왠지 좋은 '웬'을 수집하세요
EBS를 듣는다. 크리스틴과 캐머런이 진행하는 파워 패턴. 영어 공부 겸 오락용으로 꽤 훌륭하다.
최근 재미나고도 의미심장한 표현을 하나 배웠다.
"I love it when ~"
'~ 할 때(~일 때) 무지 좋다'는 뜻. 그런데 이 표현이 퍽 묘하다. 누구나 떠올릴 법한, 거창하고 그럴싸한 내용으로 빈칸을 채우면 어색해진다는 것. '승진할 때', '결혼했을 때', '돈을 많이 벌면' 등과 같은 표현에는 쓰지 않는단 거다.
사소한 상황, 무심코 지나치곤 하는 감각, 세심하게 들여다보았을 때 차오르는 만족감에 주로 사용한다는 '아이 러브 잇 웬 ...... .'
예시는 이랬다.
주말 아침, 거실 카펫에 햇빛이 쫘악 드리울 때.
마른 낙엽을 밟으며 바스락거리는 소리를 들을 때.
반려견이 소파 꼭대기에 앉아 머리를 내 어깨에 턱하니 얹을 때.
맑은 날 여우비가 내릴 때.
버스정류장에 다다르는 순간, 타려는 버스가 곧 도착한다는 안내음이 울릴 때.
희한하다. 모르지만 알 것 같은, 'love'를 붙이지 않으면 안 될 것 같은, 미세하나마 찌릿한 그 느낌이 전해진다. 욕구가 솟는다. 나만의 '러브 잇 웬'을 발견하고 간직하고 만끽하고 싶은 욕구.
거창한 목표에 닿기 어려워 주창하는 소확행 따윈, 고이 보내 드리자.
떠올리기만 해도 저릿한 찰나를, 누리자. 모으자. 곱씹자.
내가 진심 황홀한 순간이 이리도 작디작은 맞물림으로 빚어진다는 사실을 깨닫는 순간에 밀려드는 감동까지, 덤으로, 연거푸, 헹가래!
야식 유혹 뿌리치고 맹물만 들이킨 채 자고 일어난 아침, 붓기 쏙 빠진 손가락을 영접할 때.
설정인가 싶게 턱을 괸 채 잠든 친구를 훔쳐보는 6초간.
이런. 당장 떠오르는 게 둘 뿐이다. 일상 속, 감각을 깨울 필요가 있겠다. 집요한 수집 작업에 돌입하리라.
떠올리자. 기억하자. 공유하자.
풍요를 맛보리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