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침에는 죽음을 생각하는 것이 좋다 - 김영민


22쪽
역사상 가장 뛰어난 권투 선수 중 한 사람이었던 마이크 타이슨은 이렇게 말했다. "누구나 그럴싸한 계획 하나씩은 가지고 있다. 처맞기 전까지는." 사람들은 대개 그럴싸한 기대를 가지고 한 해를 시작하지만, 곧 그 모든 것들이 얼마나 무력하게 무너지는지 깨닫게 된다. 링에 오를 때는 맞을 것을 각오해야 한다. 따라서 나는 새해에 행복해지겠다는 계획 같은 건 없다.  
...... 행복이란, 온천물에 들어간 후 10초 같은 것. 그러한 느낌은 오래 지속될 수 없기에, 새해의 계획으로는 적절치 않다. 오래 지속될 수 없는 것을 바라다보면, 그 덧없음으로 말미암아 사람은 쉽게 불행해진다. 따라서 나는 차라리 소소한 근심을 누리며 살기를 원한다. 이를테면 '왜 만화 연재가 늦어지는 거지', '왜 디저트가 맛이 없는 거지'라고 근심하기를 바란다. 내가 이런 근심을 누린다는 것은, 이 근심을 압도할 큰 근심이 없다는 것이며, 따라서 나는 이 작은 근심들을 통해서 내가 불행하지 않다는 것을 안다. 

33쪽
"깨달음을 얻는 곳, 금각사로 가려면 어떻게 해야 하죠?" 자기 안의 고지식한 안내자가 천천히 답을 생각하고 길을 가르쳐주려고 하면, 그 관광객은 이미 서둘러 떠나고 없다. 그래서 삶에 대한 진짜 이야기는 대개 허공에 흩어지게 된다. 허공에다 이야기하다가 죽는 게 인생이지. 

37쪽
그 관조 속에서 상처 입은 삶조차 비로소 심미적인 향유의 대상이 된다. 이 아름다움의 향유를 위해 꼭 필요한 것은 시야의 확대와 상처의 존재다. ...... 태어난 이상, 성장할 수밖에 없고, 성장 과정에서 상처는 불가피하다. 제대로 된 성장은 보다 넓은 시야와 거리를 선물하기에, 우리는 상처를 입어도 그 상처를 응시할 수 있게 된다. 상처도 언젠가는 피 흘리기를 그치고 심미적인 대상이 될 수 있다는 것, 그것이 성장이, 예술이 우리에게 주는 구원의 약속이다. 

40쪽
설거지의 윤리학. 설거지는 밥을 하지 않은 사람이 하는 게 대체로 합리적입니다. 취식은 공동의 프로젝트입니다. 배우자가 요리를 만들었는데, 설거지는 하지 않고 엎드려서 팔만대장경을 필사하고 있어서는 안 됩니다. 아무리 귀여운 미남도 그런 일은 용서받을 수 없습니다. 혹자의 삶이 지나치게 고생스럽다면, 누군가 설거지를 안 했기 때문일 가능성이 큽니다. 한국의 현대사는 19세기 유한계급 양반들이 게걸스럽게 먹고 남긴 설거지를 하느라 이토록 분주한 것이 아닐까요? 후대의 사람들이 자칫 설거지만 하며 인생을 보내지 않으려면, 각 세대는 자신의 설거지를 제대로 해야 합니다. 이것이 이른바 세대 간의 '정의justice입니다.

74쪽
입시 공부가 갖는 또 하나의 큰 문제는, 많은 이들로 하여금 공부를 싫어하게 만든다는 것이다. 공부하는 곳에 입학하기 위해 공부가 싫어지는 체험을 해야 하는 역설이 대학 입시 공부에 있다. 더 큰 문제는 그 싫어진 공부가 곧 공부의 전부라고 착각하게 되는 것이다. ...... '토종' 한국인도 양식을 좋아할 수 있구나. 

131쪽
확실한 것은 그 어떤 생각도 그 현장에서 의식의 수면 위로 떠오르지는 않았다는 사실이다. 나는 그저 평소처럼 행동했다. 우리는 서로 맡은 역할을 수행하여, 논문 심사라는 부실한 역할극을 완성했다. 위력이 왕성하게 작동할 때는, 인생이라는 극장 위의 배우들이 이처럼 별생각 없이 자기가 맡은 배역을 수행한다. 당시 교수들도 자신이 위력을 행사하고 있으리라고는 새삼 생각하지 않았으리라. 위력이 왕성하게 작동할 때, 위력은 자의식을 가질 필요가 없다. 위력은 그저 작동한다. 가장 잘 작동할 때는 직접 명령할 필요도 없다. 니코틴이 부족해 보이면, 누군가 알아서 담배를 사러 나간다. 

131쪽
그런데 내 견해를 들은 그는 다짜고짜 화를 냈다. 화를 내며 반론을 하는 것이 아니라, 그냥 화를 냈고, 분위기는 창난젓이 되었다. ...... 분노나 폭력이나 강제는 위력이 잘 작동할 때보다는, 위력이 자신의 실패를 절감할 때 나타나는 징후다. 

156쪽
이 땅에 희망이 있어서 희망을 가지는 것이 아니라, 희망을 가진 사람이 되고 싶기에, 희망을 가진다.

157쪽
논자들 대부분이 국정교과서를 통해 주입식 교육을 받은 사람들이니만큼, 이성적 토론 능력을 갖추고 있을 확률은 높지 않다. ...... 청소년기부터 이러한 차이와 모순을 논하는 기회를 얻지 않던 사람이 어느날 갑자기 정상적인 토의민주주의를 구현해내기는 쉽지 않을 것이다. 

157쪽
국정 역사교과서는 놀랍게도 서두에서 특정 역사관의 주입이 아니라 "역사적 사고력 함양"을 목표로 한다고 천명하고 있다.

158쪽
신분상승과 신분해방은 별개다. 신분상승의 열망은 현존하는 신분체제 내에서 자신이 신분의 사다리를 빨리 타고 오르겠다는 것이고, 신분해방의 열망은 그 사다리 자체를 개혁하겠다는 것이다. 

159쪽
셋째, 체질상 굳은살이 생기지 않는 이들은, 각종 불의와 헛소리에 대한 알레르기를 지병으로 갖게 된다. 이들은 상시적 분노 상태에 있다. 젠장, 태어나버렸군, 혹은 희망은 바보의 특권이지, 라고 중얼거린다. 이들의 분노는 고독한 독백으로만 표현될 뿐, 함성이 되지 못한다. 그들은 그저 옷깃을 여미고, 오늘도 춥고 비열한 거리를 걷는다.
이들의 고독에는 원인이 있다. 집권세력은 분노의 근본원인을 이해하려 들지는 않지만, 그 분노를 제압하는 방식에 대해서는 잘 알고 있다. 그들은 집단행동을 하는 데 드는 시간적, 금전적, 체력적, 정서적 비용을 증가시킨다. 그리고 그 비용을 기꺼이 지불하기 어렵게 사람들을 궁핍한 상태로 유지시킨다.

170쪽
유권자들은 이 제한된 시간을 활용해서 그나마 나은 후보를 가려내야만 한다. 그러기 위해서 대선토론회 사회자 혹은 토론자가 보다 적극적인 역할을 해야 한다. ...... "그와 같은 정책을 실현시킬 재원은 어디서 오나요?"라고 물어야 한다. ...... 이에 대해 대답을 회피하면서 "우리 국민은 역경을 헤쳐 나가는 위대한 국민입니다"라고 옹알이를 할 경우, 사회자는 적극적으로 물어야 한다 ."식대를 어떻게 지불할 거냐는 질문에 대해 자신이 얼마나 위대한 식객인지를 선언하면 식당주인 기분이 어떻겠어요?" ...... 모르는 것이 어디 동과 서뿐이랴. 남과 북도 몰라서 '종북'이라는 말을 남용하기도 하고, 앞과 뒤도 몰라서 퇴행적인 정책을 진보적이라고 주장하기도 하고, 좌와 우도 몰라서 '좌파'라는 말을 곡해하기도 한다. 그럴 경우, 사회자는 개입해야 한다. "'라이트right'와 '레프트left'의 뜻을 모르는 권투 선수에게 라이트훅과 레프트훅을 주문하는 국민의 기분이 어떻겠어요?" 

187쪽
선거가 끝났다는 것은, 자신의 당선이야말로 불행을 끝내고 행복을 가져다줄 것이라는, 무책임한 말들을 당분간 듣지 않아도 된다는 뜻이다.

202쪽
소반이 사용되던 19세기에 사람들은 양반을 없애기보다는 모두 양반이 되고 싶어 했다. 그래서 양반이었던 적이 없는 사람들도 제사를 지내고 족보를 위조하기 시작했다.

211쪽
이들이 모두 한곳에 모여, 배설을 해야 하는데 항문이 없는 존재들처럼 입으로 아무 말들을 쏟아낸다.

222쪽
민주투사들이 집권하여 독재와 크게 다르지 않은 양태를 보여줄 때, 과거의 독재자들이 여전히 기립박수를 받을 때, 새롭게 등장한 정치가 한층 더 구태일 때, 진보의 간판이 보수만큼 낡아 보일 때, '진보적' 지식인이 여성의 고용에 대해 오히려 소극적일 때, 인권운동가 출신 정치인이 성소수자의 인권을 도외시할 때, 저 정치인들이 모두 직선제에 의해 뽑힌 이들이라는 사실을 새삼 깨달을 때, 지금 교통정체를 탓하고 있는 자기 자신의 차가 바로 그 교통정체를 만들고 있음을 깨달을 때, 뱃살과 나머지 몸 간의 경계는 점점 더 의문시되었다. 

254쪽​
세상은 지옥이며, 여기에 새로운 생명을 던진다는 것은 곧 태어날 누군가에게 고통을 부여한다는 의미와도 같다. ...... 사실 어쩌면 우리가 인생에서 할 수 있는 유일한 진정한 판단과 선택은 아이를 낳을 것인가 말 것인가의 결정뿐인지도 모른다. 우리는 어떤 환경 속으로 자신의 선택과 무관히 떨어진다. 물론 우리는 그 속에서 살면서 나름대로 자잘한 판단들을 하지만 그것은 어디까지나 이미 주어져 있는 커다란 삶의 조건 속에서의 선택들이다. 사실 그 조건 자체에 대한 선택과 판단은 배제되어 있다. 새로운 생명을 이 세계에 들어서게 할 것인가 하는 판단이야말로 유일하게 그 조건에 대한 판단일 수 있다. ...... 이런 의미에서 보자면 아이의 출산은 적어도 그 순간까지 자신이 살아온 생에 대한, 세상에 대한 평가의 순간이기도 한 것이다. 아이를 낳는다는 것은 어찌되었거나, 이 세상의 삶에 대한 긍정의 표시다. 

257쪽​
세상의 짐승스러움에 대해 누구 못지않게 잘 알았던 안토니아의 삶과 세계에 대한 긍정은 어디에서 오는가? 내게 그것은 안토니아가 씨를 뿌릴 때 배경을 이루던 그 자연으로부터 오는 것으로 보였다. 그것은 나무들, 곡식들, 풍경들로 채워진 공간으로서의 자연, 그리고 봄, 여름, 가을, 겨울이 왔다가 가는, 그리고 변함없이 또 오는 시간으로서의 자연이다. 이 자연에서는 모든 것이 살아 있다. 자살하는 나뭇잎은 없다. 죽은 듯 떨어졌던 나뭇잎은 봄이면 다시 피어나기 마련이다. 생명은 자살하지 않고, 그렇게 저물어갈 뿐, 그리고 후손을 다시 이을 뿐. 안토니아는 이러한 자연에 베푼 시공간에 스스로를 무리 없이 위치 지운다. 살고자 하는 강한 욕구와 긍정은 이성이라는 허공보다는 그 큰 자연의 일부로 우리가 위치 지워져 있다는 느낌에서 오는 것이다. 그런 느낌을 아는 자는 우리 삶이 '우리가 출 수 있는 유일한 춤'임을 알고 살아내는 자다. 이렇게 보자면 아이를 낳지 않는 일이나 자살하는 일은 결국 자연과 보조를 맞추는 일에 근본적으로 위배되는 일이 된다. 

263쪽​
우리에게 영화는 무엇일 수 있는가? 이 세상 것이면서 이 세상 것이 아닌 것들에 사람들이 열광한다면, 그것은 사람들이 이 날것으로서의 세상을 못 견뎌하고 있다는 증좌라고, 나는 본다.

281쪽
의학교육은 의학적 지식을 전수하는 과정이기도 하지만, 그 지식이 전제하는 자신과 대상의 관계에 숙달하는 과정이기도 하다.

292쪽
가장 위대한 예술가는 예술이 궁극적으로 실현되는 장소가 일상임을 아는 사람이다.

299쪽
우리가 헌신하지 않았다면 그것은 좀처럼 우리를 배반할 수 없었으리라.

300쪽
아는 자는 행동하지 않고, 모르는 자는 돌진한다.

322쪽
김 교수는 당시 당선 소감에서 "나는 영화의 완성도에 대해 가타부타하는 데는 그다지 관심이 없다. 내가 관심 있는 것은 영화를 매개로 내 곁의 사람들과 함께 사는 일에 대해 떠드는 것"이라고 했다. 

325쪽​
질서를 싫어할 수는 있지만 그것에서 완전히 벗어나기 어려운 게 인간 조건이라면, 우리는 어떤 질서를 만들어야 하는가에 대해 좀 더 진지하게 고민해야 한다. 권력에 대해서도 마찬가지다. 우리는 권력을 싫어하는 데 익숙해져 있다. 하지만 인간 사회에서 권력은 불가피하다. 그렇다면 무작정 싫어할 게 아니라 어떻게 선용할 것인가를 생각해야 하지 않을까. 

327쪽
"인간의 불가피한 운명 중의 하나는, 남과 공존해야 한다는 사실이다. 이것은 당신이 집단생활, 공동체적 삶을 싫어하건 좋아하건, 상관없다. 어떤 식으로든 타인과 '공존'하지 않고서는 삶은 유지되지 않는다. 그런 면에서, 타인과의 공존은, 운명이다. 정치학이란 그 운명을 사랑하는 법을 배우는 일이다. 정치사상이란, 그 운명의 사랑에 대해 근본에서부터 생각해보는 일이다. ...... " 

333쪽​
내 글에 대한 반응을 보면서 한국 사회를 좀 더 이해하게 된다.

341쪽​
저는 오래전부터 동상보다는 동상이 놓였던 자리를 좋아했어요. 그것은 동상을 끌어내린 흔적이니까요.


[네이버 책] 아침에는 죽음을 생각하는 것이 좋다 - 김영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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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몽자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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