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쪽
내가 보기에 진화는 엉터리다. 인간은 정말로 한심한 실패작이다. 우리는 은하계 전체에서 유일하게 생명이 살 수 있는 이 친절한 행성을 교통수단이라는 야단법석으로 한 세기 만에 완전히 망가뜨렸다. 정부는 마약과의 전쟁을 선포했지만 마약은 석유 다음이다. 석유란 얼마나 파괴적인가! 당신의 차에 기름을 조금만 넣으면 시속 백 마일로 달리면서 이웃집 개를 깔아뭉갠 다음, 대기권을 찢어발길 수 있다. 호모사피엔스라는 영특한 이름을 달고서 뭘 망설이는가? 아예 박살을 내버리면 어떨까? 누구 원자폭탄 가진 사람? 과거엔 귀했지만 지금은 널린 게 원자폭탄 아닌가?
21쪽
사실 기독교와 사회주의는 똑같이, 인간은 누구나 평등하게 창조되었고 어느 누구도 굶주려서는 안 된다는 명제를 실현하고자 한다.
55쪽
나는 여자가 무엇을 원하는지 안다. 가능한 한 많은 사람들과 이야기를 나누는 것이다. ...... 남자들은 무엇을 바라는가? 많은 친구를 바란다. ...... 오늘날 대부분의 사람들은 결혼을 하면 딱 한 사람과 가정을 이룬다. 신랑은 친구가 하나 생기는데 그나마 여자다. 신부는 이야기 상대가 하나 생기는데 그나마 남자다. 부부싸움이 벌어지면 사람들은 대개 돈이나 권력이나 섹스나 자녀 양육 같은 것 때문에 싸운다고 생각한다. 사실 두 사람은 자기도 모르게 상대방에게 이렇게 말하고 있는 것이다. "당시만으론 사람이 너무 모자라!" 남편과 아내와 아이 몇 명만으론 가족이라 할 수 없다. 그건 아주 허술하고 취약한 생존 단위다. 일전에 나는 나이지리아에서 이보 족 남자를 만났는데, 그에겐 친한 친척이 육백 명이나 되었다.
71쪽
재즈 역사가이자 훌륭한 작가이고 무엇보다 나의 절친한 친구인 앨버트 머리가 한 말에 따르면, 이 나라에 노예제-결코 완전히 치유되지 못할 잔학 행위-가 번성했던 기간의 평균 자살률은 노예보다 노예 소유주 쪽이 훨씬 높았다고 한다. 머리가 생각하기에 그 이유는 노예들에겐 우울증을 해결할 방법이 있었던 반면, 노예 소유주들에겐 그런 것이 없었다는 것이다. 노예들은 블루스를 연주하고 노래함으로써 노인자살 충동을 떨칠 수 있었다. 머리가 제시하는 또다른 이유도 나에겐 꽤 합당하게 들린다. 즉 블루스는 우울증을 집 밖으로 날려버리지는 못하지만 음악을 연주하는 방 안 구석으로 쫓아버릴 수는 있다는 것이다.
91쪽
이그나츠 제멜바이스 역시 세균이 각종 질병을 일으킨다고 믿었다. ...... 제멜바이스는 병원 일과를 세심하게 관찰한 후 의사들이 환자들을 감염시키고 있다는 의혹을 품기 시작했다. ...... 제멜바이스는 시험 삼아 의사들에게 산모들을 만지기 전에 손을 씻으라고 제안했다. ...... 그를 손가락질하던 의사들이 마침내 경멸과 비웃음과 냉소를 접고 하나 둘씩 그의 제안에 동의하기 시작했다. 그렇게 해서 의사들은 지저분한 손에 비누칠을 하고 손톱 밑을 솔로 문질러 닦에 되었다. 산모들이 더이상 죽지 않았다. ...... 제멜바이스는 빈 사회에서 의학을 이끌던 지도자들, 즉 의료계의 억측가들로부터 어떤 사례를 받았을까? 그는 병원에서 쫓겨났을 뿐 아니라, 그 덕분에 수많은 사람이 목숨을 구한 오스트리아라는 나라 자체에서 쫓겨났다. 제멜바이스는 헝가리의 한 시골 병원에서 생을 마감했다. ...... 그렇게 해서 오늘날 우리도 똑바로 주시해야 할 억측가들에 관한 사실 하나가 드러났다. 우리도 정신 차려야 한다는 것이 그것이다. ...... 그들에게 중요한 것은 이목을 집중시키는 것, 그래서 아무리 무지하더라도 그들의 억측이 언제까지나 유지되는 것이다. 그들이 증오하는 것이 있다면 그것은 현명한 사람이다. 그러니 어떻게든 현명한 사람이 되어달라.
96쪽
유진 데브스는 선거 유세에서 다음과 같이 말했다. "하층 계급이라는 것이 존재하는 한 나는 하층 계급입니다. 범죄인자라는 것이 존재하는 한 나는 범죄형입니다. 구속된 영혼이 존재하는 한 나는 자유롭지 않습니다." ...... 아침마다 잠에서 깨어나 침대에서 가재처럼 기어나올 때 당신은 이런 말을 하고 싶지 않은가?
110쪽
그러나 윌리엄 셰익스피어가 오래전에 말했듯 "악마는 목적을 달성하기 위해 성경 구절을 인용한다."
110쪽
한 남자는 샌프란시스코에서 이런 편지를 보냈다. " ...... 사람들을 죽이고 그들의 나라를 파괴하면서 어떻게 그들을 '구한다'는 것이죠? 우리가 곧 공격당할 거라는 믿음만으로 어떻게 먼저 공격을 해댈 수 있을까요? ...... "
128쪽
알렉스 삼촌이 무엇보다 개탄한 것은, 사람들이 행복할 때 행복을 느끼지 못한다는 것이었다. 그래서 우리가 한여름에 사과나무 아래서 레모네이드를 마시면서 윙윙거리는 꿀벌들처럼 이런저런 이야기를 주고받을 때면 삼촌은 즐거운 이야기를 끊고 불쑥 큰 소리로 외쳤다. "이게 행복이 아니면 무엇이 행복이랴!" 그래서 지금은 나도 그러고, 내 자식들도 그러고, 내 손자들도 그런다. 여러분에게 진심으로 부탁하건대, 행복할 때 행복을 느끼고 그 순간에 나처럼 외치거나 중얼거리거나 머릿속으로 생각해보라. "이게 행복이 아니면 무엇이 행복이랴!"
[네이버 책] 나라 없는 사람 - 커트 보네거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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