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나다라 마바사

사과를 보며 사람을 본다

몽자크 2024. 3. 23. 00:01

연인들이 투닥거릴 때 흔히 오가는 멘트가 있다.

내가 잘못했어, 미안해.

뭐가 미안한데?

그냥 다 미안해. 다신 안 그럴게.

(거품 물며) 뭘 다신 안 그런다는 거야, 도대체?

 

우스개로 흘려듣기엔 가슴이 꽤 답답해지는 상황이다. 무엇을 잘못했는지, 그 잘못의 어떤 점이 미안한지, 다음번엔 어떤 식의 개선을 시도할지에 대한 언급 없이 무턱대고 하는 사과는 사과할 거리를 오히려 보태고 만다. 정말정말 미안하다, 진심이다, 내가 죽일 놈이다, 엄청 반성하고 있다, 한번만 믿어달라 호소해봤자 마찬가지다. 조금만 미안해한다거나 거짓부렁 중이라 생각해서 사과가 통하지 않는 게 아니기 때문이다. 

 

7시까지 온다고 해놓고 30분이나 늦은 거, 5시에 시간 재확인할 때도 문제없다 자신있게 얘기해놓고 못 지킨 거, 상대가 시간을 지키기 위해 한산한 버스 대신 지옥철을 타고 온 거, 미리 문자 하나 없었던 거, 상대만 매달리는 기분 느끼게 한 거. 

 

굳이 처음부터 장문을 들이댈 필요는 없지만, 상대가 묻는다면 차분히 읊을 수 있어야 한다. 미안한 점과 되풀이하지 않을 점에 대하여. 말투가 아무리 절절해도, '정말'을 백 번 들이밀어도, '엄청'을 '어어어어엄청'으로 엄청 늘려봤자 소용없다. 진정성은 '조목조목' 전해지는 법이다.

 

바야흐로 선거철이다. 며칠 뒤, 2024년 4월 10일 국회의원 선거가 치러진다. 아무개는 주장한다. 무엇무엇을 하겠습니다. 옆에 있던 이가 소리친다. 저 사람은 이런저런 흠결이 있습니다. 흔히 거론되는 흠결로 음주운전이 있다. 음주운전. 결코 용납할 수 없는 범법행위다. 신 아무개는 이 어마어마한 위법을 저지른 인물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나는 그를 지지한다. '나름'의 사과를 했으므로.

 

먼저, 이유 불문 잘못을 인정하고 국민들께 죄송하다고 했다.

다음, 특히 음주운전 사고로 희생된 피해자들과 그 유가족분들께 사죄드린다고 했다. 

 

사과할 대상을 뭉뚱그리지 않고, 본인을 인재로 영입한 정당의 당대표로 오산하지 않았다. 법질서를 흐트린 점에서 국민들을, 상처를 헤집는 존재로 보일 수 있다는 점에서 음주운전 사고 피해자들을 대상으로 사과했다. 사과의 대상과 이유를 명확히 하고 있다는 점에서, 그 내용에도 동의하기에 나는 신 아무개를 지지한다. 

 

잘못을 안 했다면 더 좋았을까? 글쎄. 그랬다면 그의 사과를 볼 수 없었을 것이고, 지지할 이유도 찾지 못했을지 모른다. 과거에 저지른 잘못에 대해, 어떻게 사과해야 하는지 알고 있는 '지금'의 그를 지지한다. 

 

후유증은 아니겠지. '개사과'를 보고났더니, 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