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동을 보는 눈 - 강수돌


17쪽
자본은 한편으로 사람의 산 노동을, 다른 편으로는 천연자원을 비롯한 자연 생태계를 부단히 빨아들여야만 가치 있는 상품을 만들어 돈을 벌 수 있다. 인간의 노동은 한편으로는 인간의 생명력이나 자연의 생명력을 이용해 자본을 축적하는 일을 하면서도, 다른 편으로는 생명 세계의 일부로서 '살아 움직이는 역동성과 주체성을 갖고 있기 때문에 자본에 저항할 수 있는 특성을 갖고 있기도 하다. 다시 말해, 인간 노동은 자본축적의 토대가 되기도 하고 자본축적에 위협이 되기도 한다.

30쪽
특히 칼뱅류의 신교(기독교) 운동은 '노동은 신성한 것'이란 메시지를 전파했다. ...... 이것이 구교인 로마가톨릭을 개혁하자며 나섰던 프로테스탄트(신교) 운동의 핵심 메시지였다.

31쪽
여기서 중요한 사실은 그 '신성한 노동'조차 노동과 자본 사이의 힘 관계 속에서 지속적으로 추락하는 경향이 있다는 것이다. 왜냐하면 수공업적 기술이 있는 장인의 노동은 그나마 자부심이나 자율성이 있었는데, 기계가 생산의 중심이 되면서 기계에 맞춰서 일하게 되었기 때문이다. 

34쪽
'노동동일시'란 마치 사람이 자기의 본질이 일(자리, 지위, 성과)에 있는 것처럼 생각하게 되는 현상이다. 그러나 이 노동동일시의 결과는 불행히도 파괴적이다. ...... 결론적으로, 노동이 신성한 것이라는 태도가 극단으로 치달은 결과, 신성한 노동과 자신을 동일시할 정도로 일에 몰두한 사람들이 역설적이게도 오히려 천한 존재가 되어 노동을 해도 천하게 살아야 하고 노동을 안 해도 천하게 살아야 하는 기이한 상황이 도래하고 말았다.

45쪽
그리하여, 한편에서는 몸뚱이밖에 남지 않은 프롤레타리아, 다른 편에서는 자본을 가진 부르주아, 이렇게 크게 두 집단이 생긴 상황에서 형식적으로나마 서로 자유로운 계약을 해야 한다. 나아가 자본가 계급은 자신이 가진 자본이나 기술을 배타적으로 보호받기를 원했다. 즉 사적 소유권의 보장을 원한 것이다. 바로 이러한 사적 소유와 자유 계약의 권리를 법적으로 확실히 하기 위해 그들이 만들어낸 것이 민법이다. 그런데 이러한 법들은 그저 생긴 것이 아니고 왕이나 귀족, 성직자 등 기존의 숱한 기득권 세력과 싸우면서 생긴 것인데, 바로 그 투쟁 과정이 우리가 잘 아는 영국의 청교도혁명, 프랑스의 대혁명, 미국의 독립전쟁과 같은 근대 시민혁명이다. 이 근대 시민혁명의 구호는 흔히 계몽주의 사상을 기초로 한 자유, 평등, 박애 정도만 알려져 있지만 사실 가장 중요한 것은 소유권이었다. 재산을 가진 계급이 자기 재산에 대한 배타적 소유권을 보장받고, 그래서 노동력만 사서 잘 활용하면 더 큰돈을 벌 수 있는 상황이 된 것, 바로 이것이야말로 노동력 상품화의 역사적 전제들이었으며, 그런 바탕 위에서 자본주의가 제 발로 설 수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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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0쪽
왜 자본주의 사회에서는 사람들이 노동력을 팔지 않으면 생계가 곤란할까? 그 답은 노동력과 생산수단의 분리에 있다. ...... 즉, 새로운 형태의 사회적 분열이 일어난 것이다. 그 사회적 분열과 경제적 분열은 불가분의 관계에 있다.

56쪽
그러나 진정으로 아무런 차별도 하지 않고 모두를 평등하게 대하면서 똑같이 분배한다면 자본은 이윤을 얻기 어렵다. 따라서 자본의 관점에서는 '정당한 차별'이라는 개념을 만들어 널리 퍼뜨릴 필요가 생긴다. 그래야 일반 사람들도 부당한 차별이 아닌 정당한 차별이니 어쩔 수 없이 수용해야 한다고 느낄 것이다. 바로 이러한 자본의 필요에 잘 부응하는 이론이 '인적자본론'이다. ...... 이런 점에서 자본주의 경영학에서는 '능력에 따른 차별'을 정당한 차별로 본다. ..... 성별이나 연령별, 인종별 차이가 능력의 차이로 나타날 때, 또 학력이나 학벌 차이가 능력의 차이로 나타날 때, 정당한 차별인지 부당한 차별인지 애매모호해진다. ...... 부당하고도 은밀한 차별의 틀 자체를 바꾸려는 노력보다 주어진 차별의 틀 안에서 보다 유리한 자리를 차지하려는 노력으로 이어진다. 그럴수록 자본의 입장에서는 노동 전반을 통제하기가 훨씬 쉬워진다. 즉, 노동에 대한 차별은 자본에 유리한 것이다.

69쪽
원래 개인individual이란 더 이상 나눌 수divid- 없는in- 존재라는 뜻을 갖고 있는데, 이것은 우리 각 개인이 하나의 커다란 공동체community로부터 나왔다는 말이다. 즉, 개인은 그냥 나 홀로 개인이 아니라 공동체적 관계 속의 개인이다. 그래서 개인의 개성이나 취향도 존중되어야 하고 공동체적인 관계망이나 사회 전체의 공동선도 존중되어야 한다.

93쪽​
자본의 관점에서 노동력의 쓸모란 크게 두 가지다. 하나는 노동능력이고 다른 하나는 노동자세다. 노동능력은 일을 잘할 수 있는 역량이고 노동자세란 말을 잘 듣는 태도이다. 사람들은 대체로 학교 교육과정을 거치면서 이 두 가지를 습득하고 나온다. 

95쪽
우리는 어릴 적부터 대부분 외재적 동기부여를 많이 경험해온 터라, 내재적 동기부여엔 그리 익숙하지 않은 편이다. ...... 일부 학자들은 우리가 이런 식으로 외재적 동기부여에 익숙해지다 보면 자기도 모르는 사이에 내재적 동기를 잃어버리기 쉽다고 말하기도 한다.


127쪽
경영참가 제도에는 크게 세 가지가 있다. 소유참가, 결정참가, 분배참가가 그것이다. ...... 여기서 가장 기본적인 것은 당연하게도 소유참가이다. 기업의 소유 구조가 어떤가에 따라 각종 권리가 달라지며 결정참가나 분배참가에서도 그 수준이나 내용도 달리지기 때문이다. 그런데 전반적인 사회경제 시스템이 자본주의로 머무는 한, 노동자들이 주식을 100% 소유한 노동자자주관리 기업조차 치열한 시장경쟁에 노출되다 보니 결정참가나 분배참가를 계속 유지하기가 쉽지는 않다. 그러나 한국의 키친아트나 우진교통, 한겨레신문이나 경향신문, 달구벌교통 등 몇몇 사례에서도 볼 수 있는 것처럼 노동자들이 주인의식과 상호 신뢰, 우애와 협동을 바탕으로 효율성과 인간성을 조화시킬 수 있다면 그나마 자본주의 안에서도 일할 맛이 나는 현장을 만들 수도 있다.

132쪽
...... 종업원지주제 같은 소유참가는 ...... 동료 노동자의 해고와 좌절이 자신의 이익으로 다가오는 사회적 모순, 일종의 사회적 자아분열, 바로 이것이 경형참가의 또 다른 한계다.

140쪽
요컨대, 노동자 측과 사용자 측 사이의 관계를 노사관계라 정의할 수 있다. 흔히 노사간에 협력을 해서 생산성을 높이고, 얻은 이윤을 서로 잘 분배하는 것이 좋은 노사관계라고 생각한다. 이른바 파이를 크게 키워서 잘 나눠 먹어야 한다는 논리다. ...... 생산과정에서조차 노동의 속도, 방식, 길이, 환경, 유연성, 고용안정 등 여러 차원에서 노사간 갈등의 소지가 있고 이것이 민주적인 방식으로 원만하게 해결되지 않으면 그 갈등은 더욱 깊어지기도 한다. 파이의 분배 차원에서의 갈등은 굳이 설명할 필요가 없다.

144쪽
자본의 입장에서는 노동자가 분열하고 경쟁하는 것이 좋고, 노동의 입장에서는 소통하고 연대하는 것이 자신들의 권익을 지키는 유력한 수단이다. 

175쪽
흔히 노동조합을 투쟁 집단 또는 문제아 집단 정도로 인식하는 경향이 있다. 앞서도 살핀바, 이러한 인식은 돈과 권력을 가진 기득권 집단이 자신의 기득권을 보호하기 위해 교육과 언론을 통해 온 국민의 정신 속에 주입한 것이다. 또한 이것은 일반 시민들이 그러나 기득권 집단의 관점과 논리를 '강자 동일시' 심리 구조에 의해 스스로 내면화한 결과이기도 하다.

175쪽
노동조합은 본래 일하는 사람들이 인간다운 노동조건이나 생활조건을 획득하기 위해 스스로 단결한 것이다. 다시 말해 노동력을 팔아 먹고사는 사람들끼리 힘을 합쳐 더 이상 '제살 깎아먹기' 경쟁을 하지 않겠다는 공동의 의지를 드러낸 결과물이 바로 노동조합이다. 사실, 생산수단이 없는 사람들이 노동시장에 나가 자신의 노동력 상품을 서로 경쟁적으로 팔기 시작하면 마치 '경매'를 하듯 사람들은 주어진 일자리를 놓고 서로 더 낮은 가격을 제시한다. 그렇게 되면 사람들은 점점 자신의 노동력을 헐값에 팔다가 마침내 겨우 먹고살 수 있는 노예 비슷한 수준으로 떨어진다. 신자유주의 세계화 과정은 이러한 노동력 경매 현상이 범지구적 차원에서 벌어지는 것이다. 이것을 '바닥을 향한 경주'라고 말하기도 한다. 범지구적 무한 경쟁 속에서 사람의 인간성이 갈수록 땅에 떨어지고 또한 지구 전체가 갈수록 황폐해진다는 말이다. 그러니 바닥을 향한 경주를 그만두고 위로 올라가기 위한 노력을 하는 것, 인간다운 삶을 쟁취하기 위한 노력이 나오는 것은 지극히 자연스런 일이다.

176쪽
역사적으로 영국 등 서양에서 노동조합은 석공조합, 목수조합 같은 직종별 노조로부터 출발해서 점차 산업별 노조나 일반노조로 발전했다. 그러나 일본이나 한국에서는 주로 산업별 노조보다는 기업별 노조가 단체교섭의 주체로 인정되었다. 그것도 처음에는 노조 자체가 인정이 되지 않다가 나중에 군사정권 시절엔 노동저항이 심해지자 마지못해 기업별 교섭을 겨우 인정한 것에 불과하다. 그것은 기업별로 노동자들이 나뉘어 상호 경쟁하는 것이 자본 측에 훨씬 유리하기 때문이다....... 결국, 안간다운 삶을 위해 만든 노동조합이 최소한 산업별 수준에서 또는 보다 크게는 전국적 수준에서 모든 노동자들의 연대와 평등을 추구하는 방향이 아니라 개별 기업 수준에서의 노동조건(특히 임금수준) 향상이라는 방향으로만 나가다 보니 본의 아니게 인간다운 삶은커녕 대기업과 중소, 영세 기업 사이의 격차만 크게 만들고 마는 역설적 현상이 나타나고 있는 것이다.

180쪽
그런데 정말로 문제인 것은 위와 같은 노동 귀족 범주에 들지 않은 대부분의 노동자들도 말은 하지 않아도 "나도 언젠가 저런 사람처럼 잘살아 봤으면" 하는 생각을 한다는 점이다. 전체 노동자의 처지와 대우를 향상시키려 하기보다 이렇게 노동 귀족이 되려고 하는 일반 노동자 내지 일반 시민들이 갖고 있는 이런 허위의식 또는 착각과 환상이야말로 우리가 하루 빨리 깨야 할 벽이다.

213쪽
앞서 말한 '트리클다운' 효과가 위에 있는 기득권층의 이익이 아래로 흘러내려간다는 이론인데 반해, 사이펀 효과는 정반대로 하층 계층의 이익을 기득권층이 빨아올린다는 것이다.


226쪽
보건시대로부터 자본주의 시대로 이행하던 시기에 나온 사상이 '자유민주주의' 사상이다. ...... 중소 상공인 계층, 즉 신흥 부르주아 계급의 입장에서 본 자유였고 그들만의 민주주의였다. ...... 국가의 간섭이나 종교의 간섭을 배제하고자 했고 시장의 자유, 경쟁의 자유를 외쳤다. 이 모든 것은 결국 돈벌이의 자유로 귀결되었다 그리고 그들의 민주주의란 돈벌이를 하는 상인이나 기업인이 그들의 이해를 관철하기 위한 정치 체제를 말하는 것이어서 대개는 의회 안에서 다수를 차지해 자신들의 뜻을 이루려는 방식이었다.

227쪽
그렇다면 과연 노동해방이란 무엇을 뜻하며 어떻게 성취가 가능할까? ...... 첫째로 노동을 할 자유, 둘째로 노동 안에서의 자유, 셋째로 노동을 하지 않을 자유, 이 세 차원이 노동해방의 과정을 이룰 것이다.

229쪽
셋째, 노동을 하지 않을 자유란 더 이상 임금 종속적인 노동을 함으로써 사실상의 '임금 노예'로 살아가는 것을 거부하는 것이다. 두 가지 방법이 있다. 하나는 가능한 한 임금노동을 최소화하는 방법이다. ...... 두번째 방식은 임금노동이 아닌 자유 활동을 하는 것이다.

<임금노동 최소화>
#폴라파르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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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앙드레고르
#스코트니어링

<자유활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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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몽자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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