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빠리의 택시운전사 - 홍세화


6쪽
세상을 혐오하기는 참으로 쉬운 일이다. 혐오하기보다는 분노하라, 분노하기보다는 연대하고 동참하라.

70쪽
내가 대단한 행동을 하고 있다고 믿었던 것은 다만 나 자신과 치열하게 싸워야 했기 때문이었지 행동 자체가 대단했던 것은 아니었다. 

94쪽
빠리에서는 각자 자기에게 맞는 유행을 찾는 데 비하여, 서울에서는 모든 사람이 한꺼번에 한 유행을 따른다. 다른 말로, 빠리에서는 유행이 사람에게 종속되어 있는 데에 비하여 서울에서는 사람들이 유행에 종속되어 있다고 표현할 수 있을 것 같은데, 이러한 경향도 결국 한국 사회의 획일성과 프랑스 사회의 다양성을 나타내는 것이라 하겠다.

121쪽
내가 그에게 고맙다고 하고 다시 초보자라 미안하게 되었다고 말했을 때, 그는 이렇게 대꾸했다.
"초보자라고 미안해할 필요는 없어요. 모든 직업에 데뷔 시기는 있어야 하는 것이니까요. 그런데 몽마르트르로는 꽤 중요한 길이니까 잘 알아두세요."
...... 그는 인간관계에서 나의 본보기가 되었다.

132쪽
특히 우리들은 '일보다 사람이 더 사람을 괴롭게 하고 피로하게 하는 현대'에 살고 있다. 그러므로 택시운전사처럼 별의별 사람을 손님으로 맞아야 하는 직업인은 일의 어려움보다 사람들이 주는 괴로움으로 더 피로를 느끼게 될 때가 많다. 그리고 그 대부분의 경우는 바로 그 직업인의 직업에 대한 사람들의 일반적인 인식, 주로 편견 때문에 일어난다. 즉 그 직업을 바라보는 '사회의 눈'이 작용하는데, 이 '사회의 눈'은 곧 사회환경이 규정한다. 그러므로 내가 택시운전사의 이른바 '곤조'가 없고 손님에게 친절할 수 있었다면 그 가장 중요한 이유는 프랑스 사회가 택시운전사들을 보는 눈, 즉 프랑스의 사회환경이 그럴 수 있도록 허락했기 때문이다.

134쪽
비록 돈을 받고 몸을 내주는 여자들이지만, 오히려 그 때문에 더욱 희롱의 대상이 되는 것을 못 참는 그녀들이었다.

137쪽
그것은 베르트랑은 자신의 권리를 주장한 데 반해 나는 그의 주장을 반박한 것이 아니라, 그런 주장을 하는 그를 미워한 점이다. 그의 주장이 틀렸으면 그 주장을 반박하면 그만이었다. 그런데 나는 그를 미워했다. 그는 나를 미워할 이유가 없었다. 그에게는 단지 그와 나의 생각이 서로 달랐을 뿐이었다. 그러므로 싸운 이튿날 그는 나에게 자연스럽게 평소처럼 대했고 나는 계속 앙심을 품고 있었다. 이 차이는 사회적으로 중요한 의미를 가진다. 프랑스에선 이 주장과 저 주장이 싸우고 이 사상과 저 사상이 논쟁하는 데 비하여 한국에선 사람과 사람이 싸우고 또 미워한다는 사실이다. 다시 말해 프랑스인들은 다른 사람의 의견, 주의 주장 또는 사상을 일단 그의 것으로 존중하여 받아들인 다음, 논쟁을 하여 설득하려고 노력하는 데 비하여 우리는 나의 잣대로 상대를 보고 그 잣대에 어긋나면 바로 미워하고 증오한다.
...... 이렇게 똘레랑스가 있는 사회에선, 즉 설득하는 사회에선 남을 미워하지 않으며 축출하지 않으며 깔보지 않았다. 서로 치고받고 싸우지 않고 대신 까페에서 열심히 떠들었다. 말이 많고 말의 수사법을 중요시했다.
...... 이 말은 택시운전사인 내가 택시운전을 잘못할 때는 손님의 지청구를 들을 수 있으나 택시운전사라는 이유 때문에 업신여김을 당하지는 않는다는 뜻이다.

159쪽
"내가 학위를 받는다고 해도 달라지는 것은 나 자신이 아니라 나를 바라보는 다른 사람들일 뿐이니까."

172쪽
"프랑스 사회에 온 것을 환영합니다."
그도 '사회'를 말했다.
스스로 국제주의자, 사회주의자라고 스스럼없이 말하던 어느 나이 많은 푸른 눈의 인권변호사의 손은 따뜻햇다.

196쪽
미술이 '미'였다. 나는 끝내 미술에 전혀 소질이 없다는 것을 인정해야 했는데, 그 못하는 솜씨에도 6.25 날이 오면 '무찌르자 공산군'의 그림을 신나게 그렸다.

201쪽
다만 무의식적인 편견은 의식적인 편견에 비하여 무의식이기 때문에 더욱 수정하기 어려우리라는 것은 알아차릴 수 있었다.

204쪽
사람은 죽이는 데 잔인했고 또 사는 데도 악착같았다.

206쪽
우리 항렬의 돌림자는 화(和)다. 틀림없이 평화주의자였을 젊은 아버지는 첫째인 내 이름을 세계평화라 하여 세화라 지었고 둘째의 이름을 민족평화라 하여 민화라 지었다. 한국전쟁에 민족평화는 죽었고 또 세계평화는 방황하다 끝내 이렇게 온 빠리의 길을 누비고 있지 않은가.

225쪽
나는 어느 글에서 "인종주의란 자기를 낳게 한 종자 외엔 내세울 것이 없는 사람들의 열등감의 표현"이라고 쓴 것을 읽은 적이 있다. 무의식의 열등감이 깊으면 깊을수록 그 열등감을 감추기 위하여 더욱더 인종을 내세우게 된다고도 쓰여 있었다.

236쪽
그만큼 사람과 사람의 관계는 상대적이다.

252쪽
프랑스에서도 유독 극우파들이 사형제도를 부활시켜야 한다고 주장하는데, 이와 관련하여 나는 아주 흥미로운 발견을 하였다. 즉 '인간을 합법적으로 죽일 수 있다'고 주장하는 사람들은 낙태수술에는 결사코 반대한다는 사실이었다. 반대로, '인간을 합법적으로 죽일 수 없다'고 생각하는 사람들의 대부분이 낙태수술에는 찬동하는데, 이 겹모순의 해답은 결국 '개인과 사회의 관계' 그리고 '사회의 책임' 등을 어떻게 보는가에서 찾을 수 있을 것 같았다.

259쪽
한편 우리들이 양심수라고 부르는 사람들을 이곳 사람들은 '의견수'라고 표현한다. ...... 나는 나름대로 그 차이를 생각해보았는데, 우리의 '양심수'란 '고문받은, 그리고 고문에 의한 의견수'가 될 것 같았다. 이곳 사람들이 '의견수'라고 말할 때, 그 대부분은 그 의견수들이 그렇게까지 지독한 고문을 받았으리라곤 상상도 하지 못하고 사용할 것이기 때문이다.

259쪽
일본에서 한국으로 들여올 것 중에 꼭 한 가지만 말하라면, 나는 주저 없이 '오오까의 밀감'을 선택할 것이다. 프랑스에서 제일 먼저 '똘레랑스'를 수입하고 싶듯이. ...... "진실을 밝힌다는 미명 아래 고문을 하겠다는 생각이 떠오를 때마다 바로 이 밀감을 생각하시라!"

수현과 용빈에게

 

268쪽
물론 프랑스가 대학입학 자격시험에 철학 과목을 포함하는 세계 유일한 나라라는 이유도 있겠지만, 그 내용은 나의 상상을 초월한 것이었지.

272쪽
나를 더욱 우울하게 하는 것은 너희들이 성년이 되어 너희들의 선택으로 프랑스 국적을 갖게 되면 갈 수 없었던 나라가 갈 수 있는 나라가 된다는 데에 있구나. 너희들은 그런 아이러니를 갖고 있구나. 한국인일 때는 갈 수 없던 나라가 프랑스인이 되면 갈 수 있게 되는 나라.

273쪽
사람이 미래를 모르고 살면 불안하긴 하나 위험하지는 않단다. ...... 그러나 과거를 모르고 사는 것은 몹시 위험한 일이란다. 그것이 개인의 과거였든 민족의 과거였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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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76쪽
그중에서도 내가 가장 싫어한 소리는 라디오에서 들리는 아나운서들의 목소리였다. 그 청아하고 맑은 목소리는 거짓말일수록 더 청아하고 맑게 꾸며서 말하는 것 같았다.

279쪽
나도 시시포스가 되었다. 바위로 그 강을 메우는 거야. 흘러 내려가더라도 또 가라앉더라도 갖다 메우고 또 갖다 메우는 거야. 끊임없이. 끊임없이 그 강을 메우는 거야. 시시포스의 바위로, 나의 바위로. ...... 그러한 삶만이 나 자신의 분열을 막을 수 있었다.

283쪽
한국이 그와 같은 실정에 처했으니 그에 대하여 어떻게 생각하고 또 어떻게 행동해야 할 것인지 등의 문제의식도 없었고, 따라서 그 대답도 없었다. 다만 '그렇다'는 것이었다. 또는 '그렇게 되었다'는 것이었다. 

320쪽
나는 바보였다. 증오의 사회에 무모하게 저항한 바보였다. 그러나 그것이 나의 실존이었고 삶이었다. 나는 내가 바보라는 것을 알고 있는 바보였고 또 그 바보스러움을 자랑스럽게 껴안았던 바보였다.
나는 투철한 혁명가도 아니었다. 이론가도 아니었다. 그리고 그 어떤 정치적 욕구도 나하고는 거리가 멀었다. 나는 내 삶의 의미를 되새겼고 그에 충실하고자 했다. 나를 사랑하고 나 아닌 모든 나를 사랑하고 싶었다. 그리하여 분열에 저항하여 하나로 살고 싶었다. 그것은 바로 내 가슴의 요구였다. 그뿐이었다.

보론 - 프랑스 사회의 똘레랑스

 

351쪽
프랑스처럼 그 정치적 스펙트럼이 다양한 나라를 찾기 어려운 것도 바로 또렐랑스 때문입니다. 좌파 공산당부터 극우인 국민전선에 이르기까지 그 사이에 사회당, 중도파, 중도우파, 우파, 그리고 녹색당이 있습니다. 
이들 정당이 원내외를 비롯한 활동의 장에서 큰 충돌 없이 견제와 균형을 이루는 것은 서로 똘레랑스의 원칙을 지키기 때문입니다. ...... 만약 이들 중 누구라도 똘레랑스를 벗어나 상대를 비방, 중상하는 발언을 했다간 패배했다는 것을 스스로 인정하는 행위가 될 뿐입니다.

359쪽
이처럼 똘레랑스는 당신이 존중받기를 원하면 우선 남을 존중하며, 당신의 정치이념과 종교신념이 존중받기를 원하면 우선 다른 사람의 정치이념과 종교신념을 존중하며, 당신과 다른 인종과 국적을 가진 사람을 존중하며, 그리고 당신과 다른 생활방식과 문화를 존중하라고 요구합니다. 한마디로 '당신의 것'이 존중받으려면 '남의 것'부터 존중하라는 요구인 것입니다.

360쪽
똘레랑스는 원래 '허용 오차'를 뜻하는 공학 용어인데 사회적 의미를 갖게 되어 '특별한 상황에서 허용되는 자유'라는 뜻이 된 것입니다.

363쪽
이렇게 프랑스인들은 '꼭 ~하라' 또는 '~하지 마라'라는 구호나 지시를 아주 싫어합니다.
...... 이렇게 공권력의 간섭을 싫어하는 이유는, 사회 불의나 공권력의 남용보다는 차라리 무질서를 선택한다는 프랑스인들의 성격에서도 찾을 수 있을 것이며, 또한 공권력의 간섭을 받기 시작하여 그에 따르다 보면 자율의 폭이 줄어들고 따라서 똘레랑스도 잃어버리게 되는 위험을 알기 때문입니다.
...... 이처럼 똘레랑스는 개인이 권력에 요구하는 것이지 권력이 개인이나 사회에 요구할 수 있는 것이 아닙니다.

372쪽
볼떼르는 이렇게 답합니다. "우리들의 부싯돌은 부딪쳐야 빛이 난다"고. 즉, 서로 다른 견해가 자유롭게 표현되어 부딪칠 때 진리가 스스로 드러난다는 것입니다.

393쪽
오늘날 프랑스 사회에 똘레랑스가 흐르게 된 것은 16세기에 신교-구교 간 종교분쟁이 불러온 앵똘레랑스에 대한 반성적 성찰과, '나는 무엇을 아는가?'로 표현되는 프랑스의 철학 전통인 회의론에서 출발한 이성주의, 그리고 대혁명을 비롯한 사회운동의 역사에서 그 이유를 찾을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한마디로 똘레랑스란 인간의 성찰 이성이 역사를 관철하여 반추하고 행동함으로써 얻어낸 결론이라고 보는 것입니다.

373쪽
똘레랑스는 '관용'이라기보다 '용인'이며 '화이부동'입니다. ...... '화이부동'에서 '부동'은'같지 않다'를 뜻하는 게 아니라 '동화하지 않는다'를 뜻합니다. 다시 말해, '서로 화평하면서 획일화하지 않는다'는 뜻으로, 다양성과 '다름'을 존중하라는 의지가 담겨 있습니다.


[네이버 책] 나는 빠리의 택시운전사 - 홍세화

Posted by 몽자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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