타인과 눈을 마주치지 않는다, 타인에 대한 흥미가 없다, 타인이 내 몸에 손대는 것을 끔찍하게 싫어한다.

 

때에 따라 정도의 차이는 있지만, 내 얘기다. 그리고 자폐스펙트럼장애에 대한 설명이기도 하다. 포털(한경 경제용어사전)에는 '세간에 알려진 것보다 더 흔한 장애'라고 쓰여 있는데, 다행이라 해야 할까. 동지들이 꽤 된다니. 유아, 아동기에 드러난다는 설명도 붙어 있다. 이런, 나는 이미 성인일 뿐 아니라 무려, 중년이다. 잠시 당황했지만 서둘러 괜찮은 척. 이 정도 민망함쯤이야.

 

나는 자폐스펙트럼에 대해 아는 바가 거의  없다. 다만 포털 정보 검색 결과, 내가 지닌 특징을 상당 부분 공유한다는 점에서 문득문득 그 명칭을 떠올리고 나(우리)를 들여다볼 뿐. 나와 비슷한 무리가 있다는 건 한편으로 반갑고 한편으로 위로가 된다. 규정은 위험하지만 소속은 안정감을 주니까. 남편과 종종 '자폐끼가 있는 게 분명하다'며 서로를, 스스로를  애매히 바라본다. 안타까움과 애정을 반반씩 담아서. 자폐'끼'란 단어에 일종의 비하가 섞인 것 아니냐는 오해를 살 수 있으나, 오해는 오해일 뿐 내가 남기고 싶은 건 우리의 소소하고도 소중한 일상이기에, 버젓이 적는다. 

 

사용하는 우리가 아무리 연민과 사랑만 담았다 한들, 남용은 위험할 수 있다. 자폐끼를 대신할 적절한 언어를 고민 중이다. 

 

자신만의 세계에 갇혀 지내는 상태. 남편의 느닷없는 혼잣말이 들려올 때, 해녀체험 당시 나의 지치지 않는 재도전을 구경할 때, 우린 서로에게서 '그 상태'를 발견한다. 감탄한다. 범접할 수 없는 존재로 느낀다. '저세상 텐션'이랄까. 세련되지도, 영리하지도 않은 그 지점. 독보적 매력이다. '그 특징'은 쉽게 바뀌지 않는다고 하니, 세상 축복 아닌가. 길이길이 누리리라.

 

기타를 3년째 연마 중이다. 남편 얘기다. 학원은 거부한다. 오로지 독학. 교재 삼아 초기에 유튜브 시청한 것을 두고 '한동안은 타인과의 활발한 상호작용을 통해 배웠다'고 할 수 있으려나. 기분이 좋아서, 술이 한잔 들어가서, 왔다갔다 부산한 마누라의 외출 준비가 끝나기를 기다리면서, 퇴근 후 샤워 순서를 양보하고 속옷 차림으로 본인 차례를 기다리면서, 남편은 기타를 잡는다. 노래도 곁들인다. 이문세 등, 모창도 한다. 양희은과 산울림 노래를 18번 삼는다. 기타는 남편의 취미가 분명하다. 오랜 기간 즐겨온 취미라고 해서 반드시 실력이 출중할 필요는 없다. 취미는 본인이 즐거운 게 우선이다. 그렇게 남편은 본인만의 세계에 들어앉아 기타를 튕긴다.

 

따뜻하게 바라본다. 대상은 김치. 갓과 쪽파가 뒤섞여 시뻘겋다 못해 검붉은 양념 사이에서도 나는 귀신같이 머리카락을 찾아낸다. 애정 어린 시선이 뛰어난 시력으로 발휘되는 순간이다. 밥 한 공기에 김치 한 대접을 비울 만큼 김치를 좋아한다고 해서 허겁지겁 욱여넣으리라 짐작한다면 오산이다. 한 젓가락에 양념과 배추를 어느 정도 비율로 집을 것인지, 신중한 관찰이 필요하다. 시각으로 배추의 절여진 정도를 파악하고 후각으로 숙성도를 짐작한다. 종합적 판단을 거친 후에야 밥 한 숟갈과의 환상적인 한입을 만들어낸다. 자리 불문, 김치와의 애정행각을 반복한다. 눈치 따위 보지 않고 벌이는 김치와의 애정행각에 간혹 당황하는 이들이 있지만, 나는 엄연히 자폐끼 므흣한 중년 아닌가. 맛있을 뿐이다.

 

애매하고 끈질기며 의연한 구석은 모름지기, 신비롭다.

 

자폐기 므릇한 중년의 매력 - 엇박의 묘미 by 몽자크

Posted by 몽자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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