한다. "세상의 진리를 파헤치는 데 내 시간과 정열을 쏟아붓겠어! 독창적인 이론을 정립하는 것만이 나를 부각시키는 유일한 방법이야." 얼핏 들으면 오만하게 비춰질 수 있지만, 가만 생각해 보면 도리어 '오만하다'는 평에 '편견'이 작용했을 수 있다. '이론 정립'은 대단한 일이고, '대인 관계'는 하찮은 일이라는 편견. 정작 존 자신은 '대인 관계'를 더 대단하게 여기고 있었던 것으로 보인다. '사교적인 사람이 되기 위해서는 더 많은 노력이 필요하다는 걸 안다'고 그는 종종 말해 왔다. 누구나 본인에게 버거운 일을 잘해내는 사람을 보면, 대단하다고 생각하는 법이다.
존이 하고 싶어 하고 또 잘할 수 있는 일은, '진리를 탐구하는 작업'이다. 여기에 몰두하다 보면 '지구의 시계'와 '나의 시계'가 다른 주기로 움직일 때가 있다. 존은 A 문제를 푼 다음, 저녁을 먹고 잠자리에 들 계획이다. 그런데 문제를 풀고 보니 시계가 8시를 가리킨다. 존은 헷갈린다. 아침 8시인지, 저녁 8시인지. 교수로 재직 중인 존은 가끔 강의 시간을 까먹는다. 마냥 연구만 하고 싶다. 연구 결과를 전달하는 '강의'는 그것에 능한 다른 사람이 대신해 줬음 싶다. "나 대신 수업을 진행해 줄 박사님 어디 안 계실까?" 동료들이 일러 준다. "니가 바로 '그' 박사야." 온 신경이 연구에 쏠려 있어 학생들과의 약속된 강의 시간이나 애인과의 선약을 잊어 버리기 일쑤다.
교수로서 강의 시간을 잊는다는 건 상식적으로 용납되지 않는 무책임한 처사다. 시간 가는 줄 모르고 연구에 몰입했던 것, 며칠째 도서관 구석에서 논문에 매달렸던 것. '집중력'으로만 보기에는 분명 무리가 있다. 이후 존의 '정신분열증'이 밝혀진다. 의사의 진단에 따르면, 존은 이미 수년 전부터 환각 증세를 보였을 거라고 한다. 그렇다면, 그의 '몰두'는 단지 '현실을 정확히 인식하지 못하는 정신분열증의 증상 중 하나'일 뿐이었을까? 쉬운 예로, '인지장애증(치매)'과 '건망증'을 비교해 보자. 전문가 또는 정밀 검사를 통하지 않는 이상, 둘은 명확히 구분되지 않는다. 겉으로 드러나는 행동이 유사하기 때문이다. '인지장애증'은 평소의 '건망증'과 크게 다르지 않아 발견이 늦어지는 것이다. 존의 '현실 인식 장애' 증상도 평소의 '집중력'과 비슷한 양상을 보였기 때문에, 본인은 물론 대학원 시절부터 10여 년을 함께 한 동료들도 전혀 눈치채지 못했다. 어쩌면 '현실 인식'은 INTJ들이 매일 풀어야 할 숙제인지도 모른다.
합리
합리적 이론
지배적인 이론일지라도 이견이 있을 때는 과감히 반론을 제기한다. '경쟁에서 개개인의 야망은 집단의 이익에 이바지한다.' 근대 경제학의 아버지인 아담 스미스의 이론이다. 동료들이 합창하는 이 이론에 도전하는 존. 그는 '아담 스미스가 틀렸다'고 말한다. 그리고 이론을 세운다. 보고서의 주제를 확인한 교수는 '150년 된 이론을 반박하겠다는 거냐'고 묻는다. 존의 이론은 단순한 반발심이 아니다. 당연히 체계적으로 이론을 뒷받침하는 보고서를 작성했다. 검토를 마쳤을 때 교수는 '지지자'로 돌아섰다.
일관성이 있다. 일관성은 달리 말하면, 논리적으로 입장을 결정한다는 뜻이다. '합리적 의사 결정'은 일관성을 유지하는 근거가 된다. 감정 또는 제반 상황에 따라 정한 입장은 감정과 여건이 달라지면 언제든 바뀔 수 있다. 즉, 일관성을 잃기 쉽다. 존은 일관성을 중시한다. 겉과 속, 전과 후가 다른 건 '세속적'이고 '기회주의적'이란 생각이다. 학생이었을 당시 '일부 강의는 시간 낭비'였다. 교수가 된 지금도 그 생각에는 변함이 없다. "이 수업은 여러분의 시간, 더 중요한 건 금쪽같은 내 시간을 낭비하는 거다. 수업에 참여하든 안 하든 상관 않겠지만, 일단 강의실에 모였으니 각자 이걸 풀어 봐라." 강의를 맡긴 했지만 예전에 그가 들었던 '창의성 계발을 막는 강의'는 하지 않는다. 그가 택한 강의 방식은 '풀어야 할 문제를 던져 주는 것'이다. 스스로 연구하고 깨닫는 데 시간과 노력을 기울일 만한 가치가 있는 문제.
합리적 청혼
상대를 '느낀다'기보다는 '파악'한다. 사랑에 '빠지는 것'보다는 '여기는 것'에 더 가까워 보인다. 본인이 '파악'한 상대의 묘한 매력을 사랑이라 '여기는' 거다. 지성은 때와 장소를 가리지 않고 고개를 쳐든다. 감성은 능히 발휘되어야 할 순간에도 지지부진하다. 플러스로 가면 갈수록 마이너스와는 멀어진다. 지당한 이치다. '감성 발달 수준 최하'에 대한 변명의 여지는 없다. 존의 '미발달 감성'이 위태로운 수준임을 알 수 있는 대목. '청혼' 씬이다. "우리 관계가 오래도록 보장될까? 그걸 증명하는 근거나 믿을 만한 자료 같은 게 있었으면 좋겠는데." 알리시아의 생일 날 한참을 늦게 도착한 존이 건넨 청혼 멘트다.
목적
고집의 기준
20세기. 대학 강의실에 에어컨은 없었다. 존은 강의 시작 전, 공사 소음 차단을 위해 창문을 닫아 버린다. 한 학생이 덥다며 '하나만 열어 두자' 제안하지만, 단칼에 거절한다. 충분히 더위를 견디고도 남을 만한 값어치 있는 강의를 할 참이니까. 중요한 건 '강의'다. 편하고 시원한 시간을 보내고 싶은 사람은 강의실을 나가면 그만이다. 목적이 분명하다. 그 목적을 방해하는 것에는 전혀 융통성을 발휘하지 않는다. 목적에 집중하는 것은 고지식한 것과는 다르다. 목적에 아무 도움도 되지 않는다면, '형식'도 중요하지 않기 때문이다. 전원 셔츠에 넥타이를 매고 앉아 있는 학생들. 정작 교수인 존은 면티 차림이다. 교제도 쓰레기통에 던져 넣는다. 보통, 수업에는 다소 방해가 될지언정 학생의 요구대로 창문은 열어 두되, 묵직한 책과 그럴싸한 복장으로 본인의 권위를 드러내는 데 더 치중한다. 당시는 1950년대였다.
'고집'은 '이치에 맞는지의 여부'에 따라 발동한다. 상대의 주장이 합리적이라면 얼마든지 수용한다. 창문을 열어 두자던 여학생 알리시아. 존으로부터 제안을 거절 당한 그녀는 당돌하게 직접 창문을 열어 올린다. 존의 표정이 굳는다. 그녀는 공사 중인 인부들에게 "죄송한데, 창문을 닫으면 찜통이 되고 열어 두면 귀가 찢어져서요. 창문을 열어 두고 수업할 수 있게, 45분 간만이라도 다른 곳부터 작업하시면 안 될까요?" 인부들의 대답은 'OK'. 존은 그녀의 현명한 대처 방안을 순순히 따른다. 융통성은 없지만, 괜한 고집을 부리지는 않는다. 여기서도 수학적 이론은 성립한다. "다변수 함수에서도 알 수 있듯이, 문제를 해결하는 데에는 여러 가지 방법이 있을 수 있지." 알리시아는 기가 찬다.
합목적적 일상
즉흥적인 것을 꺼린다. 존의 모든 일정은 '목적'을 위한 '과정'이기 때문이다. '합목적적'으로 짜여진 일정이 '천재지변'도 아닌 '타인' 탓에 조정되는 건 불쾌한 일이다. 목적을 이루는 데 장애가 되는 건 가능한 한 피하고 싶다. 알리시아의 첫 데이트 신청. 존은 일방적으로 '금요일 8시'로 못을 박는다. "저녁식사 같이 해요. 저녁은 먹겠죠?" "먹긴 하는데 혼자 먹어. ... 금요일 8시에 데리러 가지." '통보'다. 사실 그렇게 약속을 정하고 이기적으로 통보하지만, 그것마저 잊을 때도 많다. 일에 집중하고 있을 땐 강의 시간이고 데이트 약속이고 일절 생각이 안 난다. 알리시아는 앞으로 몇 번이나 더 존을 기다려야 할까?
생각의 대부분은 '일'에 쏠려 있다. 일하고 있지 않을 때도 늘 일을 '생각'한다. 야외에서 여유로운 시간을 보내고 있는 알리시아와 존. 침묵은 알리시아가 깬다. 그녀는 존에게 '말수가 적은 편이냐'고 묻는다. 존의 대답은, "일에 대한 얘기는 할 수 없어". 존의 동문서답은 그가 평소 주의를 기울이는 분야가 무엇인지 말해 준다. '책벌레', '일벌레'는 NT 유형에게 흔히 붙는 별명이다. 목적에 집중하는 성향이 부각된 결과다. '목적'은 업무의 완결, 지위의 상승, 지식 습득, 대학 입학 등 개인에 따라 달라질 수 있다. 공통적인 건, 일상의 대부분이 목적을 향해 있다는 점, 그리고 그 목적을 이루기 위해 대부분 계획적으로 움직인다는 점이다.
다양성에 기반한 겸손 또는 오만
모두가 이기는 게임
아름다운 세상, 패자가 없는 세상, 모두가 승자가 되는 세상을 꿈꾼다. 그런 세상을 만들어 줄 이론이 있을 거라 믿는다. 그 이론을 세우는 데 사명감을 느낀다. 작업은 재미나다. 각종 분쟁 해결, 군사협정에 긍정적 영향을 미칠 거란 상상을 하면 기분이 좋다. 식음을 전폐한 채 며칠이고 방구석에 틀어박혀 '이론' 연구에 매진하는 건 전혀 어려운 일이 아니다. "우리가 금발녀를 두고 쟁탈전을 벌이면 아무도 그녀를 가질 수 없어. 꿩 대신 닭이라고, 그녀에게 선택 받지 못해 친구들한테 가지? 걔네도 닭 취급에 자존심 상해 하면서 우릴 거절할 거야. 만약, 아무도 금발녀를 넘보지 않는다면 어떨까? 쟁탈전도 없고 그녀의 친구들 기분도 상하지 않겠지. 그게 다같이 이기는 길이야. 또 다같이 즐기는 길이기도 하고. 아담 스미스는 개인이 조직 내에서 스스로를 위해 최선을 다할 때 최고의 이익이 발생한다고 했지만, 최선의 결과는 개인이 자기 자신뿐 아니라 속한 조직을 위해 최선을 다할 때 가능해." 이론은 널리 세상을 이롭게 하는 데 그 목적이 있다는 생각이다.
고백
술집에서 만난 여자에게 접근한다. 다가가긴 하지만 한 마디도 않는다. 그냥 여자가 먼저 말을 붙인다. "한잔 살려고?" 존은 대화법을 모른다. '진심'만 있다. 진심을 '포장'하지도 않는다. "니가 나랑 자게 만들려면, 어떻게 유혹하는 게 좋을까? 내 속내를 털어놓으면 될까? 너랑 액체를 교환하고 싶어. 어때? 지금 바로 나갈까?" 5년이 흘렀다. 존의 커뮤니케이션 능력은 좀 더 진화했을까?
"사교적인 사람이 되기 위해서는 많은 노력이 필요하다는 거 알아. 난 하고 싶은 말을 단도직입적으로 내뱉는 편이야. 그 바람에 종종 관계가 안 좋게 끝나 버리곤 하지." "지금 나한테도 그렇게 한번 말해 봐요." "좋아. ... 당신은 매력 있어. 당신도 날 그렇게 생각할 거야. 하지만 섹스를 하기 전까지, 한동안은 플라토닉 사랑만 했으면 해. 난 당분간 그럴 생각이야. 당장이라도 당신과 자고 싶은 게 솔직한 내 심정이지만." 존은 경험으로 알고 있었다. 보통 그런 말의 대답은 '따귀'로 날아온다는 걸. 알리시아의 반응은 예상 밖이었다. 후려치고 싶은 마음을 억누른 게 아니다. 알리시아에게 존의 '고백 방식'은 신선하고 매력적이었다. 그녀는 그의 고백에 키스로 답한다. 그리고 묻는다. "당신 방식대로 말하고 나니, 결과가 어때?" '얼마든지 그답게 말하라'는 뜻이다. '지레 겁 먹고 입 닫고 있을 필요 없다, 나는 다른 여자들과 다르다, 남들과 다른 당신의 표현 방식을 사랑한다'는 의미다. 둘은 존의 말대로 '묘한 커플'이었다.
투명
사랑하는 대상에게 '가진 것'을 동원해 즐거움을 선사한다. 그녀의 마음을 얻기 위해 존이 취하는 방식이다. 모든 여자들이 좋아할 만한 돈이나 연애의 기술을 떠올려 보자. 존은 가지지 못한 것을 가진 것처럼 위장하지도, 가지려고 애를 쓰지도 않는다. 갑부처럼 보이도록 꾸며 대거나 여인의 마음을 사로잡을 만한 테크닉을 부릴 필요가 없다. 그가 가지고 있는 것만으로도 충분히 상대를 만족시킬 수 있다고 믿는다. 원하는 별자리는 무엇이든 만들어 내는 게 그가 가진 '연애의 무기'다. 감정 표현 역시 숨기거나 가장하지 않는다. 데이트 신청 시 보였던 무미건조함은 온데간데없이, 천재 수학자라고는 믿기 어려울 만큼 그녀 뒤에서 입이 찢어져라 웃고 있다.
존은 그녀가 '애써 존을 지지'하는 게 아니라 자신이 그녀의 '취향에 부합'한다는 사실에 감사했다. 존의 상황에서 누군가는 '열등한 대인 관계 능력이 비로소 개선됐다'거나 '본인의 표현 방식이 사실은 우월한 것이었다'고 생각할지 모르겠다. 존은 그런 어리석은 오류에 빠지지 않았다. 그저 '개인은 저마다 이성에 대한 취향이 달라서 각기 다른 대상에게 호감을 가질 수 있다'고 생각했을 뿐이다.
거짓말은 어렵다. 나름 최선을 다해 끔찍한 총격을 숨기고 둘러대 보지만, 티가 나도 너무 난다. 거짓말하는 것, 특히 알리시아를 속이는 건 무지 어려운 일이다. 어떤 변명을 해도 그녀는 곧바로 거짓말임을 눈치챌 것 같다. '왜 연락도 없이 늦었냐'는 그녀의 질문에 당황하는 존. 존은 제대로 대답도 않고 방으로 들어가 버린다. 들어가서는 문까지 닫아 버린다. 황당한 알리시아! 문을 잠근다! 존의 행동은 선뜻 이해하기 힘들지만, 그의 속내는 '도발'과는 거리가 멀다. 비밀정보요원임을 알리시아에게 털어놓을 수도, 거짓말로 늦은 이유를 둘러댈 수도 없어서 그냥 '도망'친 것 뿐이다. 더 큰 화를 부를지도 모른다. 그래도 사랑하는 그녀를 속이는 건 너무 어렵다. 물론 사건은 '상상 속의 일'이었지만, 존에겐 분명 '진짜 벌이진 총격전'이었다.
사운드 오브 심리 MONZAQ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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