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나다라 마바사

죄책감을 이용하는 죄책감 모르는 사람들

몽자크 2024. 3. 13. 00:01

엇박의 묘미 202403013 죄책감을 이용하는 죄책감 모르는 사람들

 

허위 자백으로 옥살이를 하다 재심 신청으로 형집행정지 처분을 받아 풀려난 남자가 있다. 딸과 부적절한 관계를 맺었고, 이를 눈치 챈 아내를 살해했다는 혐의다. 막걸리에 청산가리를 타서. 검찰 조사 당시, 아니니 아니라고 했다. 검사들은 재차 물었고 남자는 계속 아니라 답했다. 그렇게 버티던 와중에 딸이 자백했다 들었고 이제 그만 인정하란 다그침을 겪었다. 남자는 알았다. 딸이 거짓말을 했구나. 하지만 미처 몰랐다. 딸이 거짓말한 이유도, 경위도. 

 

'그것이 알고 싶다'를 통해 사건을 들여다보던 나 역시 궁금했다. 경계성지능장애란 사실은 근거가 안 됐다. 자문을 맡은 심리상담 교수도 분명 무언가 더 있을 거라 짚었고, 파고들었다. 결국, 밝혔다.

 

답답한 속은 뻥 뚫리지 않았고, 오히려 가슴이 내려앉았다. 비열하고 잔인한 '기술'이, 거기 있었다.

 

여자는 1년쯤 집을 떠나 외지에서 지냈다. 집에 돌아온 지 너댓 달쯤 되었을 때 아이를 낳았고 형편상 입양을 보냈다. 그 일만 생각하면 눈물이 쏟아진다. 겨우겨우 가슴에 묻고 일상을 보내다 어이없는 누명을 쓰고 검사들에 둘러싸인 상황. 어머니를 살해했냐 묻기에 아니라고 거듭 답한다. 이윽고 방에 들어선 한 검사가 '그 일'을 거론한다. 아이를 낳아 입양 보낸 사실이 있지 않냐는 것. 외면하려 애써 왔던 죄책감이 폭발하는 순간이다. 자포자기가 이어진다. '그래, 난 그렇게 나쁜 짓도 한 사람이지. 벌 받아 마땅하지. 누가 뭐래도 죄인이지'

 

장면이 겹친다. 누군가가 자꾸만 카메라 앞에서 이렇게 되받아친다. 

그분, OO죄로 유죄 판결 받으신 분 아닌가요?

그분, OO 사건 관련 허위 주장하셨던 걸로 알고 있는데 그에 대해 사과는 하셨나요?

그분, OO 범죄 경력 있으신 분 맞죠?

정치인이다. 전직은, 검사. 

 

질문은 '그분'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느냐가 아니었다. 기자는 그분의 제안 또는 행보, 의혹 제기에 대한 의견을 물었다. 하지만 생뚱맞은 질문으로 답변 대신 공격을 일삼는다. 흐름을 이해하기 어렵다. 발상이 기괴하다고 여길 따름이었다. '그알'을 보다 무릎을 쳤다. 그것은 '기술'이었다. 한 사람을 자포자기하게 만드는, 죄책감에 휩싸여 판단력을 잃게 만드는, 처벌 받아도 싸다는 윽박지름에 맥없이 끌려가게 만드는 그런, 위험한 기술. 잔인하고, 비열하다.

 

이같은 술수는 퇴치해야 마땅하다. 그러나. 

 

자백의 귀재라는 별칭을 선사하곤 하는 그 기술을 그들이 멈출 리 있을까. '능력'으로 평가 받는 그 사고 회로를 버릴 리 있을까. 이쯤 되면 거의 자동으로 방향을 트는 듯 보이는데, 자신들의 오류를 수긍할 리 있을까. 그럴 리가. 곳곳에서 자리를 꿰차고는 기괴함을 너얼리 떨치고들 계시다.

 

귓가에 앵앵거린다. 생존 전략마저 뒤틀리는 소리가. 약점 수집할 시간도 부족한데, 건강한 토론일랑 언감생심. 토론장에서 늘어놓는 궤변이나마 그리워질 지경이다. 

 

이래저래 'K'가 대세다. 케이팝, 케이푸드에 이어 영화, 웹툰, 막걸리, 군것질까지. 건강하고 유쾌한 K토론을 기대해보는 건 영 무리일까. 우리나라 특유의 감각과 관계를 녹인 '케이토론'. 그 감칠맛에 상상 속에서나마 지레, 입맛을 다셔 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