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치관에 대하여

젊은 회의주의자에게 보내는 편지 2-2

몽자크 2016. 10. 30. 00:00

p. 129

여론조사에서 가장 먼저 고려해야 할 점은, 대중의 정신세계를 탐사하려는 이 시도를 후원하는 게 대체로 돈 많은 권력집단이라는 점이지. 그리고 이런 집단들이 여론조사를 후원하는 이유는 단지 돈이 많아서 호기심을 충족시키기 위해서가 아니야. 다시 말해 시장조사처럼 세상을 해석하기 위해서가 아니라, 세상을 자신들의 입맛에 맞게 바꾸기 위해서지. 그건 마치 특정 상품을 선호하는 대중의 기호가 수동적으로 관찰되는 현상이라기보다는 적극적으로 조장되고 만들어지는 현상인 것과 마찬가지야.

일반인들이 볼 때 여론조사는 현존하는 의견의 반영처럼 보일 수 있네. 하지만 여론조사를 실시하는 이들의 입장에서 보면, 이는 향후 여론을 조장하기 위해 현재 사용할 수 있는 재료의 상태가 어떤지를 확인하는 과정이라고 할 수 있어.

 

p. 143

누구의 작품을 읽고 누구를 공부해야 하냐는 자네의 질문은 사실 내가 종종 받는 질문이야. 따라서 대답하기 쉬워야만 하네만 사실은 그렇지 않다네. 여러 가지 이유 때문이지. 일단 가장 분명한 이유는 권위 있는 이들에게서 자네 주장의 논거를 찾아선 안 되기 때문이네. 물론 자네도 이미 눈치 챘다시피 나 또한 인용과 발췌를 많이 하는 편이네. 그건 내가 많은 책을 읽었다는 걸 보여주기 위해서이기도 하고, 내 글을 좀 더 생기 있게 만들기 위해서이기도 하며ㅡ 나보다 더 내 생각을 잘 나타낸 표현을 사용하기 위해서이기도 하네. 따라서 자네에게 남의 주장을 논거로 사용해서는 안 된다고 조언하는 나 또한 이런 약점에서 자유롭다고는 할 수 없네.

 

p. 161

여기에는 아주 중요한 역설이 작용하네. 사람들은 종종 반체제활동이나 저항사상에 이끌리는 이들을 권위에 반항하는 지극히 개인주의적인 사람들로 여기지. 하지만 막상 가장 뛰어난 반대파들은 오히려 이타적인 이유로, 그리고 개인보다는 집단을 위한 대의명분을 위해 행동한다네. 19세기 후반과 20세기 대부분에 걸쳐 등장했던 위대한 반대파들 중 상당수는 사회주의의 합리성과 정의를 확신했네. (내가 여기서 말하는 도덕적인 지식인들은 안토니오 그람시, 카를 리프크네히트, 장 조레스, 디미트리 투코비치, 제임스 코널리, 유진 뎁스와 같으ㄴ 사람들이야. 만약 자네가 이들의 삶과 작품을 잘 모른다면 그건 자네 손해네.)

 

p. 171

아담 마후니크는 언젠가 내 인생을 서서히 바꿔놓은 말을 한 적이 있는데, 바로 정치체제는 더 이상 이념으로 구분되지 않는다는 말일세. 오히려 정치체제를 구분 짓는 핵심적인 차이는 시민을 국가 소유물로 생각하는 측과 그렇지 않은 측이라고 말했네. 이 말은 노예제도를 비난하면서 사람은 사람의 소유물이 될 수 없다고 말한 토머스 페인을 떠올리게 하지.

 

p. 184

나는 소년과 소녀, 그리고 인간과 인간의 만남에 다른 인종 간이라는 말을 쓰는 사람들과는 무조건 싸울 준비가 돼 있네. 소년과 소년, 소녀와 소녀의 경우라도 마찬가지네.

 

p. 194

웃음이 약이 된다는 의미는 매우 불손한 생각이네. 왜냐하면 높은 수준의 유머에는 오히려 충격을 주거나 놀라게 하거나 무심코 생각하게 만드는 요소가 반드시 필요하니까.

 

p. 195

날카로운 여담과 재기 넘치는 농담이 패배자들에게는 위안이 되며, 어떤 권력도 막을 수 없는 것이라고 말했지. 자유로운 정신은 아이러니한 농담을 들으면 당황하기 마련이고 그 내용을 이해하려는 과정에서 농담의 효과는 더욱 강력해지네.

 

p. 205

현대의 집단사회에서 만대파들이 교수대를 직면하거나 감방에 수감되거나 하는 경우는 잘 없네. 해고나 밥줄이 끊길지 모른다는 위협을 느끼는 경우도 드물지. 물론 지금도 이런 위협을 직면해야만 하는 상황이 있긴 하고, 특히나 이런 일들은 인류의 번영에 필요한 원자재를 생간하는 국가들에서 많이 일어난다네.

몽자크 曰                  우리나라, 현 대한민국 사회의 수준에 한숨짓게 만드는 대목이다.

 

p. 208

자네에게 간청하네. 제발 남들 눈에 한 가지 사안에 지나치게 집착하는 편집광으로 비취는 걸 두려워하지 말게나. (물론 편집광으로 여겨지는 것과 실제로 편집광인 것과는 큰 차이가 있네.) 자네를 편집광이라고 매도하는 건 오히려 그런 모욕적인 언사를 쓰는 상대방이야말로 자신들의 죄에 관대하며 불량한 양심을 지니고 있따는 걸 보여주는 거라네, 따라서 편집광이란 비난을 들으면 오히려 이후에도 계쏙해서 자네 주장을 지루하게 늘어놓겠다는 자극을 받길 바라네.

 

p. 211

보상이란 표현이 적절할지는 모르지만, 급진주의자로 살면서 얻는 가장 위대한 보상은 자네와 같은 일을 해나가는 동지들을 만나고ㅡ 그들의 삶에서 배우고, 나아가 다수의 의견에 저항하면서 자네 자신만의 확신과 경험을 추구하는 삶에서 얻는 자신감이라네.

 

p. 237

내게는 이 편지의 대미를 장식할 화려한 미사여구나 방점이 없네. 다만 내가 해주고 싶은 말은 이런 걸세. 아무리 귀에 달콤해도 비이성을 경계하게나. ‘초월적인 경험을 주장하몀ㄴ서 자네로 하여금 무언가에 스스로 복종하라고 말하거나 자네 자신을 내놓으라고 말하는 이들의 말에는 귀를 틀어막게. 남의 동정을 불신하고 자신과 타인의 존엄성을 더욱 중시하게. 남들 눈에 교만하고 이기적으로 비취는 걸 두려워하지 말게. 모든 전문가들을 그저 포유동물로 여기게. 불공정과 우둔함을 절대로 방관하지 말게. 침묵은 무덤 속에서도 한없이 할 수 있으니 논쟁과 반목을 기쁘게 찾아 나서게. 자네 가슴 속에 존재하는 대의명분과 변명을 늘 의심하게. 남들이 자네에게 맞춰 살아가길 기대할 수 없는 것처럼 자네 또한 남에게 맞춰 살아가지 말게.